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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흐르듯이 순리대로

한양도성 곡성에서 삼청공원으로(2026, 6, 14) 본문

국내 山行日記/서울·북한·도봉

한양도성 곡성에서 삼청공원으로(2026, 6, 14)

물흐르듯이순리대로 2026. 6. 15. 05:44

북악스카이웨이로 팔각정으로 올라가다가

북악산 정상, 한양도성 곡성, 북악산 4번 출입문, 등의 이정표가 보이면

도로 건너 북악산 4번 출입문으로 들어간다,

북악산 4번 출입문은 곡성(曲城)안내소로 가는 길이다, 

첫 출발은 잘 만들어진 데크계단길이다,

계단을 올라가서 다시 내려가고

다시 또 올라가면

금방 언덕 능선에 도착하고

이어지는 능선을 따라 잠시 가면

曲城안내소가 있다, 여기서 曲城이란? 성곽이 산 능선을 따라 축조되면서 생기는 곡선 형태의 성벽 구간을 말한다,

우리는 曲城으로 올라가 청운대쉼터로 해서 법흥사터를 거쳐 삼청언내소로 간다,

曲城안내소를 지나 곡성으로 가는 길은 그리 멀지 않다,

마지막 계단으로 올라가면

한양도성 곡성의 우람한 성곽이 버티고 있는데 도성을 볼때마다 생기는 궁금증?은 외벽은 석재로 마감되어 있으나 城내부는 여장을 제외한 전체가 흙으로 채워져 있다, 이런 형태의 한양도성이 500년을 지난 지금까지 내부의 흙이 외벽을 지탱하는 공법은 내탁법(內托法)으로 

성벽의 외벽을 돌로 쌓고, 그 내부를 흙으로 다져 채워 외벽을 지탱하는 방식으로, 판축(板築) 기법을 활용해 흙을 층층이 다져 안정성을 확보했다. 이는 백제 산성 축조법과 유사하며, 한양도성의 중요한 축성 기술로 알려져 있다.

曲城 외벽을 따라 옆으로 돌아가면 곡성 내부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다,

계단으로 올라가 주변 경관을 살펴 보면

曲城 성벽 아래는 한양도성 외부를 따라 가는 데크계단이 길게 이어지고 

바로 앞에 보이는 산은 북악 정상으로 한양도성은 계속해서 북악정상으로 이어진다, 아래 사진에 보이는 성곽 외부에 나있는 데크계단길은 청운대쉼터에서 50여m 북악 방향 전방에 있는 암문으로 성곽외부로 나가는 길과 합류해,

북악스카이웨이로 내려가는 길이나 다시 도성안으로 넘어 들어가는 성량 城壤(성량=성벽위 통로)구간의 길로 곡성에서 백악 성량간 한양도성 바깥길은 암문 밖 순성길이다, 조선시대 도성 안과 밖에는 각각 군사들이 순찰을 도는 순성길이 있었다. 조선후기에는 어영청, 금위영, 훈련도감의 세 군문이 각각 8패씩을 내어 도성 주변을 순찰했다 

곡성에서는 인왕산은 물론이고 남산과 종로구, 중구, 그리고 용산구 까지의 시가지도 보이고

왼쪽으로는 혜화문(惠化門)에서 동대문까자 이어지는 한양도성 낙구간과 이 일대 서울시내도 잘 보인다, 惠化門한양도성의 북동쪽에 있는 문으로. 창건 당시에는 홍화문이었으나 창경궁의 정문 이름을 홍화문으로 지음에 따라 중종 6년(1511) 惠化門으로 개칭했다.문루는 1928년에, 홍예는 1938년에 헐렸는데 1994년 본래 자리보다 북쪽으로 옮겨 새로 지었다.  

한양도성 曲城은 주요 지점이나 시설을 효과적으로 방어하기 위해 성벽의 일부분을 둥글게 돌출시킨 것을 말하는데 인왕산과 백악에 하나씩 있다. 이 중 개방된 백악곡성은 도성을 둘러싼 서울의 산세가 가장 잘 보이는 곳으로 꼽힌다.

한양도성은 태조(1396)가 한양도성을 처음 쌓을 당시에는 토성과 석성으로 구성해 곡성이 없었어나, 세종 4년(1422)에 도성 전체를 석성으로 개축하면서 곡성 1곳과 城壤(성량=성벽위 통로)15곳을 설치했는데 이는 한양도성 방어체계의 중요한 변화였다, 

곡성에서는 북한산 서부지역 일대도 조망된다, 우측으로 부터 보현봉과 사모바위 비봉과 향로봉등이 길게 이어지는 서부지역 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곡성에서 조금전 곡성 아래서 곡성으로 넘어 들어 온 데크길 밑으로,

도성내로 내려간다

북악산 성곽은 지난 1968년 북한 무장공비 31명이 청와대를 습격한 1, 21 사태 이후 군사상 보안문제로 일반인 출입을 제한했다가 참여정부 시절인 2007년 4월 북악산 와룡공원에서 숙정문, 백악마루, 창의문까지를 제외한 전 구간을 처음으로 개방했고 

문재인 정부시절인 2020년 10월 한양도성 북측면 성곽 외부 탐방로를 개방하고 2022년 상반기에 50여년간 폐쇄되였던 성곽남측면도 전면 개방해 오늘에 이른다, 

곡성을 내려와 잠시 백악방향으로 가면 너른 평지 공터가 보이는데 여기는 청운대 쉼터다,

청운대쉼터에서는 백악순성길 암문 방향으로 

잠시 가다가

도성 밖으로 나가는 백악암문 직전 왼쪽 데크길 진입로가 보이면

이 데크 계단으로 내려가면 삼청안내소 빙향이다,

이곳 데크계단 내림길은 한참을 내려 가야 할 정도로 길다,

내림길 데크계단 길이 길어서 내려가고 또 내려가도 끝이 없을 것처름 느껴진다, 

그래도 내려가는 길이라서 다행이지만 삼청안내소에서 이 길을 따라 올라오는 사람들은 버거울 것 같은 계단길이다, 

내림길 경사도가 급하다 보니 내려가는 속도도 나지않지만

이정표는 청운대 쉼터에서 계단길로만 225m를 왔다고 알려주는데 고작 200여m 내림길이 멀게만 느껴지는 이유는 내림길 경사가 급하다는 뜻도 된다,

그리고 긴긴 내림 계단길의 끝은 이렇게 보이는데

여기는 법흥사터로 계곡 물 웅덩이도 있다, 누군지는 모르겠어나 부처 형상의 조형물을 돌 조각위에 올려 놓았다,

신라 진평왕때 나옹 선사가 창건한 법흥사 터라고 전해지는 이곳은 조선 세조 임금이 연굴사 동쪽(지금 삼청터널 근처)에서 호랑이 사냥을 했다는 내용을 통해 연굴사 터 로도 추정하고 

절터 주변에서는 15세기 상감분청사기 조각들이 발견되어 조선 전가부터 건물이 있었다고 추정하는 절터다

법흥사 터는 한때 문전 대통령이 주춧돌에 앉아 쉬다가 세간의 구설에 올랐던 절터기도 하다, 법릉사터는 비탐으로 개방되지 않는다, 오른쪽 돌담이 쌓아진 곳 일대가 절터다,

잠시 쉬였어니 다시 이어서 가야한다, 지금부터의 길은 완만하다,

매트가 깔린 길을 느긋하게 내려가면

길은 아주 편안하다, 

2026년에 대통령 집무실을 용산에서 다시 청와대로 옮겨오면서 이 구간도 페쇄되지 않았을까 걱정을 했는데

여기는 개방한 후 그대로 통행에는 지장이 없다,

오늘보니 개방이후 길보다 더 편안하게 데크 보강도 하고 매트도 새로 깐 것 같다,

삼청쉼터다, 예전 간이 수영장을 하던 자리도 지나간다,

북악산을 이용하는 시민들에게 지장을 주는 것을 최소화 하려고 각종 시설들을 보강한 것 같은 길을 지나 

삼청안내소 화장실까지 내려가면

삼청동 길을 건너 삼청공원으로 들어간다,

여기서 길은 도로변으로 있는 데크길을 따라 가야 삼청공원 관리소 방향으로 가는데

오늘은 왼쪽으로 삼청공원 외곽 순환길로 들어간다,

삼청공원 외곽순환산책길은  林道로 너무 편안하고 아름다운 길이다,

이 길에 있는 이정표는 여러 방향의 안내를 하고 있다, 

위로 올라 가는 길도 있고

계속해서 이어지는 길도 있다,

그리고 이길은 삼청공원 유아숲체험장으로 가는 길이기도 하다,

가는길 오른쪽에 안내소가 보이면 유아숲체험장은 직진이고 우리는 오른쪽으로 돌아 나간다,

오른쪽으로 2번 꺽어서 나가면 끝 지점에 시비 2개가 있는데 왼쪽 시비는 <단심가>로, "<이몸이 죽고 죽어 일백번 고쳐죽어 백골이 전도 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임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줄이 있으랴>" 오른쪽 시비는 <백로가>"<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고, 백로야 네가 무슨 잘못이 있느냐, 임금께 충성한 죄밖에 또 있느냐>" 시비다,

정몽주의 대표 시조인 <단심가>와 그의 어머니가 지은 것으로 전해지는 <백로가> 詩碑는 고려 충신 정몽주와 그의 어머니 시로 굳은 청절과 일편단심을 기리기 위해 조성한 공간이 삼청공원이다. 시비가 있는 곳에서 조금만 더 가면 삼청동길(도로)이다, 삼천동길에 있는 데크길로 가면 어디로던 갈 수 있지만 오늘은 이 길을 따라 경복궁민속박물관까지 가서 일정을 마무리 했다,

세검정버스 정류장에서 백사실계곡 능금마을을 거처 북악스카이웨이 북악산 제4문으로 곡성안내소와 곡성, 청운대쉼터, 법흥사터, 삼청안내소, 경복궁민속박물관 까지 약 7km에 3시간 14분이 걸렸다 삼청공원 정자에서 30여분 휴식시간 포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