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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파랑길 7코스 태화강전망대-염포삼거리(2016년 6월 10일) 본문

해파랑길(동해안 일주)/동해안국토종주결산

해파랑길 7코스 태화강전망대-염포삼거리(2016년 6월 10일)

물흐르듯이순리대로 2016. 6. 21. 21:52

태화강 전망대로 들어간다, 1963년 만들어졌으나

1995년 이후 가동하지 않았던 태화취수장 및 취수탑을 울산시와

한국수자원공사에서 현대적 감각에 맞게 태화강 전망대로 리모델링 했다.

2009년 2월 24일 개장하여 태화강의 수려한 경관과 자연생태 전망,

태화강의 철새관찰 그리고 시민휴식 공간으로 재 탄생했다,

하천은 인간의 삶과 뗄수없는 깊은 공생의 관계로써 도심내에

살아 움직이는 동선을 만들어 내고 땅과 바다를 연결시켜주는 실핏줄의 역할을

담당한다. 그러나 1960년대 이후 공업화, 산업화 등 급격한 경제발전과 더불어 울산시에

공업단지가 밀집되면서 인구의 증가, 도시의 확장 등으로 도심을 관통하는 태화강 및

동천이 각종하수의 무분별한 유입으로 수질악화는 물론 도 시민의 휴식

위락장소로서의 하천 고유기능이 저하되었다.

그동안 태화강을 살리기 위해 하천정비와 수질개선 대책 등

많은 노력이 있었으나, 하도 내 토사 퇴적으로 홍수단면적 축소와 오염물질의

퇴적 등과 각 지천의 수질관리대책 미시행 및 하천 유지유량 부족

등으로 수질이 악화되었다.

이에따라 무질서한 하도를 정비하여 치수대책에

만전을 기함과 동시에 수질을 개선하고 하상 퇴적토의 준설 및

둔치를 친환경적으로 정비하여 부족한 휴식공간을 확보하므로 재해예방은

물론 도시민에게 친숙하고 쾌적한 생활공간을 제공하는데 목적이 있다.

- 이상은 태화강 홈피 인용 -

태화강 전망대에서 보이는

태화강 하류,

태화강 주차장에서 태화강변으로 내려간다,

남산나루로 가는 길,

전망대 아래 태화강 남산나루다, 남산호라는 작은 배가

정박해 있다, 나룻배는 원래 정해진 운행시간이 없다, 손님이 있어면

건너가고 건너온다, 나룻배 운임은 쌀과, 잡곡, 등으로 지불했는데 지금 남산나루는

현금 1,000원을 받는다, 그러나 사공이 파업중?인지 나그네가 기다려도 사공을

만날수가 없어니 오늘중으로 나룻배를 타고 강을 건너기는 틀린것 같다,

오늘이 아니면 언제나 타 볼까?

사공이 없어니 나룻배는 타 보지도 못하고 하류로 내려간다,

전망대에서 보든 전경과는 또 다른 모습이다,

지금 가는 길은 십리대숲, 십리대숲산책로를 건너다

보면서 가는 남산로 아래 태화강변 길이다, 앞에 보이는 빌딩 3개동은

태화로타리와 이휴정입구 교차로에 있는 태화강 엑슬루타워 다,

그리고 십리대밭교가 보인다, 십리대밭교는

고래와 백로의 형상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비대칭적 구조로 울산의

역동적인 미래를 함축적으로 표현하는 형상이라고 한다,

태화강 중구 와, 남구 지역의 둔치를 하나로

연결하여 생태공원 등 둔치를 이용하는 시민들의 접근성 향상 및

새로운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기 위해 건설했다,

십리대밭교 사업개요다,

위 치 태화동 십리대밭~신정동둔치, 사업기간 2008. 2~2009. 2

공사개요 : 아치형 강교 L=120m, B=5~8m, 경관조명 및 조경공사 1식

사업추진 울산市, 경남은행 공동, 사 업 비 6,220백만원(경남은행5,120, 市1,100백만원) 

2007. 2. 8 울산市와 경남은행간 인도교 건설 협약을

체결하여 경남은행은 2007, 5~10 인도교 디자인과 명칭선정 등

실시설계를 완료하고, 2007. 11. 15 하천점용 허가 및 공사 실시계획이

부산지방국토관리청에서 인가되여 2008. 2. 20 착공해,

2009. 2. 15 준공된 인도교다,

십리대밭교를 건너가면서 본 태화강 전망대 방향이다,

십이대밭교에서 태화강전망대는 보이지 않지만 남산근린공원이 있는

은월봉 고래전망대와 우측 십리대밭산책로 와 야외공연장일대와

태화강 지방정원 일대가 보인다,

그리고 지금 건너서 가고있는 십리대밭교를 건너가서

가는 길도 보인다, 태화강은 울주군 두서면 백운산 탑골샘에서 발원하여

산업수도의 심장부인 울산 중구와 남구를 지나 울산만으로 흘러드는 47.54㎞의

강으로 선사시대이후 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쉬는 울산의 삶의 터전이다,

 또한 태화강은 울산이 특정공업지구로 지정되어

산업수도로 개발되기 이전만 하더라도 버들치와 각시붕어를 비롯하여

1급수에서만 서식한다는 은어, 연어가 집단서식하는 깨끗하고 아름다운 강이었다.

그러나 도시화와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깨끗하고

아름다운 강은 생활오수와 각종폐수의 유입으로 건강성은 상실되고

생태계는 파괴되었으며 199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악취로 인하여 산책하기

조차 불가능할 정도로 죽음의 강으로 전락한다.

2000. 6. 23일 기억하기 조차 싫었던 물고기 떼죽음

사건이 일어나고 해마다 계속되는 물고기 폐사 사고는 더이상 태화강이

생명체가 살수없는 죽음의 강으로 전락했다는 신호였으며 그동안 환경문제에 다소

등한시해 왔던 울산시도 울산 태화강을 개선하지 않고서는 공해도시의 오명을

벗지 못할것이라는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태화강 살리기 운동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해 오늘에 이른다, - 태화강 홈피 -

용금소의 유래도 보고

태화강물고기가 떼 죽엄을 당했다는 사실은

이제 전설속으로 묻혔다, 용금소 언덕위에 있는 태화루가 예사롭지가 않다,

고층빌딩과 태화루, 전혀 어울릴것 같지않은 그림이 하늘과 강

그리고 빌딩과 누각이 묘한 조화를 이룬다,

울산태화강 용금소 위 언덕에 아름다운 누각이 보인다,

보이는 누각은 진주의 촉석루, 밀양의 영남루와 함께 영남을 대표하는

누각으로 울산의 전통성과 정체성을 고스란히 담은 대표적 유적으로 태화루다,

643년(신라 선덕여왕 12년), 당나라에서 불법을 구하고

돌아온 자장대사가 울산에 도착하여 태화사를 세울때 함께 건립했다.

태화강변 황룡연 절벽 위에 위치했으며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역사와

미래가 있는 태화강 만들기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복원되어

현재의 모습으로 재탄생했다.

태화강대공원, 십리대숲과 산책로 로 이어지며

태화강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멋진 조망으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太和樓(태화루)는 고려 성종이 울산에 행차했을때 이곳에서

잔치를 열었을 정도로 유명한 누각이였다, 주변풍광이 아름다워 고려시대부터

울주 팔경 중 하나 였어며 정포, 양희지, 김종직, 김시습, 김안국, 등 유명한 관리와 학자들이

태화루에 대한 詩를 남겻다, 울산을 대표하든 태화루는 주로 公務(공무)를 처리하거나

경치를 감상하는 장소등으로 활용되엿어니, 임진왜란 전후에 없어지고 말았다.

그로부터 400년이 지난 오늘에 와서야 태화루는

울산 시민의 염원으로 새로 건립되였다, 지역 기업인 S-OIL(주)가

건립비를 지원해서 2014년에 공사를 마첫다, 태화루는 고려시대 건축양식을

참조하여 정면 7칸, 측면 4칸의 주심포 팔작지붕으로 지었다, -

태화루 안내판 문안 인용 -

태화루에서 지나온 태화강 전망대 방향 상류,

태화강과 십리대밭교, 그리고 십리대숲 과 태화강 지방정원

일대의 태화강 유역이 영화속 장면처름 흐른다,

아무리 아름다운 장소인 태화루가 있는 곳이라도

길을가는 길손은 마냥 머물러 있을수 만은 없다, 태화루 끝에서 태화강으로

내려가는 데크계단으로 태화교아래 태화강변으로 내려간다,

태화교 아래다, 다리 아래서 더위를 식히고 있는 분께

부탁을 해서 며칠만에 처음으로 내가 지금 이길을 가고 있다는 인증 사진을 찍었다,

요즘에는 이런 사진을 인생샷이라 부르든데 뭐 여하튼 2016년 6월 16일

현재 시간 나는 태화강 태화교 아래를 지나가고 있었다,

태화강 강변길, 이제 나는 강변길을 따라 태화강하류로 내려간다,

이 길은 인도와 자전거 도로가 함께 하는 길이다, 걷는 사람은 안보이지만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사람들은 많이 보인다,

시원한 강바람을 맞어면서 하류로 걸어내려 간다,

왼쪽에는 자전거 전용도로 오른쪽은 인도다, 그런대도 자전거는 인도로 간다,

물론 전부는 아니지만 조심해야 할 것은 지나가는 사람과 부딪히면

사고가 날수도 있는데,

태화강전망대에서 보이든 조망과 태화루에서 보이든 조망 뿐만이 아니라

태화교 하루에서 보이는 조망도 그애 몾지않다,

조금전에 보앗든 빌딩을 가깝게 다가 가 보니

롯데시네마 울산성남접이 있는 곳 롯데캐슬 스카이빌딩인것 같았다,

여하튼 이곳에서는 강변과 중구 성남동 젊음의 거리로 연결이 된다, 내가 지금

가고 있는 길은 태화강변 대형 공영주차장이다,

중구 옥교동 울산교 사거리에서 남구 신정동 번영교남교차로 로

건너가는 다리다, 사실 이길을 처음걷기 때문에 이 다리의 이름도 모른다, 그러니

차가 다니는 다리인지? 도 모르겠다, 이 다리 아래 새로 만든 큰 다리인

번영교가 보엿기 때문이다,

번영교도 지나서 계속해서 하류로 내려간다,

이길을 따라 울산만까지 내려가는 건 아니겠지만?

이번에는 학성교가 보인다,

이곳에는 가끔이지만 이렇게 이정표도 있다,

이제 학성교로 간다,

태화강 학성교는 학성교(鶴城橋, Hakseonggyo Bridge)는

울산남구 삼산동 과 중구 반구동을 잇는 교량이다. 왕복 6차선, 길이 348m,

폭은 30m로 1994년 11월에 개통한 교량이다,

가는길 내황교기 보인다,

내황교는 태화강으로 흘러드는 동천위로 지나가는 다리다,

내황교를 건너간다,

태화강과 동천이 합류되는 지점(좌측)에서 올라가서

내황교를 건너 다시 태화강변으로 내려가야 하는데 (나중에 지도를 확인한 것임)

이정표나 시그널이 없다보니

그냥 직진을 했다,

그리고 이렇게 옆길로 들어가서

계속해서 따라 간다,

이번에는 자전거 전용도로 표식을 따라 간다,

조금헷갈렸든게 내황교를 건너면서 한번은 지도 확인을 했어야 햇는데

내황교 아래서 놀고있는 아저씨들에게 물어 보았는데 이 분들도 잘 몰랐든 모양인지?,

이리로 가면 된다고 해서 들은대로 따라 온게 잫못이엿다,

그래서 결국 현대자동차 옆 도로까지 오게 되였다,

현대자동차 옆 길을 따라

이제는 현대자동차 앞 길로 들어간다,

해파랑길은 현대자동차 뒤 태화강변길인데 그것을 놓쳤다,

내황교를 건너 왼쪽, 내황교 아래 강변길로 계속해서

내려 가다가 현대제철 울산공장과 KCC울산공장 사이길로 가면

염포 삼거리인데 길을 잘못 들어서는 바람에 오히려 돌고

돌아서 한참을 더 먼길로 간다,

울산 현대자동차 공장 앞이니 당연히 있어야할

현대빌딩도 보인다,

울산마이스터고등학교도 있다, 울산 북구 효문동 오토밸리로와

염포로가 합처지는 현대자동차 출고 교차로에 있는 고등학교다, 마이스터

고등학교는 소질과 적성에 따라 원하는 분야의 전문가로 성장하기를 희망하는 학생을

대상으로 지역 전략산업이나 산업계와 연계된 유망 분야에 관하여 지식과 실무

능력을 겸비한 미래형 직업분야 기술영재를 육성하기위한 직업분야 선도학교

울산마이스터 고등학교는 기계분야 9개 학교중 한 곳이다,

마이스터고등학교 앞 교차로에는 현대자동차 출고센타가 있다,

그리고 이곳에서 부터는 현대차 담을따라 길게 이어진다,

언제 이 담길의 끝이 보일지도 알수없는

길을 따라가고 또 간다,

그러다가 보이는 삼거리 교통표지판이 보인다,

아무튼 염포삼거리로 도착은 했지만 가까운 길을 두고 먼길을

돌아서 이곳으로 왔다,

현대차 담장 넘어에는

신차들이 출하를 기다리고 있는게 보이기도 한다,

앞에 보이는 삼거리가 염포삼거리다, 이곳은 삼포 개항지다,

동래부산포, 웅천내이포(지금의 경상남도 진해), 울산염포 등 세곳의 포구를

지정해 일본인이 들어와 장사를 할 수 있도록 했다. 이는 이종무의 쓰시마 정벌이후

살길이 막힌 쓰시마 사람들의 간청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다. 이후 쓰시마

사람들에게 조선의 관직을 주어 조선과 일본의 무역을 중개하고

삼포를 관장하도록 하기도 했다.

삼포에는 각각 왜관을 두어 무역을 관장하고 일본인을 접대하는

장소로 썼으나, 일본인이 눌러앉아 살수는 없도록 했다. 따라서 일본인은

무역과 고기잡이가 끝나면 바로 귀국해야 했다. 그러나 이 규정을 어기는 일본인이

갈수록 늘어나 세종 말기에는 부산포에 약 350명, 내이포에 약 1500명,

염포에 약 120명이 살기도 했다.

 

염포삼거리 가운데 둥근 화단에는 3포개항지라는 비석이 있다,

이곳이 해파랑길 7코스의 종점이자 8코스의 시작 지점은 분명하지만

해파랑길 코스구분 안내판은 설치되여 있지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