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흐르듯이 순리대로
올레길 18코스 제주도심-조천 올레 19,8km(2021년 2월 23일) 본문
2021년 2월 23일 제주공항에 도착한 시간이 08시 20분,
미루고 미루었든 올레길을 오늘부터 시작한다, 며칠이나 걸릴지는
예측하기는 어렵지만 올레길 거리가 425km 이니 20일 정도면 끝까지 돌아볼수
있지않을까? 계획은 조금 무리해서 17일간이다,
올레길은 21구간에 26개코스다, 길은 처음 시작인 1코스부터 돌아보는게
일반적이지만 제주공항에서 1코스 시작지점으로 가자면 대중교통편을 이용해서
찾아가는시간만 2시간 정도는 걸릴수도 있다, 2시간이면 7km는 걸을테니 시간이 아깝다,
제주공항에서도 올레길 17코스로 연결이되니 이 길을 따라 시작을 한다,
공항에서도 올레길 리본이 보인다,
리본만 따라 가면된다,
올레 26개 코스를 돌아보면서 찍은 사진이 4,500장 정도다,
찍는다고 모두 다 잘 나오는게 아니기 때문에 삐뚤어진 사진, 어두운사진,
역광사진, 등등을 비틀고 색칠하는 작업만 만 3일 반나절이나 했다, 또 하나의 문제는
코스별로 사진이 너무 많아서 어떤 사진을 올리고 어떤 사진을 버려야 하는지도
고민이다, 걷는 것도 힘들었지만 사진도 그냥 얻어지는건 아닌데,
코스별로 2~3회에 나누어서 정리를 하려고 했어나
연결이 잘안되는 점도 있지만 나중에 찾아보면 스스로 보기에도 이해도가
떨어지기 때문에 사진이 많드라도 코스별로 한편으로 정리한다,
이길을 따라 올레18코스 시작 지점인 간세라운지로 간다,
물론 간세라운지를 찾아가는 길에는 17코스 끝 구간도 지나가야 한다,
그러나 17코스 지역은 17코스에 붙여서 정리를 하고 오늘은
18코스 부터 정리를 한다,
18코스는 제주시의 도심 한복판, 간세라운지에서부터 시작된다.
제주항을 지나 언덕을 오르면 제주 시내권에 박힌 보석같은 두 오름, 사라봉과
별도봉이 아름다운 전망을 선사해 준다. 4.3 당시, 마을 전체가 불타 없어져 흔적만 남은
곤을동 마을터에서 제주의 아픈 상처를 되새기면서 신촌으로 제사 먹으러 가던 옛길을 따라 길을
이어간다. 18코스의 절정, 시비코지에서 닭모루로 이어지는 바당길은 숨이 탁 트이는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 올레 홈 페이지 인용 -
올레길에서는 올레길 패스포트에 각 코스별로
출발지점과 중간지점, 그리고 도착지점에서 스템프를 찍도록 했다,
아래 왼쪽에 찍힌 스템프는 이번 여행 중 찍은 것이다,
18코스 시작지점인 간세라운지다, 이곳을 찾아오기 위해서는
제주도심을 지나와야 하는데 자칫 시그널이 없거나 못볼 경우를 대비해서
네이버나 다음 지도로 찾아가는 것도 방법일 것 같다,
출발지점인 이곳에서 18코스 시작점 스템프를 찍는다,
올레길을 걸어면서 왠 스템프냐고 할수도 있겠지만 완주를 인증 받을 필요가
없다면 궂이 스템프를 찍을 필요는 없다, 그러나 먼길을 걷다보면 스템프함이 있는 곳을
찾아가는 재미도 있다, 스템프를 찍기위해 가는게 아니라 올레길을 따라가다 보면
스템프함이 기다리고 있는게 반가울수도 있기 때문이다,
2021년 2월 23일 AM 10시경 올레길을 시작한다,
지금 부터의 올레길 일기는 별다른 사설을 많이 붙일수 없다,
그건 많은 량의 사진을 한꺼번에 정리 해야하는데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일단 모두 올려놓고 천천히 여행일기를 보완하려는 생각이다,
올레길18코스는
제주동문시장을 지나간다,
건입동에 들어서자 김만덕이라는 이름이 보인다,
김만덕(金萬德)은 1739~1812 시대를 살다간 조선시대 상인이다, 제주도에
대기근이 닥치자 전 재산을 풀어 육지에서 사온 쌀을 모두 진휼미로 기부하여 빈사상태의
제주도 백성을 구제했다, 이 때문에 제주에서는 의녀(義女) 김만덕으로 불린다.
김만덕은 김응렬의 딸로 태어났으며 부모를 잃고 12세 고아가 되었다.
친척 집에서 겨우 목숨을 이어가던 만덕은 나이든 기녀의 집에 의탁하였다. 어른이 된 후,
만덕은 기녀가 천시받는 직업임을 알게 되어, 제주목사 신광익에게 탄원하여 양인(良人)으로 환원되었다.
양인이 된 만덕은 객주(客主)를 차려 제주 특산물인 귤, 미역, 말총, 양태(갓의 재료)를 육지의 옷감, 장신구,
화장품과 교환하여 판매하는 상업에 종사하여 돈을 많이 벌었다.이양법(모내기)의 등장으로
농업기술이 발전하면서, 상업도 같이 발전한 18세기 조선의 시대 변화를 읽은 것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내가 편안하게 사는 것은 하늘의 은덕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검소하게 살았다. 1793년 제주도 에서는 세 고을에서만 6백여 명이나 아사할 정도로 심각한
흉년이 계속되었다. 흉년이 들어 농작물을 재배할 수 없게 되었다. 2만여 섬의 구호식량이 없으면
장차 제주 백성들이 다 굶어 죽을 것입니다.라는 장계를 받자, 2만 섬의 구호식량을 보내지만,
그마저도 1795년 수송 선박 다섯 척이 침몰하면서 구호정책은 실패했다.
이때 만덕은 전 재산을 풀어 5백여 석의 쌀을 사왔는데, 이중 450여 석을
모두 구호식량으로 기부하여 굶주림으로 죽어가던 제주도 민중들을 구원했다. 전 재산을 풀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의녀(義女) 만덕의 알현을 받은 정조가 너는 한낱 여자의 몸으로 의기(義氣)를
내어 기아자 천백여 명을 구하였으니 기특하다.라고 칭찬한 것을 보면 당시 만덕의 선행이 얼마나 큰 의미가
있는지 알수 있다. 이듬해인 1796년 만덕의 선행이 알려지자, 정조는 제주목사 이우현을 통해 만덕의
소원을 물어보는데, 만덕은 한양에서 궁궐을 보고, 금강산을 보고 싶다고 했다.
대답을 들은 정조는 관의 허락없이 제주도민은 섬밖으로 나가지 못한다.는
규칙을 깨고 만덕의 소원을 들어주었다. 또한 내의원 차비대령행수(內醫院 差備待令行首)로
삼아 정조를 알현할 자격을 주고 그녀의 선행에 대한 보답을했다. 1812년(순조12)10월 사망한 후
한 달 뒤에 구묘비문(舊墓碑文)이 세워졌다. 김만덕이 사망한 지 30여 년이 지난 1840년(헌종 6)
추사 김정희(金正喜)가 제주도에 유배되었을 때, 김정희는 김만덕의 양자 김종주(金鍾周)에게
은혜의 빛이 온 세상에 퍼졌다는 뜻의 은광연세(恩光衍世)라는 편액을 써서 주었다.
제주 주정공장 옛터(4.3 당시 민간인 수용소)
해방전후 제주주정공장(1934년 설립)은 제주도에서 생산되는 고구마를
원료로 주정을 생산하는 주요한 산업시설이였다, 이곳은 4.3당시 민간인 수용소로 이용됐다,
특히 1949년 봄에는 피난 입산했다가 귀순공작으로 내려온 사람들이 대거 수용되였어며
혹독한 고문과 열악한 수용환경으로 수용자들은 많은 고초를 격었다,
이곳에 수용되였든 청장년층 대부분은 재판후 타지방 형무소로 이송되였고
이들중 다수는 한국전쟁직후 집단학살되였다, 또한 예비 검속되였다가 이곳에 수용되였든
많은 사람들도 수장되거나 정뜨르비행장(현 제주국제공항)에서 학살되였다,
제주도는 옛 주정공장 터를 4.3의 역사 현장 위령공원으로 조성했다,
주정공장 4.3 유적지 에서 사라봉 오름으로 올라간다,
이곳은 제주항 앞이다,
사라봉으로 올ㄹ가면서 보이는 제주항
보이는 곳은 제주항 국제여객터미널이다
푸르고 맑은 바다, 그리고 제주항 일대가 내려다 보인다,
올레길을 따라가는 내내 눈이 부시다, 제주에 온 첫날 이 전경만으로도
제주올레길을 찾이 이유가 설명되는것 같다, 앞으로도 얼마나 더 많은 아름다움이
기다리고 있을지 마냥 설레인다,
그리고 가야하는 방향으로
신천포구와 조천항 일대가 그림처름 내려다 보인다,
가는길 내내 동백은 피여 있고,
화북비석거리도 있다, 제주도에는 오랜 역사를 지닌 마을이 많은데
각 마을에서는 중심지에 마을과 관련된 사람들의 치적을 기념하는 비를 세워둔다,
이러한 거리를 비석거리라 부른다, 화북포구는 제주읍성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 위치하여
제주목사 외에도 제주판관 등 지방 관리들이 이곳을 거처 부임 또는 이임하였다,
그래서 이들의 치적을 기리는 공적비 13개가 세워저 있어
이를 비석거리라 부른다, 이 비석들의 비문에는 제주를 떠나는 관리들이
자신의 공적을 과시하려는 글이 적혀있다,
제주도의 와가 김석윤 가옥이 보인다, 이 가옥은 일제 강점기(1913)에
지어진 가옥으로 일자형인 안거리(안채)와 밖거리(바깟체) 모커리(별채) 먼문간과
이문간(대문이 달린채) 쇠막(소 외양간) 통시(화장실, 돼지우리)로 구성되여있다, L자형 올레목에
위치한 먼문간으로 들어가 이문간을 지나면 마당으로 진입하는 구조다, 이 가옥은 와가와
초가로 구성되여 있는데 안거리와 이문간은 와가이고 밖거리와 모커리는 초가다,
안거리는 4칸, 와가 형태로서 상방(마루)을 중심으로 정지(부억)와
챗방(식사공간) 구들방, 고팡(곳간)으로 구성되였다, 밖거리는 4칸 초가로 상방 2개와
작은 구들이 배치되였다, 상방은 손님을 맞이 하는 공간으로 사용되여 사랑방 기능을 하였고
모커리는 가운데가 이문(대문)이며 쇠막, 구들이 배치되여 있다,
제주도 기념물 제 56호인 화북진지다, 화북진지는 조선시대
제주도의 군사적 방어 유적으로 화북진이 설치되여 있든 자리다, 조선시대 제주방어 시설은
3성과 9진이 있었는데 화북진은 그 중 하나의 진지로 조선 숙종 4년(1678) 제주목사 최관에 의해
만들어졋다, 그 규모는 둘레가 606척(184m) 높이 10척(약3m)로 동문과 서문이 있었다,
보이는 포구는 화북포구다,
벌낭포구
삼양해수욕장 끝 정자다, 여기서는 올레길 18코스
중간 스템프를 찍는다, 올레길을 시작한 첫날 첫 중간 스템프를 찍었다,
스템프 함은 이렇게 설치되여 있다,
가름선착장으로 가는 해변길
이곳이 가름 선착장이다,
가름선착장에는 용천수 빨래터도 있다,
조첨읍사무소 와
조천초등학교를 잠시 둘러보고
두말치물 용천수다, 한 번에 두말 정도의 물을 뜰수 있을 정도로
물이 풍부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상동에도 같은 이름의 용천수가 있으며
이곳 중동의 저녁 노을은 특히 아름다운 곳이라 한다,
연북정(戀北亭)이다, 제주시 조천읍에 있는, 조선시대 정자다,
사막가 평지에 자리잡고 있는 정자로 조선 선조 55년(1590)에 조천관 건물을
새로 지은 후 쌍벽정이라 하였다가 선조 32년(1599)에 건물을 보수하고 이름을 연북정으로 고쳤다.
연북 이라는 정자의 이름은 제주도로 유배 온 사람들이 한양의 기쁜 소식을 기다리면서
북쪽에 계시는 임금을 사모한다는 충정의 뜻을 담고 있다.
앞면 3칸, 옆면 2칸의 지붕은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거인의 키보다 훨씬 높게 축대를 쌓고 다진 기단 위에 세웠다. 축대의 북쪽으로 둘러싼
타원형 성곽의 모양과 크기가 옹성과 비슷한 것으로 보아 적을 보기 위한 망대의 용도로 지은
것이라 추측한다. 기둥의 배열과 건축재료의 배열방법은 모두 북한 주택과 비슷하다.
연북정은 망루의 목적을 하는 군사적 시설물이므로, 유배되어 온
죄인들이 갈 수 없는 곳이다. 따라서 한양에서 해배(유배를 풀다)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제주에 파견된 관리들이 중앙정부 즉, 임금에게 드러낸 충성심에서 연북(북쪽 즉
임금을 그리워 하다)라고 이름을 지었다는 설이 올바르다. 문헌 기록에 의하면 1590년(선조 23) 당시의
조천관을 중창하여 쌍벽정이라 하였다가 1599년(선조 32)에 다시 건물을 고쳐서 연북정이라
개칭하였다. 건물은 네모꼴에 가깝고 높이 14척의 축대 위에 동남쪽을 향해 세워져 있다.
축대의 북쪽으로는 타원형의 성곽이 둘러 쌓여 있다.
이곳의 모양과 크기가 옹성과 비슷한 것으로 미루어 보아 연북정은 망루의 용도로 지어졌을 듯 하다.
금당포 터 라는 안내도 보인다, 금당포터는 고대 전설에 나오는 터,
라고 하는데 기원전 3세기 불로장생의 선약을 구해 오도록 진시황의 명령을 받은
서불 선단이 중국을 떠나 맨 처음 도착한 곳이 이 포구로 알려저있다,
다음날 서불은 이곳에서 천기를 보고 조천(朝天) 이라는 글을 바위에
새겨 놓았다고하며 그 바위는 고려시대 조천관 건립공사때 매몰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조천연대(朝天煙臺)다,제주시 조천읍 조천리에 있는 연대로,
1976년 9월 9일 제주 기념물 제23-5호로 지정되었다.
연대는 횃불과 연기를 이용하여 정치 군사적으로 급한 소식을
전하던 통신수단 이였다, 봉수대와는 기능면에서 차이가 없으나 연대는 주로
구릉이나 해변지역에 설치되었고 봉수대는 산 정상에 설치하여
낮에는 연기로 밤에는 횃불을 피워 신호를 보냈다.
조천 연대는 동쪽으로 왜포연대 서쪽으로 별도연대와 서로
연락을 주고 받았다. 조천진 소속의 별장 6명과 봉군 12명이 배치되어 지켰으며,
현재 연대의 모습은 1975년에 수리한 것이다. 조천연대 앞 고목이 보인다,
연대앞에서 보면 뽀죽한 탑이 보인다,
탑이 보이는 도로 길을 따라가다보면
올레길 18코스 안내소 앞에 18코스 종점이자 19코스 출발점을
알리는 스템프 함이 있다, 이제부터는 19코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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