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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요산의 가을(5) 일주문~소요맛거리(2016년 10월 23일) 본문

국내 山行日記/인천·경기·강원

소요산의 가을(5) 일주문~소요맛거리(2016년 10월 23일)

물흐르듯이순리대로 2016. 10. 25. 18:40


자재암 일주문을 나가서 소요산역으로 간다,

지금 부터는 아름다운 단풍도 즐길 겸 쉬엄 쉬엄 걸어간다, ~ 잠시 소요산의 단풍을 즐겨보자 ~












소요산 매표소도 나간다, 이 매표소에서는 자재암 입장료를 1,000씩 받는다,

그럼에도 매표소 현판은 소요산이라 붙여 놓았다, 소요산 입장료를 절에서 왜 받는가?

아니면 그냥 자재암 입장료라 당당하게 써 붙여 놓고 받든지? 물론 오늘 우리는 백운대능선으로 들어갔어니

입장료와는 무관하지만 여하튼 지금의 종교는 믿음보다는 돈이 우선인 모양이다,

이곳 매표소를 나가면 이제부터의 단풍나무는

자연발생적인 숲이 아니라 공원을 만들면서 조경을 한 단풍 나무가 많다, 그러니 색상은 더 아름다울수도 있다,

안에서 보든 단풍보다 붉은색이 훨신 더 강하다,




독립유공자 추모비도 있고


요석공주가 살았다는 별궁지도 있다, 원효대사는 대략 30∼40세 정도 되었을 때 소요산에 머무르며

지금의 원효대에서 수행에 전념하였다. 이 시기에 요석공주도 원효의 아들인 설총을 데리고 소요산에 들어와

조그마한 별궁(別宮)을 짓고 매일 아침저녁으로 원효대사가 공부하는 원효대를 향하여 삼배를 드렸다고

전해오며, 그 때의 별궁터가 지금도 남아 있어 요석궁지라 불리고 있으나 위치는 정확치않다.


 소요산에는 곳곳에 원효대사 와 요석공주의 이야기가 스며있다,

신라 29대 무열왕녀 요석공주가 원효대사를 사모하여 공주궁을 짓고 설총을 길렀다는 주초의

흔적이 남아있고 정상인 의상대 옆에는 원효대사가 요석공주를 두고 이름을 지였다는 공주봉도 있다,

원효대사와 요석공주의 이야기는 그 자체가 소요산이자 자재암이라 해도 지나침이 없는곳이다,

설총은 원효대사(617~686)와 요석공주의 아들로 신라경덕왕때의 대학자다,

우리나라 에서는 한자의 음과 뜻을 빌려서 우리말로 표기하는 이두문자(향찰)의 창제자다,

또한 설총은 말년에 우주의 한 소식을 깨닫고 후세인을 위해 설총비결 이라는 비결서도 남겻다,

삼국유사(三國遺事)는 그를 가리켜 신라십현(新羅十賢)의 한 사람이라고 기록했다,

원효와 설총 두 父子는 한민족의 정신사에 큰 족적을 남기신 분들이다,


아래 ↓ 아치문은 요석공원의 연리지문이다, 이문을 만들어 연리지문이라 이름붙인 것은

연리지는 두 나무의 가지가 얽혀 같이 자라는 모습을 뜻하는 것으로 부부, 연인간의 간절한 사랑을 의미한다,

아치의 좌측(원효목)은 원각의 도를 위해 정진하는 원효대사를 형상화하고 우측(요석목)은 지순한 사랑을 품은 단풍처름 화사한

요석공주를 형상화하여 두 사람의 애듯한 사랑이 천년이 지나도 연리지 처름 이어짐을 표현했다는 작품으로

이문을 지나는 모든 연인이 연리지와 같은 아름다운 사랑으로 맺어지기를 기원하는 뜻이라고 한다,




소요산 주차장, ~


소요산 입구에서 행사중인 국화축제,




소요 맛거리로 돌아왔다,

아침에 이곳에서 의상능서을 올라 소요산으로 들어 갔어니 출발지로 돌아왔다,


  

          http://blog.daum.net/dsooh/1160 자재암~원효굴~일주문(소요산 4,)

http://blog.daum.net/dsooh/1159 칼바위에서 자재암(소요산 3,)

   http://blog.daum.net/dsooh/1158 하백운대서 칼바위(소요산 2,)

          http://blog.daum.net/dsooh/1157 소요산역에서 하백운대(소요산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