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흐르듯이 순리대로
북한산성 12성문-2, 국녕사~가사당암문(2016년 8월 13일) 본문
중성문으로 올라가지않고
국녕사로 들어가기 전 오늘을 함께한 일행들과 오늘의 인증샷
그리고 오른쪽 좁은길로 국녕사로 올라간다,
국녕사(國寧寺)는 조선시대 숙종 37년(1711년)에
북한산성 축성 이후 산성의 수비를 위해 창건한 13개 사찰들 중 하나로,
86칸 규모로 승려 청휘(淸徽)와 철선(徹禪)이 창건하였다고 전해진다. 6.25전쟁 때
소실되었으나 다시 중건했다, 또한 국녕사는 북한산성 수비를 맞았든
승군 사령관격인 도총섭이 있었든 절이기도 하다,
일반적으로 사찰로 가는 길 초입은 위풍 당당한
엄청난 규모의 일주문이 버티고 있는 것만 보아 온 사람에게는 무척이나
생소한 절 입구기도 하지만 절 입구를 찾기도 어려울만큼 길도좁다,
국녕사로 올라가는 길은 가파르거나 그리 험하지는 않다,
그러나 오늘은 날씨가 문제다, 이 정도에서 벌서 등줄기에 땀이 줄줄흐른다,
여름이나 더워야 하는게 당연하지만 너무 더우면 빨리 지친다,
얼마 가지 않아서 국녕사가 보인다,
국녕사는 북한산성 축성시에 지어졌는데 86간에
승려 청휘, 철선이 창건하였다 한다. (八十六間 淸徽 徹禪 所刱). 이 사찰은
가사당 암문을 지키기 위한 거점사찰이었다. 영조때 학자 여암 신경준 선생의
가람고(伽藍攷)에 소개되어 있으나 한국사찰전서(1979년)에는
폐사된 것으로 되여있다.
지금의 국녕사는 옛 국녕사터에 중창 한 것이다.
자리만 그 곳일 뿐 옛 국녕사의 법등(法燈)은 전해지지 못한다.
중창한 뒤 1991년 불타서 1998년 능인선원에서
본격적인 중창을 거쳐 지금의 대가람이 되었다. 24m의 국녕대불과
국녕대붕을 에워싸고 있는 만불(萬佛)이 가히 장관이다,
이제 국녕사를 뒤로 하고 의상능선으로 올라간다,
의상능선에 있는 가사당암문은 국녕사에서 약 200여m 의 된 비알
등로를 올라가면 된다, 원래 이 국녕사를 세운 이유는 절 뒤에 있는 북한산성 암문인
가사당암문 일대의 방어를 책임지는 사찰로 지여진 곳이다,
국녕사에서 가사당 암문까지의
거리는 얼마되지 않지만 된 비알을 잠시 올라가야 한다,
의상능선 가사당 암문을 오르면서 건너다 보이는 삼각산 주봉들
백운대, 만경대, 노적봉, 염초봉 등 과 북장대가 있었다고 알려지는 노적봉 아래
봉우리까지 일대가 웅장한 북한산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사면에서 올라서면서
보이는 산성의 문 , 이곳이 가사당 암문이다,
가사당 암문은 의상봉과 용출봉 사이 해발 448m의
고개마루 안부에 위치하고 있다, 1711년 숙종 37년 북한산성 성곽을
축조하면서 만든 8개의 암문중 하나로 현재 백화사가 위치한 의상봉길에서
북한산성으로 오르는 길목을 통제하기 위해 설치했다,
암문은 산성의 방어력을 높이기 위해
적이 비교적 쉽게 접근할수 있는 고갯마루나 능선에 설치했다,
이문은 성안에 국녕사가 있어 흔히 국녕문이라고 부르기도 했는데
암문은 비상시에 병기나 식량을 반입하는 통로이자 때로는 지원병력의 출입문으로
활용된 일종의 비상 출입구다, 성문 보존상태는 아주 양호함 편이다,
이곳 의상능선 구간 성곽은 아직 보수하지 않은곳이다,
그래서 보이는 성곽돌은 모두 원형 그대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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