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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흐르듯이 순리대로

제 2석굴암 군위 삼존석굴(2017년 9월 3일) 본문

국내 山行日記/충청·경상·전라

제 2석굴암 군위 삼존석굴(2017년 9월 3일)

물흐르듯이순리대로 2017. 9. 8. 21:40

석굴로 들어가는 길 입구 양산서원 앞 수백년은 되였을것 같은 소나무 군락지가 반겨준다,


소나무를 지나 이런길을 따라가면

삼존석굴에 안내도와

삼존석굴 유래를 알려주는 안내판이 있고

안내판이 있는 곳을 지나가면 개울을 건너가는 극락교가 있고

극락교를 건너가면 바로 만나게 되는 불상이 있는데 이 불상은 ↓ 이다,

경북 유형문화재 제 258호 석조비로자나불좌상, 고려 시대 불상으로 목이 짧고 얼굴이 통통한 9세기 후반 불상이다,

군위 삼존석굴은 제2석굴암이라 불리지만 사실 경주 석굴암보다 1세기나 빠른 시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석굴사원의 효시라 할수 있느놋이다, 팔공산 북족계곡 학소대의 천연절벽 자연동굴안에 모신 삼존석굴은 국보 109 호로 지정되여 있다,


비로전앞에는 모전탑과 참배단이 있고 그 뒤에 삼존석굴이 있다

이 석굴은 1962년 9월 22일에 발견되었다. 지상으로부터 약 6미터 높이의 천연적인 암벽을 뚫어 만든

석굴에 안치된 이 석불은 중앙에는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이 높이 2.88미터, 오른쪽에는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이 1.8미터,

왼쪽에는 대세지보살(大勢至菩薩)이 높이 1.8미터이며 모두 무거운 양감과 함께 침울한 위엄을 보이려는 느낌이 든다.


본존불은 긴장된 엄숙한 얼굴이며 납작한 코와 짧은 목이 더욱 친밀감 없는 우상(偶像)으로 만든다.

보살들의 안면 역시 코 밑을 처리 못하는 고졸한 생경감이 엿보이며 몸은 삼곡(三曲, Tribhanga : 인도의 불상에서 시작하여 당나라 

천룡산 석굴에서 많이 나타나는 불상형식으로 허리를 비튼 모양)이 보이지만 부드럽지 못하고

남자가 여장(女裝)한 듯 딱딱한 인상이다.

신라소지왕 15년(493년) 극달화상이 창건했다, 석굴내에는 본존불인 아미타불과 좌우로 대제지보살, 관음보살이 있고

본존불의 결과부좌한 모습과 깍은머리와 얼굴 모습은 풍만하고 거대하며 엄숙한 기품이 있다,



이 석굴은 경주 석굴암보다 100년 전에 먼저 만들어졌다고 한다.

이 무거운 장엄함과 기념비적인 성격은 타산석굴(駝山石窟) 같은 수나라 시대의 조각에서 출발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본존불의 대좌 앞에 늘어진 천의(天衣)의 주름은 북위(北魏)의 룽먼석굴(龍門石窟) 같은 데서 흔히 보는 특색있는 수법에서

발전해 온 형식이며 보살들의 목에도 당의 성기(盛期) 불상에서 보는 따위의 두터운 삼도(三道:세줄기 주름)와

기다랗게 늘어지는 경식(頸飾)이 감겨 있다. (위키백과 사전)

삼존석굴앞에 있는 양산서원

1710년(숙종 36) 고려말의 충신 홍노(洪魯)와 조선조 좌참찬 겸 양관 대제학 홍귀달(洪貴達),

이좌좌랑(吏曹佐郞)을 역임한 대학자 홍언충(洪彦忠)의 충절과 학덕을 기리기위해 세분 선생의 영위(靈位)를 봉안하였다.

묘우(廟宇)를 비롯하여 유생 강학을 위한 흥교당(興敎堂)을 중심으로 입나재(立懦齋), 구인재(求仁齋), 읍청루(挹淸樓), 반무당(半畝塘) 등의

부속 건축물로 규모가 방대하였으나, 1868년(고종 5) 조정의 서원 철폐령으로 전 건물이 훼철(毁撤)되는 비운을 겪은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