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흐르듯이 순리대로
인수봉을 바라보며 백운대에 오르다(2026, 10, 25) 본문

2026년 10월 25일 늦 가을에 만난 숨은벽의 신비로움은 뒤로 하고 숨은벽 아래 계곡으로 내려와 백운대로 올라간다,

숨은벽에서 이어지는 백운대로 올라가는 길은 그리 녹녹치 않다, 여기는 잠시의 평지길도 없는 암반 너들길을 끝까지 올라가야 하는 길이다, 위 사진에 보이는 곳은 숨은벽 암릉이고 나무 뒤 붉은 점으로 보이는 사람들은 우리가 방금 내려온 숨은벽 대슬랩 아래서 계곡으로 내려오는 사람들이다,

숨은벽 암릉구간만 거친게 아니고 여기서 백운대로 올라가는 암릉 너들길도 매우 거친 길이다,

그나마 위안은 단풍으로 곱게 물든 오름길이라 백운대로 향하는 마지막 워밍업은 이 정도는되여야?

오늘따라 숨은벽에 많은 사람들이 왔어니 백운대로 올라가는 이 길이 붐비는 것도 자연스럽겠지만

그래도 난이도 최상의 오름길을 올라간다는게 쉽지만은 않다,

그래도 그나마 단풍이 반겨 주는 길이니

가다가 힘들면 단풍 구경도 하고

길 옆 아무데나 털석 주저 앉아 쉬기도 하면서

자연스럽게 오름길의 고통을 즐겨야 하는 구간이다,

누가 시킨일도 아닌데 힘들고 고통스럽기만 하다면 점점 더 힘들어 지는 길이니 힘든 것도 즐겨야 하는게 맞다,

말이 그렇지 힘들고 고통스러운 것을 즐기라니 무슨 말인가? 이런 구간에서는 잠시 숨을고르면서 자연을 살펴보거니 이곳을 올라가는 스스로를 생각해 보면 마법에 걸린듯 힘들다는 생각도 잦아들기 때문이다, 내 스스로가 할수 있다고 느끼면 정신 신경이 육신의 고통을 줄여 주기라도 하는 모양이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왼쪽 숨은벽을 올려다보니 숨은벽 대슬랩을 올라 온 사람들이 계속해서 위로 올라가고 있는 모습도 보인다, 누구나 다 저 길을 갈 수는 없겠지만 보이는것 만으로도 아찔하다,

올려다 보는 사람은 나 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마찮가지다, 일반인들이 자연스럽게 다닐수 있는 최상의 구간이 공룡능선이라고 했다, 공룡능선 전체 난이도와는 비교 불가지만 단거리로 치면 여기도 공룡능선의 구간보다 약 하지는 않을 것 같다,

숨은벽정상 아래와 백운대아래 경계인 안부로 올라가는 마지막 관문인 계단길이 보인다, 이제 저 계단을 올라가면 숨은벽에서 올라가는 길은 끝이다,

계단을 올라가면서 내려다 본다, 이 길은 시작부터 끝까지 이렇게 가파른 암릉 너들길이다, 그래일까? 나무로 만든 계단을 보는 것 만으로도 이제 힘든길이 끝났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계단 상단부로 올라가면 거대한 바위밑에 호랑이굴(토끼굴)이라 불리던 구멍이 보인다, 옛날에 배밀이를 해서 저 구멍을 통과해 백운대로 올라가기도 했었다, 지금이야 상상도 안되지만 먼 옛날에는 그렇게 다니기도 했다는 전설?도 있는 호랑이굴도 지나간다,

이제 오늘의 마지막으로 숨은벽 아랫녁 송추 일대를 내려다 본다, 바로 아래 마을은 양주 37번 버스를 타고 찾아온 밤골입구고 그 뒤로 멀리 보이는 대 도심은 고양시인지? 양주시인지도 분간도 어려운 마을들과 낮은 산들이 끝이 없을 정도로 이어진다,

잠시 아래를 다시 한번 더 내려다 보고나서 마지막 계단을 올라가면

숨은벽정상 아래와 백운대아래 경계쯤인 곳에 한사람이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좁은 바위틈 사이로 지나가게 된다,

암릉틈 사이로 나가면 고양시와 양주시 일대가 조망되던 시야가 서울로 옮겨진다,

성북구와 강북구 그리고 노원구까지와 수락산과 불암산 그 뒤로 남양주와 구리시 일대까지 보이는 모두가 집들로 채워진 서울북부 도심이다,

바로 옆에 붙어 있는 인수봉에는 정상에 올라가 있는 사람들과 올라가는 사람들이 하나의 점과 점으로 보인다, 자연과 하나가 된 Climber분들이 부럽기도 하고 아름답기도 하다, 신라시대부터 부아악(負兒岳)으로 불렸든 인수봉, 이는 남성의 성기를 닮은 불두덩에 기원한 것이라고 한국의 명산기에 적혀있다,
날카롭게 솟아있는 인수봉의 최초 등반인은 1926년 영국인 아처와 일본인 하야시라고 한다, 이후 인수봉에 매료된 등반인들이 암벽의 골과 면면마다 볼트와 하켄을 박아대면서 인수봉에 올랐다, 그 결과는 셈세한 아름다움을 점점 잃어가고 암벽은 지금 만신창이로 변했다, 안타까운일이다,

그래도 클라이머(Climber)들은 인수봉으로 오른다, 무었이 클라이머 들을 저 직벽 암봉으로 올라가게 만들까? 올라가 보아야 특별한 것도 없고 그 저 암릉정상에서 내려다 보는게 전부?인데 난이도 최상의 오름을 올라가는 성취감일까? 아니면 생의 목표일까?

인수봉 정상 등반은 암벽등반장비(로프, 하네스, 헬멧등)를 사용하는 고도의 기술이 필요한 국내 대표 화강암 암벽이며 인수릿지, 고독길등 여러 멀티피치 루트가 개척되어 있다. * 위에서 언급한 말은 일부 클라이머(Climber)들을 경시(輕視)하는 말은 절대 아님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오해 금지)*

안부에 눌러 앉아 하늘을 처다보니 왼쪽 대슬랩은 백운대고 오른쪽은 인수봉이다, 우리는 숨은벽에서 이곳으로 올라왔다, 오늘따라 청명한 가을 하늘은 더 맑고 더 푸르러게만 보인다, 이렇게 2026년 가을도 지나가나 보다

백운대 직벽 아래 마지막 지점 쯤에 늘어진 암릉지대다, 지금은 암벽 등반 훈련장으로 이용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까마득한 옛날 이 암릉지대에 누워 하늘을 처다보며 웃기도 하고 소리도 질러보고 주먹밥 한덩이 먹고나서 낮잠도 즐겼던 시절이 있었던 곳이라 반세기도 훌쩍 지난 세월이 흘렀어도 추억은 늘 새롭게만 다가온다, 그때 그 시절 친구들은 지금 어디서 무었을 하며 살고 있을까? 보고 싶다 친구야! 나 오늘 힘들지만 백운대로 오른다,

긴시간은 아니지만 잠시 명상에 잠겨 있었던 암반지대에서 내려와 백운대로 가는 길로 접어들었다,

여기서 백운대로 올라가는 곳은 그리 멀지 않다, 잠시 이런길을 따라 올라가면

가을이 살포시 내려 앉은 곳에 백운대구역 북한산성 성곽이 보인다, 여기가 일제시대 위문이라 불리던 백운봉암문(이곳에서 20여m의 거리) 근처다

앞에 보이는 두 형제처름 마주보고 있는 저 봉우리는 만경대(봉)이고

하늘을 처다보면 백운대다, 2026년 10월 25일인 오늘은 여기도 사람들이 넘처난다, 예전과 지금의 다른 점은 숨은벽과 다름없이 외국인들도 많이 보인다, 산성을 따라 위로 올라간다, 올라가는 길에는 튼튼한 쇠봉으로 만든 안전 난간대도 있고 계단도 있다,

마지막 백운대 오름길은 만만치 않은 곳이라 오름길 중간에서는 사진을 찍을 여유도 없어 계단끝까지 올라가서야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나서 주변을 둘러보면 앞에는 만경봉이 우람하게 버티고 있고 그 앞으로는 노적봉이 고개를 살짝 드리밀고 있다,

그리고 조금 멀리는 비봉능선과 웅장하게 제 모습을 당당히 드러 내놓고 세를 과시하는 의상능선 일대가 그림처름 너울지는 전경을 보여 준다, 이렇게 웅장하고 아름다운 산세가 서울에 있다는게 믿기지 않는다, 여기가 정말 서울일까?

만경대 넘어로 보는 강북구와 도봉구, 노원구, 한강건너 강동일대까지 조선을 건국하신 태조임금께서는 지금의 서울을 예견하시고 한양으로 천도를 하신 것일까?

600여년 전이면 까마득한 옜날인데도 무학대사와 정도전과 함께 조선의 도읍지로 이땅을 선택하시면서 천년을 설계하신 혜안(慧眼)에 지금의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일까?

철봉과 계단을 모두 올라왔어면 백운대로 가는 잠시의 수평길도 있다, 물론 여기도 안전난간대는 정상까지 있다,

백운대로 올라가는 마지막 오름길 계단에서 올라오는 사람들과 하산하는 사람들을 한번 더 살펴 보고나서

정상으로 올라가면 三角山 안내 표지가 있다, 그대로 옮기면는 백운대 836,5m 인수봉 810,5m 만경봉 787m로 구성되여 있는데 고려의 수도인 개성에서 볼 때 이 봉우리들이 마치 세개의 뿔처름 보인다 하여 삼각산이라 불렸다고 하며 고구려 동명왕의 왕자인 온조와 비류가 남쪽으로 내려와 한산에 이르러 부아악에 올라가서 살 만한 곳을 정했다는 전설이 있는데 이때의 부아악이 삼각산을 말하는것이다,

삼각산 봉우리는 쥐라기(1억 8천만년전 ~ 1억 3천5백만년전)말에 형성된 대보화강암 으로 이루어져 있다, 서로 형상을 달리하는 반구형 형태를 보이며 산 사면의 경사는 대체로 70%이상에 달한다, 주봉인 백운대 정상에는 약 500m2 의 평탄한 공간이 있어 수백명의 사람들이 앉아서 탁터인 주변경관을 즐길 수 있다,
백운대 동쪽에 자리잡은 인수봉은 뿔 모양의 바위 하나가 우뚝 솟은 형상을 하고 있으며 암벽 등반 장소로 유명하다, 동남쪽에 솟은 만경대는 국망봉 이라고도 불렸다, 만경대에는 무학대사와 얽힌 이야기가 있다 태조 이성계의 왕사인 무학대사가 조선의 수도 후보지를 찾으러 순례할 때 백운대로 부터 맥을 밟아 만경대에 이르러 서남방향으로가 비봉에 이르럿다고 한다, 거기에 한 석비가 있었는데 무학이 길을 잘못 들어 여기에 이른다 라고 적혀 있어서 길을 바꾸어 내려가 궁성터(오늘의 경복궁)를 정하였다고 한다, 라고 적혀있다,

이제는 백운대정상이다, 한국산악회에서 1975년 8월 15일에 세운 통일서원 비도 있는데, 비문에는 "조상대대로 물려받은 조국강산 겨레도 나라도 하나 이기에 피와 사랑으로 한 덩이 되어 우리 손으로 통일을 이루오리다" 이다,

백운대정상에는 오늘도 태극기가 휘날린다, 오늘 뿐 만이 아니라 365일 휘날리는 태극기다, 태극기가 휘날리는 백운대 정상에는 백운대로 올랐다는 인증 사진을 찍는 줄이 길게 이어졋는데 우리도 이틈에 끼여 30여분 정도는 기다린 것 같다,

정상에서 사진을 찍을려고 기다리는 동안 백운대정상 500m2(약 150여평)너른마당?을 내려다보니 사람들로 빼곡하다, 아주 먼 옛날 고작 몇사람만 있던? 저 마당에 누워 하늘을 올려다 보며 웃고 울던때가 오늘따라 왜 이렇게 그리운지? 너무 오랬만에 와서일까, 그리고 20여년전 어느날 백운대로 왔을때 이 너른바위 마당에서 평소에는 잘 못보던 후배를 만났는데 백운대가 인연이 되여 이제는 매주 함께 나들이를 하는 찰떡 친구가 된 인연도 있는 소중한 장소기도 하다, 최xx사장 앞으로도 늘 건강하시기를 ~

지금의 북한산 백운대와 만경대, 그리고 인수봉을 삼각산(三角山)이라 불렸다, 고려때 오순(吳洵)은 시에서는 "공중에 높이 솟은 세 송이의 푸른연꽃, 아득한 구름안개 몇 만겹이던가" 라고 했고 이존오(李存吾)도 "세송이의 기이한 봉우리 멀리 하늘에 닿았는데, 아득한 대기에 구름연기 쌓였네, 처다보니 날카로운 모습, 긴칼이 꽃혔는데, 가로 보니 비슷비슷한 푸른 연꽃 솟았네" 라고 했다, 이는 백운대와 만경대, 인수봉의 세 봉우리가 날카롭고 아름답게 솟아있는 상태를 서정적으로 노래 한 것이라고 했다,

백운대에는 3,1운동 암각문이 새겨져있다, 비 바람에 깍여 자세히 알아 볼 수도 없는 상태지만 내용을 옮기면 "이 암각문은 3, 1운동의 역사적 사실을 새긴 기록문이다, 경천애인 이란 네 글자와 함께 독립선언문은 기미년(2월 10일 최남선이 작성하였으며 3월 1일 탑골공원에서 자신이 독립선언 만세를 도창했다는 내용을 새겼다,

이 글을 새긴 시기는 3, 1운동 이후로 추정되며 그 목적은 거국적 독립선언 만세운동의 역사적 사실을 후세에 영구히 전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이 암각문을 새긴 정재용은 1886년 해주에서 출생한 독립운동가로 1919년 2월 19일 해주에서 상경해 3, 1운동의 불을 당겼던 장본인이다" 라고 안내되여 있다, 백운대에서 내려다 본 백운봉 암문에서 정상으로 올라오는 길은 내려다 보이는 것 만으로도 아찔한 경사도다,

2016년 9월 11일날 이곳으로 왔었다, 그리고 오늘이 2016년 10월 25일이니 만 10년 한달만에 다시 백운대를 찾았다, 10년동안 수없이 많은 곳을 다녔어면서도 왜 백운대는 10년만에 왔을까? 그리고 앞으로 이곳으로 또 다시 올 수는 있을까?

아래 사진에 보이는 산릉들은 왼쪽으로 북한산성이 주욱 이어지고 제일 끝 우둑선 봉은 보현봉이고 그다음 안쪽으로는 문수봉과 나한봉, 그리고 나월봉, 증취봉, 등이 이어져 있는 의상능선으로 이어진다, 사진에는 보이지 않지만 의상능선에는 용형봉과 용출봉 의상봉등도 있다,

눈이오나 비가오나 365일 북한산 정상에서 펄럭이는 이 태극기는 오늘도 강풍을 맞어며 반겨 준다,

30여분이나 기다려서 찍은 백운대 인증 사진이다,

이제는 백운대에서 내려가는 시간이다, 송곳처름 솟아 있다고 한 인수봉이 잘 가라고 인사를 하는듯 하다,

백운대정상 인증샷을 하기 위해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을 지나서

백운봉 암문으로 내려 왔다, 올라오는 사람들과 내려가는 사람들로 뒤엉키는 인파와 안전 문제로 백운대에서 암문까지 내려오는 사진은 없다, 올라 갈때 몇장 찍은 것으로 만족?

백운봉암문에서 백운대까지는 300m거리로 그리 멀지는 않다, 북한산성탐방지원센터는 3,8km이고 도선사 입구에 있는 백운대탐방지원센터는1,8km이다, 물론 도선사에서 우이역까지는 약 1,5km정도를 더 가야하지만 오늘은 하루재방향으로 내려 간다,

내림길도 그리 만만한길은 아니지만 산길이라는게 어디 만만한 길만 있던가, 그러려니 하고 내려가면

200여m의 거리에 백운산장이 있다, 백운산장은 북한산 백운대 아래 위치한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 산장이다.

1924년 작은 오두막에서 시작해 오랫동안 등산객과 암벽등반가들의 쉼터 역할을 했던 대한민국 산악문화의 상징적인 장소 중 하나로 1992년 화재 이후 재건되었으며, 2019년에 민간 산장 운영을 종료하고 현재는 산악문화 전시와 휴게 기능을 갖춘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백운산장에서 내려 다보이는 아랫마을은 예전과 달리 거의 아파트 군락으로 탈바꿈한 것 같다,

백운산장에서 하루재로 내려가는 길은 단풍 세상이다,



그러다가 보이는 인수암(仁壽庵)이다, 이름 그대로 인수봉(仁壽峰)아래에 자리 잡고 있어 봉우리 이름을 따서 인수암이라 부르는데 인수암은 인수봉에서 사고로 숨진 산악인들의 극락왕생을 기원하기 위해 세워졋다는 설 도 있는 암자로 창건연대는 1970년대 이전부터 존재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인수암을 지나 내려가면 인수암 앞에

북한산 국립공원특수산악구조대도 있다,

산악구조대 앞에는 화장실도 있고

여기는 백운대에서 1,2km 정도의 거리로 백운탐방지원센터는 아직 900여m 거리에 있다

인수암과 산악구조대 건물을 지나서 하루재로 간다, 백운봉 암문에서 부터 시작된 단풍은 가는 내내 이어진다,

하루재로 왔다, 하루재는 왜 하루재 일까? 예전 우이동 주민들이 북한산에 올라가 땔감을 구해 오려면 꼬박 하루가 걸렸기 때문에 하루재 라고 불렀다는 설과 과거 돈암동 전철 종점(1941~1968)에서 이 고개까지 오는 데 꼬박 하루가 걸렸다 하여 하루재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설도 있는데 하루재는 해발 490m의 작은 고개로 영봉과 백운대, 인수봉으로 갈라지는 삼거리다, 이곳에서는 인수봉의 거대한 암벽이 정면에서 보여 많은 등산인들이 쉬여가는 명소다,

하루재에서 도선사로 내려가는 길도 온통 단풍세상이다,




자연 우리의 미래 라는 문을 나가면

북한산국립공원 백운탐방지원센터가 있고

도선사 주차장이다, 주차장옆 2층 건물은 도선사 불교대학이 있는데 대한불교조계종의 인가를 받아 체계적인 신행 교육을 진행하는 불교대학은 단순한 불교 지식 교육보다 신행(信行)과 수행을 함께 익히는 과정에 중점을 두고 있으며, 수계식을 통해 불자로서의 계율실천 불교사 이해, 불교미술, 불교명상, 경전 공부 등 교육과정 구성하고 있는 사찰대학이다,

도선사에서도 내려가야하는 길은 1km정도다, 잠시 도로로 내려가다가

도로옆 산행로를 따라 가면



그리멀지 않은 거리에

선운산장이 있고

도로 옆 데크길을 따라 가다보면

북한산국립공원 우위분소도 있다

이 정도에서 사실 상 오늘 숨은벽과 백운대 탐방은 끝이다,

숨은벽을 가기 위해 도착한 밤골에서 숨은벽과 백운대를 지나 이곳까지는 약 7,5km로 먼 거리는 아니다, 언제 다시 이곳을 찾아올 수 있을지?는 알수 없지만 2026년 10월 25일은 여기까지다, 오늘 함께 힘들고 거친 발걸음을 해준 동행 3분게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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