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흐르듯이 순리대로
김포 장릉 역사관(2019년 10월 27일) 본문
장릉을 둘러보고 나서 역사문화관으로 들어간다,
한마디로 역사문화관에서는 장릉을 알아보는게 가장 정확할것 같다,
왕실의 장례를 치르고 왕릉을 조영, 관리하는 일은 조선왕조의 통치 이념이었던
유교의 예법을 충실히 따르며 왕실의 권위를 드러내는 과정이었으므로 매우 중요하게 다뤄졌다.
따라서 능의 입지 선정, 조영된 능의 관리감독, 천장 등 왕릉과 관련된 사항에는
다양한 계층의 수많은 사람들이 이해를 같이 했다.
인조가 반정으로 왕위에 오른 후, 자신의 아버지 정원군을 원종으로 추존하고
태묘(太廟)에 합제(合祭)하려고 하자, 여러 언관들이 이를 강력히 반대하여 이들을 유배를 보내기도 했다,
아래는 조선 왕릉이 있는 위치 다,
조선왕릉은 모두 몇개일까?
연표를 찾아 알아보면 추존 5릉을 포함하여 42릉 이라 알려준다,
조선의 가계도
위 까지 조선왕릉에 대한 일반적인 내용들이며
조선왕릉 이야기 영상
장릉에 대한 상세 안내는 여기서 부터다,
원종과 인헌왕후의 생애
선조로부터 내려오는 인조의 가(家)계도
장릉의 풍수 지리
원종(元宗, 1580년 8월 2일-1620년 2월 2일)은 조선시대 중기의 왕자, 공신,
왕족이자 추존왕으로 대원군에서 왕으로 추존된 인물이다. 조선 건국 이후 최초로 왕세자를 역임하지 않고,
왕으로 추존된 인물이다, 조선 제14대 국왕 선조와 인빈 김씨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임진왜란 당시 선조를 호종한 공로로
1604년 호성공신에 책록되었다. 1591년(선조 24)에는 광국 원종공신 1등에도 특별히 추가된다.
인조반정으로 광해를 몰아내고 왕위를 찬탈한 인조의 아버지다.
생전의 작위는 정원군(定遠君)이고 사후에 대원군으로 추존되었다가,
여러차례의 논란 끝에 다시 왕으로 추존된다. 김장생, 정구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인조는
1630년 그를 왕으로 추존하는 일을 강행했다. 성은 이(李), 휘는 부(琈), 본관은 전주(全州) 정식 시호는
원종공량경덕인헌정목장효대왕(元宗恭良敬德仁憲靖穆章孝大王)이며 명나라로부터 공량(恭良)의
시호를 받았으며, 명나라로부터 시호를 받은 마지막 왕이기도 하다.
정치적 목적에 의해 왕으로 추존 되었다.
호성공신 2등, 광국원종공신 1등, 위성원종공신 1등, 정운원종공신1등에 책록되어,
공신을 불천지위로 봉하고 공신의 초상화를 그려서 보존, 보관해두는 법에 따라 그의 초상화를 그려서 보관해두었다.
선원보락에 실린 초상화 외에 공신 책봉 후 제작된 그의 생전 초상화가 20세기에 와서 알려지게 되었다.
장릉 조선왕릉 역사문화관을 나와서
외곽 둘레길을 따라가 본다,
장릉을 한바퀴도는 길이 아니고 잠시후 도로로 연결이 된다,
장릉을 돌아보는데만 걸린 거리는 약 4,5km 시간은 1시간 남짓이다,
원덩동 존슨부대찌게 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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