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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흐르듯이 순리대로

창덕궁후원 부용지와 주합류(2018년 7월 5일) 본문

국내 山行日記/그곳에 가고싶다

창덕궁후원 부용지와 주합류(2018년 7월 5일)

물흐르듯이순리대로 2018. 7. 7. 11:22


궁궝에서 후원으로 들어가는 길, ↑ 우측에 영춘문이라는 문이 있었는데, 이 문은 바로 옆의 창경궁과 연결된 문이다.

좌측은 창덕궁 후원으로 들어가는 길이다, 창덕궁 후원은 관람권(5,000원)을 구입해야 정해진 시간에 해설사와 함께 입장이 가능하다,

 매 30분에 1팀씩 입장하며 관람인원은 1회 40여명 정도로 탄력적으로 운영하는 것 같았다,

후원으로 들어가는길 왼쪽은  대조전후원과 경계를 구분하는 담이 처저있고 

대조전 후원과 창덕궁 후원으로 출입할수 있는 대조전후원 출입 문이보인다, 창덕궁의 후원은

창덕궁만이 아니라 창경궁 후원이기도 했다, 사진에 보이는 오른쪽은 창경궁이다,

 창덕궁 후원은, 후원(後苑) 또는 왕의 동산이라는 뜻에서 금원이라고 불렀으며, 비원(秘苑)이라는 명칭은 일제 때 용어다.

태종실록에 1406년(태종 6) 4월 창덕궁 동북쪽에 해온정(解溫亭)을 지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정원은 이때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1459년(세조 5)에는 후원 좌우에 연못을 만들고, 열무정(閱武亭)을 세웠다.

1459년에는 후원 좌우에 연못을 만들고, 열무정을 세웠고, 1463년에는 후원을 확장하였다.

임진왜란 때 창덕궁과 함께 불탔으나 광해군 때 복원되었다. 이후 여러 왕들을 거치며 지금의 모습이 갖추어졌다.

왼쪽의 궁궐 담장은 창덕궁과 창덕궁 후원 경계다,

창덕궁후원에서 본 꿩이다,

서울 중심에서 비둘기가 아니라 꿩을 본다, 잘 보존된 깊은 숲이니 꿩이 사는게 당연한데도 새롭다,

후원은 크게 네 영역으로 나뉜다. 첫 번째는 부용지,·부용정,·주합루,·영화당,·서향각,이 있는 지역이다.

두 번째는 기오헌,·기두각,·애련지,·애련정,이 있는 지역이며 세 번째는 관람정,·존덕정,·승재정,이 있는 지역이다.

네 번째 영역에는 옥류천·취한정·소요정·어정·청의정·태극정이 있다. 아마 오늘은 두번째 지역까지 공개범위가 아닐까 싶다,

창덕궁 후원 첫 번째 영역인

부용지,·부용정,·주합루,·서향각, 영화당이 있는 곳으로 들어간다, 

언덕을 내려서면서 처음으로 보이는 영화당

부용지와 주합루에 대한 안내


오른쪽부터 영화당, 가운데 있는 전각이 주합류와 규장각,

 그리고 끝에 있는 건물이 서향각이며 앞에 있는 문이 어수문이다, 산의 지형을 훼손하지않고

최대한 자연속에 어우려지게 설계해서 건축한 절묘한 배치를 했다,

이렇게 아름다운 배치를 한 頂點(정점)에 부용지가 있다, 부용지는 길이 34.5m, 폭 29.4m의 장방형 연못으로,

가운데에는 도가 사상을 상징하는 직경 9m의 원형 인공섬이 조성되었다. 예전에는 이 섬에 현종 때 지은 청서정(淸暑亭)이 있었다고 한다.

연못을 사각형으로 만들고 그 안에 둥근 섬을 두는 것은 천원지방(天圓地方)이라는 동양의 세계관을 반영한 것이다. .

연못의 물은 지하수로 공급되지만 비가 올 때는 서쪽 계곡의 물이 용머리 모양의 입을 통해 들어오고

동쪽의 수구를 통해 나갈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부용지를 둘러싼 장대석 중 부용정 쪽 한 부분에는 물고기가 조각되어 있다

무었을 뜻하는지 알수는 없지만 부용정 옆 산에 세워저 있는 비석?

보물 제1763호. 창덕궁 부용정이다, 주합루 남쪽 부용지(芙蓉池)에 면한 누각이다.

부용(芙蓉)은 연꽃을 뜻한다. 부용지는 창덕궁 후원의 대표적인 방지(方池)다,

부용정은 원래 숙종 33년(1707) 택수재(澤水齋)라는

이름으로 지어졌다가 정조 16년(1792)에 부용지를 고치면서 부용정(芙蓉亭)이라 부르게 되었다.

부용정은 창덕궁 후원 초입에 천원지방의 조형원리에 따라 조성한 대표적 연못인 부용지에 지은 마루식 정자다.

연못에 인접하여 자연의 선경을 인공적으로 만들어, 풍류를 통해 수양을 하는 한국 정자건축의 대표적 작품이다. ‘十(십)’자 모양의

독특한 평면 형태, 공간구성, 건물의 장식 등이 뛰어난 비례와 대비로 건물의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는 건물로

역사적·예술적·건축적으로 보존가치가 높다.

부용정은 크게 보아 十자형 평면을 가진 팔작지붕 건물이지만 남쪽 면에 모양을 내기 위해 다각(多角)으로

접었기 때문에 복잡한 형상을 지닌다. 북쪽 면은 부용지 안으로 들어가 있기 때문에 육각형 돌기둥을 세운 후 그 위로 건물을 얹혔다.

돌기둥 위에 올라서 기둥의 바깥으로는 계자각 모양으로 장식을 했다. 연못에 떠있는 부분은 다른 곳보다 바닥을 높게 하였다.

평면의 둘레를 한 바퀴 돌아 쪽마루를 설치해서 주변을 둘러볼 수 있게 되어 있다.

부용정에서는 왕이 과거에 급제한 이들에게 주연을 베풀어 축하해 주었다.

또 정조 19년(1795)에는 수원 화성을 다녀온 정조가 이 정자에서 신하들과 낚시를 즐겼다고 한다.

연못의 서측에는

西井記碑閣 (서정기비각)이 있다

西井記碑閣


주합루로 오르는 길 작은 문이 어수문이다, 너비 1칸으로 2개의 사각기둥 위에 화려하게 조각되고

단청된 가구(架構)를 올려 지은 겹처마 우진각지붕건물로 주합루(宙合樓)의 정문이다. 이 문 양옆에는 문 위를 무지개꼴로 만들고

특이한 형태의 곡선형 지붕을 얹은 작은 문이 하나씩 세워져 있어서, 어수문과 함께 3문형식을 이루고 있다. 주합루 주변은 화계(花階)에

정원을 꾸며 놓았으며, 화계 첫 단에는 어수문(魚水門)을 두고 주합루에 오를 수 있도록 하였다.


주합루의 정문인 어수문은 임금을 물에, 신하들은 물고기에 비유하여 군신의 융화적 관계를 함축한 뜻이 담겨져 있다.

어수문으로 임금이, 그 옆 작은 문(협문)으로 신하들이 출입하였다

제일 높은 곳에 있는 주합루는 1776년(정조 1)에 지어 1층을 규장각, 2층을 주합루라 칭하고 어필로 편액을 달았다.

정조가 지은 규장각지 서문을 보면 이 제도는 송나라의 용도각(龍圖閣), 천장각(天障閣)에서 어서를 보관했던 제도를 본뜬 것이라고 한다.

원래 규장각은 숙종이 종친의 업무를 관장하는 종부시(宗簿寺)에 세운 것으로 왕의 글과 글씨를 보관하는 곳이었다.

주합루와 어수문 옆에 있는 건물이 서향각이다, 서향각은 규장각 서고의 하나로서 창덕궁 북원(北苑)의 주합루(宙合樓)의

서쪽에 위치하였는데 현재까지도 이 건물이 남아 있다. 규장각지(奎章閣志)에 의하면, 본래 이 각은 헌(軒) 3칸, 좌우에 난각(煖閣)이

각 3칸으로 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곳은 어진(御眞)·어제(御製)·어필(御筆)을 옮겨와 폭서(曝書 : 서책을 볕에 쬐고 바람에 쐬는 일)하는 곳이었다.

매년 정월·사월·칠월·시월 보름에 각신(閣臣)들이 여기에서 폭서한 뒤에 봉모당(奉謨堂)·개유와(皆有窩) 등에 봉안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이안각(移安閣)이라고도 불렀다.

어수문은 주합루로 오르는 여러 단의 기단 중 맨 아래 기단 앞에 세워져 있다, 그 앞에는 6단으로 된 계단이 설치되어 있는데,

연못을 사이에 두고 부용정(芙蓉亭)과 마주보고 있다. 동궐도(東闕圖) 를 보면 문의 좌우에는 덩굴식물울타리인 취병(翠屛)이 길게 둘러쳐져 있어서,

주합루 일곽과 부용지 일곽을 공간적으로 구분하고 있는데, 이 부근의 운치를 한층 더 돋보이게 하였을 것이지만 지금은 모두 없어졌다.

보물 제1769호. 주합루는 부용지 북쪽에 위치한 2층 누각이다. 부용정과 마주보고 있으며 남문은 어수문(魚水門)이다.

주합(宙合)이란 우주와 하나가 된다는 뜻으로 자연의 이치에 따라 국가를 다스리고자 하는 뜻을 담고 있다

규장각 앞  서정기비(四井紀碑)각, 옆에 있는 우물,

이 우물은 세조 때 만든 샘 이다,

이곳에도 취병이 있다,

어수문을 따라 일렬로 길게 대나무 울타리를 만들어 놓은게 취병이다,

영화당이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난 뒤 이 후원은 20년간 폐허가 되었다가 1610년 불타 버린

창덕궁을 복구하면서 광해군은 많은 신하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후원에 책방(冊房)을 만들고 별전(別殿)과 소정(小亭) 등을

여러 곳에 짓고 기이한 꽃과 이상한 수목, 괴석을 즐겨 그 기묘하고 사치함이 예전에 볼 수 없는 경관이었다 한다.

이때인 1810년에  영화당(暎花堂)이 건립되었다, 창덕궁 후원은 북악산의 한 줄기인

매봉을 등지고 자연의 지세에 따라 누정(樓亭)과 연못이 배치되었으며 곳곳에 차고 맑은 샘물이 솟아난다.

후원 동북쪽 옥류천 물은 동쪽으로 흘러 나간다. 땅 밑에서 솟아나는 샘물들은

반드시 애련지·부용지를 채우고 다시 넘쳐 흘러서 창경궁 춘당지에 들었다가 창경궁 안쪽으로 흐르다 남쪽으로 나간다.

영화당은 400년 역사의 연회장소다,

지금도 이곳은 신을 벗고 들어갈수 있도록 개방해 놓았다,

영화당은 아름다운 부용지에 접해 있기도 하지만

 부용정 일대와 창경궁 일대까지 모두 다 볼수 있는 전망이 좋은 곳에 지어젓다,

주변보다 높은 기단위에 서웨진 영화당,

영화당의 전면인 부용지 반대편은 인접 창덕궁까지 비스듬히 경사가 저 있었든 곳이라고 한다,

 창덕궁 후원에서 공식행사가 열렸던 공간인 영화당 앞 마당을 지나면 2번째 골짜기에 연못을 조성한

애련지 일대가 나타난다. 지금은 후원에 조성된 여러 공간을 연결하기 위한 길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춘장대로 불렸던 넓은 마당의 일부분이다

- 문화재청 자료를 인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