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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흐르듯이 순리대로

평화누리길 11코스 임진적벽길(1) 동두천 중앙역~숭의전,(2019년 9월 22일) 본문

2019년 平和누리길/연천 3개코스

평화누리길 11코스 임진적벽길(1) 동두천 중앙역~숭의전,(2019년 9월 22일)

물흐르듯이순리대로 2019. 9. 23. 14:00


2019년 9월 22일 1호선 전철로 도착한 동두천중앙역

오늘은 평화누리길 11코스 임진적벽길을 답사하려 이곳에 왔다,

동두천 중앙역 광장에 안내되여 있는

동두천관광안내도

동두천에는 아름다운 동두천 6산이 있다고 알려준다,

이 중에서 내가 가본 곳은 소요산 뿐이니 언제 한번 다녀와야 겠다,


동두천 중앙역사 외부,

우리는 동두천역 1번출구고 나가서 정면으로 보이는 도로를따라

어수사거리 역전버스정류장으로 간다,

어수사거리 역전버스정류장에서

숭의전지로 가는 버스는 06시 50분, 10시 30분에 52번 버스가 운행한다,

우리가 타고 갈 차는 10시 30분 버스다, 52번버스로 숭의전에 도착한 시간이 11시 10분경이니

버스로 이동한 시간은 약 40분정도가 결렸다,

숭의전 약수터로 알려 저 있는 샘터다,

왕건이 물을 마신 곳이라 하여 어수정(御水井)이라 부른다,

왕건이 궁예의 신하로 있을때 개성(송악)과 태봉(철원)을 오가면서 중간지점인

이곳에서 쉬여갈때 물을 마셧다고 전해지며 전해오는 설에 따르면 이곳 숭의전 자리에 왕건의

옜집 또는 왕건이 세운 앙암사(仰巖寺)라는 절이 있었다고 한다,

숭의전 자리는 이미 그때부터 정해진 자리가 아니였을까?

홍살문 얖에는 하마비가 있다,

말에서 내려 걸어서 들어가라는 의미로 차량통행 금지구경에 해당한다,

숭의전으로 들어가는 홍살문,

홍살문으로 들어간다,

숭의전으로 들어 가는길,

돌아보면 홍살문과 어수정이 보인다,

숭의전이다,

숭의전 입구 길 옆에 있는 평화누리길 11코스 안내도 있고

1397년(태조 6)에 태조의 명으로 묘(廟)를 세우고, 1399년(정종 1)에는

고려 태조와 혜종, 정종, 광종, 경종, 선종, 목종, 현종의 7왕을 제사지내고, 1423년(세종 5)과

1452년(문종 2)에 중건했다. 문종은 이곳을 숭의전 이라 이름짓고, 이와 함께 고려조의 충신 정몽주(鄭夢周) 외

열다섯 사람을 제사지내도록 하였으며, 고려 왕족의 후손들로 하여금 이곳을 관리하게 했다.

숭의전 전각 배치는 좌측부터

앙암재, 진사청, 숭의전, 이안청, 배신청으로 꾸며저 있다,

보이는 건물이 앙암재다,

조선시대에는 역대 왕조의 시조를 모신 사당을 지어 제사를 지냈다.

평양의 숭령전(崇靈殿)은 단군과 고구려 시조 동명왕을 모셨고, 평양의 숭인전(崇仁殿)은

기자(箕子)를 모셨다. 경주의 숭덕전(崇德殿)은 신라의 시조를 모셨고, 충청남도 직산의 숭렬전(崇烈殿)은

백제의 온조왕을 모셨으며, 숭의전(崇義殿)에는 고려 태조 및 혜종, 정종, 광종, 경종, 목종, 현종을

 제사 지냈다. 5곳의 왕조 시조 사당은 지금 없어젓지만, 평양에도 숭령전(崇靈殿)과,

숭인전(崇仁殿)이 있었다,

영조는 1731년(영조 7) 승지를 이곳에 보내 제사지냈으며, 1789년(정조 13)에는

이 건물을 고쳐 지었다. 처음에는 사(使, 종3품), 수(守, 종4품), 영(令 종5품), 감(監 종6품),

여릉참봉(麗陵參奉 종9품)의 관리를 1인씩 두었으나 뒤에 와서 사使와 수守,는 없앴다. 숭의전은 없어진 나라

고려의 왕들과 충신들의 제사를 지내든 곳이다, 그러니 규모가 그리 크지는 않다,

앙암재로 들어간다,

앙암재는 제례때 사용하는 향, 축, 패 등을 보관하고

제관등이 제례준비를 하며 머무는 곳이다, 문이 열려있어 들여다보니

특별한건 없었고 제례사진이 전세되여 있다,

앙암재 탯마루 한켠에

사진속으로 보는 북한 속 고려 사진이 있는 데 개성고려 궁 사진이다,

앙암재에서 진사청으로 들어가는 문

진사청이다,

진사청은 제례때 사용할 제수를 준비하는 곳이다,

진사청 마당 옆에 있는 문으로는

숭의전으로 들어갈수 있다,

숭의전 정전이다,

숭의전은 연천군 미산면 아미리에 있는데 새 왕조를 연 다음,

전 왕조 왕의 위패와 왕릉을 보존하는 것이 전통적인 예의였기 때문에 세워젓다,

숭의전 중앙 제단에 모셔저 있는 태조 왕건의 위패와

좌측에 있는 위패,


우측에도 두분의 위패가 모셔저 있다,

그리고 숭의전 댓돌아래 평평한 돌판에 둘글게 홈이 파저있다,

제관들이 손을 싰는 일종의 물 그릇이다

그리고 숭의전 옆으로 이안청과 배신청이 있는게 보인다,

그러나 이안청은 닫혀있다, 들여다 볼수는 없지만 이안청은 위패를 잠시 모셔두는 곳이다,

배신청은 열려있다,

배신청 안으로 들여다 보니 좌측에는 6분의 위패가 모셔저있고

오른쪽으로는 10분의 위패가 모셔저 있다,

숭의전 삼문(三門)으로 나간다,

三門 삼문 가운데 문은 신문 神門 이고 양쪽의 문은 인문 人門 이라 한다,

신문 神門은 항상 닫아두는게 상례고 인문은 열어 두어 일반 참배객들의 내왕을 허용한다,

신문 神門 은 춘추제향이나 삭망(朔望)때 열어서 헌관(獻官)만 출입하고 일반 제관은 동문 東門으로 들어가서

서문 西門으로 나오도록 했다, 신문 神門 을 셋으로 나누어 만든 것은 神 신의 출입과 사람 人의

출입을 구분하기 위함이다, 숭의전은 이게 전부다, 삼문앞에는 느티나무가 있다,

숭의전 느티나무는 고려 왕실을 지키는 나무라 소개 되여 있다,

1452년(문종 2)에 고려 왕씨 후손이 심었다고 전해지는 숭의전 느티나무로, 1982년에 보호수로

지정했고 지정당시 수령은 550년 이였어니 단순 산술적으로는 올해로 570년이다,

550년의 오래된 느티나무니 전설이 없을수 없다,

이 나무가 철따라 웅웅소리를 내며 울면 비나 눈이 많이 오고 이 나무에

까치가 모여들면 마을에 경사가 나며, 까마귀가 모여들면 틀림없이 초상이 난다고 적혀있다,

이제 숭의전을 나간다,

숭의전을 나가면 서 돌아다 보는 숭의전 작지만 아담하고

오랜 세월을 지난 사당이지만 숭의전 주변에는 엄숙한 기가 흐른다,

이곳이 평화누리길 10코스 고량포길이 끝나고

11코스인 임진적벽길이 시작되는 곳이다,

11코스 임진적벽길은 18km에 5시간 20분이 걸린다고 한다,

지금이 벌서 11시 40분경이니 언제 이 먼길을 갈지? 평화누리길 중에서

가장 교통편이 열악한 숭의전, 갈길이 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