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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흐르듯이 순리대로

관동대로(경기 평해2길, 미음나루길)上, 미음나루~원덕마을 2022년 4월 3일 본문

경기옛길(조선시대 7大路)/평해길

관동대로(경기 평해2길, 미음나루길)上, 미음나루~원덕마을 2022년 4월 3일

물흐르듯이순리대로 2022. 4. 26. 00:24

평해2길 출발점에 있는 미음나루 안내에는

미음나루(渼陰津)는 평구역(삼패동에 있었던 역참)에서 양주 읍치 동쪽 70리에

있는 광주로 잇는 나루로 조선시대에는 남북 교통의 요지였다, 

渼湖津(미음진)은 미호나루 또는 둔지나루라고도

불렀던 곳으로 한강의 동쪽 나루터 중에서도 광나루에 버금가는 교통의 요지 로

주위에는 김창협이 살았다는 삼주 삼산각(三州 三山閣)과

석실서원(石室書院)이 있었으니 한강을 따라 오던 배들이 미음나루(渼陰津)에서

석실서원에 필요한 물품을 하역한 것으로 보인다. 라고 알려준다,

渼陰津(미음나루)는 한강과 왕숙천이 합 수 되는 곳에 있었고

한강의 동쪽 나루로서는 광나루 나루와 함께 교통의 요지였던 곳이지만

지금 미음나루는 나루였든 흔적도 남아 있지 않았다,

한강변 도로 강변북로 수석교 아래를 지나서 부터는 한강이다,

한강과 왕숙천이 합류되는 이곳에는 한강을 조망할 수 있는 쉼터도 있다,

오른쪽으로는 강변북로 수석교이며

한강을 가로 지르는 다리는 수도권 제1순환고속도로 구리시

토평IC에서 서울 강동구 강일IC로 연결되는 강동대교다,

한강과 왕숙천 합수부를 지나서

미음나루 음식문화특화거리로 올라간다, 조선시대에는

한양으로 가는 길을 올라간다고 했지만 여기서는 한강상류로 가는

길이니 올라간다는 표현을 해야 할 것 같다,

보이는 마을이 남양주시 수석동 미음나루 음식문화특화거리다,

이곳 580m거리에는 한강변 음식점 34개소가 영업을 하고있는 지역으로 2007년에

남양주시에서 미음나루 음식문화특화거리로 지정해 영업중이다,

또한 이곳 한강변은 서울에서 부산까지 4대강 유역을 따라

이어지는 자전거 길로 상, 하행 자전거도로와 인도가 함께 있는 길이라서

전속력으로 달려가는 자전거들이 위험하기까지 한 길이다,

한강 건너 하남시와

한강 상류에 가물거리듯이 보이는 팔당대교

자전거길 옆 인도를 따라

여기까지 왓는데 앞에 보이는 언덕에서 부터는 인도가 없나 보다

언덕으로 올라 가다 보니 미음나루 이야기 안내판도 있다,

조선시대 한강변 곳곳에는 나루가 있었는데 군량미나 둔전세를 하역하여

남한산성으로 운반하든 포구였다, 가장 대표적인 도미진은 흔히 두미나루 두미진이라고 했는데

현재의 배알미동 팔당댐 부근으로 사평소로와 평해대로를 이어 주었다, 도미진 하류에는

미호진이 있었는데 흔히 미음나루 둔지나루라고도 불렸다,

옛날에는 나룻배를 이용하여 하남시 선동과 미사리로 건너 다니든 나루다,

한강에 다리가 놓여지지 않았을 때는 곳곳에 나루가 있어 한강을 건너 다녔다, 현재 한강에

다리가 놓여있는 곳은 옛날 나루가 있었든 곳으로 보면된다, 현재 미음나루 근처에는 강동대교가 놓여있어

구리와 판교를 이어준다, 또한 미음나루는 한강을 떠다니든 뗏목과 배들이 머물며 쉬여가든 물길의

정류장으로 뱃사람과 떼꾼들에게 음식과 잠자리를 제공하든 주막들이 나루 주변에 있었다,

이러한 전통이 남아 있어서 현재 이 마을은 미음나루 풍속마을로

조성되였고 술과 국밥을 팔든 주막집들 대신 카페와 토속음식점들이 들어섯는데

전통은 사라지지않고 오랜동안 남아서 현재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 같다,

라는 내용이다, 이곳에는 버스 정류장도 있다, 

버스정류장을 지나서

계속해서 언덕으로 올라가면

차 도로와 자전거도로는 있는데 인도는 없다,

차 도로로 가든 자전거 도로로 가든 조심해서 가야 한다,

계속해서 카페와 토속음식점들이 있는 곳을 지나서

도로를 따라 가야 한다,

그리고 버드나무집을 지나가면 마을의 끝이다,

버드나무집을 지나가는 길은

자전거 도로 로

제한속도 20km 구간이다,

그러나 제한속도 20km달리는 자전거는 없고 모두들 최고 속도로 달린다,

그래도 걸어가는 사람은 가야 하니까

조말생묘 400m 표지판을 따라 작은 고개 언덕으로 올라간다,

고개마루에는 밀성박씨 선영입구가 있고 

선영길을 따라 올라가면 수석리 토성이 있다는 안내도 보인다,

가는길이 아직도 멀어서 수석리 토성으로 가볼 수 는 없지만

수석리 토성 안내판을 보면 수석리 토성은 신라말부터 고려초 까지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하여 흙으로 쌓아 만든 군사유적으로 흙을 모아서 쌓아놓은 것 같다고 해서 예로부터

주민들이 토미재, 혹은 퇴미재라고 불럿어며, 성 둘레는 140m~150m 정도로 비교적

작은 방어시설이며 한강의 조운 시설을 보호하기 위하여 쌓아 만든 보류

유적으로 보인다, 라고 안내되여 있다,

수석리 토성입구 10여m 거리에 산으로 들어가는 길이 있는데

조선초기의 충신 조말생 묘가 있다는 안내도 보인다, 조말생은 1401년에 괴거에 응시해

장원급제를 한 이후로 태종부터 세종에 이르기까지 35년을 두 왕 곁에서 나라일을 보았든 인물로

태종의 파벌이였든 조말생은 세종의 스승으로 두 父子사이를 조율하고 자신의 권력을

확실하게 지켜낸 현명하고 능수능란한 인물이였다, 라고 안내되여 있다,

조말생 안내판 뒤로

조말생 묘역으로 들어가는 산길이 있다,

고개마루에서 한강변으로 내려간다, 

버드나무집에서 부터 고개넘어까지는 자전거 통행을 조심해야 하는 길이다,

고개아래로 내려가는길, 한강이 보인다,

고개를 넘어 와서 있는 첫 마을은 석실마을 회관이 있는 곳으로

여기도 한강변이니 카페도 있고 음식점도 있다,

마을 입구 쉼터에 수삭리토성 돌탑이 있고

수령210년 느티나무도 있다,

그 옆 카페 앞에 또 한그루의 느티나무가 있는데

밑둥을 보니 210년 느티나무보다 더 오래된 나무인 것 같다,

이 마을은 지나서 부터는

멀리 팔당대교를 보면서 올라가는 길이다,

홍릉천을 지나간다, 홍릉천(洪陵川)은 남양주시 금곡동 백봉산(남양주시청앞)에서

발원하여 일패천과 율석천을 합류한 뒤 남양주시 다산동과 삼패동의 경계에서 한강으로 합류하는

지방하천이다. 홍릉천이라는 이름은 상류에 홍릉이 있어 홍릉천이며 상류구간은

복개되어 도로로 사용되고 있다.

홍릉천을 지나면서 부터의 길은

자전거 도로와 인도가 확실히 구분되여 있는 4대강 유역 자전거 도로다,

조말생 묘에서 900m,

덕소역까지는 2,2km지만 오늘은 팔당역까지 가야한다,

홍릉천을 지나면 수석동은 끝나고 이제는 삼패동이다,

삼패야구장과 삼패지구 풋살경기장도 있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길은

한강공원 삼패지구다,

대 운동장도 있고

공원 입구에는 다산 정약용 선생의 시비도 있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한강공원 삼패지구

경기도옛길 평해길 조성 이전부터 있든 다산길 안내도 있는데

평해길은 다산길을 따라 가도록 지정을 한 것 같다,

한강공원 삼패지구 한켠에 아주 중요한 역사 자료가 있는데

전시해 놓은지가 오래 되여 잘 보이지는 않지만, 관동대로 탐방에서는

알야야 할 자료라서 전문을 모두 인용해서 붙인다,

남양주시 삼패동은 조선시대 평구역이 있었던 교통의 중심지로

옛 전통이 현재까지 이어지는 6번 국도인 경강로와 경의중앙선 철도가 지나는 곳이다, 

여기서 평구역이라는 말이 있는데 평구역?은 기차역이 아니라

공무를 수행하는 관원들이 말을 제공했든 곳이다, 지금도 삼패사거리를

사이에 두고 역촌과 평구마을이 있어 지명으로나마 이 일대가

역 마을이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금은 한강을 건너가는 다리(서울 양양 고속도로 미사대교)가 있지만

이곳 삼패동은 고려와 조선시대에 걸처 평구역이 있었다, 평구역은 한양에서

강원도로 가는길 도처에 있었든 역들을 총괄하는 평구도의 본역이였어니

지금으로 말하면 역을 총괄하는 본부였다,

그러니 당연히 평구역의 규모는 상당히 컷다,

책임자도 역승(驛丞)이 아니라, 한 등급 높은 찰방(察訪이라는 관원이 주재하고

있었고 역에는 관리인과 남여 노비, 역마도 다른 역에 비해 많았다, 

또한 평구역에서는 평구도에 속한

역 들에 배치될 말을 기르고 훈련시키는 역활도 했다, 

현재 덕소초등학교 앞에는 말무더미 라고 부르는

곳이 있는데 평구역에서 기르든 말이 죽어면 묻어 주었든 곳 이라고 한다,

구 한말까지 교통과 통신을 책임지든 역마 제도는

갑오개혁 직후인 1896년에 고종의 명으로 페지된다, 당연히 이때부터 평구역도

사라지고 그 후 철도가 생긴 후 기차가 머무는 곳을 역이라 했다, 기차가

서는 곳을 역이라고 부르는 역 이름의 유래다,

이전 역마의 영향이 였는지 기차를 철마라고 불렀든 것으로

쇠로 된 말이라는 뜻이다, 평구마을 옆에 있는 덕소역은 철마가 다니든 역이다,

한강 삼패지구를 따라 올라가면서 어디에서도 쉽게 찾을 수 없는 자료를 보았다,

이 자료를 지나치지 않고 찾을 수 있었든게 행운이다,

강변북로 고가차도 아래 덕소로 들어가는 삼거리,

이곳은 원덕마을이 있던 곳이다, 

안내에 따르면 남양주시 와부읍 소재지인 덕소리는 한강에 배가

오가든 시절 나루가 있었든 마을이다, 그때의 덕소는 강변에 위치해 있었는데

예전 덕소리를 지나든 한강은 지금 두산덕소아파트(현 덕소고등학교 앞) 강변의 암반지대를

돌아 강 건너에 있는 미사리쪽으로 물이 굽이 돌았고 한솔, 진도, 현대홈타운,

삼익아파트가 들어서 있는 강변은 큰 못이 형성 되여 있었다, 

이 큰 못 때문에 덕소(德沼)라는 이름이 유래했다,

이 못이 있었든 강변에 덕소리 마을 중 원조격이라고 할 수 있는 원덕마을이

자리 하고 있었다, 현재 경의중앙선 철도를 기준으로 강변쪽으로 아파트가 밀집해 있는

곳이 원덕마을 자리로 사진에 보이는 이 자리가 원덕마을 나루 자리다,

미음나루에서 덕소 원덕마을까지 약사도 입니다,

상세 지도는 아니지만 전체 구도에서 보시면 참고가 되실 듯 합니다,

관동대로(경기도 평해2길, 미음나루길)上, 미음나루~원덕마을 까지는 여기서 끝이다,

下 편에서는 원덕마을과 원덕마을 나루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