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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흐르듯이 순리대로

파주 감악산(3) 까치봉~감악산 정상(2016년 11월 6일) 본문

국내 山行日記/인천·경기·강원

파주 감악산(3) 까치봉~감악산 정상(2016년 11월 6일)

물흐르듯이순리대로 2016. 11. 7. 20:40

까치봉에서 정상으로 가는길은 멀지는 않지만

조금 가파르게 올라가야한다, 그러나 그리 힘들게 올라야 하는 길은 아니다,


감악산 정상부에는 많은 군 경계시설물들이 보인다, 아직도 경계 근무를 서고 있는것 같은 ~

중계탑이 보이는 저곳이 감악산 정상이다,


정상 아래는 전망정자도 있다,

정자 근처 에서 보이는 아랫녁, 날씨가 맑지 않아서 선명 하지는 않아도

마을을 따라 유유히 강이흐른다,

KBS 감악산 송신탑이 이곳 정상에 있다,


정상 직전


감악산 정상에서 처음 만난것은 "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잇는 파주시의 상징

캐릭터인 미롱이, 고롱이" 상이라고 한다, 고롱이는 고대, 구석기, 고인돌, 과거등을 상징하는 "고" 자를 의미하며

미롱이는 미래지향적인 희망과 미래발전등을 상징하는 "미" 자를 의미한다고 가운데 검은 돌에 새겨저 있다,

왠지 억지로 끼워 맞춘듯한 논리가 어슬프다,

 이곳은 양주시 남면, 연천군 전곡읍, 파주시 적성면의 경계에 있는 675m의 감악산 정상이다,

감악산의 지리적 위치는 남북으로 분단되기 이전 한반도 전체지도를 보면 감악산이 거의 정 중앙에 위치한다.

감악산은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다. 전략적 요충지는 교통 집결지와 통한다.


삼국시대 감악산은 개성과 한양을 잇는 한반도 서북지역과 철원과 한양을 연결하는 중부지역의 연결통로였다.

고구려가 남으로 진출하거나, 신라가 북으로 진출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감악산을 거쳐야 했다. 실제로 이 일대는 삼국시대 말엽

나당전쟁기에 치열한 쟁탈의 대상 이었으며, 통일신라가 임진강 넘어 고구려 고토로 진출하는 길목이었다.

감악산 비 碑 다, 감악산 비에 관한 이야기는 해도 해도 끝이 없을만큼 많다,

우리땅이면서도 적장인 당나라장수 설인귀를 신으로 모셧다는 설까지 구전되고 있다,  설인귀가 어떻게 해서

감악산 산신이 됐을까. 사실 설인귀가 감악산 산신이 된 데에는 신령스런 기운에 의해서라기보다는 당시 신라의 정치적인

상황이 크게 작용했을것이다,


전국 각 지방세력의 신앙을 그대로 신라의 사전속에 편입한 소사의 성격이 그렇듯이 신라의 중앙귀족은

한강 이북과 임진강 유역 일원의 주민들 사이에 잠재해 있는 고구려 유민의식의 분출을 저지하려는 목적이 강하다보니.

당의 장수 설인귀를 내세워 고구려 유민들에게 공포감을 불러 일으킴으로써 고구려를 향한 회고의 감정을 억압하는 역할과.

또한 고구려의 멸망은 신라보다는 당에 의해서라는 사실을 강조하려는 목적도 강했든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감악산비에 대한 유래

감악산 비에 대한 또 하나의 전설

감악산 정상에는 6, 25 전쟁 전투현장 알림판이 있다, 그 알림판의 내용은

이곳은 6, 25 전쟁당시 국군 1사단 고랑포리 동남지구 전투(1950, 12, 31 ~ 1951, 1, 1,) 영국군 설마리 방어전투(1951, 4, 23)의

치열한 전투가 벌어졋든 지역으로 2005~2015년 까지 육군 25사단에서 전사자 유해발굴을 실시한 결과


호국용사 57위 (자작리 14위, 중성산 10위, 늘로리 5위, 모래동 스토리 사격장 4위, 두포리 4위, 원당리 4위,

마지리 3위, 백령리 3위, 파평산 3위, 장좌리 2위, 전동리 2위, 무건리 1위, 구읍리 1위, 웅담리 1위)의 유해와 유품 6,100여 점을

발굴한 지역으로. 전시자들의 넋을 위로하고 명예를 고양시키며 유가족들의 피맺힌 한을 풀어드리고 오늘의 우리가 있기까지

그들의 고귀한 희생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림으로나라 사랑과 호국보훈 의식을 함양케 하고자 국방부, 육군 제 1군단,

파주시가 이곳에 알림판을 설치했다라는 내용과


아직도 수습하지못한 호국용사들의 유해를 찾아 명예를 되찾아 드리는 것은 이시대를 살고있는 우리모두의

영원한 책무임을 생각하고 마지막 한분의 전사자 유해가 고향으로 돌아갈때까지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 바란다는 동참 호소와

 "그들을 조국의 품으로"  라는 슬로건과 호국영령들의 영전에 삼가 고개숙여 명복을 빕니다,  - 라고 써여 있다,

국가는 어떤 이유에서 건 이런 일을 미루어서는 안된다,

↑ 또한 6, 25 전쟁 전사자 유해발굴 사업은 6,25 전쟁 당시 나라를 위해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바쳣어나

미처 수습되지 못한채 이름모를 산하에서 홀로남겨진 13만여 위 호국용사들의 유해를 찾아 국립 현충원에 모시는

국가적 호국보훈사항으로, 전사자 유해는 2000년 부터 발굴되고 있어나


아쉽게도 단서가 부족하여 유해와 유가족의 유전자(DNA)를 비교분석하여 유가족을 찾을수 밖에 없어니,

이에 따라 유가족의 DNA 검사를 위한 시료채취가 절실히 요구되니 유가족의(친,외가 포함)협조를 부탁 드린다는 호소다

이 글을 상세히 옮겨적는 이유는 우리 모두가 공감해야 하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하산해야 하는 시간 이다,

정상 바로 아래에는 올라올때와 같이 이곳에도 전망 정자가 잇었다,

이곳에서 보이는 전망은

바로 아래 신암저수지 방향이 보인다,

        파주 감악산(2) 범륜사~감악산까치봉 http://blog.daum.net/dsooh/1176

감악산(1)출렁다리에서 범륜사 http://blog.daum.net/dsooh/11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