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흐르듯이 순리대로
한양도성길(4) 국립극장~광희문~흥인지문 (2016년 9월 25일) 본문
예전 타워호텔이 반얀트리 호텔로 이름이 바뀌였다,
반얀트리호텔은 장충동국립극장에서는 앞에있는 큰길을 건너 맞은편 언덕으로 올라가면된다,
반얀트리 호텔로 들어가는 길에 만든 작은 인공 폭포
호텔규모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서울성곽길은 반얀트리호텔 입구에 있는 야외 주차장 끝
호텔부지 밖으로 만들어 놓은 데크길을 따라 장충동 방향으로 가면된다,
이곳 서울성곽 축성연대도 조선 태조때로 보면된다,
물론 후일 보수를 거듭한 곳이기는 하지만 성곽의 보존상태는 아주 양호한 편이다,
반얀트리 호텔에서 신라호텔 뒤 성곽길은 성곽내로 걸어도 되고 성곽외부 길로 걸어도 된다,
오늘은 절반 정도는 성곽길 외부로 그리고 신라호텔 뒤는 성내로 걷는다,
성곽 외부로 걷다가 성내로 들어와서 성곽을 따라 걷는다,
성 외부는 성곽의 축성연대나 기법등을 알수있기도 하지만 성을 오르기가 어렵게 축성되여
있지만, 성 내부에서는 성 바같에서 처들어오는 적을 효율적으로 퇴치하기 위해서 최대한 아군에
편리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비교적 편안하게 걸을수도 있다, 예외는 있지만 대부분은 그렇다,
이곳은 장충동 신라호텔 뒤다, 성곽의 여장까지가 신라호텔 사유지 경계인듯 하다,
한양도성길 탐방객들을 위해 사람이 걸을수 있는 폭 만큼 신라호텔측에서 내여준것 같은 그런 길이다,
가는길 내내 신라호텔 뒤 정원에
꾸며진 조각 예술품들을 보고 가는 재미도 있다,
이 길의 끝은 장충체육관이다,
한양도성길 장충구간은 예전 타워호텔에서 장충쳬육관으로 이어저 있다,
장충체육관에서 이어지는 성곽은 도로가 나고 주택들이 들어서면서 모두 사라졋다,
이곳 장충체육관이 있는 곳에서 흥인지문인 동대문까지의 서울성곽구간은 어디에 성곽이 있었는지?
감도 잡히지 않을 정도로 흔적도 없이 사라저 버렸다, 건너편에 보이는↓ 성곽은 분명 이리로
이어 젓을텐데, 그많은 성 돌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결국 이곳에서는 광희문으로 갈수밖에 없다, 광희문 근처는 조금이라도 복원 해놓았어니
결국 성 길은 이곳에서 광희문으로 연결 되엿을 것이 아닌가,
주택지 길을 따라 광희문으로 간다, 갈수 있는 길이 이곳 뿐이니까,
광희문교회가 나온다, 이 교회앞이 광희문이다,
흔적도 없이 사라진 동네에 기적처름 복원되여 있는 광희문 근처의 서울 성곽
광희문은 서울의 방어와 시민 출입을 위해 세운 한양도성의 4소문 중의 南小門 남소문 이다.
광명(光明)의 문, 이라는 뜻의 광희문(光熙門)은 흥인지문과 숭례문 사이에 위치(중구 광희동 2가 105번지)
하여 시민들의 출입용 구조물이자, 유사시에는 군사 지휘소였다. 이 문은 이칸수문(二間水門)과 오칸수문(五間水門)이
가까운 속칭 수구문(水口門)으로 태조 5년(1396) 9월에한양도성을 쌓을 때 남소문(南小門)의 역할로 지어졌다. 임진왜란으로
한양도성과 궁궐이 파괴될 때 광희문도 파괴된 뒤 120년이 지나 숙종 37년(1711)에 고쳐쌓고, 숙종 45년(1719)에
석축 위에 문루(門樓)를 짓고 광희문 현판을 걸었다.
광희문의 성돌 각자는 광희문 안과 광희문 밖 두 군데 있는데 우선 광희문 안쪽은 문루 바로 옆 여장에
2개의 돌에 글자가 있다. 첫째 각석에는 'O소 감관 김덕경 서원 이종엽 고직 김광복' (O所監官金德京書員李琮燁庫直金光福)과
둘째 각석에는 '감관 김수함 군 김영득 석수 김성복 신미 팔월 일' (監官金壽涵軍金英得石手金成福辛未八月日)
이란 각자로 쓰여 있다.
세조 2년(1456)에 도성 안에서 한강으로 바로 통할 수 있도록 현 반얀트리 호텔(장충동 2가)에서
한남동으로 넘어가는 고개에 남소문을 새로 내고, 광희문이라고 했다. 13년 후인 예종 1년(1469)에 지경연사 임원준등이
남소문은 수레가 다닐 수 없으므로 실용성이 없다고 주장하고 음양가들은 세조의 장남 의경 세자(덕종)가 20세에 세상을 떠났고,
남소문을 열어 놓으면 도성 안 여자들 음행이 많아진다는 설을 주장하자 예종이 그 건의를 받아들여 남소문을 폐쇄하고,
이곳 수구문(광희동 2가)에 광희문, 현판을 떼어다가 달았다. 그래서 광희문은 풍수지리사상에 따라 430년간
남소문의 역할을 담당했다, 현재는 원래의 남소문 주초(柱礎)마저 없어졌다.
일제때 경성운동장은 해방과 함께 서울운동장으로 이름이 바뀌였다가,
1984년 잠실에 잠실종합운동장이 개장하면서 동대문 운동장으로 이름을 바꾸어 사용하게 되였고.
잠실에 서울종합운동장이 생기기 전까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다양한 스포츠 시설을 갖춘 공간이였다
지금은 모두 철거하고 초현대식 건물로 지어진 디자인프라자 건물이 들어 섯다
디자인프라자 뒤 길로 서울동대문 운동장 공원으로 가면
여기가 서울운동장 자리였음을 알수있도록 철거하지않고 그대로 보존해둔
서울운동장 야간 조명탑이 있는 곳이 나온다,
동대문 운동장이였던 이곳은 원래
조선시대 군사 훈련장인 훈련도감이 있었던 곳이다.
일제 강점기 시대에 일본은
훈련도감과 성벽을 없애고, 1925년 경성운동장이라는 이름으로 운동장을 세웠다
해방후 서울운동장으로 사용하든 곳을 허물고 땅속에 숨어있는 기초들을 복원해서
이 만큼이라도 다시 되살려 냈다,
아래 사진은 일제가 성곽을 허물고
경성운동장을 만들었든 자리에 복원한 이간수문,(二間水門),
한양도성은 이렇게 배수지(排水地)로
2간수문(二間水門), 5간수문(五間水門), 등을 만들어 성내의 물길을 관리했다,
서울운동장공원 건너편 노점상 분위기는 중국 어느 시장같다,
흥인지문 興
한양도성 사대문 중 동쪽에 있는 대문이다,
보물 제1호인 흥인지문은 도성 동쪽에 있기 때문에 동대문이라고 불렀다.
1397년 도성 축조와 함께 축성한 동대문은 이후 몇 차례 중수를 거쳤으며, 1869년 대대적인
개축이 이루어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동대문은 광화문에서 시작된 종로가 끝나는 지점이며, 보신각,
원각사지십층석탑, 종묘와 함께 종로 600년 세월을 지켜온 상징이다.
한양도성은 서울과 지방을 구분하는 경계선인 동시에 삶과 죽음을 가르는 경계선이기도 했다,
왕이든 백성이든 생을 마감하면 반드시 도성밖에 묻혀야 했어니 서울 사람들에게 도성은 삶의 증표와 같았다,
한양도성길 국립극장 ~ 광희문 ~ 흥인지문 간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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