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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흐르듯이 순리대로

오대산 선재길(2019년 11월 3일) 2,거제수나무-상원사 본문

국내 山行日記/인천·경기·강원

오대산 선재길(2019년 11월 3일) 2,거제수나무-상원사

물흐르듯이순리대로 2019. 11. 4. 19:24

거제수나무 군락지가 형성되여 있는 길도 지나 내려간다,

오대산 선재길은 사색과 치유의 숲길이다. 월정사와 상원사를 잇는 계곡을따라

이어지는 선재길은 흙, 돌, 나무, 물을 밟으며 걷는 길이다.

겨울에 눈이 내리면 이 길은 얼마나 고요할까, 상원사를 잇는 도로가 생기기 전,

지금 걷고 있는 이길 지금의 선재길은 스님과 불자들이 오가며 수행을하는 길이었어며.

오대산 화전민들이 나무를 베어다 팔던 삶과 애환의 길이기도 했다.

가을에는 붉은 단풍이 수려한 오대천 계곡을 물들이고

겨울이면 설국으로 변신하는 선재길 9km의 눈(雪)길은 상상만으로도 즐겁다,

길은 잘 닦여있고 가파르지도 않어니 올 겨울에는 눈길이나 걸어볼까,

멏번을 되 새기지만 선재? 란, 화엄경에 나오는 동자 이름으로

지혜와 깨달음을 얻기위해 젊은 구도자가 걸은 길의 의미가 담겼있다는 길이 이길이다,

동자가 아니면 어떤가, 이 길을 걷는 동안은 모두가 동자다,

가을을 찾아 왔는데 가을은 벌서 저만치 달아나고 초겨울 기운이다,

한겨울 눈내린 선재길은 어떤 모습일까? 비로봉의 눈길은 원없이 걸었든 기억이 생생한

오대산이지만 선재길 눈길은 걸어 본적이 없어니 ~

선재길 겨울철 눈꽃 트레킹은

트레킹 이상의 의미가 있는 길이라고 하는데

어떤 의미와 뜻이 담겨 있다는 것일까?

섶다리 안내가 보인다, 섶다리는 1428년 세종 10년에 경북 청송 덕리의

보광산에 위치한  청성심씨 시조묘에 사계절(四季節) 전사일(奠祀日)에 용전천 강물이

불으면 유사(有司) 관원(官員)과 자손들이 건너지 못할까 걱정해 섶나무(잎나무 와 풋나무 등)를

엮어 다리를 만들어 건넛다는 다리를 섶다리 라고 부른게 섶다리의 유래다,

안내에도 있지만 매년 가을 걷이가 끝나는 10월이나 11월에

마을 사람들이 만들고 여름 홍수가 나면 떠내려 가는 이별다리 였다고도 한다,

그러고 보면 이 섶다리는 오대산 화전민들이 만들었든게 아닐까?

섶다리에서 월정사는 3,2km, 상원사는 5,8km 거리니

이제 월정사는 1시간 정도 거리다,

선재길코스 고도를 보면 월정사에서는 계속해서 고도를 높이며 올라가는 길이지만

 9km가 넘는 길이다 보니 경사도를 느끼지 못할 정도로 미미하다,

토퍼를 이용해 찍은 사진을 SNS에 올려주면 기념품을 준다는데 토퍼가 뭘까,

아래 사진에 보이는 팻말을 들고 찍은 사진을 말하는 것 같은데, 토퍼니 뭐니 이런 난해한 말 쓰지말고

그냥 누구나 다 알아 들을수 있게 여기 꼿아둔 팻말들고 사진찍어서, 라고 하면 안되겠니?

자세히 보니 선재길 섶다리는 너무 튼튼하게 만들어서

떠 내려갈 일은 없을것 같어니 섶다리와 이별 할일도 없을 것 같다,

조금 난해한 길은 이렇게 안전하게 데크길을 만들어 놓았어니

눈내린 겨울날 눈꽃 트레킹 한번와야 겠다,

가을은 떠났지만 지금 보이는 계곡의 전경과 물,

어쩜 이렇게 잘 어울릴까,

일부를 제와하고는 거의 흙길인 선재길,

겨울철 눈길이 환상이라면, 봄에는 야생화 꽃길이 펼처지고, 여름에는 시원한 숲길이

가을에는 아름다운 단풍 꽃길로 변신하는 계곡이니 사철 어느때 찾아와도 후회가 없을것 같은 그런 길이다,

보메기 다리를 건너간다,

 선재길은 이렇게 건너가고 건너 오기를 반복하면서

상원사에서 월정사로 가는 길이다,

오대산 보메기에 대한 안내다,

보메기 란 생소한 단어를 사전으로 찾아보니 보메기는

전라도 사투리로 농사철이나 홍수로 터진 보를 울역을 통하여 보수하거나

새로 만드는 작업, 또는 일이라고 되여있다

 오대천 보메기 의 경우에는, 계곡에 보를 막아 벌목한 목재를 쌓아 놓았다가

여름철 장마 비를 이용해 한번에 무너뜨려 목재를 이동시켰다는 데에서 비롯된 지명이다,

계곡의 폭이 좁고 깊어니 보를막아 물을 가두기에는 좋은 장소였든것 같다,

보메기에서 월정사 까지는 2,4km

이제 슬슬 월정사가 가까워 지는 거리다,

다시 또 다리를 건너간다,

다리를 건너가면서 아래로 내려다보니 계곡을 감싸고 있는

전경은 깊은 산인데도 그저 평온하기만 하다,

     물이 깊은 계곡에는 혹시라도 조난 사고라도 날까,

부유물을 띠워 놓은 곳도 있다,


농토로는 큰 편인 넓은 밭이 보인다,

두말할 것도 없이 화전민이 일구어 놓은 농토 일것 같다,


분명히 올해도 농사를 짓고 있었는데 누가 이곳에 농사를 지을까,

누가 농사를 하건 무슨 이유로 궁금한건지?

화전민 밭을 지나서 다시 건너편으로

이곳은 회사거리 다,

회사란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기업을 말한다,

이 첩첩 산중에 회사가 있었다?

그러나 회사거리 는 오대산에서 이송한 목재를 가공했던 조선총독부 산하

목재회사가 있었던 자리라서 유래한 지명이다.

이제 정리를 해보면 강원도 깊은 산 골인 오대산에 화전민이 살았다,

결국 사람이 모여 살았다는게 중요하다,

사람이 살면 먹을거리가 있어야 하니 농토가 필요했을거고

농사를 짓기 위해서는 밭을 일구어야 했는데 그시절에는 불을 질러 농지를

만드는 것을 화전(火田)이라 했다, 그래서 화전민이다,

그리고 사람이 모여 살면 필연적으로 길이 필요하다,

길은 사람도 다니지만 우미나 궤도 등으로 물자를 나르는 길로도 이용하게 된다,

일제는, 깊은 산인 오대산에서 나무를 벌목했다,

일을 할수있는 원주민격인 화전민이 있엇고 목재를 운반할수 있는

오대천 계곡물과 길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깊고 깊은 이 산골에 회사거리 즉 제재소가 있었다,

계곡으로 운송한 목재나 우마로 실어 나른 목재는 이곳 회사(제재소)에서 가공해

외부로 반출 했을 것이다, 그래서 화전민은 이 일대에 모여 살았을 것이다,

계곡에 놓여진 다리를 건너가고 건너오면서 하다보니 뱃살탈출구가 있다,

10대, 20대, 30대, 40대, 50대, 그리고 그 다음은 있기는 있는데 아주 넉넉하다, 어떤근거로

만들어 젓는지는 몰라도 이 또한 하나의 즐길거리가 아니겠는가,

이곳 작은 공원,

시비에 노을아리는 시가 쓰여 있다,

작은공원도 지나서

월정사로 내려가는길 한켠에

신석정 시인의 "연꽃이였다" 는 시 한 편이 전시되여 있다,


그 사람은 물 위에 떠 있는 연꽃이다,

내가사는 이 세상에는

그런 사람이 하나 있다,

(중략)

그 샐각만으로도 아리다,

그 하나만으로도 아프다,

이 일대가 회사거리다, 회사거리에는 조금전에 지나온 화전민 터와는 달리

약 360여 가구의 화전민이 마을을 형성하고 살았는데 1960년대말 화전 정리사업으로

모두 이주하고 지금은 흔적만 남아 있다고 쓰여있다, 이 일대에 조선총독부 산하 제재소 공장이

있었든 곳이니 당연히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살았을 것이다,

제재소가 있었다는

회사거리 안내판이 있는 곳도 지나간다,

가는길 오른쪽 산에 있는 지장폭포가 보인다, 지장폭포는 지장보살님을 모시고 있는

지장암 자락에 위치하고 있어 비오는 날이면 시원한 폭포수가 떨어저 지나가는 이들의 발길을 잡아두는

명소다, 예로부터 이폭포는 신묘한 힘이 있다고 전해 오면서 힘든일이 있거나 꼭 이루고 싶은

소원이 있는 사람들이 찾아와서 정성을 다해 기도를 드리든 곳이기도 하다,

지장폭포를 지나 가는 길,

이곳 오대천 변 데크길은 길 자체만으르로도 주변 경관과 잘 어울린다,

회사거리를 올려다 볼수도 있고

하류로 이어지는 아름다운 계곡 조망도 가능한 전망대도 있다,

길은 이렇게 멋스럽게 이어진다,

그리고 전나무 숲길을 따라가면

자연이 주는 선물인 피톤스치 가 몰려오는듯 하다,

그리고 또다른 전경은 나무에 이끼가 많이 끼여 있는게 보인다,

계곡 옆이고 습기가 많아서 그럴까.

선재길은 계속해서 이어지는데

차가 다닐수 있는 교량이 보인다, 이 다리를 건너오면 남대지장암으로 들어가는 길이다,

다리를 보면서 그냥 선재길을 따라가는

길에는 넓은 공터가 있다, 이곳은 남대지장암 주차장 이다,

그리고 선재길에서 보이는 마지막 다리?

길은 이제 저 다리를 건너가야 해서 마지막이라는 말을 붙였다,

다리를 건너가면서 보이는 월정사,

그 옆으로는 상원사로 올라가는 도로도 보인다,

상원사 선재길에서 월정사로 들어가는 아치문,

이 문의 형태는 국립공원 둘레길의 대표적인 컨셉이니 어디서든

볼수있어 그런지 낮설지는 않다,

월정사로 들어 왔다,

물론 월정사 이야기는 다음 일기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