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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흐르듯이 순리대로

한양도성 북악산구간(흥인지문-숙정문- 곡장)2020년 11월 08일) 본문

Trail(둘레길)/한양 도성길

한양도성 북악산구간(흥인지문-숙정문- 곡장)2020년 11월 08일)

물흐르듯이순리대로 2020. 11. 10. 00:55

동쪽에있는 대문이라서 동대문이라 부르는 흥인지문(興仁之門)

조선시대 한양도성 동쪽성문인 흥인지문(동대문)은 대한민국 보물 제1호다,

본래는 흥인문 이었으나 풍수지리상 한양의 동쪽이 비어있다 해서

지(之) 자를 붙여 무게감을 실어 주었다고 한다. 1996년 일제강점기 문화재 재평가로

흥인지문 이라는 본래 이름을 되찾은 한양도성 4대문 중 동쪽 대문이다,

동대문 우측 한양도성이 있는 방향의 공원은

예전에 대학병원이 있었든자리다, 지금은 이렇게 흥인지문 공원으로 조성했다,

이제부터는

한양도성 낙산구간을 따라간다,

한양도성 낙산구간은 내외측 모두 탐방을 할수있는

구간으로 성밖은 낙산성곽동길이고 성안 내측길은 낙산성곽서길의

도로명 주소가 붙었다,

성바깥 산비탈에 다닥 다닥 붙어있는 마을은

종로구 창신동으로 이 마을은 예전부터 봉제골목으로 유명한 곳이다,

낙산성곽서길을 따라 올라가다가보면 이화동쉼터에

대형으로 출력한 사진들을 빨래집게로 주렁주렁 걸어놓았다, 이 사진들은

모두 낙산성곽의 사진들이다, 전시할 곳이 이곳뿐이 였는지? 작은 공간이라도 마련해서

오래도록 전시를 하는게 좋을것 같은데 여력이 안되는 여건이 안타갑기만다,

한양도성 성곽은 이렇게 암문(暗門)이 곳곳에 있다,

성곽으로 단절된 내 외부를 연결하는 통로 문이기도 하지만 유사시 적의

침투를 차단하는데 용이하고 아군의 병력과 물자운반을 원활히 하기위해 만들어진

문으로, 암문이란? 글자 그대로 숨겨진 문이다,

성곽 내측에서 암문으로 성곽 바깥 낙산성곽동길로 나왔다,

이곳에는 단풍이 곱게 물들어 있다.

성곽 내측에서는 성곽의 높이가 낮지만 외측은 그 높이가 상당하다,

얼핏 보기에도 4~5m 의 높이는 되겠다,

성 바같길을 잠시 따라 가다보면 낙산공원으로 들어가는 길이있다,

이곳 낙산공원은 마을버스가 다니는 곳으로, 동대문역 2번출구 정류장에서

종로3번 마을버스로 10여분 정도의 거리다,

낙산공원은 서울시내 야경 조망권이 아주 좋은곳이라 알려저 있다,

낙산공원에서 보이는 남산 아래 도심

그리고

창덕궁과 경복궁 인왕산 방향

낙산놀이 광장에서 다시 성곽 외부로 나간다,

이곳에도

내 외부를 연결하는 암문이 있다,

한양도성 낙산구간,

한양도성은 조선 건국초에 태조는 한양천도를 위하여

궁궐과 종묘를 먼저 지은 다음, 1395년(태조4)9월 도성축조도감(都城築造都監)을

설치하고 정도전(鄭道傳)에게 명하여 도성성터를 측정, 조사하게 했다.

정도전은 백악(白岳)을 비롯하여 인왕(仁旺), 목멱(木覓),

낙산(駱山)에 올라 실측을하여 사산(四山)을 연결하는 5만 9500척의 성터를

결정하여 오늘날까지 이어저 내려오는 한양도성의 기초를 마련했다,

성곽길을 따라가는길 삼군부 총무당이라는 이정표가 있다,

내용은 이곳에서 약 170m 떨어진 곳에 삼군부 총무당이 있는데 세종때 철페된

삼군부를 흥선대원군이 1865년 부활시키면서 군무를 통솔하고 변방에 관한 일까지 관장하든

삼군부 건물이 이곳에서 170m 거리에 있다고 안내되여있다,

도성 각자성석 안내도 있는데

성곽돌에 새겨진 이곳의 각자성석은

충청도 영동현(충북 영동군) 백성들이 성곽공사를

담당했든 구간시점을 표시한 성석이다,

한양도성은 전국 각지의 백성들의 책임구간으로 축성을했다,

매구간 600척을 6등분하여 각 공사 구간에 판사(判事), 부판사, 사(使), 부사,

판관(判官) 등 12명씩을 임명하여 민정을 독려하여 견고하게 축성하도록 책임을 맡겼어며.

책임진 부분에 해당하는 성벽에 관직과 군명(郡名)을 새겨넣어 책임을 분명하게

하도록 했는데, 그 흔적이 600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렇게 남아있다

보이는 문이 혜화문이다, 조선왕조 건국 5년 뒤인 1397년(태조 5)에

도성을 에워싸는 성곽을 축조하면서 함께 세운문이다. 이때 도성에는 4개의 대문과

4개의 소문이 설치되었는데, 소문 가운데 동문과 북문 사이에 위치하여

동소문(東小門)이라고 하는 문이다.

이 문을 나서면 수유현(수유리)을 거쳐 의정부, 양주로 도로가 이어졌다.

당시 북대문은 일반인의 통행이 금지되었기 때문에 혜화문은 양주, 포천 방면으로 통하는

중요한 출입구 구실을했다. 일제강점기인 1928년에 도시의 확장과 더불어 도로가

뚫리면서 헐렷다가 복원한 문이다,

혜화문에서 부터 한양도성은 거의 사라젓지만 그래도 다행스러운 것은

도성 기초성곽 돌들은 남아있다, 혜화문을 내려 서면 보이는 한양도성 혜화동 전시안내센터를

지나가면 천주교 건물이 높게 서 있는데 이곳 아래로 성곽돌들이 보인다,

이어지는 주택들 담장역활로 변한 성곽길을 따라가면

경신중고등학교가 있는데

성곽은 이렇게 경신고등학교 옹벽 돌로 변했다,

600년이라는 오랜 세월의 역사를 이렇게 라도 볼수있다는게,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하나,

경신고등학교에서 서울과학고등학교 사이에도 도로(혜화로)가

나 있어 도성은 끊어진다, 끊어진 도성은 서울과기고 건물 중간지점에서

사진에 보이는 것처름 와룡공원으로 이어진다,

여기서 부터는

와룡공원으로 올라가는 오름길이다,

2020년 막바지 가을의 단풍이 화려하게 피여난

서울국제고등학교 옆길을 따라

와룡공원으로 올라간다,

이길은 성곽옆으로 난 아스팔트 포장길보다 더 좋은 흙길이다,

올라가면서 왼쪽에 바로 붙어있는 길이다, 

다음주가 되면

볼수 없을것도 같은 끝물인 단풍이

화려하게 꽃 핀 한양도성 성곽 단풍길을 따라

초겨울의 쌀쌀한 바람을 맞어며 올라간다, 아마도 서울성곽길 중

이곳의 단풍이 제일 아름다울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이곳에도 암문이 있다,

복정마을 로 나간다는 안내표가 붙어있다,

이어지는 성곽 오름길 너머로

보이는 성북동일대 와

와룡공원으로 올라가는길 왼쪽

종로구 명륜3가 산2-13번지 일대 자생 숲 단풍들도 보면서

계속되는 오름길로 올라간다,

끝에 보이는 곳이 와룡공원 갈림길이다,

직진은 군부대길이고 왼쪽은 성균관대 후문, 그리고 오른쪽은

한양도성 성곽길로 이어지는 길이다, 이곳 도성 내측은 군 관할구역으로

통제되여 있어서 오른쪽 도성밖으로 한양도성길이 이어진다,

와룡공원 갈림길에 있는 각종 안내판

단풍이 곱게 핀

성곽길을 따라 숙정문 방향으로 간다,

가는길 옆 나무 울타리가 있는 곳이 있는데 이 나무 울타리는

조선시대의 독특한 조경기법으로 식물을 소재로 만든 친환경 울타리다,

궁궐의 핵심지역과 일부 상류층의 정원에만 사용되였어며 공간을 깊고 아늑하게 만들어

생기가 나게 하는 아름다움이 있다, 이 조경울타리 이름은 취병(翠屛)이다,

창덕궁 후원에서도 볼수있다,

길은 잠시 성곽을 비켜서 가다가 이제 다시 성곽내로 올라간다,

낮은곳에서 성곽위로 올라가야하니 올라가는 계단이 많이높다, 빈몸으로 올라가기도 힘든

높은 곳의 성곽이니 적의 침공를 막는 역활로서는 최적의 조건인것 같다,

성곽위에 올라 바라보는 성북동 왼쪽에 삼청각도 보인다,

三淸閣은 성북동에 있는 전통 문화공연장으로, 1972년 건립되어 1970년~1980년

요정 정치의 산실로 대표되었든 곳이다. 2000년 5월 서울시가 삼청각 부지와 건물을 문화시설로

지정해, 리모델링 공사를 끝낸 후 2001년 10월 새로운 전통 문화공연장으로 문을 열었다.

새롭게 단장한 삼청각은 공연장, 한식당, 찻집, 객실등으로 운영한다,

대지 5,884평, 연건평 1,331평으로. 6채의 한옥이 있으며, 월요일을 제외하고는

연중 전통공연이 열리고 혼례나 약혼식 장소로도 사용되며

운영은 세종문화회관이 맡고있다.

한양도성 말바위 안내소다, 여기까지는 자유롭게 올수있어나

이곳부터는 통행 비표를 발급 받아야 들어갈수있다, 종전에는 인적사항을 적어

신분증과 함께 제출하면 비표를 발급해 주었는데 오늘은 신분증 확인없이 비표를

나누어주고 출입구에서 지하철 탈때처름 찍고 들어가면 된다,

말바위 안내소니 말바위가 있는것은 맞겠다, 말바위란? 어떤 바위일까,

말바위 유래는 이렇게 안내되여 있다, 조선시대 말을 이용한 문무백관이 시를 읊고 녹음을

만끽하며 가장 많이 쉬던 자리라 말(馬)바위라 불리기도 했고 백악(북악)의 산줄기에서 동쪽으로

좌청룡을 이루며 내려오다가 끝에 있는 바위라하여 말(末)바위라 했다는, 설도있는

바위가 말바위 라지만 가 본적이 없어니 어디에 있는지는 모르겟다,

여기서 부터는 비표를 목에걸고 가야한다, 신분증을 대신하니까,

이 구간은 지금 개방을 했지만 오랜세월 민간인 통행이 금지되였든 곳으로

한양도성 중에서는 가장 보존이 잘되여있는 구간이기도 하다,

이어지는 울창한 송림

이곳에서 보이는 한양도성 안과 밖은

보이는 그 자체만으로도 빛이 나는 것 같다, 물론 나만의 생각이겠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소나무 군락지는

금강송의 대표지역인 동해안에서도 흔하게 볼수있는게 아닌데 

한양도성길에 이렇게 아름다운 소나무 숲이 숨어 있다는게 믿기질 않는다,

숙정문에서 약1km 정도에 있는 촛대바위 쉼터에서

내려다보이는 서울도심

경복궁과 광화문광장,

한양도성길에서 경복궁이 이렇게 잘 보이는 곳은 거의없다,

앞에 있는 산에 가려서 청와대는 보이지 않지만

이제는 곡장으로 올라가는 마지막 계단이다,

새로 길을 개방한 북악산 북측 북악산둘레길은 가다가보면

어딘가에 둘레길 연결 안내판 보일거라보고 청운대 아래 넓은 쉼터까지 내려왔다,

그런데 아니였다, 지나온 곡장입구로 다시 올라갔다,

곡장 위에 놓여진 데크계단길이 곡장 넘어 둘레길로 연결되는 입구였다,

성곽은 성벽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에 부수되는 여러가지 시설을 포함하는 용어다,

성곽에는 우선 성벽과 성황(城隍 : 垓字 혹은 塹濠 혹은 溝, 海子)이 있고 성문(城門)과 여장(女墻)

그리고 타첩(垛堞), 옹성(壅城 혹은 甕城), 곡성(曲城), 치성(雉城), 성우(城隅), 암문(暗門),

수구문(水口門) 등이 있는데 이곳은 한양도성 곡성이다,

곡장위 데크계단에서 보이는

곡장에서 부터 청운대와 백악일대의 한양도성 성곽

그리고 또 한곳의 조망, 한양도성 북악산구간을 여러번 다녀갔지만

오늘 보이는 이런 조망은 처음이다, 앞에 보이는 곳은 촛대바위 쉼터에서나 보이든

광화문 일대와 경복궁이다, 근정전과 광화문 세종대왕상과 이순신장군 동상까지도 선명하다,

곡장에서 성 밖으로 나가는 높은 다리로 인해 상상도 못했든 변화가 일어났다,

곡장 아래로 내려가기 전에 다시 한번 더 돌아보는 청운대와 백악일대 성곽

그리고 건너편 인왕산 정상으로 이어진 성곽은 그 끝이 어디일지? 가늠조차 안되는

상상을 하게한다, 인왕산을 오르는 오른쪽 마을은 종로구 부암동 일대다,

이제 곡장을 내려왔다, 여기서 말하는 곡장 (曲墻)은 성곽 시설 중

하나로, 방어적으로 중요한 지점에 성곽 일부분을 둥글게 돌출시킨 것을 말한다.

치성(雉城) 과는 비슷하지만 다르다.

곡장 아래 조금은 넓은터에서 쉬고있는 시민들

그 옆으로 처진 철책이 이번에 개방된 지역이다, 보이는 철책

안은 물론 외측까지도 통행이 제한되였든 곳이다,

2020년 11월 8일에 다녀온 길( 붉은 선 지도)

이번편은 아래 흥인지문에서 중간 곡장까지의 탐방기록이다,

이어지는 일기는 곡장에서 백사실계곡, 세검정까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