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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흐르듯이 순리대로

북한산성 12성문-4, 부왕동암문(2016년 8월 13일) 본문

국내 山行日記/서울·북한·도봉

북한산성 12성문-4, 부왕동암문(2016년 8월 13일)

물흐르듯이순리대로 2016. 8. 16. 16:39

증취봉에서 부왕동 암문으로 내려가는 길

성랑지와 만나게 된다, 성랑지는 초소건물이 있든 자리로

초소는 승군의 숙소를 겸했든 곳이다, 북한산성에는 성랑지가 143개소나 있었다

1개 초소에 승군이 몇명이나 있었는지?는 기록이 없지만 초소당 5 ~ 6명정도가 있었다고

가정을 하면 그 인원만 1000여명에 이른다고 유추 할수 는 있다,

이곳이 부왕동 암문이다,

증취봉에서 나월봉으로 가는 능선사이 안부에 있는 부왕동암문이다, 

부왕동암문 아래는 원각사라는 사찰이 있었다, 이 원각사는 부암동암문 지역 일대의 방어와

산성의 축조, 관리에 큰 역활을 담당했든 승병이 주둔하였든 승영사찰이였다,

부왕동암문의 실질적인 방어와 수축을 담당했든 원각사가 있어

원각문이라고 불리기도 했든 문이다, 증취봉과 나월봉 사이의 험준한 능선에

감추어진 문으로 성 바깥의 삼천사 방향에서 성내 중흥사에 이르는

길목을 통제하기위해 만들었든 숨겨진 문이다,

부왕동암문을 올라서서

나월봉으로 간다,

이 구간에 쌓여저 있는 이 돌들이 북한산성 성곽이다,

1711년 축조당시부터 이어저 내려온 비교적 훼손이 적은 성곽으로

거의 온전한 상태로 보존되여 있다, 더 이상 허물어지기

전에 복원하는 노력이 필요할 것 같은 곳이다,

이 구간은 2개의 봉우리를 우회해서 지나가야 하는 구간이다,

위험구간으로 지정한 나월봉과, 문화재 발굴작업을 하고 있는 나한봉이다,

사실 나월봉 암릉길은 그리 위험하지 않어면서도

아기자기한 바위 길을 즐길수 있는 길인데 위험구간으로 분류한

것을 보니 무슨일이 있었든 것일까?

백제가 하남 위레성에 도읍을 정하면서 부터

북한산은 삼국의 뺏고 빼았기는 역사를 되풀이했든 역사의 현장이다,

오늘은 백제의 군복을 입어야 했고 다음에는 신라의 군복을 입고 전쟁에 투입되였든

고단한 민초들의 삶이 북한지나 기타 역사서에 고스란히 배여나있다,

지금 우리가 답사를 하고 있는 북한산성은

지금부터(2016년 기준) 305년 전 숙종37년(1711년)

4월 3일부터 같은해 10월 18일까지 약 6개월이라는 아주 짧은

기간에 완성한 실로 놀라운 축조물의 유적이다,

이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고난 후 수도 한성을

수비하기 위해서는 견고한 북한산성 축성이 필요하다는 김우항(金宇杭)과

김중기(金重器) 같은 현명한 신하와 성능이라는 걸승(傑僧)이 있었고 신하의 주청을

받아들여 축성을 결단한 숙종임금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였다,

북한지에 나오는 역사를 편찬한 사람은 성능이라는

스님인데 성능은 전남 구례 지리산 밑에있는 화엄사의 승려였는데

어떻게 북한산성 축성을 담당하게 되었는지 그 과정에 대해서는 기록이 없어나

성능스님의 스승인 각성스님(벽암대선사)도 승병을 이끌고 평양성과

남한산성(인조 4년. 1626년)을 축성하였고 화엄사 대웅전을

완공(인조 14년. 1636년)한 스님이다,

성능스님도 화엄사 각황전을 완공(숙종 25년. 1699년)하였기 때문에,

스승 밑에서 축성법과 병력(승병) 통솔법을 습득하여 스승의 뒤를 이어 북한산성

축성의대업을 담당하게 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성능스님은 승병을 유치하기 위해 축성과 동시에 산성내에

중흥사를 창건했다, 중흥사는 승병의 군영(軍營)이란 뜻으로 치영(緇營)이라 불렀다,

그 외에도 12개소의 사찰을 새로지어 승병을 분산 수용했다,

12개의 사찰은 국녕사. 원각사. 부왕사. 보광사. 보국사.

용암사. 원효암. 상원사. 서암사., 노적사. 부왕사. 경흥사. 중흥사. 태고사

등인데 이중 중흥사 태고사 등 일부 사찰은 기존의 사찰 및 폐찰을 복원 또는 중창했고

서암사는 고려 문인공 민지의 저택을 사찰로 중창 복원했다.

북한산성의 유력한 역사서인 북한지는

성능스님이 다음 관리자에게 인수 인계를 하기위해

작성한 기록이라 보면 될것같다,

오을은 많이 더운 날이다, 땀으로 전신에 물이 줄줄 흐른다,

옷을 벗어 짜면 물이 뚝뚝 떨어질 것만 같다, 잠시 바람이 불어오는 성곽으로

올라섯다, 솔 바람을 맞는 이 기분은 여기가 천국인 것 만같다,

그리고 또하나 지나 온 의상능선과

가는길 내내 따라오는

백운대의 아름다운 전경이 더위를 잋게 만든다,

나한봉과 장군봉 사이의 성곽 복원 현장이 보인다,

이 정도면 완벽에 가까운 복원이다,

장군봉으로 올라간다, 장군봉이라는 이름은 지도에도 없다,

그러나 일부 산꾼들은 그렇게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