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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흐르듯이 순리대로

서울성곽길(한양도성,15) 홍난파가옥 ~ 돈의문(서대문)터 본문

Trail(둘레길)/한양 도성길

서울성곽길(한양도성,15) 홍난파가옥 ~ 돈의문(서대문)터

물흐르듯이순리대로 2015. 4. 25. 16:31

이 집은 지하1층 지상1층의 붉은 벽돌조 건물로 독일선교사의 주택으로 지어졌다고 한다.

근처 송월동에 독일영사관이 있었기 때문에 이일대에 독일인 주거지가

형성되었는데 주변의 건물들은 다 헐리고 이 집만 남아 있다. .

특히 이집은 <고향의 봄>을 작곡한 홍난파가 6년간

지내면서 말년을 보냈기 때문에 홍난파 가옥이라 부르고 있다,

홍난파는 이 집에서 지내면서 그의 대표작 가운데 많은 작품을 작곡했다.

이 집은 가파른 경사대지를 활용하여 북서쪽에 지하실을 두어

공간을 알뜰하게 활용하는 1930년대 서양인 주택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1층 동쪽에 있던 두 개의 침실은 홍난파 기념관의 전시실로 사용하기 위하여

벽을 터 버림으로써 원래 모습을 잃어버렸다고 하는데 오늘 내부는 들어가 보질 못했다,.

여기는 홍난파 가옥 앞 월암근린 공원이다,

 

 

기상청 서울 관측소 옆으로 남아 있는 서울 한양도성 눈으로 보기에도 약 200m도 안되는것 같았다,

인왕산을 내려온 성곽은 지금의 강북 삼성병원 앞 돈의문으로 연결 되였다,

그러나 이 성곽은 여기서 끊어저 더이상 볼수 없는 마지막 구간이다,

 

이 일대는 지금 대단위 아파트 공사를 하고 있었는데 돈의문 재개발 구역이라고 한다,

이공사가 끝나고 나면 이지역은 아마 또 한번 천지개벽을 할것같다,

 

서울시 교육청 이다,

꽃처름 웃고 있는 너 한사람으로 눈부신 아침이 되라는 시가 걸려있다,

이곳의 수장인 교육감이 하는 꼬라지를 보면 대형으로 걸려 있는 저 시詩 가 부끄럽다,

강북 삼성병원

도로변에 길게 보이는 조형물,  이 설치물이 돈의문 터 였음을 알린다,

여기는 서울 중구 정동 경향신문사 앞 정동사거리다.

돈의문(敦義門)은 조선의 수도인 한양의 4대문 중의 하나로 서쪽의 정문이다.

한양 도성 서쪽의 큰 문이라 하여 서대문(西大門)이라는 명칭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고,

새문신문(新門)이라고도 불렀다. 돈의문으로 가는 길에 위치한 중구 정동의 신문로 나 새문안길, 

 새문안교회, 등의 이름은 돈의문의 다른 이름인  신문,  새문, 에서 따온 말이다.

돈의문은1395년(조선 태조 5년) 한양 도성의 제2차 축성 공사가 끝나고 8문이 완성되던 때 처음 세워졌다.

돈의문 이라는 이름은 유학의 덕목인 인의예지신 중 의(義)를 넣어 만든 이름이다. 

1413년(조선태종 13년)에 돈의문을 폐쇄하고,

그 대신 그 북쪽에 서전문(西箭門)을 새로 지어 출입하게 하였다.

그러나, 1422년(조선 세종  4년)에 다시 서전문을 헐고 돈의문을 수리하였다.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돈의문(서대문)은 지금의 강북삼성병원앞 도로에 있었다,

흥인지문이 2층 문루를 하고 있는것에 비해 1층 문류를 하고 있어며 규모도 비교적 작다,

풍수적으로 험준한 서쪽과 진대가 낮은 동쪽과 균형을 맞추기 위해 이렇게 지은듯 하다,

돈의문 옆 성벽 위에서 찍은사진, 성벽이 왼쪽으로 말려 들어가는 곳에 돈의문이 있었고

오른쪽에는 점포와 민가가 길따라 이어저 있어며 윗쪽에 보이는 서양식 건물은 프랑스 공사관이다,

멀리보이는 산은 남산이다, 이 사진은 인왕산 쪽에서 정동 방향으로 찍은 사진이다,

조선초기당시 창건당시의 돈의문은 지금의 사직동부근 이였었는데

풍수상 이유로 경희궁 뒷쪽 언덕에 세워저 서전문으로 이름이 바뀌였다,

돈의문 밖을 나서는 신부가마,

점포 뒤로 성벽이 보이는데 돈의문 쪽으로 말려 들어간 구조다,

이는 방어상 취약한 성문을 공격하는 적을 공격하기 쉽게 하기위한 구조다,

 

바닥에는 전차 선로가 깔려 있는데 돈의문 밖은 전차 종점이였다,

그러나 돈의문은 1915년 일제에 의해 강제 철거되였고 건축자재로 매각된다,

서대문구는 돈의문인 서대문에서 이름을 따왔지만,

돈의문터인 이곳 서대문 장소는 행정구역 개편으로 중구 관할 지역에 속한다.

 

그리고 강북 삼성병원내에는 또 하나의 문화재가 있었어니 바로 경교장이다,

경교장은 환국후 임시정부 마지막 청사였다,

문화재로 지정되여 큰 병원이 들어 서면서도 살아 남았다,

경교장은 내부를 공개 중이다,

백범 김구선생이 저격을 당해

서거 하실때 입고 있었든 저고리다,

 

 

 

강북 삼성병원 건너편에 보이는 정동길, ~

이제 저 길을 따라 소의문을 지나 숭례문으로 간다,

나무가 우거진 저 곳이 경희궁이 있는 곳이다,

돈의문과 경희궁은 바로 옆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