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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흐르듯이 순리대로

북한산 삼천사에서 부왕동암문까지(2021년 5월 23일) 본문

국내 山行日記/서울·북한·도봉

북한산 삼천사에서 부왕동암문까지(2021년 5월 23일)

물흐르듯이순리대로 2021. 5. 24. 19:45

3호선 연신내역 3번출구 연서시장 버스정류장에서

7211버스로 하나고등학교 앞에서 내려 오른쪽 한옥마을을 지나

천년의 고찰 삼천사로 들어간다,

부처님오신 날을 기념한 연등탑이 그대로 있다,

삼천사로 들어가는 길은

삼천리골 입구에서 부터 시작이다,

삼천리골 마을길을 따라 삼천사로 간다,

여기쯤에서 차도는 왼쪽길이고

보행로는 직진이다,

직진과 왼쪽으로 나누어진 길은

삼천사로 들어가는 미타교 직전 삼거리에서 다시 합류된다,

가는길에 보이는 의상능선 증취봉

오늘은 저곳으로 가는 날이지만 보이는것 만으로도 아름답다,

삼천사계곡을 따라

차도와 인도가 길게 이어진다,

삼천사입구 삼천사소개가 있다, 삼천사는 서기661년(신라 문무왕1)

원효(元曉)대사가 개산(開山)했다, 1482년(조선 성종12)에 편찬된 동국여지승람과

북한지(北漢誌)에 따르면 3,000여명이 수도할 정도로 번창했다고 해서

사찰 이름도 이 숫자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측한다.

삼천사 경내로 들어간다, 경내 초입에서

제일먼저 보게되는 5층 석탑, 불교에서는 탑이 중요한 신앙의 대상이다,

그것은 탑 안에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봉안한다는 점 때문이다.

연등으로 곱게 치장을 한 두번째 탑은 세존진신사리불탑이다,

부처님이 열반에 드신 후 불제자들은 세존의 유언에 따라 불신(佛身)을

다비(茶毘) 화장(火葬)하였다. 다비 후 부처님의 유골사리는 8등분되어 동서남북 8개의

나라에서 모셔가 각기 대탑을 세우니, 이것이 분사리 또는 사리팔분 대탑이다.

이때부터 불탑신앙, 사리신앙이 시작 되였다.

삼천사 일주문으로 들어간다

대웅전으로 이어지는 길에도 빼곡히 연등이 걸려있다,

오늘은 삼천사 탐방이

목적이 아니니 다시 돌아 나간다,

서기 661년부터 이어오든 삼천사는 1592년(조선 선조25)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는 승병들의 집결지였는데, 임란중에 소실되여 삼천사의 암자가 있던

마애여래입상 길상터에 진영 화상이 다시 복원한 사찰이다,

삼천사에서는 대남문과 사모바위

비봉 등으로 가는 삼천사 계곡길이 시작되는 곳이기도 하다,

삼천사 계곡으로 들어가기 전에 다시 돌아다본다, 일주문 추녀끝에

세존진신사리불탑이 보인다, 이 불탑은 한국 석탑의 대표로 치는 국보 제48호인

오대산 월정사 9층 석탑을 그대로 접목하여 조성한 탑이다,

삼천사 작은 구름다리 아래를 지나서 올라간다,

대웅전 위쪽 30m지점 계곡의 병풍바위에 각인된

통일신라 말 또는 고려초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마애여래입상이 있다

보물 제657호 병풍바위 높이는 3.02m, 불상 높이는 2.6m다.

얼굴과 윗몸은 돋을 새김이고 하반신과 광배 그리고 대좌는 볼록한 선 새김으로

마치 강한 선묘화(線描畵)같은 느낌을 준다. 이 마애여래불상 앞에 삼천사암자가 있었는데

삼천사가 임진왜란으로 소실되고 나서 후일 이곳에 지금의 삼천사를 재건했다,

계곡으로 들어가면서 올려다 보이는 삼천사 산령각이다,

일반적으로 알고있는 산신각이다, 이 산령각은 국내에서는 제일 큰 산신각으로

우리나라 절은 대개 깊은 산 속에 있었으므로 우리 민족의 조상신으로 간주되어 온 산신이

자연스레 불교에 융해되어 현재에 이르는데 이는 중국이나 일본의 불교와

확실하게 차이가 나는 우리 불교만의 특징이다.

위 삼천사에 대한 덧붙임 말은

삼천사 홈페이지 등을 참고해서 작성했다,

삼천사 계곡 등로를 따라 올라간다,

삼천사 계곡 등로는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라서

산길치고는 비교적 널널하다,

삼천사 계곡으로 흐르는 물은

거울처름 투명하고 맑다,

삼천탐방지원센터에서 1km지점에 설치된 첫번째 이정표는

대남문 2,6km 비봉 2,2km라 알려준다,

두번째 이정표에서 비봉과 대남문으로 갈라지는데

우리는 대남문 방향으로 간다,

그리고 3번재 이정표에서 다시 대남문과 부왕동암문으로 갈라지는데

부왕동암문 방향으로 올라간다, 여기서 대남문은 2,3km이고 부왕동 암문은 900m다,

갈림길에서 300m를 더 올라가면 사각안내판이 있는데

왼쪽100m지점에 삼천사터가 있고 부왕동 암문은 600m거리라 알려준다,

삼천사지로 들어간다, 이곳을 둘러보려는 목적으로 이 코스를

선택 한 것도 있다, 80여m를 올라갔더니 길은 다시 직진과 왼쪽길로 나누어 지는데

어디로 가야하는지 안내는 없다, 왼쪽나무가지에 누군가가 붉은색코팅을

한 목장갑을 걸어놓았다,

목장갑이 걸려있는 곳으로 잠시 들어가니 담장이 보인다,

의상능선 증취봉(甑炊峰) 서쪽자락에 넒게 자리했던 삼천사는 고려때 창건된

큰 사찰이었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되였고. 그후 2008년부터 시작한 발굴작업으로

수많은 유물들이 세상밖으로 나왔다,

이곳 삼천사터에서 발굴된 대형 석조(石槽)와 동종(銅鐘),

연화대좌(蓮花臺座), 석탑기단석(石塔基壇石), 석종형부도(石鐘形浮屠),

대지국사(大知國師) 법경(法鏡)의 비명(碑銘)등 600여점의 문화재가 발굴되었고

그 중 동종은 보물로 지정받아 현재 국립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대지국사탑비 귀부의 크기는 높이 137.5cm, 넓이 240cm, 길이 270cm며,

이수의 크기는 가로 185cm, 세로 55cm, 폭 80cm다. 귀부는 용의 머리와 흡사하게 표현했고

배면(背面)에 육각형의 귀갑문이 베풀어져 있는데 그 안에 王 자가 새겨져 있다.

발부분은 L 자형으로 처리하여 비늘문을 장식했고, 귀갑대를 주름문으로

표현하여 돌리고 연주문을 장식한 점은 고려 전기 법상종 사찰인 현화사비, 원주 법천사지,

안성 칠장사 혜소국사비, 금산사 혜덕왕사비 귀부의 양식과 유사하다.

이수는 귀부 정면에 놓여 있는데, 여의주를 희롱하고 있는 두 마리 용을

운문과 더불어 생동감 있게 표현하고 있는데 앞뒷면에 각각 두 마리씩 배치하여

대칭적인 모양을 보여주고 있으며, 측면에도 운룡문이 베풀어져 있다

삼천사지 발굴시 계곡에서 올라오는 계단부가 심하게 붕괴되였어나

다행히 여타 구조물들은 비교적 온전한 상태로 남아 있었다. 중심 건물지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규모로 아래 사진 복원도와 같이 추정된다,

건물지 안쪽에 화강암 장대석으로 만든 불단이 있는데

잔존부의 크기는 가로 190cm x 세로 170cm이며. 건물지 하부에 온돌시설 일부인

고래가 있었고 화강암할석과 기와편을 사용해 점토를 활용하여 마감하였다. 출토 유물로는

유구 전역에 걸쳐 분청사기 인화문편과 도기편 등이 수습되었으며, 기와류로는

청해파문과 복합어골계의 와편 등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오랜 세월속 유물들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이유는

이곳은 북한산중에서도 오지라 쉽게 찾을수도 없었고 높은곳에 있는 험지라

도굴꾼들도 무거운 유물을 가지고 갈 엄두도 못내였든 것 같다,

- 삼천사지 설명 내용은 삼천사 홈피를 인용했다, -

삼천시지를 둘러보고 내려와

부왕동암문 방향으로 올라간다, 여기서 600m이니 그리 멀지는 않다,

여기서 부터 올라가는길은

서서히 고도가 높아진다,

이길에는 이런 계단이 없었든 곳인데

새로이 정비를 한것 처름 보인다,

요즘에는 이 코스를 찾는 사람들이 많은가 보다,

나무계단을 올라가서 이런 바위가 보이면

잠시 뒤로 돌아보는 것도 좋을게다, 우측으로는

비봉능선 승가봉과 사모바위 그리고 비봉까지의 전경이 눈에 들어오고

그 다음으로는

향로봉 줄기 관봉과 삼각점봉 진관봉 일대가 흘러내린다,

다시 오름길을 이어가면

이렇게 보이는 암릉길이 나오는데

다른길이 없어니 암릉을 걸어 올라간다,

경사도가 높지는 않지만 그래도 조금은 조심해서

올라가야 하는 암릉 이지만 걸어서 올라가는데는 별 지장이 없다, 

이곳에서도 보이는 진관봉 넘어

아파트 군락은 은평 뉴타운 지역과

고양 삼송지역 일대다,

경사지 암릉을 올라와서

암릉 위에 있는 왼쪽 바위로 올라간다,

바위 위에서 자리를하고 간식을 먹었다,

대단한건 아니였지만 산에서 이정도면 환상적인 먹거리다,

먹거리가 좋아서? 가까운 사람들과 답답한 마스크까지 벗고서

나누는 정담이 정겨워서? 조금은 길게 쉬고 나서 텅빈것 같은 북한산을 올라간다,

한사람이 겨우 삐집고 나갈 것 같은 작은 바위 틈새를 지나

나무계단도 올라가고

돌계단도 올라가면

우거진 숲 속에 

보이는 긴 담장이

북한산성이다, 북한산성에 있는 이문은 부왕동암문(扶王洞暗門)이다

조선시대 단위로 높이 9척, 너비 8척이다. 부왕동(扶王洞)은 증취봉 아래서 발원하여

삼천사로 내려가는 계곡으로 예전에 이곳 삼천사에서 가까운 신혈사에서 임금(고려 현종)을

구한적이 있다고 하여 왕을 도운 계곡이란 뜻으로 부왕동(扶王洞)이라 명명했다.

암문과 마찬가지로 성문 상부에 문루(門樓)가 없다,

부왕동암문의 출입구 모양은 암문의 일반적인 사각 형태가 아니라 외관상 무지개

모양의 홍예(虹霓) 형태를 띠고 있다. 원래 문짝이 있었으나 지금은 없어지고, 문짝을 달았던

원형의 지도릿돌과 일반문의 빗장에 해당되는 장군목을 걸었던 방형 구멍이 남아있다.

부왕동암문 아래는 원각사(圓覺寺)가 자리잡고 있었다.

이 원각사는 북한산성의 축조와 수비, 관리에 큰 역할을 담당했든

승병이 주둔하였던 승영사찰(僧營寺刹)이었는데, 부왕동암문의 실질적인 방어와

수축을 담당했다, 이런 까닭에 부왕동암문은 원각문(圓覺門)으로도 불린다.

2021년 5월 23일 북한산 나들이 상(上)은 삼천사에서 부왕동암문 까지다,

그리고 이어지는 의상능선 3봉(峰)과 백화사까지의 하산길은 금요일 쯤에 올릴 생각이다,

기록해 온 사진이 많아서 한편으로는 다 올릴수가 없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