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흐르듯이 순리대로
고려왕실의 제사를 지내든 숭의전 崇義殿 (2017년 3월 26일) 본문
숭의전 崇義殿 은 경기도 연천군 미산면에 있다.
숭의전 입구 홍살문이다, 문 앞에는 하마비가 세워저 있다,
누구든 숭의전으로 들어 가려면 이곳에서 말을 내려 걸어가도록 했다, 그만큼 신성한 곳이라는 뜻이 숨어있다,
왕건이 물을 마신 곳이라 하여 어수정(御水井)이라 부르는 샘터도 있다,
왕건이 궁예의 신하로 있을때 개성(송악)과 태봉(철원)을 오가면서 중간지점인 이곳에서 쉬여갈때 물을 마셧다고
전해지며 전해오는 설에 따르면 이곳 숭의전 자리에 왕건의 옜집 또는 왕건이 세운 앙암사(仰巖寺)라는 절이 있었다고 한다,
숭의전 자리는 이미 그때부터 정해진 자리가 아니였을까?
어수정 御水井에 있는 표지석에 새겨진 안내문
동두천 중앙역 앞 어수동 사거리버스 정류장에서 10시 30분 52-2번 버스로 도착한 숭의전은
52-2번 버스의 종점이기도 하다, 동두천 중앙역에서 이곳으로 들어오는 버스는 6시 10분과 50분 그리고 10시 30분 1시 20분에
있음에 따라 대중교통 사정이 그리 좋은 건 아니라서, 11시경 에서야 이곳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리는게
말에서 내리는 것이니 하마비 下馬碑 법칙대로 아주 말을 잘 듯는 모범생이다,
숭의전으로 들어가는 길에서 내려다 보이는 주차장, 차를 가지고오면 저곳에 주차하면된다,
주차비도 없고 없고 숭의전 입장료도 없다, 그러나 지나가는 길이 아니면 이곳까지 일부러 찾아오기는 먼곳이다,
1397년(태조 6)에 태조의 명으로 묘(廟)를 세우고, 1399년(정종 1)에는 고려 태조와
혜종, 정종, 광종, 경종, 선종, 목종, 현종의 7왕을 제사지내고, 1423년(세종 5)과 1452년(문종 2)에 중건했다.
문종은 이곳을 숭의전 이라 이름짓고, 이와 함께 고려조의 충신 정몽주(鄭夢周) 외 열다섯 사람을
제사지내도록 하였으며, 고려 왕족의 후손들로 하여금 이곳을 관리하게 했다.
숭의전으로 들어가면서 보이는 임진강 하류,
파주와 연천의 경계인 장남교에서 평화누리길을 따라 이곳으로 들어오는 길이기도 하다,
이곳이 숭의전이다,
숭의전 안내
숭의전 배치도,
조선시대에는 역대 왕조의 시조를 모신 사당을 지어 제사를 지냈다.
평양의 숭령전(崇靈殿)은 단군과 고구려 시조 동명왕을 모셨고, 평양의 숭인전(崇仁殿)은 기자(箕子)를 모셨다.
경주의 숭덕전(崇德殿)은 신라의 시조를 모셨고, 충청남도 직산의 숭렬전(崇烈殿)은 백제의 온조왕을 모셨으며, 숭의전(崇義殿)에는
고려 태조 및 혜종, 정종, 광종, 경종, 목종, 현종을 제사 지냈다. 5곳의 왕조 시조 사당중
지금은 없어젓겠지만, 평양에도 숭령전(崇靈殿)과, 숭인전(崇仁殿)이 있었다,
숭의전 마당에 있는 안내 설명들도 읽어본다,
중종은 1512년(중종 7) 여름에 작은 소를 잡아 제사지내게 했고, 선조 때는 고려조 왕씨(王氏) 후예로
참봉을 제수하여 전각(殿閣)의 수호와 제사를 지내게 하였다.
영조는 1731년(영조 7) 승지를 이곳에 보내 제사지냈으며, 1789년(정조 13)에는 이 건물을 고쳐 지었다.
처음에는 사(使, 종3품), 수(守, 종4품), 영(令 종5품), 감(監 종6품), 여릉참봉(麗陵參奉 종9품)의 관리를 1인씩 두었으나
뒤에 와서 사使와 수守,는 없앴다. 숭의전은 없어진 나라 고려의 왕들과 충신들의 제사를 지내든 곳이다,
그러니 규모가 그리 크지는 않다,
일제강점기에도 조선총독부가 이를 계승하였으나 6,25로 전각이 소실되었다.
1973년 왕씨후손이 정전을 복구하였고, 국비 및 지방보조로 1975년 2월에는 배신청 13평,
1976년 1월에는 이안청 8.7평, 이듬해 2월에 삼문(三門)을 신축했다,
숭의전에 있는 느티나무다, 고려 왕실을 지키는 나무라 소개 되여 있다,
1452년(문종 2)에 고려 왕씨 후손이 심었다고 전해지는 숭의전 느티나무로, 1982년에 보호수로 지정했고
지정당시 수령은 550년 이였어니 단순 산술적으로는 올해로 565년이다,
550년의 느티나무이니 전설이 없을수 없다,
이 나무가 철따라 웅웅소리를 내며 울면 비나 눈이 많이 오고 이 나무에 까치가 모여들면
마을에 경사가 나며, 까마귀가 모여들면 틀림없이 초상이 난다고 적혀 있다,
숭의전 삼문(三門)으로 들어간다,
三門 삼문 가운데 문은 신문 神門 이고 양쪽의 문은 인문人門 이라 한다,
신문 神門은 항상 닫아두는게 상례이고 인문은 열어 두어 일반 참배객들의 내왕을 허용한다,
신문 神門 은 춘추제향이나 삭망(朔望)때 열어서 헌관(獻官)만 출입하고 일반 제관은 동문 東門으로 들어가서
서문 西門으로 나오도록 했다, 신문 神門 을 셋으로 나누어 만든 것은
神 신의 출입과 사람 人의 출입을 구분하기 위함이다,
임진강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 위에 정전(正殿) 후신청(後臣廳) 전사청(典祀廳) 남문(南門)
협문(夾門) 곳간(庫間) 수복사(守僕舍) 등이 남쪽을 바라보며 배치되었다. 그러나 6·25전쟁 때 모두 불에 타 없어진 것을,
최근에 정전과 함께 위패를 모신 이안청(移安廳), 공신의 위패를 모신 배신청(陪臣廳),
삼문 三門 만을 원래의 위치에 복원했다.
숭의전 정전이다, 조선시대 고려 태조 이하 7왕
(王 혜종, 정종, 광종, 경종, 성종, 목종, 현종)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경기도 연천군 미산면 아미리에 있는데
이것은 새 왕조를 연 다음, 전 왕조 왕의 위패와 왕릉을 보존하는 것이 전통적인 예의였기 때문에 세워젓다,
처음 1397년(태조 6)에 고려 태조 왕건의 묘를 세웠으며,
1399년(정종 1)에 태조 포함 8왕을 제사지내고, 1452년(문종 2)에 숭의전이라 하고,
고려 왕족의 후손들로 하여금 이곳을 관리했다라고 전해진다
이곳은 전사청이다,
전사청은 제례 때 사용할 제수를 준비하는 곳이다,
이곳은 영암재다
영암재는 향, 초, 등을 보관하고 제관들이 제례준비를 하는 곳이다,
숭의전을 나가면서 담장 밖에서본 세개의 건물 끝에 있는 건물이 숭의전이고
왼쪽은 고려 16공신의 위패를 모신 배신청 이고 오른쪽은 숭의전의 위패를 잠시 모셔 두는 이안청 이다,
이렇게 숭의전은 5개의 전각으로 구성되여 있다,
고려 태조를 비롯하여 현종, 문종, 원종의 위패와
고려시대 국가에 큰 공헌을 한 16공신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사당인
숭의전은 연천군 미산면 아미리 7번지 임진강변 언덕에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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