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흐르듯이 순리대로
소요산의 가을(3) 칼바위갈림길~자재암(2016년 10월 23일) 본문
등산코스는 이곳 칼바위 갈림길에서는 계속 직진해서 공주봉까지가서 하산을 해야한다,
그러나 오늘은 비가 점점 더 거칠게 내리다보니, 바닥이 많이 미끄럽다, 더욱이 공주봉까지는 평탄한길이 아니다,
그래서 이곳 칼바위 갈림길에서 자재암으로 하산하기로 했다, 함께한 분들의 안전이 우선이니까.
자재암으로 내려 가는길
형형색색의 단풍이 지금까지 온길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맞아준다,
능선에서 공주봉으로 직진하지 않고 이길로 하산을 했기 때문에 볼수 있는 단풍,
오늘 이 길로 들어선게 행운이다,
곱고 아름다운 단풍속으로 거닐다 보니
내려가는 길이 가파르고 미끄러워도 문제가 될게 없다, 단풍을 즐기느라 천천히 걸어야 하니까,
오늘은 소요산 단풍을 제대로 즐기는것 같다,
길은 미끄럽고 다소 경사가 급하지만 이제 부터는 단풍을 즐길 시간이다,
선녀탕 입구까지 내려 왔다,
선녀탕은 이곳에서 멀지는 않지만 선녀탕으로 거슬러 올라가지 않아도 된다,
이정표 아래에 있는 이곳을 선녀탕이라 하면 되니까, ㅎㅎ
길은 계곡이다 보니 계속해서 너덜길을 따라 가야한다,
단지 돌길이라 미끄럽다 보니 조심해서 가야하고 그래서 속도는 나지 않는다,
계곡길 끝 데크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자재암이다,
자재암(自在庵)은『봉선본말사지(奉先本末寺誌)』「자재암(自在庵)」조에 의하면
654년(신라 무열왕 1년) 원효 스님이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그 후의 연혁은 알 수 없으나, 전하는 바에 의하면
고려시대에 들어와서 974년(광종 25년) 각규대사(覺圭大師)가 태조의 명으로 중창하고 소요사라 했다.
청량폭포 옆 기암괴석 아래에 위치한 천연동굴로서 창건당시 원효스님께서 수행하였다는 수행처였으며,
1812년 학산 윤제홍이 그린 <소요사 방화굴>이란 그림에 보면 불상을 봉안했던 것을 알 수 있다. 현재의 나한전은 근대에
축대를 쌓아 조성한 것으로 1961년 이후 세워진 것이다. 나한전 내부에는 16나한상을 봉안하고 있다.
신라의 고승이었던 원효대사가 나이 서른이 넘어 소요산에 머물며 수행을 쌓았다.
그 분의 덕행은 차츰 온 마을에 퍼지게 되어 많은 사람들이 소요산에 모여들기 시작 하였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가자 무엇보다도 시급한 것은 부족한 식수를 해결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소요산은 돌산으로 마땅한 샘터를 찾기가 어려웠다.
모두들 걱정만 하고 있던 차에, 하루는 선정에 들어 지맥(地脈)을 관찰하다 바위 사이로 깨끗한 물줄기가 흐르고 있음을
발견한 원효대사는 바위틈을 꿰뚫어 깨끗한 물이 흐르게 하였다.
그 이후 신기하게도 이 물을 마신 사람들의 속병이나 갖가지 위장병이 치료되었다고 한다.
원효대사(元曉大師)가 만든 우물이라 하여 '원효정(元曉井)'이라 불리었던 것이 각지에 만병통치의 약물로 소문이 퍼져
특히 음력 3월 3일 삼짓날에는 물을 마시러오는 사람들의 행렬이 끊이지 않았다. 더욱 놀랄 만한 것은 이 물은 아무리 가물어도
그 물줄기가 그치지 않고 계속 되었다는 것이다. 반면에 상주승려(常住僧侶)가 수행에 어긋날 때에는 물이 조금씩밖에 나오질 않았다 한다.
또한 마음속에 음흉한 생각을 조금이라도 품고 있는 사람들이나, 몸이 청결하지 못하다든지 육류를 즐기는 사람이 몸을 불결하게 하고
물을 마시려 하면 실 그림자 같은 벌레가 꿈틀거리고 있어 끝내는 물을 마시지 못하고 돌아서야만 한다.
한번은 어느 아낙네가 이곳의 물을 마시려 하다가 실 그림자 같은 벌레가 꿈틀거리는 것은 보았다.
스님을 찾은 그녀는 자신이 겪은 일을 설명하고 웬일이냐고 물어 보았다. 그러자 스님은 그녀와 함께 가서 물을 확인하고 떠
주었는데 아낙네는 여전이 물에 벌레가 있어 목에 걸릴 것 같아 도저히 못 마시겠다는 것이었다. 스님은 아낙네가 자기는 평소에 절에
가는 것을 싫어했고, 시어머니가 억지로 가자고 해서 같이 따라와 약수가 좋다고 하기에 먹으려고 했던 것과 몸이
생리(生理) 중이고 오기 전날에도 불고기 지짐을 해 시어머니 몰래 다른 식구들과 먹었다는 것을 실토하였다 한다.
- 자재암 홈피 -
원효샘은 오늘도 계속해서 물이 흐른다,
자재암 대웅전,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팔작지붕 건물로 1961년 진정(眞靜) 스님이 지은 것이다.
건물의 정면에는 대웅전(大雄殿)이란 편액과 4점의 주련이 걸려 있는데, 주련은『대지도론(大智度論)』권4와
『치문경훈(緇門警訓)』권10「찬불사불게(讚佛沙弗偈)」등에 나오는 구절로 다음과 같다.
천상천하무여불(天上天下無如佛) 하늘과 땅 사이에 부처님 같으신 분 없으시니
시방세계역무비(十方世界亦無比) 시방세계에 비할 이 없네.
세간소유아진견(世間所有我盡見) 세간에 있는 모든 것 다 보았으나
일체무유여불자(一切無有如佛者) 모두가 부처님 같으신 분 없네.
법당 내부에 모셔진 존상으로는 ‘석가여래좌상’과 ‘관음보살좌상’, ‘대세지보살좌상’, ‘지장보살좌상’, ‘위태천입상’이 봉안되어 있다.
그리고 불화로는 1991년에 조성한 <삼세불후불탱>과 <지장시왕탱>, 1992년에 조성한 <신중탱>이 봉안되어 있다. 이외에 1977년 조성한 범종이 하나 있다.
- 자재암에 대한 내용은 자재암 홈피 내용 인용 한것임 -
자재암에는 원효 스님이 관음보살을 만나 자신의 수행력을 인증 받았다는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원효 스님이 요석공주와의 세속의 인연을 맺은 뒤 오로지 수행일념으로 이곳을 찾아 초막을 짓고 용맹정진 하던 때였다.
어느 폭풍우 치는 깊은 밤 선정에 든 원효 스님은 자신의 존재마저 아득함을 느끼며 무서운 내면의 갈등에 휘말리고 있었다.
그때 밀려오는 폭풍우 소리에 섞여 황급하게 문을 두드리는 여자의 음성이 들려 순간 원효스님은 눈을 번적 떴다.
"원효 스님, 원효 스님, 문 좀 열어주세요"
스님은 망설이다 문을 여니 비바람이 방안으로 밀려들면서 방안의 등잔불이 꺼져버렸다.
"스님, 죄송합니다. 이렇게 어두운 밤에 찾아와서, 하룻밤만 지내고 가게 해주세요"
칠흑 같은 어둠 속에 비를 맞고 서 있는 여인을 보고도 스님은 선뜻 들어오란 말이 나오지 않았지만
여인의 간곡한 애원에 스님은 여인을 토막으로 들어오게 하였다. 스님은 화롯불을 찾아 등잔에 불을 옮기자 비에 젖어
와들와들 떨고있는 여인의 모습은 너무 아름다웠다. 여인을 보지 않으려고 스님은 눈을 감았지만 비에젖어 속살이
들여다 보이는 여인의 모습이 더욱 뚜렷하게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스님, 추워서 견딜 수가 없어요. 제 몸 좀 비벼 주세요." 여인의 아름다움에 잠시 취해 있던 스님은
퍼뜩 정신을 차리고 부지중에 중얼거렸다. '모든 것은 마음에 따라 일어나는 것. 내 마음에 색심이 없다면 이 여인이 목석과
다를 바 있으랴.' 그리고는 여인을 안아 침상에 눕히고 언 몸을 주물러 녹여 주기 시작했지만, 풍만한 여체를 대하자 스님은 묘한
느낌이 일기 시작하여 순간 여인을 침상에서 밀어냈다. '나의 오랜 수도를 하룻밤 사이에 허물 수야 없지. 해골은 물그릇으로 알았을
때는 그 물이 맛있더니, 해골을 해골로 볼 때는 그 물이 더럽고 구역질이 나지 않았던가. 일체만물이 마음에서 비롯된다 하였으니
내 어찌 더 이상 속으랴' 스님은 여인을 목석으로 볼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여인으로 보면서도 마음속에 색심이 일지
않으면 자신의 공부는 온전하다고 생각했다. 스님은 다시 여인에게 다가가서 여인의 몸을 비비면서 염불을했다.
여인의 풍만한 육체는 여인의 육체가 아니라 한 생명일 뿐이었고 스님은 마치 자기 마음을 찾듯 준엄했다.
여인의 몸이 서서히 따뜻해지기 시작하자 정신을 차린 여인은 요염한 웃음을 지으며 스님 앞에 일어나 앉았다.
순간 여인과 자신의 경계를 느낀 스님은 밖으로 뛰쳐나오고 말았다.
스님은 간밤의 폭우로 물이 많아진 옥류천 맑은 물에 몸을 담그고 무한한 희열을 느끼고 있는데, 여인도 목욕해야겠다며
옷을 벗고는 물속으로 들어와 스님 곁으로 다가왔다. 아침 햇살을 받은 여인의 몸매는 눈이 부셨고 스님은 생명체 이상으로 보이는
그 느낌을 자제하고 항거했다. "너는 나를 유혹해서 어쩌자는 거냐?" "호호호, 스님도. 어디 제가 스님을 유혹합니까? 스님이
저를 색안으로 보시면서. 순간 큰 방망이로 얻어맞은 듯한 혼돈이 일어났고, 여인의 목소리가 계속 스님의 귓전을 때렸다.
스님은 '색안으로 보는 원효의 마음'을 거듭거듭 뇌이면서 서서히 정신을 차리자 폭포소리가 들리고 캄캄했던
눈앞의 사물이 제 빛을 찾고 제 모습을 드러냈다. '옳거니, 바로 그거로구나. 모든 것이 그것으로 인하여 생기는 그 마음까지도
버려야 하는 그 도리!' 스님은 물을 차고 일어나서 발가벗은 몸을 여인 앞에 아랑곳없이 드러내며 유유히 걸어 나왔다.
心生則種種法生 마음이 생겨 가지가지 법이 낳은 것이니,
心滅則種種法滅 마음이 멸하면 또 가지가지 법이 없어진다.
원효의 이 말에 여인은 미소를 머금고 어느새 금빛 찬란한 후광을 띤 보살이 되어 폭포를 거슬러 사라졌다.
그 여인이 바로 관세음보살임을 이내 깨달은 원효스님은 더욱더 수행에 전진하는 한편, 관세음보살을 친견하고 자재무애의
수행을 쌓았다는 뜻에서 그곳에 암자를 세우고 자재암이라고 했다고 한다.
-출처 :『양주군지』(1978년, 양주군, 양주군지 편집위원회)
http://blog.daum.net/dsooh/1157 소요산역에서 하백운대(소요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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