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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흐르듯이 순리대로

종로에 도롱뇽이 산다, 백사실계곡(2026, 6, 14) 본문

국내 山行日記/서울·북한·도봉

종로에 도롱뇽이 산다, 백사실계곡(2026, 6, 14)

물흐르듯이순리대로 2026. 6. 15. 05:29

경복궁역 3번 출구에서 직진으로 가면 이렇게 보이는 종로구 마을버스 정류장이있고

마을버스 정류장을 지나 다시 100여m?를 더 가면 경복궁역 적선동버스 정류장이 있는데

이 곳이 경복궁역 3번출구 시내 버스 정류장이다, 이곳에서 1711번 버스로 약 15분정도를 가서

세검정초등학교 버스정류장에 내리면 여기는 서울종로구 신영동이다, 이곳에서 세검정은 약 100m거리에 있다,

팔각정뒤 홍제천 신영교를 건너서

골목길 입구에 백사실 계곡과 현통사로 가는 안내판을 따라 약간 경사진 골목 30여m를 올라가

다시 보이는 계단으로 올라가면

높은 돌 옹벽 위에 자리한 집 두채가 보이는데 이곳은 종로구 신영동 105번지 일대다,

이곳은 높은 언덕에 자리한 곳이라서 맞은편 상명대학교 동쪽 마을이 잘 조망되는 지역이다,

제일 높은 곳에 있는 집을 지나 산으로 들어가면 이렇게 매트를 깔아 놓은 길로 이어지는데

안전시설과 함께 이정표도 있는 길에서

짧은 계단을 내려가면

세검정 초등학교에서 500m거리인 현통사 입구다,

현통사 위치는 종로구 세검정로 6나길 53(종로구 신영동 83번지)이며 현통사는 고려시대 장의사의 부속 암자로 창건된 사찰로, 6,25 전쟁 때 소실되었다가 이후 재건된 절이다.

현통사앞 백사실계곡 물은 암반으로 된 지형에 따라 폭포를 형성하며 급하게 흐르는데 평소에는 물이 거의 없지만 우기 철에는 엄청난 폭포수로 변해 홍제천으로 흘러가는데 현통사 앞에 있는 집들은 어떻게 지탱을 하는지? 궁금하다, 그래도 한번도 사고 없이 잘 견뎠어니 별 탈이야 없겠지만,

고려시대 장의사의 부속 암자로 세워진 현통사 창건자는 알려져 있지 않으며, 장의사와 함께 고려 불교의 흔적을 보여주는 유적지로 전해지는 사찰이다,

현통(玄通)이라는 뜻은 불교에서 깊은 깨달음과 통달을 뜻하는 말로 사찰 이름에 걸맞게 수행과 깨달음을 상징하며 고려 불교 사찰들은 흔히 이런 철학적 의미를 담아 이름들을 붙였는데 현통사도 그 전통을 따랐다,

장의사(藏義寺)는 신라 무열왕 6년(659)에 황산벌 전투에서 전사한 신라 장수 장춘랑과 파랑의 명복을 빌기 위해 창건된 사찰로, 고려와 조선시대 왕실의 후원을 받는 중요한 불교사찰이였다, 종로구 신영동 세검초등학교 일대가 옛 장의사 터로 전해진다,

현통사앞 계단으로 백사실 계곡으로 들어간다, 6월 중순의 녹음이 서울의 중심부인 종로가 아니라 강원도 깊은 산골 느낌이다,

계곡을 따라 이어지는 산길을 따라 올라가다보면 2004년 4월, 1km구간에서 도롱뇽알주머니 수만개가 발견된 곳으로 서울 4대문 안에서 도롱뇽 서식처를 발견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로 서식처를 보호하기 위한 시민들의 적극적인 동참과 도롱뇽은 함께 살아가야 하는 우리의 이웃이라는 안내가 보인다,

개울, 못, 습지 등의 낙엽 밑이나 땅속에 사는 도롱뇽은 밤에 나와 곤충, 지렁이 따위를 잡아 먹고 사는데 몸길이는 15cm 정도이고 머리는 납작하고 눈은 돌출되어 있으며, 몸 빛은 갈색 바탕에 암갈색의 둥근 무늬가 있으며 피부는 매끈한, 양서류 도롱뇽과에 속하는 개구리와 같은 분류군에 포함되는 동물이다,

노롱뇽(Hynobius leechii)은 주로 산림 지역의 깨끗한 계류와 습지에 서식하며, 수분이 풍부하고 산림 피복이 잘 유지된 환경에서만 안정적으로 살 수 있는 동물이다,  

특히 토양, 습도, 낙엽층, 수관율, 등 미세한 환경 조건이 맞아야 개체군이 유지되는 도롱뇽이 서울 중심부인 종로에 자리 잡고 산다는게 자연보존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알려 준다,

현통사에서 가까운 거리에 조선시대 별서터가 있다, 자연경관이 수려한곳에 건물터와 연못 등이 남아 있으며 인근에는 백석동천 월암등의 글씨가 새겨진 바위가 있다, 별서(別墅)는 오늘날로 치면 ‘별장’과 비슷한 개념으로, 본가나 관청과는 떨어진 곳에 따로 마련한 휴식이나 은거공간을 뜻한다.

별서 사랑채의 초석이 그대로 남아 있는 이곳 별서터는 조선 중기의 대표적 문신 정치가 이항복(李恒福, 1556~1618)의 별서로 알려지고 있는데 이항복은 임진왜란 때 선조를 호종하고 명나라와의 외교를 주도했으며, 영의정까지 오른 인물이며. 그는 ‘오성과 한음’ 이야기로 널리 알려져 있고 시호는 문충(文忠), 호는 백사(白沙)다. 

별서 앞 연못과 육각정의 초석도 그대로 남아 있다,

별서터의 정확한 기록이 없다보니 2012년 국립문화재연구소의 명승 경관자원 조사연구사업을 통해 이 일대가 한때 추사 김정호의 소유였음을 입증하는 문헌자료가 발견되고 추사의 <완당점집 권9>에 선인 살던 백석정을 사 들였다 라는 내용과 주석에서 나의 북서에 백석정 옛터가 있다, 라는 내용등으로 분석해 본 결과 추사는 터만 남은 백석정 부지를 사들여 새로 건립한 내용으로 확인된다,

백사실 별서터는 조선시대 별서(別墅, 별장 겸 정원)의 옛 터로 현재는 자연과 어우러진 전통 별서 문화의 흔적을 보여주는 중요한 유적지로. 조선 후기 사대부들이 도성의 번잡함을 피해 은거와 풍류를 즐기던 공간으로 보인다, 

‘백사실(白沙室)’은 흰 바위 와 모래가 깔린 계곡이라는 뜻으로, 맑은 물과 흰 모래가 어우러진 자연 경관에서 비롯된 학문 연구 시문 창작, 자연 감상, 손님 접대 등 사대부들의 생활문화 공간으로. 연못, 석축, 수로, 정자 터 등이 남아 있어 당시 별서 정원의 구조를 짐작할 수 있음 조선 사대부의 은거 문화와 정원 미학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별서(사랑채)앞 넓은 마당에서 사랑채 주춧돌을 보니 안채와 툇마루 공간이 금방이라도 되살아날 것처름 느껴진다,

별서터에서 돌계단으로 연못으로 내려가니 연못에 고마리 라는 안내 판이 있다, 고만 고만한 크기로 꽃이 피는 한해살이 풀, 우리나라의 습지나 개울가에서 자란다, 특히 수질 정화에 기여하는 풀로 키는 50~100cm 정도로 자라고 백색바탕에 릔빛이 도는 꽃은 8~9월에 피며 봄에 연한 잎과 줄기를 삶아 나물로 먹거나 된장국을 끓여 먹기도 하는 식물이다,

길 옆에 있는 별서터를 니와 백석동천으로 올라간다,

기는길 내내 짓 푸른 자연은 싱그럽기만 하고

가는길 옆 숲에는 연식을 알 수 없는 고목 느티나무가 이끼를 머금은채 찬연히 빛 나고 있다,

오늘(6월 14일)일기 예보는 오후부터 강한 바람을 동반한 소나기가 내릴 거라고 했는데 아침 기온은 등줄기에 땀이 줄줄 흐를 정도로 뜨거운 날씨다, 그래도 계속해서 이어지는 숲속 그늘 길이니 그나마 다행이다,

별서터에서 100m 정도를 지나 왔는데 백석동천과 능금마을 갈림길 이정표가 있다, 사실 백석동천은 여러번 가 보았지만 능금마을은 생소하다, 

이정표가 있는곳 갈림길에서 직진은 백석동천, 왼쪽 갈림길은 능금마을 길이다, 450m 거리라고 하니 들어갔다가 와도 그리 먼 거리는 아니니 들어가 보기로 했다, 이 깊은 곳에 마을이 있다? 상상도 안되여서다,

여기서 백석동천이란? 백악산(북악산) 뒷자락에서 북한산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자연 경관이 수려한 백사골에 조성된 동천(洞天 = 산천으로 둘러싸인 경치 좋은 곳)의 하나로 

주변에 흰 돌이 많고 경치가 아름답다고 하여 白石洞天이라 불린다고 전해지는 곳이다, 

결국은 이 일대를 모두 통틀어 말하는 것으로 이정표의 백석동천은 白石洞天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암각바위가 있는 곳을 말한다

능금마을 갈림길에서 100여m를 들어가니 다시 갈림길이 있다, 북악스카이웨이(팔각정)으로 가는 길이다,

여기서는 계속해서 백사길 계곡을 따라 능금 마을로 간다,

마을 이름이 능금 마을이니 사과 단지인지? 궁금하고 부암동에서는 조금 떨어진 외진 곳 산중에 있는 서울 마을이니 더욱 궁금하기도 해서다,

가는길은 계속해서 백사실 계곡이라서 요즈음 가뭄으로 물은 없지만

경치는 아주 좋다, 경치에 취해서 올라가는데

뜬금없이 텃 밭이 보인다,

분명한 것은 지목상 전(田)이 아닌데 누가 농사를 지을까?

오른쪽으로는 텃밭이 이어지지만 가는길은 아주 흥미롭기까지 하다,

요즈음 가물어서 물이 없는 계곡인데도 여기는 적지만 손 담글 물 정도는 있다,

물론 도롱뇽 보호지역이나 물에 들어가서도 안되는 곳이지만  

보이는 물 웅덩이 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는 그런 곳이다,

그렇게 올라가다 보니 위 쪽에 뭔가가 보인다,

이정표에 따르면 능금마을 90m 전이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그늘길을 돌아 나가니

비닐하우스 농장이 있다

이 농장은 도롱이 농장이다,

도롱이농장을 지나니 페가 인듯한 판자집도 있고

판자집 앞 길에는 승용차가 10여대나 주차해 있었다, 여기는 북악스카이웨이와 연결이 되는 모양이다,

그리고 언덕에 있는 집 한채가 전부인 이 마을이 능금 마을? 인가 보다, 사과나무 한그루 보이지 않는 마을, 승용차가 주차해 있는 집에서는 채소 한단을 1,000에 판매한다고 써놓은 판지(뚜거운 종이)도 보인다, 이게 능금마을 전부다,

곱게핀 꽃 몇송이가 있는 길로 돌아 내려간다,

디시 북악스카이웨이(팔각정)으로 올라가는 갈림길로 돌아 왔다,

갈림길 초입은 아주 늘널한 길이다, 오른쪽 바위에 걸터 앉아 간식도 하고 북악스카이웨이로 올라간다,

오름길이기는 하지만 편안한 길이다,

계단길이 있기는 하지만 그리 높지도 않고

올라가는길 곳곳에 이정표가 길을 알려주니 헷갈릴 이유도 없고

햇볕은 쨍쨍 내리지만 시원한 숲 길이니 아주 쾌적하다,

가는길 옆에는 샘터 약수도 있는데 수질검사 불 합격이니 음용은 안된다는 안내도 있지만 손 적실 물 정도는 졸졸 나온다,

여기는 별서터에서 280m다, 우리는 능금마을을 거쳐 왔어니 약 800m 정도는 되는 거리다,

그러고 보니 이 길은 동네 주민들 산책길이다, 강아지와 함께 가족들이 걷기 운동을 하는 모습도 보인다,

그리 멀지 않은곳 앞이 휜히 트이면 북악스카이웨이다,

별서터에서 330m 북악스카이웨이 팔각전 880m 이정표가 있는 북악스카이웨이 에서 팔각정방향으로 올라간다, 

여기서 백사실계곡 탐방은 끝을 맺고 다음 번에는 한양도성 곡성에서 삼청공원까지의 일기를 기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