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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흐르듯이 순리대로

경기옛길 평해4길(두물머리나루길)下, 양수역~신원역(22년 5월 15일) 본문

경기옛길(조선시대 7大路)/평해길

경기옛길 평해4길(두물머리나루길)下, 양수역~신원역(22년 5월 15일)

물흐르듯이순리대로 2022. 5. 20. 00:24

지난주에는 운길산역에서 이곳까지 평해3길을 따라 왓었다,

일주일후 다시 찾아온 양수역 2번출구 양서면 용담2리 양수역 뒤로 간다,

양수역 2번 출구에서 부터는 양평물소리길 1코스 문화유적길이다,

양평물소리길에 경기옛길 평해3길이 함께한다,

물소리길 1코스는 양평군에서 만든 지역길로

2020년 3월 29일~4월 26일까지 물소리길 전 구간을 완주하고

5월 14일 양평군에서 물소리길 인증서를 받은 길이다,

양평물소리길에 경기옛길 평해길이라는 이름을 올려 놓았어니

양평물소리길과 함께하는 길은 생략하고 물소리길이 끝나는 곳에서 부터

이어 가려고 했어나 물소리길을 다시 한번 더 돌아보는 것도 나름 의미가 있을 것

같은 생각에 전 구간을 다시 한번 더 돌아보려고 선택을 했다,

이길은 눈에 익은 길이다, 양서탁구장을 지나 왼쪽도로 목왕로로

가정천 다리를 건너 용담2리길로 간다,

다리가 튼튼한지는 모르겠지만

소형차는 지나 다닐 수 있을 것 같다,

다리 건너 이어지는

길은 가정천 용담제방길이다,

용담제방길을 따라 올라가면서 보이는

용담리 일대는 모내기 준비를 다 해놓은 들녁이 보인다,

용담로까지 올라왔다,

용담교 아래 물소리길 도보길이 만들어저 있다,

지난번에는 목왕로 갓길을 따라 갔었는데 도로변이 위험해서

물소리길을 가정천 둑길로 새로 만든 것 같다,

용담교를 지나서도

가정천 둑길로 이어지는 물소리길

용담교를 지나면서 부터는 양서면 부용리다,

그리 크지않은 들녁과 작은 마을이 평온해 보이는 그런 곳이다,

가정천 둑길에는 메타쉐콰이어 나무가 있는데

심은지가 언제인지는 모르겟어나 나무 밑둥이 멋스럽기만 하다,

가는길 곳 곳에는 물소리길 안내표식이 있고

경기옛길 평해길은 물소리길에 숟가락 하나 더 언저놓은 그런 길이다,

농가주택보다 더 큰 비닐 하우스가

이 마을의 랜드마크인듯

넉넉해 보이는 들녁은 평화롭기만 하다,

가정천 둑길은 계속해서 이어진다,

양평물소리길 1코스 이자 평해3길은

가정천 둑길만 따라 가면 되는 것 같은 그런 길이다,

가정천 부용2교를 건너서

오른쪽으로 개천 다리를 건너 교골길로 들어간다,

이 길은 교골길 38-3 ~ 38-20 까지의 길이라고

전신주에 이정표가 붙어있다,

이길 끝 에듀셀파 기숙학원이 있다,

보이는 이 건물 외에도 인접 몇 동의 큰 건물이 기숙학원이다,

에듀셀파 기숙학원 앞 길로

목왕로로 나간다,

목왕로 변 가정천둑길 녹음이 우거진

가로수 그늘을 따라 조금 올라 가다가 목왕로를 건너간다,

목왕로를 건너와서 지나 온 곳으로 돌아보면

에듀셀파 기숙학원 주위 마을이 보인다, 도로변 가드레일 밖은 가정천이다,

목왕로 건너에서

이어지는 길도 가정천 둑길이다,

가정천 둑길로 들어가면 화장실이 있다,

직진길은 막혀있고 화장실 맞은편 길로 들어간다,

20여m 거리에 멋스러운 비각이 보인다,

이 비각은 오성과 한음으로 알려진 두분 중 한음 이덕형선생의 비각이다,

이곳에 경기옛길 평해3길 스템프함이 있다,

스템프에는 평해길 제4길

한음 이덕형이라는 도장이 새겨저 있다,

한음 이덕형선생은 어떤 분이실까?

만화로 그려 놓은 안내문에는 조선시대 최고의 외교관이라고 알려준다,

이덕형선생의 묘는 이곳 신도비에서 약 300m 떨어진 산에 있다는 

안내지만 묘지로 가는 산길 입구는 보이지 않는다,

앞에 보이는 마을은 목왕3리다, 목왕3리에서

이덕형선생 신도비로 들어오는 가정천에는 아치형 다리도 있다,

한음 이덕형선생 신도비각옆

평해4길 스템프함이 있는 곳에서 가정천변 산길로 간다,

산길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물소리길1코스 스템프함도 있다,

2년전 물소리길 1코스 탐방시 오른쪽으로 보이는 스템프함에서 물소리길

스템프를 찍고 인증샷도 했든 기억이난다, 그때와 다른점은 그 때는

다섯명이 함께했는데 오늘은 세 사람이다,

두번째 걷는 길이라 그런지

모처름 고향을 찾아가는 그런 기분이다,

이 길은 물소리길을 만들면서

새로 만들어진 길이 아니고

예전부터 이곳 마을 주민들이 다니던 옛길인 것 같다,

지금은 가정천 건너편에 목왕로가 있지만 목왕로가 개설되기

전에는 이길이 주 통행로 였던 것 같다,

가는길에는 이렇게 넓은 농지도 있는데

농사를 짓지 않는 밭이다,

묵은 밭(田)을 지나 다시 숲길로 들어간다,

오랜 세월을 이어 온 듯한

숲 길에

물은 흘러 온갖 근심을 떠나 보내고 구름은 복록을 따라 일어난다네,

운길산은 중은동에 이웃해 있고 용진은 월계와 접해 있네,

골자기에 만발한 복사꽃 덤불 나그네 삶이러니 언제 또 볼까

- 한음 이덕형선생이 남긴 시 비도 있다, - 

시비를 지나면서 부터는 산길은 끝이나고

마을로 내려간다,

마을길을 따라 조금만 가면

목왕로로 이어진다, 목왕2리 버스 정류장과

목양2리 동막촌이라는 안내판이 있다, 

이 도로는 목왕로다, 목왕로에는 보행로가 없다,

지나가는 차들은 별로 없지만 그래도 조심해서 가야하는 길이다,

목왕리길을 따라서 양 쪽으로 있는

집들은 농가주택이 아니라 별장처름 잘 지어진 집들이다, 

목왕로 첫번째 갈림길에 물소리길 안내가 있다,

오른쪽 산길로 가라는 표식이다,

마을길 삼거리로 들어가니 왼쪽에

카페가 있는데

이렇게 외진 곳에

이렇게 잘 치장을 한 카페가 있는게 신기하기만 하다,

이곳까지 카페를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나보다

길은 다시 산길로 이어진다,

산길 입구

이렇게 파 헤처진 땅도 보인다, 

도로가 연결되여 있는 땅도 아닌데 농사를 지을려고

농지를 조성하는 것은 아닌 것 같고 택지를 조성하고 있는 것 같다,

이 지역 일대는 전원주택단지 조성이 활발해 보인다,

물소리길이자

평해3길은 이렇게 산길로 이어진다,

산길로 들어가면서 내려다 보이는 마을은

목양2리로 오랜세월 대대로 이곳을 지키며 살아가는 마을인듯 하다,

하늘 높은줄 모르고 솟아있는 전나무도 있다,

이어지는 길은

울창한 전나무 슾길이다,

빽빽하게 들어선 전나무 군락이 

내 뿜는 숲의 향기는 5월의 싱그러움과 함께다,

햇볕을 받아 빛을 내뿜는 식물들과 공존하는

숲의 세상은 아름답기만 하다

샘물고개다,

우리만 걷던 숲길에 갑자기 여러명의 사람들이 보인다,

그리고 이 사람들은 산위로 올라간다,

사람들이 올라가는 산은 부용산이다,

363m의 부용산은 높은 산은 아니지만 경의중앙선 신원역에서

양수역까지 이어지는 산이다, 반대편에는 청계산도 있다,

우리는 평해4길을 가고 있어니 

고개 넘어 1,9km 떨어진 신원역으로 가야한다,

고개 넘어 가다가 숲 속 너른 공터에

자리하고 간식도 하고 간다,

간식을 하면서 올려다 보이는 하늘

이 길은 온통 숲의 나라다,

잠시 쉬고 나서 다시 이어가는 길

이 길은 목양 2리에서

한강이 있는 신원리로 넘어 다니던 옛길이다,

산길이 끝나는 지점,

양평 물소리길 1코스 2번째 스템프 함이있다,

이곳 스템프함은 2020년에는 없었어니 추가로 만든 스템프함이다,

산길을 내려가면 보이는 아랬마을

이 길은 신원샘골길이다,

신원샘골길을 조금만 내려가면 신원3길로 가는 길

삼거리가 있다, 2020년에는 물소리길이 신원3길을 따라 한강변으로 갔는데 

오늘 보이는 시그널은 계속해서 신원샘골길로 가라고 알려준다,

신원샘골길에는 새로운 주택들이 많이 보인다, 

아랫녁에는 한강도 보이는 길이다,

계속해서 물소리길 시그널이 알려주는대로

신원샘골길을 따라가는 길 

조금전에 지나온 샘물고개에서 부용산으로 가는

등산로 입구도 있다,

그리고 가는길 왼쪽으로 보이는 마을은

신원리 이곡마을로 60여가구 주민 150여명이 살고 있다는 마을이다,

이곡마을로 들어가는 입구 삼거리에 보이는 이정표

신원역 700m 청계부용산 입구 900m 한음 이덕형신도비 3,7km지점이다,

여기서 부터는 몽양길이다,

삼거리에서 200m거리에 몽양 여운형선생 생가가 있는데 생가앞

평해4길 두물머리 나루길 안내판에는 몽양(1886~1947)은 독립운동가이자 정치인

이였던 여운형 선생의 호다, 양평군 양서면 신원리에는 이곳의 자연마을인 묘골에서 태여난

선생을 기리는 기념관이 설립되여 있다, 라고 안내되여 있어며

그러다가 일제에 체포되여 고역을 치루었고 고려공산당에 가입한

좌익운동가 였다, 하지만 온건파로 분류할만한 인물이였고 온건 우파인 김규식과

함께 해방이후 좌우합작정부를 추진하며 이승만 대통령과 격렬한 언쟁을 펼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선생은 극좌, 극우 양측으로 부터 소외 당하다가 극우파

한지근에게 암살 당했다,

선생이 지녓던 좌익성향 때문에 한동안 그의 이름이 역사에서

잊혀지기도 했는데, 그러다가 2005년 선생의 명예가 회복되여 건국훈장 대통령장에

이어 2008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에 추서 되였다, 라는 안내다,

이곳은 몽양 여운형 선생이 1907년 설립한 학교터로 일본이 국권을

침탈하던 시기 선생은 광동학교를 설립하여 인근 학생들에게 지리, 역사, 산술등

신문학과 성경을 가르치는 자강운동을 펼쳣다, 당시 광동학교는 서울 밖에서 근대적

신학문을 가르치기 시작한 최초의 학교인 광동학교가 있었다는 표지석도 있다,

몽양 기념관으로 들어 가 보았다,

문으로 들어가서 처음으로 보이는 것음 선생의 좌상과 사진이다,

사진뒤 전시실에는

아래와 같은 펼침막이 걸려 있다,

일곱남매의 아버지, 사상을 뛰여넘는 사회민주주의자

세계로 나아간 조선의 혁명가 라고 적혀있다,

다른 전시실은 불이 꺼저있기도 하지만 유물전시는 안보이고

모두 그림이나 판화등이 전시되여 있었다,

몽양기념관을 나와서 나가는길

울창한 숲길을 나가니

묘골 애오와 공원도 있다,

묘골은 동네 이름이며 애오와는 여운형의 친필로 나의 사랑하는집

이라는 뜻이다, 라고 새겨져 있다,

반 타원형의 대리석 담벼락으로 만들어진 공원에는

1908년 5월 3일 황성신문에 실린 선생의 말씀중, 좋은 인재를

양성하면 어찌 우리나라만을 비추겠는가, 또한 동양 전체를 널리 비출 것이다,

넓은 세상과 만나 독립운동에 눈을뜨다, 라는 글이 새겨져있고

적의 심장부에서 조선독립을 외치다,

문화정부를 구상하던 일본의 하라내각은 조선인을 회유하기 위해

여운형을 일본으로 초대했다, 적국 일본에서 식민지 청년이던 여운형은 조선 독립운동의

정당성과 필요성을 당당히 역설하였다, 그를 회유하려던 일본 정부는 큰 혼란에 빠졋고

여운형이 국제적인 인물로 등장하게 된 계기가 되였다, 이런 내용들이

빼곡히 적혀있는 공원이다,

몽양비에는 사람이 나를 사람이라 하여도 내가 기뻐할바 아니요,

사람이 나를 사람이 아니라 하여도 내가 노여워 할바 아니니라, 라고 하는

선생의 말씀이 새겨져 있다,

묘골애오와공원에서 경의중앙선 아래를 나가면

신원역이다, 신원역 옆 40년전통맛집 매운탕 붕어찜

간판이 보이는 식당에서 2020년 물소리길 답사때 점심식사를 했는데

우리는 신원역에서 오늘 일정을 마치고 돌아간다,

양수역에서 평해4길 종점인 신원역까지는

약 9km로 3시간이 걸렷다,

경의중앙선 전철로 왕십리역에서 2호선으로

갈아타고 신당역 중앙시장으로 이동했다, 오늘도 딱 한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