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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흐르듯이 순리대로

창덕궁후원 애련지와 관람정 그리고 존덕정(2018년 7월 5일) 본문

국내 山行日記/그곳에 가고싶다

창덕궁후원 애련지와 관람정 그리고 존덕정(2018년 7월 5일)

물흐르듯이순리대로 2018. 7. 7. 11:51

창덕궁의 후원은 후원 또는 왕의 동산이라는 뜻에서 금원이라고

불렀으며, 후원은 태종때 지었다는 기록이 있고 세조때 연못 2개를 지었다는 기록이 있다.

1463년엔 후원을 확장하여 성균관에 이르렀다 한다.

애련지(愛蓮池)와 의두합(倚斗閤)은 창덕궁 후원 두번째 공간이다,

숙종대에 조성한 작은 연못인 애련지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공간으로. 애련지는 일반적인 연못과는 달리 가운데

섬이 없는 네모난 연못으로 사방에 장대석으로 축대를 쌓았으며, 한쪽편에는 숙종대에 조성된 앞면1칸짜리 정자인 애련정이 있다.

이 공간은 주로 순조의 아들로 정조를 본받아 개혁정치를 꿈구다 어린나이에 요절한 효명세자의 손길이 많이 남아있는 공간이다.

창덕궁 후원 첫번째 공간으로 공식 행사가 열렸던 부용지와 영화당을 지나면 애련지를 중심으로

두번째 영역을 만날 수 있다. 애련지 주변은 작은 이궁(離宮)이라 할 수 있는 연경당과 함께 아름다운 정원이 꾸며져 있다.

이 곳은 연경당과 더불어 순조의 아들인 효명세자의 손길이 남아 있는 소박함을 특징으로 한 공간이다.

애련지는 부용지와 달리 가운데 섬이 없으며, 사방에 화강석으로 축대를 쌓아 올렸다.

연경당 앞의 작은 연못과 함께 두개 연못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연못 남쪽에는 어수당이라는 건물이 있었는데

지금은 남아 있지 않다.

애련지 입구. 경복궁역에서 볼 수 있었던 문인, 불로문(不老門)이 있다. 하나의 돌을 깎아 만든 특이한 문이다.
월래 이런 형태의 문을 석월문(石月門)이라고 하는데 문 위쪽 면에 전서체(篆書體)로 불로문이라고 새겨져  있어서 인지 불로문이라 부른다.

불로문은, 이 아래를 지나가면 젊어진다고 한다. 나도 젊어지면 좋겠다. 하는 생각으로 아래를 지나쳐가 보았다,

문 위에 글자체는 소전(小篆)이다. 풍화로 인하여 약간 무디어는 졌지만 격(格)이 있어 보인다.
그렇다면 이 돌문은 누구를 위하여 세운 것일까? 기록에는 없지만 십장생(十長生)의 하나인 돌을 사용한 것을 보아
임금의 무병장수를 기원해 세운 것임이 분명하다.

불로문 옆으로 보이는 의두합은 애련지 남쪽 언덕에 북향을 하고 있는 작은 건물로

효명세자가 순조를 대리하여 대리청정을 하던 시기에 혼자서 독서를 하거나 휴식을 하기 위한 공간이였다,

불로문으로 들어가면 애련지 남쪽 마당이다, 연못 넘어 북쪽에는 건물 몸채에 비하여 지붕이 유독 커 보이는

정자가 애련정(愛蓮亭)이다. 부용정과 같은 모습으로 연못에 두 발을 담고 있다. 애련(愛蓮)’이라는 이름은 숙종이 애련정을

지으면서 중국 송나라 때 주돈이(周敦頤)가 쓴 애련설(愛蓮說)에서 빌린 것이라고 한다,

가 얼마나 연꽃을 사랑했는지 어제기(御製記)에 이렇게 쓰여 있다.

내 평생 이목(耳目)을 부리지 않고 홀로 연꽃을 사랑함은 붉은 옷을 입고 더러운 곳에 처하여도 변하지 않고,

우뚝서서 치우치지 아니하며, 지조가 굳고 범속을 벗어난 것이 은연히 군자의 덕을 지녔기 때문이다.

애련지 우측 길로 

존덕정(尊德亭)과 폄우사가 있는 곳으로 간다.

존덕정(尊德亭)과 폄우사가 있는 곳으로 들어가면서 본 애련지, 애련지에도 정자가 있었는데,

애련정이다. 애련지는 3가지 멋이 있다고 한다. 하나는 봄, 가을에 오면 주위 풍경이 애련지 연못 비춰 2개가 되고,

또 하나는 애련지에 연꽃이 피면 매우 아름답고, 또 하나는 눈내린 겨울 아침. 하얀 애련지 연못에 떠오르는

태양을 등지고 애련지 앞에 서면 화선지에 먹을 칠한 듯이 아름답다고 하는 연못이다,


창덕궁 뽕나무다, 뽕나무로서는 보기 드문 노거수일 뿐 아니라 창덕궁 내 뽕나무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수형이 단정하고 아름답다. 친잠례 거행 등 궁궐 역사의 일면을 보여주는 중요한

수목으로 보호할 가치가 큰 나무다.

나무높이는 12m, 가슴높이 줄기둘레는 239.5㎝ 정도이다. 예로부터 조선은 농본사회로 농사와 함께

양잠(養蠶)을 중요시 했다. 나라에서는 백성들에게 양잠을 권장하기 위하여 궁의 후원에 뽕나무를 심어 왕비가 친히 누에를

치는 시범을 보였다 한다. 조선시대 궁에 뽕나무를 심었다는 기록은 태종실록에 처음 보이는데, 창덕궁에는 1409년(태종 9) 중국 주(周)나라

성왕(成王)의 공상제도(公桑制度)를 본떠 궁원(宮園)에 뽕나무를 심도록 명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 뽕나무 뒤로 보이는 담은 창경궁과 경계며 보이는 전각도 창경궁 건물이다,

아래 사진에 보이는 정자는 반도지 언덕에 세워진 승재정이다,

관람정은 창덕궁 후원 관람지에 있는 정자다,

1820년대에 만들어진 동궐도 를 보면 관람정이나 관람지는 없고 둥근 연못 하나와 네모난 연못 둘이 나란히 표현되여 있다,

순종때 그려진 동궐도형 에는 호리병 모양으로 합처진 연못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일제 강점기에 한반도 모양으로 바꾸고 半島池(반도지)라고 부른것으로 추측된다,

관람정 도 고종, 또는 순종 연간에 세운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관람정은 평면이

부채골 모양으로 되어있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형태의 정자로 觀䌫(관람)은 닻줄, 즉 배 띠움을 구경한다는 뜻이다,

관람정 뒤로 보이는 정자는 1644년에 지어진 존덕정이다,

관람정 맞은편에는 승재정이 숲속에 숨어 있다, 

관람정은 나무잎 모양의 녹색 현판에 정자 이름이 적혀 일반 궁궐 건물의 현판과는 다른

재미있는 모양을 하고 있다, 창덕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손꼽힌다, 이곳에서는 어디서 보아도

맞은편 언덕에있는 승재정이 보인다,

합죽선 모양의 관람정(觀纜亭), 옥류천(玉流川)에서의 소요유(逍遙遊)를 혼자서 은밀히 즐길 줄 안다면

제왕이 부럽겠는가. 진정으로 비밀스러운 공간은 드러난 형체로서가 아니라 그를 통해 들어가는 내면의 심연일지도 모른다.

존덕정으로 들어가는 길에는 반도지(관람지)로 들어가는 물길이 나 있다,

존덕정과 폄우사로 가는길




존덕정 뒤에 있는 은행나무는 

궁궐에서는 가장 크고 가장 오래된 은행나무 다,

 둘레 5m 높이 22,4m 

나이는 250년에 이른다는 은행나무,

정조가 존덕정을 정비하면서 공자가 제자를 가르치든 곳인

杏壇(행단)의 예에 따라 은행나무를 심어 학문을 잘 받들고자 했든 것으로 짐작케하는 은행나무다,

존덕정은 창덕궁 후원에 있는 정자로 인조 22년(1644)에 지어졋다,  육각형으로 되여 있어

처음에는 육면정이라 불리다가 후에 존덕정으로 바뀌였다, 천정은 전체적으로 육각형태에 안쪽 가운데는

다시 육각의 반자를 둔 구조로 화려하게  그려진 청룡? 황룡도가 위엄을 보여준다,

특이한 점은 존덕정이 6각 두겹지붕이란 것이다

조금 멀리서 본 존덕정, 지붕 안 북쪽에 만천명월주인옹자서(萬川明月主人翁自序)라는

정조의 글이 새겨진 나무판이 걸려있다, 집권말기인 1788년에 직접 지은 글이다, 정조 자신이 만백성을 골로루 보살피는

절대 군주로서 신하들에게 강력한 충성을 요구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 왕의 권위와 자신감을 보여 준다, 세상의 모든 시내는 달을 품고

있지만 하늘에 떠 있는 달은 유일하니, 그 달은 곧 임금인 나 이고 시내는 곧 너희 신하들이다, 따라서 시내가 달을 따르는 것이

우주의 이치 라는 강력한 내용이다,

존덕정 옆 폄우사 맞은편 승재정이 보인다, 관람정 맞은편에 위치한 승재정은

정면, 측면 1칸의 작은 정자다, 1820년경에 제작된 동궐도 에는 초가지붕을 한 정자가 그려저 있어,

승재정은 고종황제 이후에 세워진 것으로 보인다,

창덕궁 후원 반도지()에 있는 정자이다. 정자는 정면 1칸, 측면 1칸에다

겹처마에 사못지붕을 한 작고 간결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각 칸마다 창호를 달았으며 살창이 독특한 문양을 가지고 있다.

정자의 마루에는 난간을 설치하였다. 승재정이 언제 건립되었는지 정확하게 알려진 바가 없으나

조선후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승재정은 폄우사 남쪽의 가파른 언덕위에에서 관람정을 굽어보고 있는 정자이며,

측면 각 1칸의 사모기와 지붕을 한 익공건물로 사방으로 창호를 달고 접어 들쇠에 매달수 있도록 했다

폄우사, 이곳은 순조의 세자 효명세자가 독서하던 곳이라고 한다,
폄우? 란 어리석음을 경계하여 고쳐준다는 뜻이다,

이제 애련지와 반도지를 나간다,

나가면서 보는 폄우사와 존덕정이 다시 만나자 손짓을 하는 것만 같다,

- 문화재청 자료를 인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