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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조와 문수동자의 전설이 이어지는 상월사(2019년 11월 3일) 본문

국내 山行日記/인천·경기·강원

세조와 문수동자의 전설이 이어지는 상월사(2019년 11월 3일)

물흐르듯이순리대로 2019. 11. 4. 11:33

상원사 주차장에서 상원사로 가는 길 오대천에 놓여있는 다리 이름이 관대교다,

 갓관 冠 자에,  띠대 帶 자 무슨 뜻일까? 라고 고개를 가웃둥 하게 하지만 잠시 뒤에 그 뜻을 알수 있다,

주차장에서 관대교를 건너가면

상원사로 들어 가는 입구에 있는 찻집 소풍가 가 보인다,

그리고 엄청나게 큰 바위돌에는

오대산 상원사, 적멸보궁, 문수성지라 새겨저 있다,

상원사 찻집 소풍가 옆에 관대걸이 안내판이 있다, 내용은 지금으로 치면

쿠테타로 단종을 몰아내고 정권을 탈취한 세조가 어느날 꿈에 형수인 단종의 어머니가 나타나서

세조를 호되게 꾸짖어며 침을 뱉았다고 한다, 이후 침을 맞은 자리에 종기가 나서 온몸에 퍼지자 산좋고 물 좋다는

오대산 상원사로 행차해서 문수보살상 앞에서 불공을 드리며 치료와 속제의 기도를했다,


기도하는 기간 내내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기위해 매일 계곡에서 목욕을 했는데

피부병에 걸린 자신의 모습을 누구에게도 보이기 싫어 혼자 목욕을 하다가 등을 씻어야 하는데

 마침 동자승이 지나가고 있었다,

세조는 그 동자승을 불러 등을 밀게하고는 너는 어디가서

왕의 등을 밀어주었다고 하면 안된다, 라고 당부를 했는데, 동자승은 등을 다 밀어 준뒤

대왕께서도 어딜가시든 문수동자를 친견하였다는 말을 하지마십시요,

라고 하고 홀연히 사라젓다,


이후 세조는 피부병이 완치되였어며, 그때 만난 동자승을 나무에

 조각하게 했다, 이 목각상이 현재의 상원사 목조문수동자좌상(木造文殊童子坐像)으로

국보 221호다, 이제 주차장에서 관대교를 지나 오면서 의문을 품었든

다리 이름에 대한 답을 얻었다,

↑ 위 사진에 보이는 석물 기둥이 세조가 계곡에서

목욕을 할때 의관을 걸어 둔 곳을 기념해서 후대에 만든 표지석으로 관대걸이 다,

이제 상원사로 들어간다,

상원사 주변은 소나무과 낙엽침엽 교목, 일명 입갈나무 서식지다,

입갈나무는 백두산 중엽에 주로 서식하며 수령은 100년 정도다, 흔히 보는 사철 푸른잎의

소나무가 아닌 낙엽이 지며 누렇게 되여 잎을 간다는 의미로 잎갈나무라고 하는데

남한에서는 이곳 상원사와 광릉 수목원에서만 유일하게 볼수 있다,

우리가 흔하게 어디서 많이 본 것같은 잎갈나무는 낙엽송이라 부르는

일본 잎갈나무다, 일제시대 삼림 녹화사업으로 심기 시작해 지금까지 전국의 산에 분포해 있는

나무로 우리의 토종 잎갈나무와는 다르다, 이 길을 따라 상원사로 들어가면 번뇌가

사라질까? 그런지는 모르겠어나 번뇌는 자신과의 싸움일게다,

계단을 따라 올라가는 높다란 언덕 위에 보이는 상원사

오늘 따라 비가 와서 인지? 돌로 만든 계단이 미끄럽다, 계단을 올라가는

모든 이들이 천천히 올라간다,

부처님을 만나러 가는 길은 마음을 가다듬고 힘들게

들어가는 것부터 수양의 길이라 했다, 그러니 상원사가 이렇게 높은 곳에 돌 계단을 만들어

놓은것이 우연만이 아닐 것 같다, 상원사 현판이 처마아래 높게 걸려있다,

이제 마지막

계단을 올라 문수전으로 들어간다,

법당 문수전(文殊殿)은 ㄱ 자형이다, 현판 文殊殿 글씨는 예서체며

근처 중대에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 28호인 적멸보궁(寂滅寶宮)이 있기에 대웅전이 따로없다,

그래서 우리나라 적멸보궁이 있는 5대사찰은 모두 대웅전이 없다, 5대 적멸보궁은

양산 통도사, 오대산 월정사, 설악산 봉정암, 영월 법흥사, 정선의 정암사다,

동종각이라는 상원사 동종(725년 작. 국보 제36호)전각이 보인다, 우리나라에 있는

동종 가운데 가장 오래된 한국 종의 형식을 고루 갖추고 있으며 뛰어난 주조 기술과 조각 수법을 보여주는

우수한 종이다. 원래 어느 절에 있었는지 알 수 없으나 경상북도 안동 영가지(永嘉誌)에 의하면 조선 초기에 안동 누문에 걸려

있던 것을 1469년 국명에 의해 상원사로 옮겼다고 한다. 정상에는 용뉴와 용통이 있는데, 용뉴는 용의 입부분과

발끝이 종과 연결되어 있다. 용통의 표면에는 앙련과 복련을 장식하고 그 사이에

연화무늬와 당초무늬를 조각했다.

종의 몸체는 배가 약간 불룩하고 밑부분이 좁아지는 형태로

종 어깨[鐘肩]와 유곽 및 종 입구(鐘口)에 문양대를 돌렸는데 연주무늬(連珠紋)를

가장자리에 돌리고, 그 사이에 일정한 간격으로 반원의 테두리 안에 주악비천상과 당초무늬를 장식했다.

종 어깨에 붙여서 배치한 4개의 유곽 안에는 각각 연화좌 가운데에서 돋아난 유(乳)를

9개 배치했으며 유의 표면에도 꽃무늬를 장식했다.

종 몸체의 서로 반대되는 2곳에는 구름 위에서 공후(空篌)와 생(笙)을

각각 연주하는 비천상을 2구씩 양주했는데, 하늘 위로 날려올라가는 천의의 율동적인 선과,

악기를 연주하는 자연스러운 자세의 양감있는 표현은 통일신라의 조각이 지닌 사실미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동종은 종 입구에 작은 균열이 생겨, 현재는 모작품을 만들어 사용하며 이 종은 치지 않고

유리각 안에 보존하고 있다.

모작품 종은 2년여 걸처 밀랍주조 방식으로 제작, 완성된 새로운

상원사 범종은 상원사봉황화엄범종 이라 명명 했어며 높이 170cm, 지름 91cm, 크기에

무게는 1,5톤으로 종두는 봉황이며 종의 고리는 구름을 형상화 했고, 종의 상대에는 비천과, 사방불(四方佛)을

새겻어며 상대에 이어 구슬을 꿴 형상의 영락장엄이 베일처름 드리워 젓어며 하대에는

십이지를 새겨 제작했다, 다시 문수전으로 올라간다,

문수전 법당에는

문수동자좌상과 문수보살상이 있다, 문수동자좌상은 왼쪽이다,

(아래 4장의 사진은 문화재청 자료 사진이다,)

국보221호 인 목조 문수동자좌상(木造文殊童子坐像)이다,

최근에 이 동자상 안에서 발견된 유물에 조선 세조의 둘째 딸 의숙공주 부부가

세조 12년(1466)에 이 문수동자상을 만들어 모셨다 는 내용이 적혀 있어, 작품이 만들어진

시대와 유래가 확실하다는 점에서 조선 전기 불상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된다

목조문수동자좌상 복장유물(平昌 上院寺 木彫文殊童子坐像 腹藏遺物)은

상원사에 있는 목조문수동자상(국보 제221호)에서 1984년 7월 불상의 유래를 밝힐 수 있는 2개의

발원문(發願文)과 조선 전기의 복식, 전적류 등 23점의 복장유물이 발견된 유물이다.

발원문은 불상을 만들게 된 이유와 만든 사람들에 대한 기록을 담고 있다,

 첫번째 발원문은 세조 12년(1466)에 세조의 둘째 딸인 의숙공주와 남편 정현조가 세조와 왕실의 안녕을 기원하고자

오대산 문수사에 여러 불·보살상을 만들어 모셨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크기는 세로 31.5㎝, 가로 24㎝의 낱장으로 되었고, 푸른 비단에

붉은색으로 글씨를 썼다. 또다른 발원문은 1599년에 2구의 문수동자상과 16구의 나한상 등에 금칠을 새로 하고 고쳤다는

내용이다. 크기는 세로 34.6㎝, 가로29.1㎝의 낱장으로 되었고 역시 푸른 비단에 붉은색으로 글씨로 썼다.

문수전 월대 아래 형체를 짐작할수도 없는 석상이 세워저 있다, 세조와 얽힌 설화가

전해내려오는 고양이 석상(石像)이다, 세조가 상원사에 참배를 하려고 법당에 들어가는데 고양이가 나타나서

어의를 물고 놓지를 않았다, 이를 이상히 여겨 법당안을 살펴보니 불상을 모신 탁자밑에 숨어있는 자객을 찾아내어 목숨을

건젓다는 것이다, 세조는 고양이 은혜를 보담하는 듯에서 고양이를 잘 기르라고 묘전(猫田)을 하사했다,

이때부터 공양미라는 말도 고양이를 위해 바치는 쌀의 뜻을 가진 고양미가 고양미가 되였다,

문수전에는 국보 제221호, 목각문수동자상을 비롯해 석가여래좌상과 문수보살상,

3구의 소형 동자상, 서대에서 이곳으로 옮겨온 목각의 대세지 보살상이 함께 봉안되여 있다,

이 중에서 신라때부터 이어온 오대산 문수신앙에 조선의 왕실 배경까지 더해진 상원사 법당에 봉안되여 있는

국보 221호 목조문수동자좌상은 예배의 대상으로 제작된 국내 유일의 동자상이라는 점에서 특별하다,

문수전 뜰 하늘을 찌를둣이 높이 솟아있는 황금빛 찬란한 상원사 봉황보당이 보인다,

아말감도금기법으로 만든 오세종작가 작품이라고 하는데 천년의 세월이 흘러도 찬란한 황금빛을 잃지않는

수은도금 기법은 불교유물의 가치를 더욱 높이고 보는 이들에게는 신심이 절로 우러나오게 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이 봉황보당은 세조가 상원사를 찾았을 때 왕의 상징인 어룡기를 걸어두었던 곳으로 알려저 있다,

이제 성원사를 나간다,

상원사를 나가는 계단에서 보이는 2019년의 마지막 단풍

단풍이 모두 지고 없는 곳이라 그런지

그저 검붉은 색갈의 단풍잎을 보는것 만으로도 아름답다,

이렇게 상원사를 나가면


상원사입구 소풍각 찾집이다,

이곳에서는 월정사 방향으로 가는 버스도 있다,

상원사는 평창군 진부면 동산리, 오대산 중대(中臺)에 있다,

오대산은 우리나라의 가장 크고 긴 산줄기 인 백두대간의 가운데 위치하고 있는 산이다,

1563m의 비로봉을 주봉으로 1,000m 내 외의 봉우리가 완만하게 이어저 있어 어머니 품속같은 산이다,

산 이름은 비로봉을 중심으로 호령봉, 상왕봉, 두로봉, 등대산등 다섯개의 큰 봉우리가 있다는 설과

동서남북 중대에 다섯개 암자가 있어 오대산이라는 이름이 붙여젓다는 설도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