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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흐르듯이 순리대로

서해안국토종주 5-9 (무안버스터미널~영광불갑면사무소)함평덕산삼거리-운림촌마을(2018년 5월 18일)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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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안국토종주 5-9 (무안버스터미널~영광불갑면사무소)함평덕산삼거리-운림촌마을(2018년 5월 18일)

물흐르듯이순리대로 2018. 6. 11. 05:00


함평 대덕면 덕산삼거리 를 지나간다, 가는길은 직진이다,

가는길 왼쪽에는 여전히 평야가 따라온다

언제쯤 어디서 끝이 날지로 모를 넓은 평야가 괄활하게 펼처진다,

사실 지도를 확인하면 뭐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눈에 보이는 풍경은 그렇다,

가끔은 한적한 갓길 잘 보이지 않는 곳에

차를 세우고 조용히 여유를 즐기는 사람들도 있다,

지방 하천 대동천이다, 대동천은 조금 더 하류로 흘러가서

함평천변 나빌레초원 공원에서 함평천으로 합류되면서 대동천은 소멸된다,

대동천에 놓여진 교량은 용성교다,

용성교 위에는 지금 무슨공사를

하는지는 몰라도 가랑비가 내리는 날도 토목공사를 하고 있었다,

함평은 일제시대(日帝時代)인 1910년 9월 10일 군에 면(面)을 두도록 하는 명문과 함께

면에 면장(面長)을 두어 판임관 대우를 한다는 규정에(법률상 처음으로 면장 지위)따라, 면이 신설되고 

1913년 12월 29일 공포한 총독부 부령(府令) 제111호와 1914년 전남도령 2호에 의하여 1914년 3월 1일 부터 실시한

군 관할구역 조정에 따라 1906년에 편입되었던 본, 여황, 적양면은 본양면으로 통합하여 나주군에

오산면은 광주군 에 대화면은 장성군으로 행정구역이 변경된다, 

또, 목포부의 엄다산(嚴多山), 신로면(新老面)을 엄다면으로 통합하고 금동(金洞), 진례(進禮),

좌촌면(佐村면)을 학교면(鶴橋面)으로 통합하여 함평군에 편입하였으며 기성면과 영풍면(永豊面)을 합하여

함평면(咸平面)을 신설, 월악(月岳), 갈동(葛洞), 대야면(大也面)을 병합하여 월야면을 신설했다.

이 때 기성면의 일부인 향교리와 강운리를 대동면에 편입시켰면서 

함평군은 10개면을 두게된다, 일제시대 편제는 이랬다,

그리고 대한민국시대(大韓民國時代) 1963년 1월 1일 함평면이 함평읍으로

승격(1962년 11월 21일 법률 제1177호)하고. 1읍 8면을 관할했어며 1973년 7월 1일 학교면 상옥, 금곡, 백호,

월송리를 대동면에 편입한다.(1973년 3월 12일 대통령령 제6542호) 1982년 대동면 서호리의 분매(分梅), 호정(湖亭), 성정(成丁),

서변(西邊), 동호(東湖) 마을과 연암리의 수현(水峴), 수암(水岩) 마을이 대동댐 축조로 수몰되었다.

1987년 1월 1일 함평읍 성남리 일부와 학교면 사거리 일부가 엄다면(1986년 12월 23일

대통령령 제12017호)에 편입되었다, 그리고 지금인 2017년 12월 31일 기준으로, 행정구역은 1읍 8면

272개리, 496 자연마을 로 전체 인구 는 34,328명(남 17,004, 여 17,324) 이다,

잠시 이야기가 다르게 전게되기는 했지만 지역의 내력을 알아보는 것도 여행의 일부분이다,

그러나 가끔은 잘못 접근한 자료들로 해서 전여 다르게 이해할수도 있지만 위 내용들은 함평군청 자료다,

합평잡곡을 생산하는 마을은 용연마을 인가보다,

이길은 용연마을로 들어가는 용연길이다, 행정 동명은 대동면 용성리다,

용연마을 버스정류장도 있다,

그리고 용연마을 버스 정류장 맞은편 마을도 

대동면 용성리 용연마을이다, 그래서 길 좌우 모두 용연마을이다,

대동면 용성 게이트볼장도 크다랗게 잘지여 놓았다,

농촌인구의 절대다수가 노인층이다보니 가는곳 마다 게이트 볼장이 있는게 보인다,

이제 구룡동 마을이다, 길은 이렇게 삼거리로 나누어 지지만

결국 다시 하나로 합처지는 그런 길이다,

삼거리 입구 마을이름 표지석도 있고

구룡마을도 지나서 계속해서 학동로를 따라 올라간다,

서해안 고속도로와 진양리로 가는 길로 나누어 지기도하지만

나는 그냥 가든길인 학동로만 따라간다,

날씨가 맑았어면 그리고 앞에 보이는 곳이 다 보여젓다면 어땟을까,

 깨끗한 장면이라 지금보다 더 아름다웠을 것인가? 아니면 안개가 끼인 저런 전경의 묘한 아름다움은 덜했을까,

이래도 아쉽고 저래도 아쉽기만한게 여행이다, 마음껏 즐기는 여행이란

편하게 쉬여가는 방법 말고는 없지만 목적을 가지고 종주를해야 하는 일종에서는 욕심이다,

,그래서 눈에 보이는 것만이라도 충실해야 하는데 그 마저도 일일이 찾아보는 시간이 걸리는게 문제다,

이 마을은 고목에 정자까지 구색을 같춘 마을로 운림촌이다,

운림촌버스정류장도 있다, 운교리 운림(雲林)은 임진란 이전부터 도술에 밝은 운림처사가

살았다고 해서 운림촌(雲林村)이라 불렀다고 하며 연대를 확인할 수 있는 씨족으로는 한양 조씨가의 맹생의 후손인

홍손(洪孫)이 큰 조카 세황(世황 1505년생)과 함께 판교에서 이주해 살았다고 전해지는 마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