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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흐르듯이 순리대로

삼막사 三幕寺 이야기(2018년 3월 11일) 본문

국내 山行日記/서울·북한·도봉

삼막사 三幕寺 이야기(2018년 3월 11일)

물흐르듯이순리대로 2018. 3. 12. 19:16

이곳은 삼막사 입구에 있는 반월암이다, 신라시대 원효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절이다,

1918년 주지 원옹이 이응선의 시주로 법당 6칸 요사채 8칸을 중수했는데 1942년 암자 뒷산이 붕괴되여 법당과

요사채 일부가 소실되였고 그뒤 625때 불타버린 것을 인법당과 산신각을 중건해 오늘에 이르는 암자다,

삼성산 삼막사 일주문이다, 사찰을 찾으면 가장 먼저 마주치는 문이 일주문이다,

기둥이 한줄 이라고 해서 일주문(一柱門)인데. 한 줄의 기둥은 번뇌로 흐트러진 세속의 마음을 하나로 모아

진리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을 상징한다. 일주는 곧 일심(一心)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문 밖은 속계(俗界), 문 안은 진계(眞界),

곧 정토세계다. 문은 단순히 절 경계를 가르는 용도가 아닌 것이다, 기둥이 둘인 경우는 실감이 나지 않지만 부산 범어사 일주문처럼

기둥 넷이 한 줄로 늘어선 경우도 있다, 절을 나가는 문은 불이문이다, 불이문(不二門)은 해탈문(解脫門)이라고도 한다.

대표적 인게 경주 불국사의 불이문 인 자하문(紫霞門)이다.  

이곳 삼막사는 약 1300년전 신라 문무왕 17년 677년

원효, 의상, 윤필등 3분의 성인이 암자를 지어 정진한 것이 삼막사의 근본이며 삼성산이라는 이름도 이때 만들어 졋다고 한다,

 삼막사 범종각에는 범종(종)과 법고(북), 목어(나무고기), 운판(나무로만든 판)이 모두 다 있다, 

절에 있는 범종은 삼라만상의 중생들을 구제하며, 범고는 짐승들을 제도하고 목어는 수중 생물을 구제하며, 운판은 날 짐승을

제도하는 역활을 한다, 또한 삼막사 동종 (三幕寺 銅鐘)은 쌍룡(雙龍)의 용뉴(龍유)를 갖추고 종신(鐘身)에는 견대(肩帶)와  구연대(口緣帶)가

 배치되어 있으며 유곽(乳廓)은 견대와 거의 붙어있고 유곽들 사이에는 보살입상(菩薩立像)과 위패(位牌)가 한조가 되어 배치되어 있으며

그 아래는 명문(銘文)이 양각되어 있다,

三幕寺 冥府殿,!! 삼막사 동종 앞에 있다,

명부전은 중생이 죽은 후 가는 곳인 명부를 다스리는 지장보살을 모신 법당이다. 시왕전

혹은 지장전이라고도 하는데, 이곳에는 명왕전(冥王殿)이라 현판 해놓았다

觀音殿이다, 관음전은 관세음보살의 공덕이 주원융통하다는 의미에서 원통전이라고도 한다.

관음전에는 관세음보살을 홀로 모시거나, 양류관음이나 해수관음 또는 천수관음 등을 모시기도 한다. 관음상은 대개

왼손에 연꽃이나 감로병을 들고 앉아 있는 모습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자비의 화신인 관세음보살에 대한 신앙이 성하였기 때문에

거의 모든 사찰에 관음전이 있다, 六觀音殿 이라는 이름은 관세음보살을 여섯분을 모셨다는 뜻이다,


삼층석탑, 三幕寺 三層石塔 !! 삼막사 선실 뒤편 언덕에 3층 석탑이 있다,

고개를 위로 들고 한발 멀찌감치 떨어져서 보아야  눈에 들어올 만큼 높은 곳에 삼층석탑이 보인다,

전체적으로 둔중한 느낌을 주고, 지붕돌받침이 3단으로 줄어드는 등 고려 석탑의 특징이 잘 나타나 있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고려 고종 19년(1232) 몽고의 침입에 맞선 삼적사 승려 김윤후가 싸움에 이긴 것을 기념하기 위해 이 탑을 세웠다고 한다,

삼층석탑 아래 범상치 않은 거북모양은 약수터 인 감로정(甘露井) 이다,

천불전 이다, 뭐하는 곳인지 복잡하게 생각할게 없다 

그저 천불전이란 천개의 불상이 있다고 해서 천불전 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된다,

삼막사 요사(寮舍) 월암당(月庵堂)이다,

2003년 11월 18일 전 조계종 총무원장 정대 正大 스님이 이곳 월암당에서 입적했다

월암당 옆에는 삼막사 사적비(三幕寺 事蹟碑)가 있다, 비석은 1707년(숙종 33)에 건립된 사적비로  장방형의 대좌는

윗부분을 모깎이 형식으로 다듬어 그 위에 비신을 끼웠으며, 비신 위에는 지붕돌이 씌워져 있다, 삼막사 사적비 비문에 신라의

원효(617-686)등이 창건하고 도선국사(827-898)가 중건하여 관음사라고 했으며, 고려 태조가 중수하여 삼막사라 하였다 라고 적혀있다,

삼막사는 대웅전이나 경내 건물들은 전체적으로 소박한 느낌이지만 구석구석 볼거리가 참 많은 흔치않은 절이다.

요사(寮舍) 월암당(月庵堂)듸로 올라간다, 월암당 뒤에는 삼막사 산신각이 있다,

삼막사 산신각(山神閣)이다, 보통 산신각은 작은 건물을 짓고 산신각이라는 현판을 붙여 놓았어나 

삼막사는 자연암의 원형을 그대로 살려 정성들여 파내고 다듬어서 만들었다, 산신각(山神閣)에 모셔진 산신(山神)은 지역

수호신으로서 산 뿐만이 아니라 산 주변의 지역을 관장하는 신(神)으로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생활과 평온을 지켜주는 존재다. 

일반적으로 사찰에는 산신각이 있어며, 자식의 번영과 재물을 기원하는 산신기도가 많이 행해진다, 

이곳 암벽을 파서 조각한 산신(山神) 위에는 구름모양을 새긴게 보인다, 산신각은 불교 밖에서 유입된 신(神)을 모시는 곳이기 때문에

전(殿 대궐전)이라 하지않고 각(閣 누각각)이라 하는데 건물도 없는  바위에 새겨 놓은 산신(山神)만으로 이곳을

산신각(山神閣)이라 부르는 것은 다소 어색한 느낌도 드는게 사실이다,

바위에 새겨진 오른쪽 龜 자는 거북의 원형을 그대로 살린 한자다, 가운데 글자는 거북의 등짝에 크게 태극의

구분을 두었고 여러개의 12 가지 구분이 원형으로 그어져 있어며 12개의 면마다 점을 찍어 놓았다. 이것은 12 지체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이며, 역학에서 말하는 十二支를 상징한다고 추정된다, 마지막으로 맨 왼쪽의 도형 문자 역시 한문의 거북 龜 자다,

이 그림은 아주 날카롭게 벼락치는 모양으로 그렸다. 온 몸을 관통하는 氣의 흐름을 상징하는 그림인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런

그림은 기마병사 집단에서 군부대 상징인 깃발을 나타내는 軍馬旗 에서 사용되여지는 디자인과 흡사하게 새겨져 있다,

이제 거북 구(龜)자 3개가 새겨진 삼귀자 음각을 끝으로 삼막사를 나간다,

안양으로 가는길

돌아보니 삼막사가 그림처름 서 있다,


이제 부터는 내림길이다,

올라올때보다 경사도가 더 높은 내림길 이다,


내림길에 염불암이 있다, 926년 태조 왕건이 삼성산을 지나다가 도승 능정이 좌선삼매에 든 모습을 보고 세운

안흥사()가 염불암의 시초라고 전해진다. 1407년(태종 7)에 왕명으로 세운 관악산의 여러 사찰과 함께 중창되였다.

영조(재위 1724~1776) 때 간행된 <가람고>에 염불암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기록이 나오지만 당시 사찰 상황에 대해서는 알 수

없으며, 염불사 부도에 적힌 기록을 통해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초까지는 매우 번성했음을 알 수 있는 사찰이다,

1904년과 1927년에 중수한 기록이 있으며 1930년에 세심루, 1932년에 산신각을 신축하였다. 1956년 대웅전과

산신각을 중수하고 요사를 지었으며 1969년에 미륵불을 세웠어며. 1992년 대웅전을 중창하고, 2000년에는 나한전을 신축했어며

기암절벽이 병풍처럼 두르고 있는 풍광이 뛰어난 염불암은 현재 대웅전,·나한전,·염불전,·영산전,·칠성각,·독성각,·범종각, 등의 전각으로

구성되여 있고 부도(3기)·미륵불,·오층사리탑,·삼층석탑,·염불암공덕비, 및 사적비,·지장보살상,·용왕상,·포대화상상, 등이 있다.

기록을 따라 살펴본 영불암을 둘러볼 시간이 나지 않아서 겉 모습만 보고 내림길을 재촉한다,

잠시 영불암으로 연결되는 도로를 따라 내려 가다가

다시 산길로 들어간다,

영불암 으로 이어지는 도로를 따라가도 되지만 우리는 산길을 선택했다,


안양유원지였든 곳인 안양예술공원으로 내려간다,

언덕에는 각종 조형물들도 보인다,


약 9km의 길을 5시간 반이나 걸었다,

산길을 몇시간이나 걸었느냐가 중요한게 아니라 좋은사람들과 함께 봄이오는 소리를 들어면서

얼마나 많은 우리들만의 이야기를 만들었느냐가 더 중요할것 같은 그런날이 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