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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흐르듯이 순리대로

평화누리길 11코스 임진적벽길(2)숭의전-당포성,(2019년 9월 22일) 본문

2019년 平和누리길/연천 3개코스

평화누리길 11코스 임진적벽길(2)숭의전-당포성,(2019년 9월 22일)

물흐르듯이순리대로 2019. 9. 23. 14:16

숭의전 오른쪽 옆 산길로

평화누리길 11코스 임진적벽 길을 시작한다,

이 아치문에서 시작해서 20여km 를 가야하니 갈길이 멀다,

출발점을 올라가면 잠두봉이다, 이곳에는 잠두봉과 썩은소 전설 안내가 붙어있다,

연천군 미산면 동이리 임진강변에 있는 썩은소(沼)는 조선의태조 이성계가 고려를 멸망시키고

고려 왕족인 개성 왕씨를 멸족시키려 하자 왕씨들은 살아남기 위해서 전씨 田氏, 全氏 ), 김씨(金氏), 옥씨 (玉氏),

금씨(琴氏), 박씨(朴氏), 등으로 변성을하고 피신을 했다, 그런 와중에서도 뜻있는 몇 사람이 모여 우리가

변성은 하드라도 우리 조상님 왕건태조 할아버지의 신주는 우리가 안전한 곳으로 모셔야 겠다고

돌로 배를만들어 송도에 안치된 왕건의 신위를 그 배에 모신후 송도 앞 예성강에 띄웠다,

그 돌배는 임진강 합류지점에 도달하자 임진강을 역류하여 강원도 철원과 경계인

황해도 안악까지 올라갔다가, 다시 강을 따라 내려오기 시작하여 지금의 미산면 임진강 어느 벼랑밑에

멈추어 움직이지 않았다, 신위를 모신 돌배를 차마 홀로 보낼수없어 이 돌배에 같이 타고 있든 왕씨 몇 사람은 이 곳을

피신장소로 태조 할아버지께서 정하신듯 하니 이곳에 모시자고 결론을 내고 배에서 내리면서 쇠닷줄을

매여놓고 근처에 사당을 지을 명소를 물색해 정한후 강가로 돌아가니 하룻밤 사이에 쇠닷줄이

썩어 끊어지고 돌배는 어디로 갔는지? 흔적이 없었다,

급히 하류쪽으로 가면서 찾아보니 그 곳에서 4km 정도 떨어진 누에머리(蠶頭)라는

절벽에 돌배가 붙어 움직이지 않았다, 이에 그곳 절벽위에 사당을 지어 태조 왕건의 신위를 모시고

숭의전(崇義殿)이라했다, 지금도 청명한 날에는 누에머리 절벽 밑에 가라앉은 돌배가 보이고 하루밤 사이에

쇠닷줄이 썩었다고 썩은쇠 라고 불리든 말이 오랜 세월 변해 오늘날에는 썩은소 로 불린다,

물론 안내판 내용과는 조금 다르지만 썩은소(沼) 전설은 이렇게 전해 내려 온다,

썩은소와 숭의전 전설은 여러가지다, 조선 태조가 고려사직의 상징인 종묘사직을 없애기 위해

송도에의 종묘에 봉안되여 있든 고려 앙들의 위패를 배에 실어 강물에 띄워 보냈는데 배는 물을 흐름과 반대로

임진강 상류로 역류하여 스스로 삭녕지역까지 올라가다가 다시 방향을 바꿔 지금의 이곳 동이리 썩은소에서

 하루를 정박한후 3km 아래에있는 앙암사 석벽 잠두봉 아래로 떠 내려와 머무르게 되였다고도 한다,


 잠두봉을 나가서 언덕으로 올라간다,

숭의전 출발점에서 20여m정도 오른쪽은 잠두봉이며 왼쪽은 평화누리길이다,

이제 왼쪽으로 능선을 따라간다,

이곳에도 평화누리길 리본이 곳곳에 걸려 있다,

능선 오른쪽 아래는 임진강이 흐른다,

그러니 이길은 임진강변이다,

그리 높지도 않은 능선길

다소 올라가기도 하고 내려 가기도 하다보면

금방 평지 길로 내려선다,

산을 내려와 도로변으로 나오니 무덤하나가 보인다, 숭의전 제사를 주관하든 

책임자로 왕씨 성을가진 사람의 묘다, 이는 왕건임금의 후손들이 숭의전을 돌보게 했는 이조의 배려다,

숭의전사 崇義殿使 라는 직책의 사(使) 는 종 3품으로 숭의전을 관리하는 최고 벼슬이였다,

언내판에는 숭의전사 왕순례 묘라고 되여있다,

왕순례 묘 도 지나서

도로를 따라 동이리 방향으로 간다,

도로 양쪽밭에 사과가 주렁 주렁 열였다,

그래서 밭 한쪽에서는 비닐하우스를 짓고 사과를 따서 팔고 있었다, 

이제부터 길은 도로옆에 자전거 길을 만들어 놓은게 보인다,

잠시 자전거 길로 가다가 끊어지면 다시 도로로 나오고

그러기는 하지만 그래도 어쩔수 없는 곳은 안되드라도 가능한 곳은

어떻게든 편안한 길을 만들려고 노력하는게 보여서 반갑다,

그렇게 도로를 내려 가다보니 그동안 방치되여 있는

황무지에도 주인이 있었는지 보강토를 쌓아 쓸만한 땅으로 만들어 놓은게 보인다,

물론 지대가 많이 낮기는 하지만 그래도 농사를 지을것 같지는 않다,

이제는 삼화교 방향으로 간다,

삼화교는 연천군 미산면 마전리와 삼화리를

이어주는 임진강 다리다,

삼화교로 가기 전

또 하나의 다리는 마전리 개울을 흐르는

지나 가는 아미교다,

삼화교 입구 사거리를

지나서 372번국도를 따라 잠시 들어가면

삼거리 회전 로타리가 있는데

이곳에서 가든길로 직진으로 가면 임진교로 해서 연천으로 가는길이고

오른족 도로로 따라 가면 마동로로 연천 당포성 방향이다, 

우리가 가는 길은 당포성 방향이다,

오른쪽으로 꺽어들면 산 위에 보이는 당포성, 연천군 미산면 동이리에 있다,

삼국시대 고구려의 성곽으로. 사적 제468호로 연천 호로고루, 연천 은대리성과 함께 임진강과

한탄강이 지류와 만나 형성하는 삼각형의 대지 위에 조성된 독특한 강안평지성(江岸平地城)으로 임진강이

국경하천(國境河川) 역할을 했던 삼국시대와 밀접한 관련이 있고 학술적으로

가치가 높은 귀중한 문화유적이다.

연천군 미산면 동이리 당개나루터 동쪽의 현무암 수직단애상에 있는

 江岸平地城(강안평지성)인, 당포성은 약 13m 정도 높이의 단애위에 축조되였는데 성의

서쪽끝에서 내성까지의 길이는 200m이며 높이는 6m 길이는 50m정도다, 현재는 외곽으로 돌아가며

군용참호가 구축되여 있다, 유물은 내부의 전역에서 발견되되고 있는데 고구려 기와편과

통일신라 시기의 와편 등이 주로 많이 발견되기도 했다,

그리고 이어서 보이는 대전차 방호벽 시설물,

이제 이곳이 민통선 지역은 아니지만 DMZ와는 지근거리니

이런 시설물이 없는게 더 이상할 것 같다,

대전차 방어벽 설치물도 지나서 조금 만 더 올라가면

당포성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있다,

당포성은 도로에서 300m 정도다, 그래도 왕복이 600m 이니 들어가볼 엄두도 나지 않는다,

임진적으로 가는길을 따라간다,

먼길인데도 교통편이 여의치 않아 늣게 시작했더니 마음이 급하다,

가는길 건너편 학교가 보인다,

연천 왕산초등학교마전분교장이다, 그러나 학생들이 없어 폐교 한지 오래 되였다,

마등로인 도로는 한적하다 못해 인적이 드물다,

도로는 자동차가 다녀야 하는데 마을버스 한대 지나가는것을 보고 나서는 그림자도 안보인다,

무료하게 길을 걷다보면 등록문화재 408호 유엔군 화장장 시설이 있다,

공식 명칭은 연천 유엔(UN)군 화장장시설 이다, 6,25전쟁때 서부전선 전투에서 사망한

유엔군 전사자들의 시신을 화장하려고 건립된 화장장 시설로 

돌과 시멘트로 쌓은 10여m 높이의 굴뚝과 화장 구덩이로 구성된 유적지이다.
경기도 연천지역은 백마고지 전투, 철의 삼각지 등 고지쟁탈전이 치열하여 유엔군 희생자들이 많이 발생하자

이 곳에 52년에 유엔군 전사자를 위한 화장장 시설을 만들어 사용하였으며 휴전 직후까지 사용했다.

수없이 쏟아져 나오는 유엔군 시신을 처리해야 할 화장장를 별도로 건립해야

할 정도로 서부전선의 격전을 실감케 한다. 전쟁 당시의 화장장 시설로는 유일하게 남아있는

주요한 유적으로 6·25 전쟁사에 있어 유엔군 참전 상황에 대한 실증적 자료며 생생한

현장으로 그 보존 가치가 있다.

위 2장의 화장장 사진은 2015년 10월 11일 탐방시 찍은 사진으로

오늘은 도로에서 화장장을 바라보면서 당겨 보았어나 굴둑 머리 끝부분만 조금 보인다,

농지만 있는곳에 말끔한 건물도 보이고

작은 주택에 전기패널이 설치되여 있는 집도 보인다,

이렇게 빤히 보이는길은 한구비 돌아갈때 마다 무척멀게

느껴지면 그날은 걷는게 더 힘들어 진다, 나는 이길을 3번씩이나 걷고 있어

이 다음이 어디인지? 알기 때문에그런지 오늘도 전혀 힘들지가 않다,

평화누리길 이정표가 아닌 새로운 이정표가 보인다,

임진적벽길 구간 안내판이다,

걷기 여행길과 자전거여행길 안내다, 자세히 그려 놓은건 맞다,

그러나 복잡한것 보다는 간단 명료하게 그리는게 여행자에게는 도움이 된다,

동이리 부대 앞이다,

이번 편은 여기 까지다,

다음편에서는 임짐적벽길이라는 이름이 붙을 정도로 아름다운 적벽을 볼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