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흐르듯이 순리대로
북한산성 12성문 종주 1,- 산성입구에서 국령사 까지(2014년 8월 31일) 본문
북한산성은 외백제가 수도를 하남 위례성으로 정했을때 도성을 지키던 북방의 성이다.
백제 개로왕 5년(132)에 세워진 곳으로, 11세기 초 거란의 침입이 있을때 현종이 고려태조의 관을 이곳으로 옮겨 오기도했다.
고려 고종 19년(1232)에 몽고군과의 격전이 있었고, 우왕 13년(1387)에 성을 다시 고쳐지었다.
조선시대에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도성 외곽을 고쳐짓자는 의견이 일어나 숙종 37년(1711년) 왕명으로
토성을 석성으로 고쳐 지었다. 성의 규모는 대서문, 동서문, 북문 등 13개의 성문과 불을 피우던 곳으로 동장대, 남장대, 북장대가 있었다.
이 지역은 고구려, 백제, 신라가 서로 차지하기 위해 쟁탈전을 벌였던 곳이며, 조선시대에는 도성을 지키는 중요한 곳이었다.
12성문을 종주하는 총 길이는 14,17km 이고 소요시간은 7시간 반에서 ~ 8시간 정도 걸리는 것으로 안내되여 있다,
다른 안내 자료와는 조금 다르기는 하지만 거리측정이나 도보에 따른 방식의 차이도 있는게 아닐까?
2014년 8월의 마지막날 북한산성 12성문을 종주하기로 했다,
아침 7시 20분부터 북한산동에서 대서문으로 간다,
북한산성 12성문 답사는 시구문부터 시작해서 백운봉 암문으로 진행하면 대서문이 마지막이 되고
대서문에서 시작해서 시구문을 마지막으로 돌아 볼수도 있다,
오늘 코스의 첫번째 문인 대서문이다,
입구에서 여기까지는 약 800m이고 평지길 포장 도로여서 시간상으로도 얼마 걸리지 않는다,
북한산성 14개의 성문중 유일하게 우마가 다닐수 있게 제일 낮은 곳에 위치하고 있는 북한산성의 정문에 해당하는 문이다,
오늘 찾아볼 산성 12성문은 산성안에 있는 중성문과 지금은 없어지고 흔적만 있는 수문은 제외 하고다,
이곳은 음식점이 즐비하든 상가들로 북적이든 북한동 마을이다 지금은 북한동 입구로 모두 옮겨가고
이곳은 어느덧 공원으로 변했다, 새로 지은 북한동 역사관이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을씨년스레 앉아 있다.
대서문을 지나 첫번째 다리에서 왼쪽으로는 백운대로 올라가고
왼쪽으로는 노적사나 행궁터, 대남문등으로 올라가는 길로서 산성내 삼거리인 셈이다,
우리는 왼쪽길을 따라간다, 그리고 얼마지나지 않아 두번째 다리를 건너 아직도 철거되지않고 있는 가옥옆길,
좁은 돌계단으로 국녕사로 간다, 일반적으로 사찰로 가는 초입은 위세 당당한 엄청난 규모의 일주문이 버티고 있는
것만 보아온 사람에게는 무척이나 생소한 입구로 잘 찾기도 어렵다,
여태까지는 포장도로를 따라 왔다면 이제 부터는 등산길이다,
큰길에서 국녕사는 그리 멀지는 않지만 언제나 처음 만나게 되는 등로는 힘에 부치는게 아니든가,
등어리에서 촉촉히 땀이 배일정도로 올라가다보면 엄청나게 큰 불상이 나타난다,
여기가 국녕사다,
국녕사는 북한산성 축성시에 지어졌는데 86간에 승려 청휘, 철선이 창건하였다 한다.(八十六間 淸徽 徹禪 所刱).
이 사찰은 가사당 암문을 지키기 위한 거점 사찰이었다. 영조 때 학자 여암 신경준 선생의 가람고(伽藍攷)에 소개되어
있으나 한국사찰전서(1979년)에는 폐사된 것으로 되여있다.
지금의 국녕사는 옛 국녕사터에 중창한 것이다.
자리만 그 곳일 뿐 옛 국녕사의 법등(法燈)은 전해지지 못하였다. 중창한 뒤 1991년 불탔다 하며
1998년 능인선원에서 본격적인 중창을 거쳐 지금의 대가람이 되었다. 24m의 국녕대불과 만불은 가히 장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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