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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흐르듯이 순리대로

서울둘레길 5코스 - 3,(5-2구간, 천주교 삼성산 성지) 본문

Trail(둘레길)/서울둘레길

서울둘레길 5코스 - 3,(5-2구간, 천주교 삼성산 성지)

물흐르듯이순리대로 2015. 2. 9. 14:46

 

 

 

 

 

 

 

 

 

 

 

 

 

 

 

 

 

 

 

 

 

 

 

 

 

 

 

 

 

 

 

 

 

 

 

 

 

 

 

 

삼성산이라는 이름은 원래 원효, 의상, 윤필등 세 분의 성인이 움막을짓고

수도에 정진한 산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삼성산 자락에 천주교 성지가 있다,

1839년 기해박해 때 효수된 세명의 프랑스 신부들이 무덤이 있었든 자리를 성역화 한 곳이다, 

 

그렇게 해서 발발한 것이 헌종 5년에 있었던 기해박해였다. 이로 인해 권력의 중심은 풍양 조씨로 넘어갔다.

그런 면에서 기해박해는 안동 김씨와 풍양 조씨 간의 권력투쟁의 부산물로 보는 시각이 맞겠다.

기해박해로 인해 앵베르도 주교(한국명 범세형)와 모방, 샤스탕 신부 등이 새남터에서 목숨을 잃었다. 

그 들의 주검은 노고산(마포구 노고산동)을 거쳐 삼성산에 묻혔다. 

이후 천주교에서는 이곳을 성역화 했고, 지금의 삼성산 성지가 조성됐다.

 

곧 떠날것 처름, 영원히 살것 처름 ~ 주교가 했다는 말 치고는 어울리지 않을듯한 불교적인 말씀이다,

승려들이나 사용할듯한 심오한 진리가 배인 불경같은 말이 여기 이렇게 써여 있는것을 보니

결국 종교를 초월해 사람사는 이치는 다 같은 모양이다,

 

1866년. 흥선대원군의 주도로 이뤄진 병인박해 때문에 수많은 천주교도들이

죽임을 당한다. 이때 주교인 베르뇌를 포함한 아홉 명의 프랑스인들이 처형을 당했는데

그들은 새남터(현재의 용산구 이촌동)와 충남 보령 갈매못 등지에서 형장의 이슬이 됐다.

병인박해가 원인이 돼 병인양요가 발생한다. 자국의 선교사가 처형됐다는

소식에 중국에 주둔하고 있던 로즈 프랑스 제독은 함대를 이끌고 조선을 침략했다,

 

프랑스 함대는 본격적인 공세에 앞서 정찰선을 파견하는데 그 정찰선이

한강 깊숙한 곳까지 올라왔다. 양화진을 넘어 서강까지 침범을 하고 돌아갔다. 

이 소식을 들은 대원군은 격분했다. 사악한 서양 세력의 흔적들을 천주교도들의 피로 씻어내겠다,

라면서 잠두봉에 새로운 처형지를 만들었다. 그리하여 뽕나무들이 우거졌던 잠두봉은 머리가 떨어져 나간다 는

뜻을 가진 절두산으로 바뀌어 불리게 됐다. 병인박해는 1866년을 시점으로 1871년까지 계속 이어졌다

 

지금으로 부터 약 150년 전, 수천명 천주교인들의 목이 짤려나간 비극의 땅 절두산은 한강변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