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흐르듯이 순리대로
김포장릉과 조선왕릉 이야기(2019년 10월 27일) 본문
여기에 인용한 역사이야기는
문화재청 조선왕릉 김포장릉 소개에서 인용한 것임을 밝힌다,
멀리 계양산을 바라보며 수려한 장릉산(구 북성산) 자락속에 자리한
유네스코 세계유산 김포 장릉 章陵, (사적 제202호)은 16대 인조의 부모인 추존 원종과 인헌왕후 구씨의 능으로
돌맹이 하나 풀 한포기에도 옛 조상의 혼과 숨결이 깃들어 있는 소중한 문화 유적으로
봉분, 혼유석, 장명등, 망주석, 정자각, 비각, 수복방, 재실, 홍살문,
연지, 노송 등 조선왕조의 릉제가 잘 보존되어 있는 주변 경관이 매우 아름다운 곳이다,
김포장릉의 들어가면
우측에 장릉역사 문화관이 있다,
장릉은 사적 제202호다.
원종의 묘는 처음에 양주에 있었는데 1627년(인조 5)에 김포로 개장(改葬)하여
흥경원(興慶園)이라 했어며, 1632년 릉으로 봉하여 장릉이라 하였다.
이어 상설제도(象設制度)가 원제(園制)임을 미안하게 여겨 왕릉제(王陵制)로 석물(石物)을 바꾸었다.
왕릉과 왕비릉을 나란히 두어 쌍릉을 이루고 능 앞에 각각 혼유석(魂遊石) 1좌씩을 두었고, 중간에 장명등(長明燈)을 세웠으며,
릉 남쪽에 제2계(階)와 제3계에 문무석(文武石) 한쌍씩을 세웠다.
추봉된 다른 릉의 전례에 따라 난간이 생략되였어며. 장릉을 보호하기 위해
영(令) 1원과 참봉 1원을 두어 관리하게했다.
이곳에 안장되여 있는 원종 (1580년 음력 6월 22일 ~ 1619년 음력 12월 29일)은 선조와
인빈 김씨의 셋째 아들로 1580년(선조 13)에 경복궁 별전에서 태어났다. 1587년(선조 20)에 정원군(定遠君)에
봉해졌고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아버지 선조를 모신 공으로 호성공신에 봉해졌다.
원종은 임진왜란 때 아버지 선조를 모시면서 험난한 일을 겪었으나,
나이가 아직 어렸음에도 의연한 태도로 이에 대처하여 모두가 그를 기특하게 여겼다고 한다.
그 중 다음과 같은 일화가 전한다. 전란의 한가운데에 선조는 의주로 피난을 떠나게 되었다.
이 때 신하들에게 명하여 정원군(원종)을 영변으로 데려가 왜적을 피하도록 하였다. 그 때 정원군이 영변에 이르러
울면서 말하기를, 이곳에 온 것은 내가 살기 위해 온 것이 아니고, 임금님의 명령 때문이었습니다.
지금 왜적의 형세가 날로 성하고 임금의 행차는 날로 멀어지니,
만에 하나 일이 잘못된다면 임금과 신하가 죽음과 삶을 같이 하지 못할 것인데, 이 몸이 간들
어디로 가겠습니까? 죽더라도 눈을 감지 못할 것입니다. 라고 하였다. 선조는 이를 전해듣고 가상히 여겨
정원군을 다시 불러왔으며, 그 뒤로 정원군은 선조 곁을 떠나지 않고 전쟁이
끝날 때까지 옆에서 모셨다고 한다.
광해군 즉위 후 황해도 수안군수 신경희가 셋째 아들 능창군을 왕으로
추대하려 했다는 무고로 인하여 커다란 옥사가 발생했다. 이로 인해 능창군은 강화도 유배지에서
자결했고, 정원군은 그의 화병으로 1619년(광해군 11)에 40세로 세상을 떠나게된다.
1623년(인조1)에 인조반정으로 첫째 아들 능양군이 왕위에 오르자 왕의 사친으로
정원대원군에 추존되었으며, 1632년(인조 10)에 인조의 정통성 문제로 인해 원종으로 추존되었다.
재실이 있는 곳이 보인다,
재실로 들어가는 정문
이 건물은 원종과 인헌왕후 구씨의 제향을 준비하는 재실이다,
재실은 왕릉의 수호와 관리를 위하여 능참봉이 상주하든 곳으로 제례시에는 제관들이 머물면서
제사에 관련된 전반적인 준비를 하든 곳이다,
릉을 관리하는 책임자였든 능참봉의 집무실인 재실이다,
평시에는 능참봉이 근무하며 제례를 준비하는 공간으로 능역을 관리하는 근무장소 다,
릉의 건물들은 단청을 하지 않는다,
왼쪽에는 향과 축문을 보괸하든 안향청,과
제기를 보관하든 제기고, 가 있고,
오늘쪽에는 부속 건물인 행랑, 등으로 구성되여 있다,
행랑에는 대문, 하인방, 마구간, 창고, 집사방 등이 있었다,
재실 측면과
후면, 뒷뜰의 규모가 넓다,
지금으로 말하면
이곳은 당시의 장릉 관리사무소 역활을 하든 곳이다,
재실을 나와서
저수지방향으로 나있는 둘레길을 따라간다,
릉은 예부터 신성시하든 공간이니
이렇게 울창한 숲이 있는 자연환경은 자연스러운 것일게다.
울창한 숲길을 따라
잠시 걷다보면 가는길 우측으로 저수지가 보인다,
저수지다,
저수지를 지나 장릉둘레길을 걷는다,
결국 길은 하나 장릉으로 이어진다,
장릉에 이르면 제일 먼저 보이는 것이 홍살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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