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물흐르듯이 순리대로

평화누리길 9코스 율곡길(율곡습지공원 - 장남교) 2017년 3월 12일 본문

2017년 平和누리길/평화누리길 결산

평화누리길 9코스 율곡길(율곡습지공원 - 장남교) 2017년 3월 12일

물흐르듯이순리대로 2018. 12. 1. 06:00

율곡습지공원으로 들어서면 있는 평화누리길 9코스 시작지점 율곡습지공원

정 중앙에 스템프 함이있는 문이 있다, 스템프 함은 각 코스 시작지점에는 모두있다, 스템프함에서

스템프를 찍고 인증샷을 한후 완주후에 평화누리길 사무국에 보내면 완주 인증서를 발급해 준다, 인증서를 받아서

무슨 의미가 있다는 뜻이 아니라 기념일수도 있어니 기왕에 걷는거 안 하는것 보다는 좋지 않을까?

가야하는 곳의 거리와 시간등을 안내해주는 지도

율곡습지공원에서 장남교 까지는 19km다,

출발지점 300m 를 지난 곳에 있는 이정표다, 장남교까지 가는 시간은 5시간 20분이라고 했는데

우리는 그보다 더 많은 시간이 걸릴수도 있다, 이유는 즐기는 시간이 많기때문이다,

율곡습지공원을 나가서

율곡리 다음 마을인 두포리 방향으로 올라간다,

임진강변에 있는 철책을 따라 임진강을 거슬러 올라간다,

율곡습지공원에 있어야 할 평화누리 길 대표 디자인 아치형문이 이곳에 있다,

외지고 한적한 곳이지만 외지 관광객의 편의를 위해 설치한 것 같은

시내버스 정류장같은 대기소 이곳에는 92번과 95번 버스가 이지역을 다니기는 하지만 이 길은 아니다,

그리고 보니 자전거를 타고 가는 사람들이나 보행자를 위한 쉼터인것 같다,

길은 임진강과 자유로 사이다,

자유로와 임진강 사이를 따라

가다가 이번에는 자유로 안쪽으로 들어간다,

두포리^^

이정표는 이곳이 두포 3리라 안내되여 있다,

그리고 두포 삼거리로 올라 간다,

두포삼거리 버스정류장을 지나서

파평면사무소 방향으로 연결되는 오늘쪽 도로로 따라 간다,

그리고 길 건너에 있는 멋스러운 정자가 있는 곳으로 건너간다,

정자 이름은 평화누리길 두포리 쉼터 다, 정자 뒷편에는 말 농장이 있는데 말 숫자가 꽤나 많다,

두포리쉼터 앞에는 두포삼거리에서 파평면사무소 방향으로 가는 2차선 도로가 있어나

평화누리길은 잠시 마을 안쪽으로 들어가다가 옆 산으로 올라간다,

산길을 따라 가다가 보면 임진강도 내려다 보인다,

이곳은 박석고개라는 안내가 보인다, 이정표는 아주 소중한 역활을 한다,

이정표가 있었기에 이곳이 박석고개인줄 아는것도 중요하지만 온길과 갈 곳까지의 거리안내도 있어니

대충 짐작이 아니라 정확한 위치까지 알려준다,

푹신할 정도로 낖게 쌓여 있는 낙엽을 밟어며

박석고개를 넘어 2차선 도로로 내려간다,

두포 삼거리에서 이어지는 도로다

잠시 도로 로 가다가

도로옆에 있는 편안한 흙길로 들어간다

이런길이 나오지만 이런 갈림길에는 어김없이 평화누리길 리본이 걸려있다,

리본이 있는 곳으로 가면 된다,

산길로 따라가다가 오른쪽으로 들어가라는 이정표를 따라가면

파평면사무소와 파평단위농협, 파평면보건소, 파평면 119센터 등이 몰려있는 곳으로 연결이된다

파평면 행정타운인데 이제 곧 면사무소도 다른 곳으로 이전을 한다고 한다,

파평면사무소앞 도로다, 아침에 우리가 문산역에서 율곡습지공원까지 타고왔든

92번 시내버스가 이곳으로 다니는게 보인다, 면사무소 앞에서 좌측으로 파평면삼거리 금파산업단지 입구가 보인다,

이곳이 금파 삼거리다, 이제금파교로 간다

이제 금파교를 건너면

바로 왼쪽으로 나 있는 하천 둑을 따라 내려간다,

이곳 구간은 이정표를 따라 제방으로 내려가다가 중간 쯤에서 평화누리길 리본보고 가면 된다

그리고 뚝길 삼거리에서 오른쪽 도로 아래 암거를 나가면

자유로 옆으로 이어지는 길이 있다,

오른쪽은 자유로 왼쪽은 임진강,

임진강변에 있는 쉼터 정자도 있다, 이곳에는 이런 정자가 두군데나 있다,

정자 앞에 붙어 있는 임진강 적벽 안내가 있다,

우리는 적벽위에 있어 적벽을 볼수없다, 우리가 있는 곳과 아래 임진강이 있는 곳이 수직으로 난 적벽이다,

적벽 안내가 있고 정자가 있는 이곳에서 보이는 임진강

임진강을 바라보며 잠시 쉬여간다,


두곳의 쉼터 정자를 지나면 임진강변에 있는 큰 건물이 있는데

저곳은 금파취수장이다, 경기북부 파주시 20만 시민들의 식수원인 임진강에서 1일 5만톤

규모로 임진강물을 취수하는 파주시 취수장인 금파취수장 이다

금파취수장을 지나 금파취수장 끝에서 왼쪽길을 따라 가는길이 평화누리길이다,

이곳에서 사람이 걸어서 갈수있는 길은 평화누리길 뿐이다,

옆으로 길게 이어진 도로가 궁금해서 올려다 보니 자유로와 연결되는 길이기도

하지만 임진강을 따라 북녁으로 연결되는 37번 국도가 시원스럽게 뻗어있다, 그리고 이곳에서는

파주시 파펑면과 장단군 진동면을 연결하는 임진강 다리도 보인다,

이 다리는 리비교 다, 리비교는 한국전쟁시 미 8군 공병대대 소속의

George.D.Libby 중사가 다리일부를 폭파하여 남하하는 북한군 탱크부대를 저지한 것을

기념하여 이 다리를 리비교로 명명했다고 한다,

임진강과 평화누리길  그길을 따라 걷는 사람들이 절묘하게 잘 어루려 진다,

이 일대는 장파리다, 장파리에는 전설이되여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다, 그 이야기는 리비교 건너

마군부대가 있든 시절의 이야기다,

1960 ~ 1970년대 장파리에는 신봉기라는 사람이 살았다. 미군 병사들 구두닦이로

돈을 벌든 사람이다, 또한 마음 씀씀이도 좋아서 따르는 이가 많았다. 김남근이라는 사람은 미군이 만든

재건학교에 다니면서 형님, 형님 하고 신봉기를 따랐다. 김남근은 지금 리비교 옆 임진강변에서

농사를 지어며 살아간다, 리비교는 미군부대로 들어가든 다리다,

장파리 마을에서 리비교 쪽으로 주점이 있었다. 외출 나온 미군이 마지막으로

술 한잔 더 하고 귀대하던 술집이였는데 이름은 라스트찬스(Last Chance)였다. 마을에는 메트로홀,

럭키바, 나이트클럽, DMZ홀, 블루문홀, 라스트찬스 이렇게 미군 클럽이 여섯 군데가 있었다.

병사들은 그 클럽에서 음악과 술을 즐겼다.

장파리는 임진강을 건너는 대표 포구였다. 일제강점기에는 백화점이 있었다.

미군이 주둔하면서 장파리는 더 번창해졌다. 사람들은 딸라를 찾아 장파리로 몰려들었다, 

 장파리에는 딸라가 흩날렸다. 2㎞도 되지 않는 장파리 중앙통에는 미장원, 사진관, 주점, 여관이 난립했다.

마누라 없이는 살아도 장화 없이는 못 산다 고 할 정도로 장파리 거리는 진흙투성이였다.


그 진흙탕 위로 똥개들도 딸라를 물고 다녔다고 할 만큼 사람들은 부유했다.

김남근의 학교에서 집까지 600m. 가리지만 비가 오면 신발에 진흙이 가득 묻어서 집에 가지 못했다.

대신 진흙탕 속에 숨어있는 지폐와 동전 따위를 줍곤 했다

1968년, 몸집 작고 호리호리한 젊은 사내가 구두닦이 신봉기를 찾아오곤 했다.

라스트찬스에서 노래도 부르고 청소도 하던 사내였다. 신봉기가 준 돈으로 김남근이 20원짜리

라면 열 개를 사서 양은 바께쓰에 끓여오면 젊은 사내와 친구들은 거리에 서서 배를 채우곤 했다.

김남근은 지금도 기억한다. 봉기 형님이랑 남근이는 절대 잋지 않겠다고 하던 말을.

그 말을 한 주인공이 가왕 歌王 조용필이다.


군대 다녀온 사람은 안다. 신병훈련소, 그 혹독한 기억을 어찌 추억이라 하겠는가.

김남근이 말했다. 조용필에게 가장 어려웠던 시절이다. 말이야 기억한다고 했지만, 어디 쉽겠나?,

장파리 클럽은 음악인들에게 성지(聖地)였다. 조용필, 김태화 그리고 윤항기까지.

1977년 미군이 장파리에서 철수했다. 장파리는 몰락했다. 예쁜 여자들도 사라지고

거친 사내들도 사라지고 딸라도 사라졌다. 순식간이었다. 대한민국에서 제일 예쁜 여자들만 모아 놓은

미군 클럽들도 한순간에 폐쇄됐다. 장파리 영화는 그렇게 사라저 갔다,


2013년 3월 어느 날 임진강변 화석정 아래 사는 설치예술가 부부 윤상규, 김효선이

장파리에 놀러왔다가 창고로 변한 라스트찬스를 보았다. 버려진 물건들을 보니 화려했든시절 만든

예술작품들이 여전히 걸려 있었다. 조용필이 노래했던 무대도 그대로였다. 무턱대고 일주일 뒤 임대 계약을

하고 근 2년 삽질 끝에 2014년 12월 30일 라스트찬스 문을 다시 열었다. 윤상규가 말했다.

우리에게 가장 큰 역사의 틀을 가지고 있는 공간이 아닌가.

그렇다. 누구에게는 목숨 건 타향살이에 시름을 잊는 공간이었고 누구에게는

웃음을 팔아 딸라를 버는 공간이였어며 또 누구에게는 목숨보다 숭고한 음악을 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그 시름과 웃음과 딸라와 음악을 서로 곱하면 그게 우리네 추억이요 대한민국 근대사다.


그래서 부부는 라스트찬스 문에 자물쇠를 없애버렸다. 그저 아무나 와서 쉬다가고,

필요하면 가져가고 필요없어면 가져다 놓고 속을 채우는 소통 공간으로, 자연스럽게 형성되여 가기를,

앞뒤 재지 않는 예술가 커플이 아니면 할 수 없는 발상이다. 그렇게 라스트찬스는 지금도 명맥을

이어가고 있지만  사람들의 발길은 별로 없다, 그래서 세상일은 花無十日紅 인가보다,

장파리에서 임진강을 따라 북쪽으로 가면 고랑포구가 나온다. 삼국시대 고구려와 신라가

 쟁패했던 여울목이다. 장수왕 시대 고랑포를 건넌 고구려군은 호로고루 성채를 세웠다. 5세기 무렵이다.

연천 주민들은 호로고루에 봄이면 보리를, 여름이면 해바라기를, 가을이면 코스모스를 심는다.


1968년 1월 17일 밤 11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민족보위성 정찰국 소속 무장공비 31명이

이 고랑포를 건넜다. 김신조 부대다. 장파리 남쪽 동파리 초평도를 통해 침입하려 했던 공비들은 루트를 바꿔

고랑포를 건넌뒤 파주 법원읍 초리골을 통해 서울로 들어왔다.

장파리 남쪽, 임진강 건너 동파리는 6·25 때 개성에서 내려온 인민군 탱크부대가

주둔했던 곳이다. 휴전선을 넘은 김신조 부대가 먼저 도착한 곳도 동파리였다. 세월이 흘러

 2017년 그 참혹한 전쟁터에 근사한 마을이 들어섰다. 해마루촌이다. 동쪽 언덕(東坡)이라는 동파리를 이렇게

개명한 사람은 주민 조봉연 씨다. 쎄게 읽으면 똥파리라 기분 나빠서.이름을 바꿨다,


그렇게 세월이 갔다. 풍성했던 장파리는 몰락했다. 그 장파리가 부활을 꿈꾼다.

 공비가 출몰했던 초리골에 더 이상 긴장감은 없다. 선친이 꿈에 그리던 동파리에서 실향민 아들은 지난 세월을

이야기한다. 앞으로 임진강에 흘러갈 세월, 그 속에는 무슨 사연이 역사로 기록될 것인가 를

정파리에 얽힌 긴 이야기를 했다, 그러나 어디 장파리 뿐이겠는가,

우리의 근대사는 이렇게 아픔으로 시작이 되고 지금도 그 긴장이 이어지는 연속성 상에 살아가고 있다,

길은 한적하다 못해 적막감마저 드는 조용한 길이다,

아직 겨울잠에서 깨여나지 않아서 인지 농토는 있어도 사람 그림자도 볼수 없다,

인적이 드문 들판을 지나가니 또 다른 마을이 나온다,

초원마을회관과 자장노인정까지 왔다, 2년전에 이길을 걷다가 적성터미널에서

문산역으로 가는 버스를 탓더니 이곳으로 들어왓다가 다시 돌아나간 기억이 있는곳 이라서 눈에 익은 곳이다,

자장리 마을회관을 지나서 왼쪽길로 들어간다,

이곳에서 원당리 장남교까지는 약 4km 정도가 남았어니 이제 끝이 보이기 시작한다,

자장리에서의 길은 어디로 따로 연결되는 길도 없는, 외길이다,

그러니 그저 부지런히 걷는수 밖에 없다,

그러나 보니 멀리서 보기에도 엄청 큰 비닐 하우스가 보인다,

가까이 가서보니 비닐하우스 안에서 재배하는 배농원이다, 하우스 뒤로 보이는 37번 국도가 보인다,

워낙 북쪽이라 그런가, 지나 다니는 차도 보이지 않는다,

37번 국도 아래 국도 옆으로 따라간다,

오지기도 하지만 아무도 없는 길을 걷다보니 이곳에서는 지나가는 사람들 흔적마저 그림이다,

도로 옆으로 따라 가다가 좌측으로 올라가서 37번 국도로 올라간다,

길이 왜 이리로 연결 되는지 사유야 알길이 없지만 고속으로 질주하는 차들을 보니 조금은 위험하다,

위험해도 짧은 구간이라 그나마 다행이다,

금방 좌측에 있는 솔 농원입구로 들어가서 도로 위로 난 따라간다,

분명히 2년전에는 도로가 아니라 솔농원 옆 길로

이곳으로 들어왔는데 길을 막아 놓은것을 보니 이 곳이 사유지라서 지주의 동의를 구하지 못한 것 같다,

임진강이 보인다, 저곳이 두지나루다

황포돗배 관광지다,

2년전에는 이정표가 서 있는 이곳이 평화누리길 9코스가 끝나는 종점이였다,

이곳에서 9코스가 끝나고 10코스로 가는 스템프 인증을 했었는데 2,1km나 떨어진 장남교로 이전했다는

안내가 붙어 있다, 파주시와 연천군은 임진강을 경계로 나누어진다, 경계가 다르니 관할도

다르겠지만 이 정도의 이유라면 처음부터 감안을 했어야 하는데 이제서야

어찌되였거나 이곳은

임진강에서 황포돗배를 탈수있는 유일한 두지나루다,

이제 임진강 두지나루 황포돗배는 운행하지않는다, 그래서 강에 띄워저 있어야할

돗배는 육지로 올라왔다, 지금 사용하고 있는 주차장과 이 일대가 소유가 국방부로 파주시와 군부대간

사용권에 관한 협의가 안되여서 황포돗배 운행이 중단이 되였다고 한다, 황포돗배는 주차장으로 올라가 쉬고 있고

황포돗배 관광편의를 위해 설치했든 각종 시설물들은 관리가 안되여 허물어저 가고 있었다,

두지나루 표지석만 쓸쓸히 서있는, 이곳에 황포돗배가 뜰 날은 언제 일까?

두지나루에서 함께한 11명의 일행중 9명이 오늘 우리들의 역사를 남긴다,

사진에 없는 사람들은 꼭 이럴때는 빠지는 딴짓 선수들이다, 율곡습지공원에서 이곳까지는 약 16km 정도다,

뒤에 보이는 다리가 임진강을 경계로 파주시와 연천군이 나누어 지는 장남교다,

율곡길의 끝은 저 장남교를 건너서 있다,

황포돗배가 다시 운행할 다음날을 기대하며 두지나루를 나간다,

두지사거리다, 이제 이곳에서 두지삼거리로 가야한다,

그러나 이곳 두지사거리는 임진강 매운탕 촌이다, 오늘 뒷풀이는 유명한 두지나루 매운탕이다,

매운탕집에서 택시로 온 적성버스 공용터미널,

아곳에서 버스로 문산역으로 간다, 오늘은 이렇게 돌아가지만 다음주에 다시 두지 삼거리에서

장남교를 건너 율곡길 끝인 원당리에 있는 평화누리길 9코스 종점으로 가야한다,

2017년 3월 12일 평화누리길 9코스

율곡길 16,4km 를 5시간 30분이나 걸려서 왔다, 물론 쉬는시간 포함이다,

2017년 3월 12일로부터, 2주후인 3월 26일 다시 이곳으로 왔다,

적성버스터미널로 오는 길은 문산역에서 92번 버스를 타면된다, 여기서 다시

두지삼거리로 가려면 택시를 타거나 걸어가야한다, 택시요금 약 5,000원 정도가 나오는 거리다,

일요일 아침 시간 인데도 빈 택시가 없다, 그래서 걸어서 간다,

적성시내를 나가 임진강으로 흘러드는

설마천변 제방으로 황포돗배가 있는 두지삼거리 방향으로 간다,

앞에 보이는 저곳이 두지리삼거리다,

왼쪽 도로를 따라가면 황포돗배 두지리 선착장이며 굴다리로 들어가면 장남교로 간다,

이 다리가 장남교다, 오늘은 장남교를 건너서 평화누리길 10코스로 간다,

10코스는 이곳 장남교에서 숭의전지까지다, 2주전 2017년 3월 12일 평화누리길 9코스를

두지리에서 끝을 냈어니 이렇게 이어가야 9코스 전 구간을 걷는게 된다,

임진강 남쪽인 파주시 두지리와

북쪽인 연천군 원당리를 이어주는 장남교 아래는 임진강이 유유히 흐르고 있다,

장남교를 건너가면서 보이는 두지나루,

황포돗배가 뜨는 나루지만 지금은 인적이 끊꼈다,

우리가 지금 건너가고 있는 장남교가 없든시절에 두지나루는 유일하게 남북을

이어주는 배가 다니든 곳이다, 지금은 이름만 두지나루일뿐 나룻배도 황포돗배도 모두 다 다니지 않는다,

장남교 중간 지점이 파주시와 연천군의 경계다, 이제 우리는 파주에서 연천으로 넘어간다,

장남교를 건너 첫번째 좁은 마을길 사거리를 지나 장남교차로 방향으로 가다보면 왼쪽에 평화누리길 10코스

고량포길이 시작되는 아치문과 스템프 함이 있다, 이곳이 평화누리길 10코스 고량포길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3월 12일날 두지나루에서 돌아간 후 2주만에 9코스 종점을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