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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흐르듯이 순리대로

경복궁 야간개장 - 경회루 와 교태전,(2016년 10월 20일) 본문

국내 山行日記/그곳에 가고싶다

경복궁 야간개장 - 경회루 와 교태전,(2016년 10월 20일)

물흐르듯이순리대로 2016. 10. 21. 18:46

경복궁의 서쪽 방지() 안에 세워진 누(), 경회루다,

동서가 128m, 남북이 113m인 못 안에 방형의 섬을 만들고 거기에 누를 세웠다.

경회루는 경복궁의 꽃이다, 궁중연회를 베풀거나 외국 사신을 접대하던... 나라의 공식적인 연회장소였다.

근정전, 종묘 정전과 함께 조선시대 3대 목조건물인 경회루는 우리나라 누각 중 가장 규모가 크다. 마흔 여덟 개의 육중한

 돌기둥 위에 누마루를 수평으로 깔고, 장엄한 팔작지붕을 씌운 모습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경회루는 건축물 자체로도 훌륭하지만, 그 안에서 바깥을 바라보면 탁 트인 풍광에 가슴까지 시원해진다.

조선시대 왕들의 공식 연회 장소였던 경회루. 역사속의 경회루는 어떤 모습이였을까?

경회루는 우리나라 건물 중 잡상이 가장 많다. 추녀마루에, 열한 개나 자리하고 있다..

경회루는 당대 최고의 토목건축가인, 노비 출신의 박자청이, 태종의 명을 받아 8개월 만에 완성한 대역사다.

이층 누마루에서 서쪽을 바라보면, 인왕산을 배경으로 아름다운 연못 풍경이 펼쳐진다. 넓은 연못에서는 뱃놀이를 즐겼다.

동으로는 교태전, 강녕전, 사정전, 근정전에 이르는 구중궁궐의 아름다운 경관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다.

경회루를 가장 많이 이용한 임금은 세종이었다고 한다, 가뭄에는 기우제를 올렸고, 무과 시험을 주재했으며

무사들의 활쏘기 시범도 이곳에서 관람했다. 왕들은 경회루에서 외국 사신을 맞이하고 종친과 신하들을 위한 연회를 자주 베풀었다.

경회루는 세종의 손자, 단종이. 자신을 옥죄어오던 숙부, 수양대군에게 옥새를 넘겨준 곳이기도 하다.

오늘 경회루를 배경으로 한 빛 쇼와 무희들이 한바탕 춤사위를 펼치는 공연도 했다,


역사를 보면 경회루는 연산군에게 쾌락의 공간이었다. 연못 서쪽에 만세산이라는 인공섬을 만들고

경회루 아래층에는 비단 장막을 치고 전국에서 뽑아 올린 기생들에게 춤과 노래를 하게 했다. 이중 특별히 선발된 기생을

‘흥청’이라 했는데 연산군은 황룡주에 흥청을 태우고 연꽃 사이를 누비며 패덕한 생활을 일삼았다.

재물을 마구 써버린다는 흥청망청 이 바로 여기서 나온 말이다.

경회루 못에는 크고 작은 세 개의 인공 섬이 있다. 두 개의 네모난 작은 섬에는 소나무가 심어져 있다.

그 중 가장 큰 섬 위에. 경회루가 자리한다.

 조선의 정궁()인 경복궁이 창건된 것은 1395년으로, 이때 경회루 주위에 작은 연못이 조성되었고,

1412년(태종 12) 태종의 명에 의하여 큰 방지를 파고 경회루를 창건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 때 불타서 273년간

폐허로 남아 있다가 1867년(고종 4) 흥선대원군에 의하여 재건된다,

못에 비친 그림자가 특히 아름답기로 유명한 경회루. 여기에는 특별한 과학이 숨어있다.

북악산에서 흘러들어온 물이 연못 전체를 순환하게 되어 있어 항상 맑은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경회루로 들어오는 물줄기는 세 곳이 있다. 하나는 북쪽 호안에 조각된 용머리로, 그 입을 통해 물이 들어온다. 동쪽 돌다리 밑으로

또 다른 물줄기가 흘러들어온다. 북쪽 연못 바닥에서도 지하수가 솟아 나온다. 못의 바닥이 약간 기울어져 있어,

강제순환 장치 없이도 연못을 맑고, 잔잔한 상태로 유지시켜 준다

경회루 옆 근정전뒤 제일 깊은 곳에는 교태전이 있다, 교태전(殿)은 왕비의 침전으로

중궁() 또는 중전(殿)으로 불렀다. 교태전이라는 명칭은 주역()의 64괘 중 태()괘에서 따온 것인데

괘의 형상은 위로는 곤()이고 아래는 건()이 합쳐진 모양이다. 지천태(), 즉 하늘과 땅의 기운이

조화롭게 화합하여 만물이 생성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강녕전에서 양의문을 들어가면 교태전이 나온다, 교태전 일원에는 동쪽에 원길현, 승순당이 있고

서쪽에는 보의당, 내순당, 함홍각, 아미산으로 둘러쌓여 있어며 교태전 서쪽으로 난 재성문을 나가면 흠경각과 함원전이 있다,



이곳부터는 야간개장으로는 더이상 돌아볼곳이 없으므로 이제 경복궁을 나가야한다,

나가는 길에 보이는 전각들 ~




근정문을 나간다, ~ 뒤에 보이는 큰 건물은 근정전이다,

다시 영제교로 돌아 나왔다,

백악으로 부터 흘러내려오는 물, 즉 금천이 서에서 동으로 흐르도록 한 어구가 있고 어구의 중앙에

영제교(永濟橋)라는 다리가 놓여있다, 어구와 영제교는 근정문에서 이루어지는 왕과 신하들의 조회시에 신하들이

도열할 위취를 구별하는 경계이기도 했다, 영제교 를 기준으로 북쪽에 2품 이상의 관원이 서고,

남쪽에는 3품 이하의 관원이 정열했다, 

오늘 처음 들어갔든 흥례문을 지나

광화문을 나간다,


광화문 맞은편 광장에서 경복궁 방향으로 본 광화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