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물흐르듯이 순리대로

해파랑길 29코스 호산버스터미널~용화레일바이크역(2013년 8월 4일) 본문

해파랑길(동해안 일주)/동해안국토종주결산

해파랑길 29코스 호산버스터미널~용화레일바이크역(2013년 8월 4일)

물흐르듯이순리대로 2020. 12. 20. 06:43

29코스 출발지인 호산버스터미널은

삼척시 원덕(遠德)소재지다, 원덕이란 지명의 원?은

멀원(遠)자를 쓴다, 멀리 떨어저있기 때문에 멀(遠)자를 쓴 것이 아니고,

(멀)마을을 가르키는 (말)과 발음이 비슷하다는 점을 이용해서

그렇게 차자(借子)한 것이다, 음차도 아니고 훈차도 아니다,

이를 사음훈차(似音訓借)라 한다,

 덕()은 땅의 옛말 (닥/덕)을 음차한 것이다, 결론으로

원덕(遠德)은 마을+땅이라 할수 있어며(말+덕)표기한 것으로 봐야한다,

(말+덕) (말+땅)은 크고 넓은 땅의 지명이다, 마을을 나타내는 (말/멀)은 크다는 뜻도

내포하고 있다, 크기가 으뜸가는 동네라는 뜻의 (맏닥, 말닥, 멀덕)지명을 遠德이라

표기한 것이다, 한자의 단순한 뜻 만으로 멀고 가깝다는 뜻으로

풀이하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하겠다,

해파랑길에서 뜬금없이 지명을 꺼내든 것은

이곳 주민들은 원덕은 삼척에서 멀리 떨어저 있는 곳이라 해서

멀() 자를 써서 원덕이라 했다고 알고있다, 이래서는 안되겠다 싶어서

지명의 어원을 바로 아는 것도 좋을 것 생각에 풀어보는 말이니

참고를 하고 안 하고는 원덕읍 주민들의 몫이다,

해파랑길 29코스는

호산버스터미널에서 용화 레일바이크역까지 22km다,

신라시대는 죽령현, 고려시대는 옥원현 이였든 이 마을은

조선시대는 동대문에서 평해까지 이어지든 관동대로 기도하다, 원덕읍

소재지인 호산시내를 지나간다, 오랜 역사가 있는 마을이지만 아쉽게도 역사적인

유적이나 오래된 사찰도 남아 있는게없다, 호산초등학교가 보인다,

1921년 5월에 설립된 학교니 100년의 역사를 가진 학교다, 

초등학교 옆으로 원덕 중 고등학교도 있다,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를 지나서 구, 7번 국도인

낭만가도 수로부인길을 간다, 어제도 잠시 언급을 했지만 낭만가도든

수로부인길이 든 이지역 사람들이 알아서 할일이니 토달고 싶은 생각은 없다,

이름이라도 붙였어면 이름값은 해야하는데 그럴 생각은 없는 것 같다,

그러니 길을가는 사람은 알아서 가야한다, 임원항으로

가다보면 주유소가 있는데 맞은편에 소공대비 입간판이 보인다, 소공대비를

찾아가는게 해파랑길 29코스다, 구, 도로로 이어지는 길은 낭만가도라 했어니 도로만

따라가도 동해안 일주길은 맞겠지만 소공대비로 이어지는 길이 관동대로다,

그래서 해파랑길로 지정된 관동대로를 찾아간다, 

해파랑길이든 수로부인 길이든 지도를 들고 찾아가야 한다,

삼척에서는 길 안내 이정표나 리본은 사치다, 해파랑길을 찾아가야하니

소공대비 간판이 보이는 삼거리에서 미향가든이라는 식당앞 길로

수릉마을로 들어가 소공대비가 있는 소공령으로 가야한다,

여기는 지금 변신을 하고있는 동네다,

국책사업인 LNG기지 와 화력발전단지 공사중이여서 

땅만 있어면 택지조성을 하고 집을 짓는다, 

외길이다, 이 길만 따라 걷다보면 소공대비 입구가 나온다,

자칫 길을 잘못 찾아들어설 염려는 없는 곳이지만 인적이 드물었든 동네가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하니 산골에도 식당 간판이 보인다,

삼척은 전 구간이 관동대로가 잉태한 중요한 역사를 이어가는 지역이다,

더욱이 7번 국도는 해안을따라 나 있어 아름다운 경관이 어느 지역보다도 빼여난 곳이다,

동해안 제일의 트레킹로드로 알려진 영덕 블루로드 B코스는 아름다운 해안길도 있지만 영덕군은

해안길에 대한 스토리(대게와 해안의 풍광을 소재로)를 만들어가는 일을 꾸준히

하고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먼길마다 않고 찾아간다,

소공대비로 올라가는 간판이 보인다, 화살표시대로

오른쪽으로 약 3km를 올라가면 소공령이다, 소공령은 소공대비가

있는 곳이다, 호산 버스터미널에서 약 3km정도 거리인

이곳에 소공대비로 가는 들머리가 있다,

수릉길에서 소공대비로 올라가는길 초입은 소형차 한대가

겨우 지나갈 정도로 협소한 길이다, 아마도 사유지를 통과해야하기 때문에

길을 조금 더 넓히기는 어려웠을 것 같다, 소공령으로 올라가는 길은 옜 관동대로로

지금은 임도가 개설되여있다, 해파랑길 29코스는 이렇게 이어진다

소공령으로 올라가는길 옆에는 공덕비도 보인다,

이 길이 조선시대 한양에서 대관령을 넘어 경북으로 이어지는

유일한 관동대로 로 우마가 다니든 길이 였어니 큰 길에 공덕비를 세우는

것이야 예나 지금이나 당연하겠지만, 역사의 길 이름을 두고 궂이

수로부인길이라는 전설의 이름을 붙인 이유가 궁금하다,

오늘따라 하늘이 참 맑다, 여름철이니 더위야

당연하겠지만 맑은 하늘을 바라보며 걷는 기분은 무척이나 새롭다

이런 길은 목적지를 향해 힘들게 가야하는 길이 아니다,

자연을 즐기면서 걸어야 한다, 그렇게 천천히 올라가다가 잠시 쉬여갈때 쯤의 장소에

1580년 강원도 관찰사를 지낸 송강정철에 대한 안내가 설치되여 있다, 어제 지나온 월천리

대곡목재에 있는 관찰사 비 와 이곳의 송강 정철, 그리고 곧 만나게 되는 황희정승의

소공대비가 모두 이 길에 있어니 이 길은 조선시대의 역사가 깃든 관동대로

(大路)가 잉태한 역사의 현장이 아닐까? 

진주관 죽서루(삼척)아래 오 십천의 흘러내리는 물이 천하절경을

비춘 그림자를 동해로 담아가니 차라리 그 물줄기를 임금님 계신 한강으로

돌려 서울의 남산에 대고 싶구나, 관원의 여정은 유한하고 풍경은 볼수록 싫증나지 않어니

그윽한 회포가 많기도 많고 나그네의 시름도 달랠길 없구나, 신선이 타는 땟목을

띄워내여 북두성과 견우성으로 향할까?, 사선을 찾으러 단혈에 머물까,

- 송강정철 관동 별곡 중에서 -

수릉에서 소공대비 까지는 전 구간을 임도를 따라 걸어야 한다,

이곳 임도가 관동대로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국 어느곳이나 다 있는 그 흔한

이정표는 어디에도 없다, 설치 자체를 안햇어니 있을 턱도 없겠지만

이곳이 소공령이다, 가파르지는 않았지만 계속해서

오름길을 올라서 산 정상으로 올라가면 항상 기다려 지는게 있다,

산 위에서 보는 아랫녁은 어떤 모습일까?

산 능선 치고는 꽤나 넓은터에 소공대비가 있다,

이 정도의 너른 공터가 있었어니 말을 타고 가다가 멈춰서

쉬여가는 장소가 아니였을까?

삼척 소공대비(三陟 召公臺碑)는 강원도 삼척시 원덕읍

노곡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비석이다. 1986년 5월 23일 강원도 문화재 자료 

제107호로 지정했다, 사전에 있는 교과서적인 이야기를 더 해보면

조선 세종 5년(1423) 이 지역에 대흉년이 들어 백성들이 굶주림에

고통받고 있었을때. 조정에서는 황희선생을 강원도 관찰사로 파견했고 부임해 온

황희는 정성을 다해 백성을 도와 마침내 어려움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백성들은 그 은혜를

잊지 않고 당시 황희가 가끔 쉬곤하던 와현(瓦峴)이라는 고개에 돌을모아 단을 쌓고

소공대라 이름하여 그의 공적을 기리고자 했다.

100년후 중종 11년(1516) 그의 증손인 황맹헌이 강원도 관찰사로

부임해 이곳을 둘러 본 뒤 보수하고 비를 세웠는데, 비바람에 쓰러져 부러졋다.

현재 남아있는 비는 선조 때 삼척부사로 부임해온 그의 6대 손 황정식이 옛 비를 치우고

그 터에 다시 세워 놓은 것 이다.

비는 낮고 널찍한 받침돌 위로 비몸을 세운 간결한 모습으로,

비의 윗면 양쪽이 둥글게 다듬어져 있다. 비 몸 앞면 위쪽에 소공대비 라는 비의

명칭이 가로로 적혀 있다. 선조 11년(1578)에 세운 조선 중기의 일반적인 비의 형태로,

당시 영의정이었던 남곤이 비문을 짓고, 려원군 송인이 글씨를 썼다.

나는 오늘 소공대비 앞에 섯다, 언제 다시 이곳에 올려는지는

알수 없지만 오늘은 오늘 만으로 가장 소중한 날이다, 나는 언제나 카메라와

함께하지만 정작 나 자신의 인증은 잘 기록하지 않는 사람인데도 오늘은 예외다,

이 곳에 다녀간 흔적은 꼭 남기고 싶었기 때문은 아니였을까? 

소공대비에서 내려다 보이는 바다는 임원항이다,

또한 소공대비에서는 남쪽으로 경북 울진, 죽변항까지도 보인다,

또 다른 사전에는 소공대비를 삼척 노곡리 마을

옛 국도(관동대로)변에 서 있는 비로, 소공대 위에 놓여있다. 라고했다,

소공대비를 뒤로하고 가든 길을 계속해서 간다,

소공대비가 있는 이곳은 임도를 개설했는데 임도 일부는

관동대로 이며 지금은 수로부인 길이다,

소공대비에서 약 100m 정도를 더 가면 이런 갈림길과 만난다,

가든길로 직진하면 검봉산으로 가고 오른쪽으로 들어가면 임원3리 사기촌이다,

해파랑길은 사기촌으로 가야하기 때문에 오른쪽길로 들어간다,

그저 이길이 관동대로 가 맞는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왔는지

어디까지 얼마나 더 가야 하는지? 표시는 없자만 양갈래길 가운데 장승이 있다,

장승에는 ㅡ 자로 표시해 놓은게 보인다, 무슨 뜻인지는 설치한 사람들

만이 알겠지만 답답한 노릇이다,

삼거리에서 갈림길에서 100m 정도를 더 가니 멧돼지를

키우는 곳이다, 사람은 거주하지 않는지 여러 마리의 개가 지키고

있는데 인기척이 나자 한꺼번에 짖어댄다,

멧돼지농장 입구로 가니 길이없다, 주변에 있는 수풀을 헤치고

찾아보니 낭떠러지만 보이고 갈 곳이 없다, 돼지농장으로 들어가봐도 연결된

길은없다, 돌아 나가다가 다시 들어와서 화살표 숲으로 들어가 보았다,

분명 이곳 어딘가에는 길이 있어야 한다, 큰 프라스틱통이 있는 곳 옆,

우거진 가시텀불 오른쪽을 헤처보니 사람이 지나갈수 있을것 같은 곳이 나온다,

하지만 한길이 넘는 가시텀불 이라 정말 길이 맞을까? 라는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어니 나무가시에 찔리고 할키면서 헤치고 들어갔다

그리고 또 어른 키 만큼 자란 잡목 숲을

헤집고 들어가니

이런 장승이 보인다, 어구처니가 없다 길목에 있어야 할

이정표 역활을 하는 장승이 왜 이렇게 필요도 없는 곳에다 숨겨 놓았을까?

더 이상 할말이 없다, 이 길이 조선시대 관동대로라는 역사를가진 길임에도 뜬금 없이

수로부인길이라고 명명을 한것까지는 그렇다고 치자, 그래도 이 정도라면

삼척시가 펼치는 사업중 최악의 행정이다,

이제는 그냥 감으로 간다, 분명히 위치상 이렇게 가야할 것 같아서다,

더욱이 다른 곳으로 갈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아서다,

이 길이 동대문에서 평해까지 이어지든 920리의 관동대로인가?

그리고 몇년 전부터 조성한 부산에서부터 고성통일전망대까지 동해안 1800리 길인

해파랑길 맞는지? 더욱이 삼척이 새로낸 삼척수로부인길 1구간이 맞는 건가?

내가 어찌 알겠소 만 정말 모르겠어니 답답 하기만 하다,

아랫녁에 임원 3리 마을이 보이다,

감으로 왔지만 제대로 왔다,

그러나 초행길인 분들은 정말 잘 찾아가야 하는 길이다,

사기촌 성황당 소나무가 있는곳으로 내려 왔다,

사기촌은 또 하나의 고개를 마무리 하는 곳 이다, 소공대비에서 여기까지

내려온 거리는 얼마되지 않지만 찾아 오는 길은 멀었다,

사람의 발길이 끊어진지 50여년, 이제 이 길은 여행자들에 의해

다시 깨어나고 있다. 1500년이나 되였다는 신령스런 소나무가 그늘을

내주는 이곳 성황당을 따라 사기촌을 나간다,

임원 3리 사기막골 이라는데 어디를 봐도 사기를 굽든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지도에도 사기막골이라는 표기는 되여 있지만

어디에도 사기막골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 내가 지금 온길 은 앞에 보이는 작은

산이다, 붉은색과 하늘색 양철 지붕이 보이는 건물 앞에서 다리를

건너 와 개천을 따라 올라간다,

이길이 검봉산 자연휴양림으로 가는 길이다,

자연휴양림은 여기서 2km 전방에 있다는 안내판이 있는데

출발지인 호산에서 소공대비, 사기막골, 검봉산자연휴양림, 아칠목재,

등등의 이름표만 손에들고 해파랑길 29코스를 찾아가고 있다,

검봉산 자연휴양림 앞으로 가라고 했어니

이 길은 해파랑길 29코스가 맞다,

개울을 따라 차한대가 겨우 다닐것 같은 길로 올라가는데

자연휴양림 입구쯤에 펜션들이 있는게 보인다,

로즈밸리펜션 이라는 간판이 보인다,

자연휴양림은 깊은 산이니 찾는사람들이야 따로 있지만 여기있는 펜션들은

무엇을 즐기려 온 사람들을 위해 있는건지? 산, 아니면 바다?, 그래도 장사가 되니까

있겠지만 로즈밸리 광고는 여행자 여권을 발급하는 곳이라 했다

펜션이 있는 곳은 검봉산 자연휴양림으로

들어가는 길에 있지만 내가 가는 길은 직진이다, 앞에 보이는 장승이

직진으로 가라고 알려준다, 이제는 아칠목재를 찾아간다,

이렇게 깊은 산속에 또 펜션이 있다,

길은 이렇게 갈라 지기도 하지만

GPS로 찾아보니 직진이다, 가는길 왼쪽으로는 개울이 있다,

오늘처름 더운날은 개울에서 손이라도 씻어면 좋으련만 개울은 말라있다,

서울은 두달 가까운 장마였지만 이곳은 가뭄이 계속되였다고 한다,

그러다가 보이는 수로부인길 장승

참 멋대가리 없는 전시 행정의 표본을 보는 것 같아서 씁쓸하다,

수로부인길이라 적힌 장승이 있는 곳, 해파랑길 정보로는 버드나무 군락지로

가라고 했는데 막 공사가 끝난것 같은 콘크리트 포장길이 나온다

사람들은 이렇게 편의에 따라 길을 만든다,

그러나 이런 곳에 사람이 만드는 길은? 길이 아니라 파괴다,

중장비로 산을깍고 개울을 메우고 그리고 길바닥에 콘크리트를 쏫아 붙는다,

길을 만들어도 자연속에 스며든 길을 만들수는 없는 것일까?

참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사기촌에서 부터 버드나무

군락지라는 이곳까지 한번도 흙을 밟아 보질 못했어니 어찌 이 길이 옛 길일까?

갯버들 군락지라 쓰인 안내판이 오히려 이상하게 보인다,

산을까고 세멘트를 부어 손쉽게 길을 낼수는 있겠지만 이 길은 과연 누구를 위한 길인가?

여행자? 아니면 이해 관계가 있는 주민? 정말 한심하다,

농지도 자연으로 돌아 가는게 자연의 이치다,

논 농사를 짓든 곳이면 습지였을게고 습지였어니 갯버들이 무성하게 자라는

환경이 되였을 것이다, 꽤나 넓은땅에 갯버들이 자라고 있었다,

산허리가 뚝 짤린 저곳이 아칠목재다,

옛날에 여기는 꽤나 깊은 산길이였든 모양인데 지금은 신작로로 변했다,

흔적도 없이 사라진 국시댕이가 사람이 파괴한 자연을 보여준다,

이곳에는 국시댕이 가 있었고 아름드리 숲이

우거저 있었든 곳 이라는 안내판이 부끄러울만큼 콘크리트로

범벅을 한 길을 뒤로 하고 지나 간다,

사람이 길을 만들면 기존에 있든 길은 무참히 파괴된다,

이게 바로 인간의 속성이다, 파괴를 해야 새로운 역사를 만들기 때문이다,

이제 아칠목재를 지나 용화로 간다, 이 길을 끝까지 가면 바다다,

산길은 산길인데? 콘크리트 길이라서 햇볕에 반사되여

올라오는 콘크리트 반사열이 대단하다, 여기를 지나가는 시간이 11시 경인데

땀이 줄줄 흐른다, 입었든 옷을 벗어서 짜면 땀이 한말은 솟아지겠다, 

장마속의 가뭄? 타지역은 두달 가깝게 장마철이 였는데

영동지역 하천은 이렇게 말라 붙어 풀만 무성하다, 개울에 물이 가득흘러

넘처야 이렇게 더운 날은  날 손에 물이라도 묻히는 건데

용화교와 레일바이크 용화역이 보이는 곳까지 왔다,

용화에 있어니

옹화초등학교? 용화에 있어도 장호초등학교다,

장호초등학교 밖 하천 옹벽에 세워놓은 수로부인길 장승,

이곳에 왜 이장승을 세워 놓았을까? 여기서 연결되는 길은 어디로 가야하는 것일까?

용화레일바이크 정류장에서 해파랑길 29코스를 끝낸다,

이제 다시 해파랑길 30코스의 길을 또 가야 한다, 그래도 2013년 8월 4일

오전에 해파랑길 29코스 22km의 길을 끝냈다,

삼척지역의 해파랑길은 전구간이 조선시대 관동대로 였다고 해도

모자람이 없는 길이다, 그럼에도 이 길을 삼척에서는 수로부인길이라고 한다,

어제 갈령재에서 걸어온 길이 수로부인길 1구간이라고 한다, 뜬금없는

수로부인길 이라는 말에 할말이 없다,

아래 지도에 붉은 점선이 해파랑길이다, 오늘은 이정표 하나

제대로 정비되여 있지 않은 길을 이 지도를 들고 찾아 왔다, 가면 갈수록

알길이 없는 해파랑길 삼척구간, 영덕블루로드나 국립공원 이정표 시설물들 까지는

바라지는 않지만 다만 어디에 이정표를 세우고 어디에 리본이라도 매 달아야

하는지는 관리청은 고민을 많이해야 할 것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