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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0년 세월에 묻힌 북한산성 행궁지(2021년 6월 6일) 본문

국내 山行日記/서울·북한·도봉

310년 세월에 묻힌 북한산성 행궁지(2021년 6월 6일)

물흐르듯이순리대로 2021. 6. 9. 23:27

대남문으로 올라가는 길에서 북한산성 행궁지로 들어간다,

청수동암문 갈림길이 있는 이곳에서 청수동암문 방향으로 들어가면된다,

이 지역은 산성내 행궁권역이라는 안내표지판도 있다,

여기서 행궁지까지는 350m, 남장대지까지는 750m정도 거리다,

북한산에 여러번 다니신 분들도 행궁지는 잘 알지 못하시는 분들이 많아서

오늘 별도로 북한산성내 행궁지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행궁권 권역이란?

북한산성 행궁(北漢山城 行宮)이 있었든 터(자리)가 있기 때문이다,

행궁이란? 왕의 임시 숙소로 황궁의 격식을 갖춘 건물이다.

전쟁시 피난처이자 지휘소다,

북한산성 행궁은 실제로 사용된 적은 없지만.

2007년 사적 제479호로 지정되였다, 여기가 행궁지(行宮址)다,

행궁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고난 후

도성의 방위 체제를 강화하기 위해 북한산성을 축성하고

임금이 거처할 수 있는 행궁을 만들었다,

행궁은 조선 숙종 37년인 1711년

북한산성을 축성하기 시작해서 다음해인 1712년에 완공했다.

행궁터를 둘러보기 전, 잠시 행궁 자료를 살펴 본다,

지금 행궁은 소실되고 남아있지 않지만 1902년 무렵

행궁을 촬영한 사진들이 있어 행궁의 구조와 형태를 파악할 수는 있다

행궁은 4,130평의 경사진 대지를 3단으로 조성해

주요건물인 내전과 외전을 중심에 배치하고 그 주변에 부속건물과 수라간,

측소, 삼문,등을 두었고 외곽에는 담장을 둘렀다. 건물 전체의 규모는 124칸이었다.

그 중 임금과 왕실 일가족이 생활하는 내전이 28칸이었으며, 왕이 신하들과

집무를보는 정전(正殿)인 외전이 28칸으로 크기는 같았다,

외전(外殿)이다, 1907년 한국을 방문한 독일인 장교 헤르만산더가

일본인 사진 작가 나가노를 고용해 찍은 행궁 흑백 원판필름으로, 사진 제목은

국왕의 마지막 피신처다, 행궁 외정전을 가장 가깝게 찍은 귀중한 자료다,

내전(內殿)이다, 영국 성공회가 빌려서 여름피서지로 이용했든

내전은 영국 국기인 유니언기가 걸려있고, 신부복을 입은 신부와 수녀가 대청마루에

여유롭게 걸터 앉아있다, 당시 행궁모습을 복원할 수 있는 실증적 자료로서

큰 가치를 지닌 1910년 사진이다,

사진 속 이 행궁은 평상시에는 북한산 문고로

실록등 고문헌을 비밀리에 보관해 왔어며 역대 왕 가운데 숙종과 영조가

이곳을 찾은 기록이 전해진다, 행궁은 전란에 대비하여 구한말까지 관리가 계속 되였어나

일제에 주권을 빼았긴 후 방치되다가 1915년 8월 집중 호우로 소멸되였다,

소멸된 행궁은 1900년 전후의 사진과 발굴조사로

내, 외전을 비롯한 부속건물의 정확한 구조와 형태가 드러났다,

발굴조사 당시 상당수의 건축석재, 용무늬, 봉황무늬, 거미무늬, 꽃무늬등

막새기와 치미, 용두, 잡상 등의 기와편과 여러 건축부재로

사용된 철물이 다량 출토 되였다,

행궁지에서 출토된 아래 유물은 심지를 조절해 밝기를 조절하는

램프로 1869년에 설립된 프랑스기업 고다르램프(GAUDARD A&P)사 제품이다,

1915년 행궁이 산 사태로 매몰되기 전까지 실제로 사용한 유물이다,

행궁터로 올라간다, 행궁 중심인 정전(正殿)은 외전(外殿)과 내전(內殿)이다.

행궁이 없어지기 이전에 찍은 일제강점기 때의 사진에 의하면 행궁터는 입구에서 부터

외전(外殿)을 거쳐 내전(內殿)으로 오를수록 층 위가 높아지는 단을 이루는 축대를 조성해 건물을

세웠고 팔작지붕의 내, 외, 정전을 축으로 해서 부속건물이 질서 정연하게 배치되였다.

외전(外殿) 정전에서 내전(內殿) 정전으로 들어오는

삼문 기초는 아직도 고스란히 남아있다,

제일 높은곳에 있는 내전(內殿)정전 주춧돌 모습을 보면

양쪽에 구들장을 깔았든 좌우 상방이 각각 2칸이고 가운데 대청이 6칸으로 배치되여 있다,

내전(內殿)정전터와 출입문 그리고

그 아래 외전(外殿)정전 터가 보인다, 내외전(內外殿)의 정전(正殿) 구조는 같다,

내전 정전에서 내려다 보이는

출입문자리 주춧돌과 그 아래 외전 자리

행궁 내전터에서는 백운대와 만경대, 용암봉, 그리고

오른쪽 높은 곳에 복원한 동장대가 보인다

조금 더 크게 본 백운대와 만경대 그리고 용암봉,

그 앞 왼쪽으로 노적봉이 보이는 북산산성 안에서는 제일의 명당자리다,

행궁터에서는 동장대와 대동문, 시단봉, 복덕봉, 보국문,

성덕봉으로 이어지는 산성 주 능선이 길게 늘어서 있는 것도 보인다,

북한산성내 집터나 절터 중 가장 조망권이 좋은 자리다,

이제 행궁터를 나가 다시 대남문길로 내려간다,

행궁터 뒤 400m지점에 있는 남장대터로 대남문으로 올라갈수도 있지만

오늘은 올라오든 산성계곡을 따라 대남문으로 올라간다, 산성축성때는 암문이였든

소남문이 대남문으로 바뀌여서 북한산성 대문(大門)은 5개가 된다,

(대동문, 대서문, 북문, 대남문, 대성문, 중성문 제외, )

행궁지에서 행궁지입구로로 내려가는길 찔레꽃이 반겨준다,

북한산성 행궁은 언제쯤에나 복원이 가능할까? 이대로 방치해 두는 것 보다는

빠른 시일내에 복원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