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흐르듯이 순리대로
헌종과 경빈 김씨의 사랑이야기 낙선재(2018년 7월 5일) 본문
창덕궁 동쪽 끝 자락에는 궁궐의 위세 높은 형상과는 사뭇 다른 소박한 모습의 한옥 몇채가 눈에 들어온다,
헌종(조선 24대)이 후궁 김씨를 위해 지었다는 樂善齋 (낙선재)가 그것이다, 낙선재는 선한 일을 즐겨한다, 는 의미를 담고있는 말이다,
낙선재와 그 오른 쪽으로 후사를 기원하는 의미의 錫福軒(석복헌),
그리고 만수무강을 빈다는 뜻의 壽康齋(수강재)를 합하여 이들 영역 전체를 낙선재라 부른다,
헌종의 정비였든 효헌왕후 김씨가 혼례를 치른지 2년만에 운명하자 뒤이어 효정왕후 홍씨가 간택되였다,
그러나 그녀도 만 2년이 흘러도 후사가 없자 헌종은 오래전부터 마음에 두고 있었든 경빈김씨를 후궁으로 맞이하게된다,
경빈김씨를 끔직히 사랑했든 헌종은 궁궐 한 모퉁이에
자신의 서재인 낙선재와 함께 가장 중요한 건물인 석복헌을 지어 그녀에게 선물한다,
그러나 헌종이 너무 짧은 생애(1827~1849)를 마친 탓에
함께했든 경빈 김씨는 석복헌에서의 시간은 겨우 2년여 밖에 되자않아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석복헌 우측에 있는 수강재는 헌종의 할머니인
순원왕후의 육순을 기념하여 그녀의 만수무강을 기원하는 의미로 지어진 건물이다,
창덕궁 안에 건립된 사대부 주택인 낙선재는 조선조 마지막 왕인 영친왕 이은과 이방자 여사가
기거하였든 곳으로도 알려저 있다, 석복헌은 영친왕 이은의 아들 이구와 그의 아내 줄리아가 미국에서 돌아와
생활했든 곳이고 수강재는 덕혜옹주가 마지막까지 이곳에서 생활하다가 생을 마감한 곳이다,
낙선재 뒤뜰에는 순종의 비 윤씨를 위해 지은 별당인
한정당이 고즈넉하게 자리잡고 있다,
헌종은 조선 24대 왕이다,
아버지 효명세자가 일찍 죽자 할아버지 순조의 보호속에서 성장했다,
할아버지 순조는 손자를 오랜기간 지켜주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다,
이때 헌종의 나이가 8살이였다, 조선 역사상 가장 어린 나이 8세에 헌종이 즉위하게 되고 순원왕후의 수렴청청이 시작된다
헌종은 10살때 효원왕후를 왕비로 맞어나 후 없이 일찍죽고
계비로 효정왕후 홍씨를 맞이 하나 헌종은 간택에서 떨어진 다른 여인에게 마을을 주고 있었다, 그가 바로 경빈 김씨다,
왕비의 간택은 초간택, 재간택, 삼간택의 절차를 밟는데 마지막 삼간택에서
최종 선택되면 왕비가 되고 나머지는 자기집으로 돌아가는게 아니라 궁궐안에 궁인으로 남아야 했다,
왕의 눈에 들어 후궁이 되는경우도 있었어나 잋혀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였다,
당시조선왕실은 후사를 걱정할 정도로 손이 귀한 상태였고 헌종의 마을을 헤아려 간택에서
떨어진 김씨를 후궁으로 들이게 된다, 헌종은 사랑하는 여인 김씨를 곁에 두고 후사를 이을 목적으로 만든 영역이 낙선재다,
낙선재 영역은 낙선재, 석북헌, 수강재, 등 세개의 영역으로 되여 있다,
낙선재는 헌종의 사랑채 역활을 했고, 석복헌은 경빈 김씨의 처소로 지어젓어며
수강재는 수렴청정이 끝난 순원왕후를 위해 마련된 것이다,
장락문이다,
낙선재의 편액은 흥선대원군의 글씨로 전해진다,
낙선재 앞 우물,
들여다 보니 아직도 물이 가득 고여 있다,
이곳이 수강재다,
헌종이 할머니인 순원왕후의 육순을
기념하여 만수무강을 기원하며 지었다는 수강재다, 낙선재 동쪽 끝에 있다,
낙선제 앞 뜰이다,
낙선재를 돌아 나와 이제 창덕궁 후원으로 간다,
- 문화재청 자료를 인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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