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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흐르듯이 순리대로

북한산 의상능선 3봉과 2성문(2021년 5월 23일) 본문

국내 山行日記/서울·북한·도봉

북한산 의상능선 3봉과 2성문(2021년 5월 23일)

물흐르듯이순리대로 2021. 5. 27. 00:19

삼천사에서 가사당암문으로 올라와서 의상능선

3峰(증취, 용혈, 용출)과 북한산성 2城門(부왕동, 가사당)을 지나

백화사 하산길로 북한산초등학교를 지나 산성입구로 간다,

시작은 부왕동암문(扶王洞暗門)이다, 암문은 상부에 문루(門樓)가 없다,

암문출입문은 일반적으로 사각의 문인데 부왕동 암문은 무지개모양의 홍예(虹霓)형태다.

원래는 문짝이 있었으나 지금은 없어지고, 문짝을 달았던 원형의 지도릿돌과

일반문의 빗장에 해당되는 장군목을 걸었던 방형 구멍이 남아있다.

여기는 부왕동암문 위 여장이다, 이제 증취봉으로 해서

가사당암문 방향으로 간다, 부왕동암문에서 오른쪽으로는 의상능선 나월봉과

나한봉, 삼원봉, 청수동암문을 지나 대남문까지는 1,5km이고 왼쪽으로 의상능선을 따라

증취봉과 용혈봉, 용출봉, 가사당암문을 지나 의상봉까지도 1,5km정도는 된다,

어디로 가건 이곳 의상능선은

소 공룡능선이라 불릴 정도로 북한산 중에서는 가장 난이도가 높은 등로다,

부왕동암문 옆, 증취봉으로 올라간다,

여태까지는 널널하게 올라왔지만 이제부터의 길은

의상능선이니 계속해서 V자 안부를 올라가고 내려가야하는 길이다,

증취봉으로 올라가는 암릉길은

처음부터 쇠줄을 잡지 않고서는 올라가기가 어려운 길이다,

그래도 북한산 화강암은 미끄럽지도 않고

등산화 창도 화강암에 달라붙는것 같은 느낌을 받는 길이라

조심해서만 올라가면 안전한 길이다,

온통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증취봉

암반 틈에서 자라는 소나무들이 보면 볼수록 아름답다,

암반길을 올라오는 일행들이 내려다 보인다,

암반길에 숙달된 분들이 아니라 매우 힘든 것 같이 보이지만

스스로 올라와야지 다른 방법은 없다,

이곳 길은 오로지 바위다,

1시간에 어느 정도의 거리를 가는지?도 알수없을 정도로

속도가 붙지않는 길이기도 하다,

증취봉으로 올라왔다, 앞에 보이는 나월봉 뒤로

문수봉이 보이고 오른쪽으로는 승가봉과 사모바위, 그리고 비봉이

빼끔 디밀고 늘어서 있는 비봉능선이 이어진다,

그 옆으로 비봉과 관봉, 삼각점봉, 진관봉

그리고 기자능선을 지나 아랫녁 구파발 일대까지도 보인다,

나월봉을 배경으로 사진 한장 찍었더니

나월봉은 허리춤만 나왔다,

증취봉길을 따라간다,

가는길 부왕동여장이라는 안내판이 있다

여장이란 성벽위에 설치한 낮은 담장으로 적을 관측하고

공격하면서도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든 성곽위 담이다,

여자들도 넘을수 있다고 여장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대개 여장에는 총안(구멍) 3개를 뚫었다, 비스듬하게 뚫어

가깝게 접근한 적을 공격할수 있도록 한 총안을 근총안이라 하고

수평으로 뚫어 멀리있는 적을 효과적으로 공격할수 있게한 총안을 원총안이라 한다,

이곳 부왕동암문에 가깝게있는 여장은 부왕동여장으로 불리는데 

부왕동 여장은 대략 8,3km의 북한산성 여장중에서

그 원형이 가장 잘 남아있다, 북한산성의 여장은 전돌로 만든 남한산성 여장이나

잘 다듬은 돌을 이용하여 만든 화성의 여장과는 차이를 보이는데

적당히 다듬은 활석(갠돌)으로 쌓았다,

이제 마지막으로 증취봉으로 올라가는길 흙으로 덥혀있는 것처름 보여도

흙은 암반에 살작 뿌려저있고 흙 아래는 암반이다, 그럼에도 소나무가 뿌리를 넓게 뻗어서

흙을 찾아가서 자라고 있다, 자연의 생명력이란 이런 것일까? 갖은 악조건 속에서

살아가는 소나무를보니 경이롭기도 하지만 아름답기까지 하다,

증취봉으로 올라간다,

증취봉에서 지나온 길을보니 바로 앞에 나월봉이 우뚝 서있고

그 뒤로 문수봉과 보현봉, 대성문방향 성덕봉 등이 늘어서 있는 산성주능선이 보이고

오른쪽으로는 승가봉과 사모바위, 비봉등이 있는 비봉능선이 이어진다,

서울이 맞는지? 어쩌면 복(福)도 많은 서울 시민들이다,

증취봉정상에 증취봉 표지목이 있다,

북한산은 백운대만 표지석이 있고 다른 봉은 모두 표지목이다,

증취봉 다음 봉은 용혈봉이다,

이제 증취봉을 내려가 앞에 보이는 용혈봉으로 또 올라가야 한다,

의상능선은 내림길도 급한 길이다,

그래서 인가,

어디를 둘러보건 모두 아름다운 곳 뿐이다,

힘든길을 가면서도 잠시만 고개를 돌리면 보이는 북한산자락

보고 또 보아도 정말 아름다운 산이다,

이번에는 성랑지라는 표지목이 보인다,

성랑?은 성곽에 딸린 초소 건물이자 병사숙소다, 북한산성안에는

성랑이 143개소나 있었다, 성랑구조는 정면 3칸 측면 1칸이며 정면은 티여 있었다,

3벽 면은 토석으로 만든 벽체형태로 북한산성 성랑터에서 기와파편이 다량으로

출토된 것으로 보아 성랑의 지붕에 기와를 얹었든 것으로 추측된다,

이렇게 보이는 돌담은 300년 전에 쌓은 성곽돌로

의상능선에 있는 북한산성이다,

이제 용혈봉으로 왔다,

용혈봉앞에는 용출봉과 의상봉이 있다,

그리고 용출봉옆으로 구파발지역과

아침에 우리가 출발했든 하나고등학교와 은평한옥마을도 보인다,

용혈봉에서 용출봉으로 가는길

짧은 거리지만 이 구간에는 북한산성 성곽(아래↓사진)이 길이다,

무슨? 말인가 하면 능선에서 이어지는 길이라고는 돌을 쌓아 북한산성을 연결한

성곽말고는 길이 없다, 오른쪽이든 왼쪽이든 모두가 급경사 벼랑이다,

북한산 용출봉과 용혈봉 사이 절벽에 새긴 紫明海印臺(자명해인대).

자명해인은 산자수명(山紫水明) 해인삼매(海印三昧)의 줄임말로 산은 단풍이 들어

붉고 물은 맑으며, 바다와 같은 부처의 지혜를 뜻한다.

자명해인대 암반 남쪽에는 천년고찰 백화사가 있고

북쪽에는 국녕사가 자리잡고 있어니 이 글을 새긴 사람은 두곳의 사찰에서

수행하던 어느 이름없는 스님이 아니였을까?

짧은시간 많은 생각을 하면서 용출봉 정상으로

올라가는 철 계단길을 올라간다,

철 계단 위 이렇게 아름다운 소나무들이

빼곡히 자라고 있는데 

이곳이 용출봉이다,

용출봉에서

의상봉 뒤로 보이는 아랫 마을이 북한산성 입구다,

용출봉에서

내려가는 길은 무척이나 까칠해 보인다,

앞에는 의상봉이 있고 오른쪽 건너편에는 원효봉이 있다,

그 다음에 있는 염초봉의 우람한 산세와 그 뒤로 멀리는 도봉산과

사패산 일대가 가물거리듯이 보인다,

북한산 최고봉 백운대일대다,

백운대아래 염초봉이 백운대로 올라가고 있고, 백운대에서 이어지는 

날카로운 톱니형태의 줄기는 만경대며 만경대 끝에는 용암봉(피아노 바위가있는 봉)이

노적봉 뒤로 길게 산성주능선을 만들어가고 있는게 보인다, 백운대 일대는

어디에서도 볼수없는 웅장함과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장관이다,

언제 어느때 보아도 질리지않는 북한산 일대

가장 웅장한 전경을 잘 볼수있는 곳이 이곳 의상능선 8봉이다,

의상능선은 내려가는 길도 올라오는 길도 모두 만만치않다,

오히려 올라오는 길은 쇠줄만 잘 잡고 올라오면 되지만 내려가는 길이 더 어렵다,

내려와서 올려다 보는 하산 길,

사진으로는 어느 정도의 경사인지?

잘 안보이지만

이 정도의 길은 평지수준이다,

용출봉에서 의상봉으로 가는길 이런 돌담이 보인다,

이 돌담 역시 북한산성이다, 북한산성은 약8,3km나 되지만 대남문 위

문수봉에서 이어지는 의상능선 구간의 북한산성은 일부를 제외하고는 아직 복원이

안되기도 했지만 지형이 워낙 험한 곳이라 300년이 넘는 역사가

그대로 전해저 오는 구간이기도 하다,

의상능선에서 새로 단장한 성곽은 암문이다,

여기는 가사당암문으로 가사당암문(袈裟堂暗門)은 북한산 의상봉과 용출봉사이

고갯마루에 위치한 암문이다, 310년전인 1771년 조선숙종 37년에 북한산성 성곽을 축조하면서

만든 8개의 암문(暗門)중 하나로, 현재 백화사가 위치한 의상봉길에서 북한산성으로

오르는 길목을 통제하기 위해 설치한 문이다,

암문은 비상시에 병기나 식량을 반입하는 통로이자,

구원병의 출입로 로 활용한 일종의 비상 출입문이다. 산성의 방어력을 높이기위해

적이 비교적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고갯마루나 능선에 설치했다.

가사당암문은 여느 암문과 마찬가지로 성문상부에 문루(門樓)는 없다,

성문 양쪽은 장대석으로 쌓아올리고, 그 위 천장부분은 장대석 여러 매를 걸쳐 만들었다.

이런 양식의 성문을 아치 모양의 홍예식과 구분하여 평거식(平据式)이라 부른다. 원래 문짝이

있었으나 지금은 없어지고, 문짝을 달았던 원형의 지도릿돌과 일반문의 빗장에

해당되는 장군목을 걸었던 방형 구멍이 남아있다.

가사당암문 아래 성내에는 국녕사(國寧寺)가 자리잡고 있다.

국녕사는 북한산성의 축조, 수비, 관리에 큰 역할을 담당하였던 승병이 주둔한

승영사찰(僧營寺刹)이었는데, 가사당암문의 수축과 방어를 담당하였을 것으로 판단된다.

그런 까닭에 가사당암문은 국녕문(國寧門)으로도 불린다.

용출봉과 의상봉 사이

가사당 암문에서 북한산성 성밖으로 내려간다,

이 길은 백화사나

북한산성 입구에서 올라오는 길이다,

그러나 내려가는 내림길도

의상능선의 높이가 있어니 그리 만만치는 않다,

그 흔한 나무계단도 철계단도 없는

너들 길이다,

가사당암문에서 백화사까지는 2km정도다,

400m정도를 내려 왔어니 얼마남지 않은 거리지만

길 상태가 그리 좋지못하니

내림길이라도 속도는 전혀 붙지 않는다,

800m를 지나왔는데도

길은 한결같다,

그래도 이런 길은 조금 나은 편이다,

내려온 길을 돌아보면

의상능선 나월봉이 까마득해 보인다,

지루하게 내려가다가

이런길을 만나면 아직도 갈길은 멀지만 마음은 편안해 진다,

이길 끝 백화사입구 삼거리에는 국립공원 화장실도 있다,

여기가 백화사입구 삼거리다, 왼쪽에 있는 백화사는 250여m 거리지만

백화사를 지나 도로까지는 약 1km정도며 오른쪽 북한산성입구 교차로 까지도 1km정도다,

이제 부터의 길은

양쪽 모두 북산산 둘레길이다,

우리는 북한산성입구로 간다,

가는길 무슨 안내가 보이는데

경천군 송금물침비의 역사와 문화 라는 안내다,

내용은 경주이씨 경천군파 사유재산으로 송금물침비는 조선시대 일본과

화평교섭에서 크게 활약한 공로를 인정받아서 경천군으로 봉해진 이해룡의 사패지

(임금이 하사한 토지)로 그 주의사항을 알리는 비석이다

왕조시대에는 나라의 모든 토지가 왕의 것이였기에

공이있는 신하에게 땅을 주거나 땅에서 나는 땔감등의 생산물을 거두어 갈수

있게끔 했는데 바로 이 비석을 통해서 사패지 임을 학인할수 있다,

비석 앞면에는 경천군에게 내려준 이 땅에 함부로 들어가거나

소나무를 베지말라 뜻을 담고 있어며 그 뒷면에는 1614년 10월에 비석을 세웠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경천군은 한석봉과 함께 당대의 명필로서 사자관을 담당했어며

임진왜란을 즈음하여 통신사 일행으로 활동했다,

북한산 둘레길이니 며칠을 걸어도

좋을것 같은 길을 따라 북한산 초등학교 앞으로 왔다,

북한산초등학교를 지나 북한산성입구 탐방안내소 앞으로 왔다,

중앙에 보이는 곳이 북한산성탐방안내소다

그리고 북한산성입구 교차로 근처에 있는

옷 된장찌게 집에서, 코다리찜과

아구찜으로 뒷풀이를 한다,

뒷풀이때 술을 많이 마시면 귀가길에서 실수?를 할수도 있다,

근교 산행 후 지나친 음주로 장소를 가리지 않고 목소리가 커지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제 이런 모습은 우리 이웃을 위해 그만해야 하지 않을까,

산행의 끝은 집을 나서면서 부터 무사히 귀가할때까지다,

의상능선은 북한산성 입구에서 대남문까지다,

의상봉, 용출봉, 용혈봉, 증취봉, 나월봉, 나한봉, 삼원봉, 문수봉등

8봉과 가사당, 부왕동, 청수동, 등 북한산성 3암문을 따라가는 능선으로

능선중간에 들날머리도 있지만 난이도는 조금 높은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