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흐르듯이 순리대로
1400년 역사속을 찾아 간 부소산(2019년 10월 6일) 본문
부여는 서울에서 2시간이면 도착하는 그리 멀지 않은 거리다, 그러나
평소에는 자주 찾아가지 못하는 곳 중 한곳이기도 하다, 위에 ↑ 보이는 건물은 부여동헌 유적이다,
그 이유는 서해안 고소도로를 타고 지나가는 길목에 있기 때문에
딱히 마음먹고 들리지 않어면 그냥 지나치기 때문이다,
부여는 부소산 일대 뿐만이 아니라 부여 전체가 백제문화유적지다,
보이는곳 모두가 2019년 기준으로 1359년 전에 나당연합군에 의해 멸망한 백제의
문화가 아직도 살아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아래 사진은 부여객사건물이며, 뒤에보이는 하얀기둥이
있는 건물은 부여군 문화재사업소이며 그 옆으로 사비도성 가상체험관이 있다,
관북리유적 주차장에서
부소산성으로 들어가는 길, 보이는 곳 모두가 관북리 유적지다,
유적은 큰 잔디밭 곳곳에 보인다,
부여객사 건물 옆과 뒤로는
부여현동헌, 부여현 자료관 부여군 문화재사업소, 사비도성 가상체험관 등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부여 자료관이나 부여동헌으로 들어가지 않고
부여현관아 일대를 나가서 부소산문으로 간다,
관북리유적을 모두 돌아보는 것 만으로도
하루 정도는 걸릴것 같은규모니 오늘은 부소산성을 돌아보려 하기 때문이다,
부소산성으로 들어 가기 위해서는 부소산문에서
입장권을 구입해야 하는데 성인은 2,000원이고 65세 이상은 무료다,
관북리유적과 부소산성은 세계유산 백제역사유적지구 로 지정되여 있는곳이다,
세계유산(世界遺産) World Heritage 은 세계유산협약에 따라 유네스코가 1972년부터 인류 전체를 위해
보호해야 할 현저한 보편적 가치가 있다고 인정한 유산이다, 세계유산으로 지정되면 세계유산기금
(World Heritage Fund)으로 부터 기술적, 재정적 원조를 받을 수 있다,
백제역사유적지구(Baekje Historic Areas)는 공주시, 부여군, 익산시에 있는 백제 관련 역사유적지구이다.
2015년 7월 4일 독일 본에서 열린 제39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WHC)에서 세계유산 등재 심사를 최종 통과하여
대한민국의 12번째 세계유산이 되었다. 백제역사유적지구는 총 8개의 유적을 포함한 연속유산으로 공주시에 2곳 (공산성, 송산리고분군
부여군 4곳(관북리유적과 부소산성, 능산리고분군, 정림사지, 부여 나성), 익산시에 2곳(왕궁리유적, 미륵사지)을 포함한다.
부소산문에서 오른쪽으로 그리 멀지않은 곳 언덕에 하동 정씨 정려각이 보인다,
하동정씨 정려각은 조선초 학자이며 명신인 정인지(1396-1478) 선생의 5대 손으로 임진왜란때
사천 현감으로 있어면서 왜적과 싸우다가 순절한 득열(1565-1595)과 그의 아들인 택뢰(1587-1623), 손자 천세와
택뢰부인 동래 정씨 등 네분의 충, 효, 열, 을 기리기위해 조선 숙종때 건립했다,
택뢰의 부인은 남편이 나라에서 광해군의 어머니를 페모하는데
항소하다 세상을 떠나자 머리를 자르고 3년상을 치른후 죽었어며 아들 천세는 11살에
아버지를 여의고 밤낮으로 통곡하며 지내다 열흘이 못되 죽었다고 한다, 원래 부여읍 동남리 마천
뒷편에 세웠어나 1960년 4월 이곳으로 이건했다, 고 안내판에 적혀있다,
부소산성은 사적 제5호.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에 소재한다.
백제의 도성이었으며, 백제 성왕때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둘레 2,200m, 면적 약 102만㎡. 부여 서쪽을 반달 모양으로 휘감아 흐르는
백마강에 접해 있는 부소산 산정을 중심으로 테뫼식 산성을 1차로 축조하고, 다시
그 주위에 포곡식 산성을 축조한 복합식 산성이다.
삼국사기 백제 본기에는
사비성(泗沘城), 소부리성(所夫里城)으로 기록되어 있다.
여기서 잠시 테뫼식 산성과 포곡식 산성에 대해 알아보면,
테뫼식 산성은 산 정상부를 중심으로 성벽을 두른 것으로, 발권식 산성, 시루성,
머리띠식 산성이라고도 하는데 대개 규모가 작은 산성이 이에 속하며, 포곡식 산성은 산기슭에서부터
능선을 따라 정상부까지 계곡을 하나 또는 여러 개 감싸고 축성하여 그 규모가 크다.
하동 정씨 정려각을 지나 가다보면
처음으로 보게 되는 삼충사(三忠祠) 유적지가 있다,
삼충사(扶餘 三忠祠)는 백제시대의 충신이었던 성충, 흥수, 계백을 기리기 위해 지은 사당으로.
1984년 5월 17일 충남 문화재 자료 제115호로 지정되었다.
의열문(義烈門)으로 들어가서
충의문(忠義門)도 들어가면
삼충사(三忠祠)가 있다, 백제의 충신인 성충, 홍수, 계백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1957년에 세운 사당이다. 성충은 백제 의자왕 때 좌평으로 잘못된 정치를 바로잡기 위해 애쓰다가
투옥되어 식음을 전폐하고 죽은 충신이며. 흥수는 나당연합군이 공격해오자 탄현을 지키라고 의자왕에게
간곡하게 당부하였던 것으로 유명하다. 계백은 신라 김유신장군의 5만군이 황산벌로 쳐들어오자
5천 결사대로 싸우다 황산벌에서 장렬히 죽은 장군이다,
삼충사 안에는 왼쪽부터
성충, 흥수, 계백, 세분의 영정이 모셔저 있다,
삼충사 중간문인 충의문과 의열문을 나가서
계속해서 가든 길을 따라간다,
가는 길에는 식생개선사업 안내가 있는데
안내에는 부소산의 부소는 백제어로 소나무를 뜻하는 말이 였어먀
부소산에는 소나무림(순수 소나무와 리기다 소나무)과 활엽수종이 혼재되여 있다고 한다,
그 중 북미지역이 원산지인 리기다 소나무는 부소산 남사면을 중심으로
사비문과 삼충사 인근에 주로 분포하고 있는데
내건성이 강하고 척박한 땅에서 잘 자라
사방 및 연료림 조림 수종으로 70-80년 대에 조림사업으로 식재 된 것이다,
부소산은 백제역사 유적지구 세계유산인 국가사적 5호로
부소 산성이 함께하고 있는 곳으로 역사성과 경관적 의미에 부 적합한 외래
수종인 리기다 소나무를 연차적으로 제거 한다고 한다,
그리고 부소산에 걸맞는 고유 소나무 등을 식재하여,
부소산 일대의 역사 경관성을 증진시키고 세계유산으로서의 진정성을 고취 시키고자
문화재청의 허가를 받아 사업을 진행 하고 있다, 고 안내되여 있다,
그리고 부소산성 축조기법인 테뫼식 산성에 대한 안내도 보인다,
테뫼식 산성 기초 층에는 적갈색 점진토를 2~3cm 두께로 조밀하게 판축한
층 위로 백제시대에 축성했다, 그 높이는 1,9m다,
중간층은 황갈색 사질토와 적갈색 점진터를 3~6cm 두께로 혼합하여 축성했다,
내부는 성토 기법이며 외부는 5단 정도의 석축을 쌓아 마감했다, 이 층위는 통일신라 시대에
축성한 것으로 최대 높이는 3,2m 이며
마지막 상단층은 갈색토층으로 내부에는 와편등이 혼재헤 잇어 조선시대에 보축한 것이다,
성벽의 최대 높이는 3,4m이고 기저부 최대 넓이는 8,6m 다,
부소산성은 군창지 소재 테뫼식 산성과 사비루 소재 테뫼식 산성
그리고 이를 둘러 싸고있는 포곡식 산성으로 이루어진 복합식 산성으로 알려저 있고
백제시대 포곡식 산성은 2,5km이다 라고 안내되여 있다,
이 누각은 영일루(迎日樓)로 부소산(扶蘇山)에 있는 조선시대의 누각이다,
충남 문화재자료 제101호. 조선시대 홍산현(鴻山縣) 관아 입구에 있던 것을 1964년
옛 영일대(迎日臺)가 있던 현재의 위치로 옮겨 복원했다.
전설에 의하면 사비도성(泗沘都城)의 비원이던 부소산 동쪽 산정에는
임금이 매일 올라가서 동편 멀리 계룡산 위로 떠오르는 해를 맞이 하며 국태민안을
기원하던 영일대가 있었고
서쪽 산정에는 임금이 달맞이를 즐기던
송월대(送月臺, 일명 迎月臺)가 있었다고 한다. 영일루에 오르면 동쪽으로
정동리 일대의 광활한 평야와 청산성이 한눈에 굽어보인다,
지도로 보면 우리는 부소산성문으로 들어와
오른쪽으로 영일루까지 왔다,
영일루에서 조금만 더 가면
사진에 보이는 것처름 잔디가 곱게 자란 터가 보인다,
아주 멋스러운 소나무도 한 그루 있는데
이 소나무의 높이는 가늠키 어려울만큼 높게 솟아있다,
이곳은 군창지다, 부소산성 내 동남부에서 가장 높은 위치에 있는
이 군창지(軍倉址)는 1915년 이곳 지하에서 불에 탄 곡식이 발견됨으로써
백제시대 군량(軍糧)을 비축해 두었던 창고터로 알려지게 되었다.
백제 때 군수물자를 비축했던 곳으로 부여 부소산성(扶蘇山城 : 사적 5) 동쪽
정상부에 있다. 이곳은 영월대(迎月臺)라 하여 넓고 평평한 광장인데, 1915년 이곳 지하에서
쌀, 보리, 콩 등의 불에 탄 곡식이 발견됨으로서 백제시대 군량미를 비축해 두었던
창고터라는 것이 알려지게 되었다.
1981년과 1982년 두 차례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발굴조사를 함으로써 건물터의 규모가 상세히 밝혀졌다. 군창지는
충남 문화재자료 109호로 1984년 5월 17일에 지정된 곳이다,
부여에 도착해서 부소산문으로 들어와 오른쪽길을 따라 군창지 까지왔다,
이제 다음은 반월루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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