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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쩍 떠났다가 돌아올수 있는 북한산 (2014년 11월 29일) 본문

국내 山行日記/서울·북한·도봉

훌쩍 떠났다가 돌아올수 있는 북한산 (2014년 11월 29일)

물흐르듯이순리대로 2014. 12. 13. 23:39

구기동에서 승가사나 대남문으로 올라가는 북한산 들머리길,..

  곱게 깔린 낙엽^^ 밟고 지나 가기가 아까울 정도로 예쁜길이 반겨 준다,

  보는것 만으로도 왠지 기분이 좋아지는 길을 따라 산을 오른다,

버들치 서식지라는 구기동 계곡,

  이렇게 계곡물이 말라 붙어서야? 가을 가뭄이 여기도 예외가 아닌듯 하다,

 

날씨가 꾸물거리고 어제 비가온 탓인지 많은 사람들로 메워지든 등산로가 한적하다,

   북한산을 얼마만에 이렇게 여유롭게 걸어 보는지 기억마저 가물 거리는데 어제 내린비로 길마저 미끄럽다, 

   이런길은 한발 잘못 삐끗했다가는 타박상 정도는 기본일테니 안산 즐산해야 하지 않을까?,

 

여기는 사모바위 아래에 있는 승가사 입구다,

산에가면 어디서나 절을 만날수도 있고 절 구경도 한다, 그러나 나는 이 승가사라는

절앞을 신발 바닥이 닳도록 많이 다닌 사람이지만 이 절은 들리지 않는다,

   이 승가사는 절집 전체를 온통 화강암으로 치장을 했다, 

 

그것도 모자라 그렇게 치장을 하느라 돈 받아낸 신자들 이름을 새긴 비석까지

무슨 거대한 유물처름 만들어 놓았다,  그러자면 얼마나 많은 화강암을 부시고 깍아야 만들어 질까? 

우리 자연유산중 하나인 화강암을 이렇게 흔전만전 절 치장에 쓰라고 있는게 아니다,?

이건 불사가 아니라 돌이킬수 없는 자연 파괴다,


세상에 이렇게나 무식한 똘 중 넘들이 있나?

   그러나 僧伽寺 는 신라경덕왕 15년 승가대사가 삼각산 남쪽의 성지를 찾아

석굴을 개작하고 창건한 절로 인근에 있는 진관사나 삼천사와 더불어 오래된 사찰이다,

승가사에는 북한산 구기동 마애석가여래좌상, 이라 불리는 화강암벽에 석가여래의

앉은 모습을 새겨 넣은 10세기경으로 추정되는 고려초기 불상도있는 절이다,

 

출발한지 약 1시간 반정도 걸려 도착한 사모바위 옆 능선길,

   산을 오르다 보면 언제나 능선이 보일때가 반갑다, 산은 높으면 높은대로

낮어면 낮은대로 다 힘들기 때문이 아닐까?

 

 

이곳은 사모 바위다, 지금은 마치 공원처름 잘 꾸며놓은 곳이라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기도 하지만 불과 40여년 전만 하드라도 이곳은 첩첩산중이였다,

얼마나 깊은산중이였어면 김신조 일당이 청와대 침투 하루 전날 이곳에서 야영을 했을까?

사모바위 바로 앞 승가봉에는 한줄로 사람들이 줄지여 오르 내리고 있다,

  저 곳을 가는데는 이곳을 지나가든가 대남문 방향에서 와야 하는데 우리보다 부지런한 사람들 참 많다,

승가봉 뒤에 보이는 제일 높은곳은 문수봉이고 그 옆 V자 안부에는 청수동암문이 있다,

   그 옆 좌측의 봉우리는 남장대가 있었든 곳으로 추정되는 장군봉, 과 나월봉 등이 보인다,

사모바위 옆 응봉능선으로 올라서면 백운대가 바로 앞에 다가 온다,

  운해의 바다위에 우뚝선 백운대,.. 북한산의 주봉답게 크고 작은 수많은 봉들을 거느리고 당당하게 자리하고 있다,

의상능선 북한산 성곽을 넘어  우람하게 버티고 있는 노적봉과 백운대~~

 

의상능선의 북한산성 성곽도 히미하게 보이지만 성곽 넘어로 보이는

    노적봉과 만경대 그리고 백운대의 모습은 마치 한폭의 동양화를 보는것 같다,

    이렇듯 북한산은 사시사철 변화 무쌍한 북한산만의 아름다움을 느낄수 있는 곳이다,

 

사모바위에서 400m 지점에 보이는  비봉과 치마바위,..

   비봉은 555년 신라 진흥왕이 서울은 신라의 땅이라는 비석을 세운곳이니 이 주변에서는 가장 높은 곳이다,

   그러나 1500년전 길도없는 험한산골 저 높은 곳에다가 비석을 세웠든 선조님들의 지혜가 경이롭다,

비봉과 치마바위를 넘어 구파발 일대도 보인다,..

 

비봉을 지나 향로봉 아래로 내려선다, 오늘 따라 내림길이 많이 미끄럽다,

 

 

길 옆에는 진달래가 피고 있다,

    아무리 철 없는 넘들이지만 겨울 초입에 피면 어쩔려고? 하긴 새봄에 또 한번 피면 될일이나,

    요즘에는 철 없는 넘들이 많다 보니 이것도 환경이 서서히 죽어 가는거나 아닐지?

 

이제 쪽두리봉이 바짝 붙어 오는걸 보니 탕춘대성이다,

탕춘대성, 서울성곽이라 불리는 도심의 성곽과 북한산성의 성곽은 따로 떨어저 있다,

   북쪽의 적이 평양을 지나 서울로 적이 처들어 오면 이 구간에서 뚫리게 된다

그래서 서울 성곽과 북한산성 성곽을 이어주는 성이 필요했고, 숙종 44년(1718)에 짓기 시작해

이듬해 인왕산 서울성곽에서 비봉까지 약 4km의 거리를 완성하면서 성의 이름을 탕춘대성이라 했다,

명칭은 세검정 부근에 있던 탕춘대(蕩春臺)에서 따왔다고 한다.

 

 

탕춘대성 구간중 유일하게 외부와 연결되는 암문이다,

   성문이라고는 하지만 암문으로 화려한 누각과 치장이 없는 그저 소박한 숨겨진 통로문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여행은 왠지 멀리 떠나야 할것만 같다, 그러기에는 시간과 경비가 부담스럽다,

   하지만 시간과 경비를 걱정하지 않아도 좋을 한적함을 즐길수 있는 곳,

조상의 숨결을 느끼며 역사탐방을 할수있는 곳, 아름다운 산과 자연을 볼수있는 곳도 많은 도시가 서울이다, 

 

먼길 가느라 새벽부터 동동걸음 치지않고 느긋하게 한가한 시간에 배낭을 꾸려도 좋겠다,

가까운 곳에있는 사람들과 훌쩍 떠났다가 돌아오는 길에 차 한잔의 멋을 부려 볼수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가 느끼지만 못할뿐 바로 그런 곳이 널린게 서울이다,

 

오늘 걸어온 길을 돌아 본다,

  얼마 걷지도 않았는데, 꽤나 멀어 보인다,

탕춘대성 상명대 옆길은 내림길이 조금 가파르기는 하지만

   나무계단과 신발에 흙이 묻지않게 카페트?도 깔아놓은 편안한 길을 내려 설수 있다,

향로봉에서 이어진 탕춘대성길은 일단 상명대 앞 홍제천에 있는 홍지문(숙종 45년 1719년)에서 차단된다,

  인왕산으로 올라가는 성길은 도로가 생기는 바람에 끈어져 있다,

홍지문옆에는 수문인 오간대수문(水門)은  홍예 5칸을 틀어 수구(水口)를 만들었다, 

 이 문은 한때 한북문(漢北門)으로도 불렸다,

이문은 1921년 홍수로  유실된것을 1977년 탕춘대성과 함께 다시 지어저 오늘에 이른다, 

우리는 홍지문까지 가지않고 여기 상명대에서 오늘의 여정을 끝낸다,

청와대 앞 통인시장에서 느긋하게 잔을 기울인다,

하산후에 딱 한잔은 보약일수도 있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