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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흐르듯이 순리대로

고궁(자금성) - 4, 태화전(太和殿 - Taihe dian) 2018년 1월 13일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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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궁(자금성) - 4, 태화전(太和殿 - Taihe dian) 2018년 1월 13일

물흐르듯이순리대로 2018. 1. 24. 14:56

타이허디엔 태화전(太和殿 - Taihe dian = Hall of Supreme Harmony)이다, (태화전)은

황제가 관료들과 정사를 처리하던 자금성 정전(正殿)이다, 높이 8m나되는 3층 대리석 기단위에 세워진 높이 35m, 폭 66m의

자금성 내부에서 규모가 가장 큰 건축물이다. 명, 청 시절 24명의 황제가 제위를 물려받을 때 모두 태화전에서 성대한 의식을 거행했다.

자금성의 정전인 태화전의 지붕은 북방 만주에서 발흥한 청나라 궁궐 정전인 관계로 다른 건물과는 달리

중국식 팔작지붕을 사용하지 않고, 요령식 건축 양식인 우진각 지붕으로 건축 되였다, 지붕 양쪽에는 거대한 치미로 장식해 놓고 있는데,

우리나라 경주의 궁궐 건물이나 황룡사 등 대형 사찰 본당 건물과 비슷한 양식을 사용으로 건축되여 있다,,

 ↓ 태화전에서는 우측인 태화전 옆 1층 전각은 중우문(Zhongyou men = Middle Right Gate)이고

그 앞 쪽에 있는 2층 전각은 우익문(You yimen = Right-Wing Gate)이다,

 ↓ 태화전에서는 좌측인 태화전 옆 1층 전각은 중좌문(Zhongzuo men)이고

중좌문 앞 1층 전각은 좌익문(Zuo yimen) 그 앞 2층 전각은 체인각(Tiren ge)이다,

태화문에서 부터 태화전까지 황제가 다니든 길은 마당중앙에 옥을 다듬어 깔아 황제만의 길을 만들어 놓았다,

중국황제의 권위를 가장 잘 나타내고 있는 자금성 정전인 태화전 월대와 계단이다

태화전 앞 마당인 조정朝政에서 3개의 계단을 올라가 황제를 배알하게 만듦으로서 황제의 권위를 높여주든 구조물이다,

태화전 앞 월대는 3층으로 구성되여 있어며 3층의 계단을 올라서야만 황제가 있는 태화전 앞으로 갈수 있다,

경복궁의 경우 근정전은 2층 월대 위에 자리하고 있다,

3층 월대로 올라가는 3개의 계단이 월대 가운데로 나있다,

그중에서 중앙에 있는 계단은 다시 3개로 나누어 지는데 양옆은 계단이고 가운데는 계단없이

용과 봉황등 황제를 상징하는 각종 문양들이 돌에 조각되여 있다, 이는 황제의 가마가 다니는 통로이기 때문에

황제만이 이 길로 다닐수 있다,

태화전 월대 모서리 끝에는 월대 배수수가 있다,

월대 난간은 황제를 상징하는 용이 휘감고 있는 기둥을 사용했고 배수구는 용의 머리 모양을 하고 있다,






3단 월대에는 1488개의 난간석과 1142개의 배수구를 갖추고 있다고 한다,

 위 사진 용머리에 뚫린 작은 구멍이 베수구




계단 사이마다 중앙에 이 있고 태화전에는 모두 18개의 정이 있다고 한다,





황제의 자리다, 태화전 내부는 이렇게 공개되여 있었다,

외부 건물에서 비처지는 웅장함과 크기에 비해서는 왠지 작아 보이는 느낌이 들었다,

이곳의 장식품들도 모두 용이다, 결국 용은 황제 였든 셈인가 보다,

태화전에는 이런 문양들이 모두 금으로 장식되여 있었다거 한다,

그러나 아편전쟁 때 모두 수탈해가고 그나마 남아있든 금조각들은 일본군이 모두 떳어 갔다고 하는데 진의는 알수 없다,



태화전의 단청

명에서 청으로 이어지;는 600년의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나는듯 한  모습이다,

자금성은 명나라 시대 북경천도를 위해 건설되었다, 정난의 변을통해 즉위한 영락제는 기존 수도인

남경(난징)보다 자신의 세력 기반인 북경(베이징)이 수도로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북경은 영락제가 즉위하기 전

그의 영지였던 곳으로 당시 명칭은 북평(北平)이었다.

영락제는 즉위한 뒤 북평의 이름을 북경(北京, 베이징)으로 바꾸고 관련 기구를 설치하며 천도를 준비했다.

1406년 영락제는 북경에 자금성의 건설을 명령했다. 1410년 이후로는 건설에 쓸 물자를 보급하기 위해 운하를 정비하고

3000여 척가량의 작은 배를 증설했다. 자금성 건설에는 수십만 명의 인원이 동원되어 1420년 완공되었다. 1421년 영락제는 정식으로

명나라의 수도를 북경으로 정하였다. 이후 명나라와 청나라를 거쳐 600년 가까이 24명의 황제가 자금성에서 살았다

태화전 좌측에 있는 체인각은

중국말로 티렌거 라고 하는데 체인각은 강희황제가 학자들을 초빙해서 명사(명나라 사서)를

편찬 했다고 하는 학자들의 공간이다,

월대를 둘러 싸고 있는 난간대와 기둥은 온통 황제를 상징하는 용의 조각이 새겨저 있다,



동향이다, 한국에서는 드무라고 하는데 크기부터가 다르다,

물을 담아두는 그릇으로 소방용도지만 오히려 벽사(귀신쫓기)의 의미가 강해

불 귀신이 물에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놀라서 도망가게 한다는 의미가 더 강했다고 한다,

이 정도로 큰 그릇이면 많은 물을 담을수 있겠다,

자금성 안의 건물은 크게 남쪽 구역인 외조(外朝)와 북쪽 구역인 내정(內廷)으로 나뉜다.

 와이차오 즉 외조는 황제가 정무를 처리하는 곳이며 내정(네이팅)은 황제의 가족이 생활하던 곳이다.

외조와 내정 모두 중요한 건물들은 주로 중앙축에 있다. 이제 태화전을 나가 내전으로 간다,

외전은 여기까지다, 동향 뒤에 있는 문으로 들어가면 내정으로 들어 간다,

언제 다시 올수있을지 기약은 없지만 일단 오늘은 기념하며 그림자 놀이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