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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흐르듯이 순리대로

서해안국토종주 6-6 (영광불갑면사무소-고창공용버스터미널)영광군청-연성리성동버스정류장,(2018년 5월 19일)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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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안국토종주 6-6 (영광불갑면사무소-고창공용버스터미널)영광군청-연성리성동버스정류장,(2018년 5월 19일)

물흐르듯이순리대로 2018. 6. 14. 06:00

이번은 영광군청을 지나가는 길이니

영광군에 대한 역사를 조금 더 자세히 알아본다,

 

영광의 지명과 연혁은 삼국사기에 처음 등장한다. 백제 때에는 무시이군(武尸伊郡)

(물이군)이라 했는데 신라 35대 경덕왕景德王 16년(757)에 대대적인 지방통치조직 개편과 군현명

개정작업으로 무령군(武靈郡)으로 개칭하여 장사(長沙), 무송(茂松), 고창(高敞)의 3현(縣)을 관할하였어며

영광군의 변천계보는 삼국사기, 고려사, 조선시대 지리지 등에서 무시이군→무령군→영광군으로

일관되게 서술되고 있다.

 

무령군은 본래 백제의 무시이군인데 경덕왕이 명칭을 바꾸었고, 지금(高麗)은

영광군(靈光郡)이라 한다. 영현(領縣)은 셋이다. 장사현(長沙縣)은 본래 백제의 상로현(上老縣)인데

경덕왕이 개명하여 지금에 이르고, 고창현(高敞縣)은 본래 모량부리현(毛良夫里縣)인데 명칭을 바꾸어

지금에 이르며, 무송현(茂松縣)은 본래 백제의 송미지현(松彌知縣)인데 경덕왕이 이름을

바꾸어 지금에 이른다.

 

통일신라시대 지방제도의 골격은 소위 나말여초(羅末麗初)로 지칭되는

신라말~고려초기의 격변기에 변모되어 갔다. 왕건에 의한 반도의 재통일 후

고려 현종(顯宗)대까지 여러 차례에 걸친 대소의 군현체제 개편작업을 통하여 영광은

새로운 중심지로 부상하였고, 당시 지방통치조직 개편으로 태조 23년(940)

무령군은 영광군(靈光郡)으로 개명하였다.

 

영광이란 지명은 당시 중앙관청에서 정한 이름으로, 지명이나 성(姓) 등에 있어

통일 신라시기에 중국 한식(漢式)이 확산되고, 고려태조 왕건의 후삼국 통합 이후 전국 군현의

개편과 함께 군현 토성을 분정(分定)하면서 한화(漢化)가 정착되었다. 지명이란 말을

풀이하면 땅(지역)에 붙은 이름이 된다. .

 

그리고 지명은 그 지역의 지리적 특성에 따라 생성되거나 명칭이 부여되었다.

영광이란 지명을 불(佛)과 연관 짓기도 하지만 지명의 의미는 신령스런 빛의 고을로,

자연의 영묘한 빛이 반짝이는 은혜로운 지역이란 뜻을 담고 있다

 

이후 영광은 고려 성종(成宗) 14년(995)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고려 현종(顯宗)

9년(1018)까지 정주(靜州)로 칭하고 별칭으로 오성(筽城)이라 하였고, 1018년 지명이 영광으로 복귀되었다.

- 위에 기술한 자료출처는 영광군청 홈피 자료를 인용했다, -

 

영광이라는 지명에 대하여 조금은 긴 설명을 찾아보았다,

이제 가든 길을 따라간다,

 

군청과 읍시무소, 경찰서 법원등의 관공서를 지나니

다시 주택들은 60년대 풍이다,

 

 

 

나는 밝고 화려하고 반들 반들한 현대식 건물보다

엉성하고 투박하고 낡았지만 60년대식 전경이 더 정겹다, 왜 일까, 모든게 새것이 좋은 시대인데

 

영광군지정 예담 모시송편을 만드는 공장도 있다,

특이한 점은 영광에는 버스터머널 주변 상가에도 지금 지나온 중앙로에도 유독 떡집이 많이 있였다, 

 

떡을 만드는 집이 무슨 카페처름 꾸미기도 했지만 잔치떡 이바지떡

또 무슨 떡, 등 영광에 떡집이 많이 있는 이유는 뭘까, 궁금하기는 해도 답이없어니 그 것으로 끝,

 

고개언덕에 육교가 있다, 연등이 걸려 있는것으로 보아 무슨 사찰도 있는 모양이지만

내게는 육교에 걸려있는 글귀가 더 눈에 들어온다, 처음영광군으로 들어올때 보았든 "만나서 영광입니다," 의

여운이 아직도 남아 있는데 이번에는 "다시 만날수 있는 영광을 !" 하고 인사를 한다,

 

외국인들을 위한 배려일까,

See you again YEONGGWANG - GUN 라고 쓰 놓기도 했다,

 

길은 이제 무령리로 들어간다,

 

그리고 이제 곧 23번 국도를 따라 올라가야 하는 긴 코스가 남아 있다,

신 도로인 국도 에서는 길을 찾아갈 필요가 없다, 그냥 이정표만 따라가면 되니까.

 

무령 2저수지가 있는곳  영광장례식장도 있다, 지금 장례식장은 기피하는 혐오시설이 되였지만

태여나는것 못지않게 평생을 자식들과 이 사회를 위해 일하다가 떠나는 분들의 마지막을 잘 모시는 일도

사람사는 세상에서는 중요한 일중 하나다, 그래서 조상일은 정성을 다해야 하는게 아닐까,

 

이곳은 23번 국도로 들어가는 북문교차로다,

나는 이 교차로를 건너 도로 건너편  영광으로 들어오는 차를 마주 보고 올라 가려고 한다,

차가 지나가는 순방향은 등 뒤에서 오는 차를 볼수가 없어니 위험 하기 때문이다,

 

이곳 북문 교차로에서

부안 고창 방향으로 길을 잡는다,

 

교차로를 건너가서도 보이는 직진방향 길은

지금까지 내가 따라온 중앙로에서 이 교차로를 건너면서 이름만 바뀌는 청보리로다,

 

교차로를 건너와서 북쪽에 있는 고창으로 간다,

 

가는길 옆에 보이는 들녁은 영광읍 연성리다,

 

북문교차로에서 올라가는길 앞에는

 연성리 270번지 일대 에 있는 건물 몇채가 보인다,

 

건너편에 있는 마을도 연성리 고

 

이제 고창은 25km 정도 남았다,

어찌되였건 나는 오늘 저곳까지는 가야한다,

 

조금 전에 보고 올라온 연성리 270번지 일대 주택과 창고 

이집 출입을 위해 23번국도에서 가드레일을 철거 하고 진입로도 만들어 놓은게 보인다,

 

그리고 조금 더 멀리 보이는  연성리 성동마을

사실 졳이 성동마을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도로에 있는 버스승강장에

성동이라는 이름이 붙어있어니 마루어 짐작 하는것 뿐이다,

 

그리고 길 건너에 있는 연성리 169 -14 번지 영광레미콘 공장

저곳도 버스승강장 이름은 성동마을이다,

 

성동마을도 점점 더 가깝게 다가오고

 

방음벽이 처저있는 도로를 걸어 올라 간다,

이 도로는 차량통행이제법 있는 도로 로 차와마주할때는 갓길로 붙어서 안전하게 가야 한다,

갓길에 여유는 있지만 인도가 없는 도로이다 보니 안심이 안되기 때문이다,

 

성동버스승강장이다, 성동버스승강장은 맞은편에도 있다,

여태까지는 버스정류장이라 표기를 했는데 이 지역 일대에서는 정류장보다 승강장이라 불렀다,

그래서 자연히 내 표기도 승강장으로 바꾼다, 정류장이나 승강장이나 그게 그거지만, 나는 오늘 이 버스 승강장에서

길게 쉬였다, 불갑면사무소에서 이곳까지 지나온 길이 10km는 훨신 넘는 거리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