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흐르듯이 순리대로
오대산 선재길(2019년 11월 3일) 1,상원사 - 거제수나무 구간까지 본문
상원사를 여유롭게 둘러보았어니 이제 선제길을 따라
월정사로 내려간다, 이곳에서 월정사까지는 약 9,3km정도 로 선재길은
상원사에서 내려가거나 월정사 주차장에서 올라와도 된다,
상원사 입구 선재길 안내는이렇게 쓰여있다,
오대산은 신라시대에 중국 오대산을 참배하고 문수보살을 친견한 지장스님에 의해
개장된 문수보살의 성지로서 문수보살은 지혜와 깨달음을 상징하는 불교의 대표적인 보살입니다,
이러한 문수의 지혜를 시작하는 깨달음이라는 목적을 향해 나아가는 분이 화엄경의
선재(동자)입니다, 이 길을 걸으면서 "참된 나" 를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선재길 체험 안내도 도 있다,
상원사에서 월정사까지 중요한 포인트를 알려준다, 출발전에 이 정도만 숙지를 하면
선재길 10여km는 아주 즐거운 길이 될수있겠다, 2019년 11월 3일에 다녀온 선재길은 1, 2편으로
나누어서 기록하는데 그 첫번째 일기는 상원사에서 거제수나무 쉼터 까지다,
오대산 오대천 계곡을 건너 가는 첫번째 다리
상원사 주차장에서 선재길을
시작 하지만 어찌보면 이 다리가 선재길 시작인 출발점이다,
다리 건너 안내판에도 선재길 입구라 붙어 있다,
늦은 가을비는 하염없이 내리고 길은 질척거려도 기분은 아주 생쾌하다,
비가 올 것을 예기치 않았든 오늘이 아니면 언제 비오는 선재길을 걸어 보겠는가,
오늘은 등산을 하는 것도 아니고
동네마실길을 걷듯 선재길을 걷는 길이니 마음만은 여유가 있다,
오대천 물길을 따라 내려간다,
작은 빗물이라도 비는 비인가보다, 조금전보다 제법 물이 많이 불었다,
여기도 국립공원이니 눈에 익은 팻말이 보인다,
오대산 선재길, 서울 북한산 둘레길에서 많이 보든 이정표니 낮설지 않다,
이 계곡은 오대천이다, 오대천의 길이는 57.8㎞, 유역 면적은 451.5㎢다.
오대산의 두로봉(頭老峰, 1,422m) 및 비로봉(毘盧峰, 1,563m) 등의 계곡에서 나온 계류들이
모여서 월정사(月精寺)를 지나면서 정선군 북면 나전리에 이르러 북동쪽에서 흘러온
골지천(骨只川)과 합류하면서 남쪽으로 흘러 남한강으로 흘러드는 하천이다,
넉넉한 선재길을 따라 내려 가는길,
가는 내내 오대천이 물흐르는 소리로 반겨준다, 이렇게 아름다운 노래가 어디 있을까,
잠시 사진으로 라도 물소리를 느껴보자,
날 좋은 날에는
이렇게 만들어진 쉼터에서 잠시 쉴수도 있고
전나무 숲에
잠시 앉아 쉴 수도 있겠다,
그러다가 보니
오대산 화전민터로 왔다,
오대산 화전민터, 오대산에 있든 화전민 마을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힘없는 민초들의 처절한 삶의 터전이였든 화전민들과는 전여 다른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곳은 일제강점기 시절, 자원 수탈이 자행된 흔적들이 곳곳에 보이는 곳이다.
산이 깊고 외진곳이다보니 오대산 일대의 산림자원을 강탈할 목적으로
일제가 화전민 마을을 조성했다고 보는게 맞겠다, 당시 오대산 오대천 일대에는 150여 가구에
300여 명의 주민이 살았던 것으로 전해지는데. 화전민 마을은 목재 반출을 위한 노동력 공급 대상지였다.
이들의 흔적은 1975년 오대산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될 당시까지도 일부가 남아 있었다.
현재 확인되는 것 만으르로도 월정사와 상원사 구간에는 화전민터가
50여 채 정도가 남아있어며, 오대산 선재길 일대는 목재를 실은 수레 이동에 사용되였든
목차 레일도 10m가량이 남아 있어며, 또한 자원 수탈에 동원된 사람들의
애환이 담긴 노동가요인 "목도소리" 도 구전으로 전해진다.
오대산 선재길 일대의 화전민터는 이곳 뿐만이 아니라
월정사까지 길게 이어진다,
다시 오대천을 건너가는 다리가 보인다, 이 다리는 출렁다리다,
말 그대로 사람이 건너가면 출렁대는 다리다,
얼마나 출렁댈까, 건너 가면서 흔들어 보니
아주 기분좋을 만큼 출렁인다, 가끔은 이런 것도 걷는 사람들에게는 흥미꺼리다,
출렁다리를 건너
도로 를 지나 오른쪽 산길로 들어 간다,
잠시 그렇게 따라 가다가 다시 오대천을 건너 도로로 간다,
이지역 일대는 화전민들이 살았든 흔적들이 발견되고 구전되는 지역이다보니
아마 지금 이 도로는 일제시대부터 산림자원을 반출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길이 아닌가 싶다,
다리를 건너가니 두갈래 길 안내가 있다, 하천 변으로 가는 길과
도로로 올라가서 도로로 따라가는 길, 비가오는 날은 계곡이 아니라 도로로 올라가라고
안내되여 있어니 당연히 도로 로 올라간다,
아직은 하천변으로 따라 갈 만은 하지만
계곡물은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곳이니 안전한 길로 간다,
이제 잠시 상원사와 월정사 간
차가 다니는 비 포장 도로를 따라 내려간다,
이 도로는 진부면 간평리 병안삼거리에서 부터 오대산로가 시작이 되는데
월정사와 상원사를지나 비로봉과 두로봉사이 계곡을 따라 홍천군 내면 명개리까지 이어진다,
그리고 56번 국도 구룡령을 넘어 동해안으로 이어지는 영동과 영서를 이어주는 도로다,
국립공원내에 있고 비포장이라 특별한 경우 외에는 이용하지 않는 도로다,
그러나 이길이 일제가 산림자원 침탈 목적으로
시작된 길이라면 이 길에 얽힌 우리 선대들의 삶은 얼마나 힘들고 어려웠을까,
잊지 말아야하다, 그리고 다시는 되풀이 되여서는 안된다,
동대산 입구다, 동대산은 해발 1,434m의 산으로
평창군 진부면과 대관령면에 걸처있는 산으로 오대산을 이루는 다섯 봉우리 중 하나다,
동대산은 태백산맥 줄기인 해인산맥에 속한 산으로
북쪽에 두로봉 1,422m, 서쪽에는 서대산, 호령봉1,042m, 동쪽에 노인봉 1,338m 등이
솟아있어며 동대산 정상은 이곳에서 약 2,8 km 정도 거리에 있다, 거리로만 보면 만만한 산길이다,
그러나 이곳 해발이 900m로, 2,8km의 거리를 해발 534m나 올라가는 길이면
조금은 힘들수도 있는 오름길이 기도 하다,
오대산 진고개정상 쉼터에서도 동대산 정상은 약 1,8 km 정도 거리다,
동대산만을 등산을 하려면 이곳에서 넘어가는 것보다 진고개 정상에서 이곳으로 내려오는게
휠신 수월하다, 그리고 진고개 정상에서 동대산은 오대산 종주 산길이기도 하다,
이제 동피골 분기점, 동피골 주차장까지 왔다,
동피골 주차장에서는 오대산 상왕봉, 비로봉, 두로봉 등으로도 갈수 있다,
동피골에서 다시 선재교를 지나 오대천을 건너간다,
아치문을 들어가서 보이는 선재교
선재교를 지나가면서 보이는 오대천의 늦가을,
2주정도 전에만 이곳에 왔드라면 아름다운 단풍을 즐길수도 있었을것 같은데
한편으로 조금은 아쉽기도 하다,
그러다가 만나는 나무로 된 조형물,
죽어있는 나누 가지를 모아서 원을 만들었다, 누구의 쏨씨인지는 몰라도 꽤나 정성을 들인 것
같은 작품이다, 덕분에 이 길을 걷는 사람들은 이곳에서도 기념사진을 찍는다,
소나무과 낙엽침엽 교목,
일명 입갈나무가 이곳에도 있다,
흔히 보는 사철 푸른 잎의 소나무가 아닌 낙엽이 지며
누렇게 되여 잎을 간다는 의미로 잎갈나무라고 하는데 남한에서는 이곳
상원사 일대와 광릉 수목원에서만 유일하게 볼수 있는 나무다,
선재길을 가는길 이번에는 꽤나 넓은 밭을 지나간다,
국립공원 산 골자기에 밭이 있는게 신기해 보인다, 그러나 이 지역에는 화전민이 살았든 곳이다,
그러나 지금은 누가 농사를 짓고 있는지 궁금하다,
밭이 있어니 농작물을 실어 나르기 위해 다리를 놓았을까,
그나마 금줄이 띠워저 있다,
갈골교, 이름이 붙어 있어니 그런줄은 알겠는데 왜 갈골교인지?
지명인지 아니면 만든 이름인지 연유라도 안내해 놓았어면 좋았을 텐데 이럴때는 아쉽다,
탐방로 상시 이용 가능길에는
이렇게 천변을 따라 데크길이 만들어저 있다, 그러니 선재길은
누구라도 모두 힘들지 않게 걸을수 있는 길이다,
거제수나무 안내다,
처음들어보는 나무 이름이라서 안내되여있는 사진을 대조해서 주변을 둘러본다,
사진으로 찾아 본 거제수나무는 주변에 늘려 있었다,
선제길 1편은 여기까지다, 다음편에서는 이곳에서 월정사까지의 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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