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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옹주가 잠들어 있는 운길산 수종사(2022, 11, 17) 본문

국내 山行日記/그곳에 가고싶다

정혜옹주가 잠들어 있는 운길산 수종사(2022, 11, 17)

물흐르듯이순리대로 2022. 12. 15. 00:23

운길산 수종사는 조선시대 문인인 정약용이 지은 "유수종사기"에 수종사는 신라때 지은 오래된 사찰이라고 전하고 있지만 근거 자료가 없어서 자세하지는 않다,

전하는 설화에 따르면 고려 태조 완건이 산 위에서 솟아나는 이상한 구름 기운을 보고 가보았더니 우물속에 동종이 있어서 그 곳에 절을 짓고 수종사라 이름을 붙여다고도 하며,

1458년(세조4)에 금강산을 다녀오던 길에 이두수( 二水頭, 兩水里 )에서 유숙하던 세조가 운길산에서 종소리를 듣고 깨여나 주변을 찾아보니 18나한상이 모셔져 있는 바위굴에에서 물소리가 종소리처름 울려 퍼지고 있어서 이름을 수종사라 하고 중창 하였다고 도 한다, 들어가는 문 이름은 불이문이라는 현판이 붙어 있다,

수종사에는 1439년(새종21)에 조성한 태종의 딸 정혜옹주(?~1424)의 부도와 1493년(성종24)에 태종의 후궁인 명빈 김씨(?~1479)성종의 후궁들이 발원하여 조성한 팔각 오층 석탑이 있다, 팔각오층석탑에서는 1628년(인조 6) 선조의 계비인 인목대비(1584~1632)가 발원하여 조성한 불보살상도 발견되였다,

1890년(고종 27)에는 주지로 있던 풍계 해일이 고종에게 8천냥을 하사 받아 수종사를 중창 했다, 이듬해에 다시 4천냥과 비단을 하사 받아 불상 4존을 개금하고 탱화 3축을 새로 봉안했다,

수종사 해탈문으로 들어간다, 불이는 진리 그 자체를 달리 표현한 말로, 본래 진리는 둘이 아님을 뜻한다. 불이의 경지에 도달해야만 불(佛)의 경지로 나아갈 수 있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어, 여기를 지나면 금당(金堂)이 바로 보일 수 있는 자리에 세운다. 이러한 의미에서 이 문을 해탈문(解脫門)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해탈문(解脫門) 유마거사의 불이법문(不二法門)이 유명하다. 일체에 두루 평등한 불교의 진리가 이 불이문을 통하여 재조명되며, 이 문을 통해야만 진리의 세계인 불국토(佛國土)가 전개됨을 의미한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국보 제50호인 전라남도 영암군 서면도갑사해탈문(道岬寺解脫門)과 보물 제164호인 강원도 춘천시 북산면청평사회향문(淸平寺廻向門), 강원도문화재자료 제35호 건봉사 불이문 등이 있다.

해탈문을 들어가면

부처님 좌상이 있고

그 옆 언덕에 응진전이 있다, 불교의 응진전은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하여 좌우에 그의 제자 가운데 아라한의 경지에 이른 성자들을 모신 곳이다. 보통 5백 나한이나 16나한을 모신다. 나한(羅漢)은 아라한의 준말로, 마땅히 공양 받아야 하므로 응공(應供), 진리에 따르므로 응진(應眞)이라 한다. 그래서 나한전(羅漢殿)을 응진전(應眞殿)이라고도 한다.

응전전보다 더 높은 곳에는 >산령각이 있다,

산신각은 산악숭배나 마을신앙과 관련되어 있다. 대체로 1평 정도의 집에 산신당이나 위패가 모셔져 있다. 산신각이라는 명칭 외에 산신당, 산명당이라는 명칭이 사용되기도 한다. 산신은 보통 지역수호신으로서의 성격을 강하게 나타내고 있으며, 산뿐만 아니라 산 주변의 지역을 관장하는 신으로 여겨졌다.

한국의 불교사찰에 있는 산신각은 고유 신앙의 수용 차원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민간의 신앙이 두터운 칠성도 같이 모셔졌다. 명칭은 산신각, 칠성각, 삼성각 등으로 불린다. 현재 불교에서는 산신을 가람수호신과 산 속 생활의 평온을 지켜주는 외호신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산신각은 불교 밖에서 유입된 신을 모시는 건물이기 때문에 전(殿) 이라 하지 않고 반드시 ‘각’ 이라 하며, 이는 한국 불교 특유의 전각 가운데 하나이다.

산신각에서 내려다 보이는 아랫녁 북한강과 남한강이 합류하는 두물머리(양수리)를 바라볼 수 있는 저명한 경관 전망지점으로 자연경관의 가치가 높은 곳으로. 예부터 많은 시인 묵객들이 이 곳의 풍광을 시, 서, 화로 남겼으며,

서거정(1420~1488)은 수종사를 동방에서 제일의 전망을 가진 사찰, 이라 하였으며, 봄, 여름, 가을, 겨울 연중 내내 신록과 단풍, 설경이 신비스러우며, 일출, 일몰, 운해 등 어느 시간의 풍광이라도 대단히 아름다운 전망을 지니고 있는 조망지점으로서 경관가치가 큰 곳이다.

정약용은 일생을 통해 수종사에서 지낸 즐거움을 군자유삼락에 비교할 만큼 좋아했던 곳으로 역사문화 가치가 높은 곳이며, 

겸재 정선(1676 ~ 1759)의 경교명승첩(한강의 북한강․ 남한강 주변경관과 한강과 서울의 인왕산, 북악산 등의 경관을 그린 화첩으로 총 33점으로 이뤄짐)중 독백탄(獨栢灘)은 현재의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양수리’의 경관을 보여주는 고서화로서 그 시대의 명승지 경관과 현재의 경관을 비교 감상할 수 있어 회화 가치가 높다. - 위 글은 다음 백과 사전 인용 -

2022년 11월 17일 수종사는 지금 영화 찰영중이다, 그래서 많은 찰영장비가 들어와 있었고 영화찰영 장면은 사진이 찍히면 안된다고 해서 비켜서 찍는다,

수종사 대웅보전이다, 대웅전은 사찰에서 석가모니불을 봉안하는 불교건축물로 격을 높여 대웅보전(大雄寶殿)이라고도 하며 항상 사찰의 중심에 있다. 대웅전에는 사바세계의 교주인 석가모니불을 중심에 두고 문수보살(文殊菩薩)과 보현보살(普賢菩薩)을 협시(脇侍)로 봉안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격을 높여 대웅보전이라 할 때는 주불로 석가모니불, 좌우에 아미타불(阿彌陀佛)과 약사여래(藥師如來)를 모시며, 각 여래상의 좌우에는 제각기 협시보살을 봉안하기도 한다. 수종사 대웅보전 처마끝에 걸려 있는 인경은 바람이 불지 않아도 울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절에 있는 종각에는 범종이 걸려 있어 범종각이라고도 부른다. 절에서 종을 치는 것은 각종 불교의식의 시작과 끝을 알리기 위한 것이며, 종각에는 종 이외에도 북, 운판, 목어 등 불전사물이 설치되어 있다.

2층의 누각(樓閣)으로 되어 있을 때는 범종루라 하고, 불전사물 가운데 범종만을 봉안하는 경우에는 범종각이라고 한다. 범종은 소리로써 불음(佛音)을 전파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범종은 청정한 불사(佛寺)에서 쓰이는 맑은 소리의 종이라는 뜻이지만 지옥의 중생을 향하여 불음을 전파하고, 홍고는 북으로 축생의 무리를 향하여, 구름 모양의 운판은 허공을 나는 생명을 향하여, 나무로 만든 물고기 형상의 목어는 수중의 어류를 향하여 소리를 내보낸다는 상징적 기능을 가지고 있다.

수령500년 수령의 은행나무도 있다, 믿둥의 둘레가 보이는 것 만으로도 신령스러운 나무다,

수종사 사적기 라는 안내도 있고

은행나무가 있는 곳에서 다시 돌아나간다, 운길산 610m의 산아래 정상부에 있는 절이니 내려가는 것도 만만치는 않다,

대웅보전 방향으로 가면

대웅전 옆, 부도와 오층 석탑이 있다,

사진에 보이는 대로 오른쪽탑은 수종사 팔각오층탑으로 조선시대 석탑이다, 석탑의형태는 고려시대 팔각석탑의 전통을 이어면서 규모가 작아지고 장식적으로 변모한 조섬초기 석탑의 형태로 지대석위에 팔각의 대석을 올리고 그 위에 팔각정 기단석을 올린 탑이다,

이 탑에서는 1957년 해체수리 시에 1층 탑신과 옥계석, 기단 중대석에서 19구의 불보살상이 발견되였고 1970년 옮겨 세울때에 2층과 3층 옥계석에서 12구의 불보살상(보물 제1788호)이 발견되였다, 현재 중앙박물관에 장시발견된 불감 1구우ㅏ 불보살상 18구 등 복장유물을 소장하고 있다,

그리고 왼쪽 석탑 중간부분이 둥근 원형의 탑은 태종의 다섯번째 딸 정혜옹주(?~1424)의 부도다, 부도의 옥개석 낙수면에 "태종태후정0옹주사리탑시주00유씨금성대군전통4년기미십월일입" 이라는 명문이 새겨저 있다,

태종의 후궁인 의빈권씨는 태종이 승하한 후 비구니가 되였는데 하나밖에 없는 딸 정혜옹주가 1424년(세종 6)에 먼저 세상을 떠나자 딸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며 불교 정례법에 따라 화장하였다, 그런데 사리가 나와서 세종의 여섯 째 아들 금성대군의 시주를 받아 1439년에 부도를 세우고 안치했다,

조선 정약용시대 다선(茶仙 )으로 일컬어지는 초의선사가 정약용을 찾아와 한강의 아름다운 풍광을 즐기며 차를 마신 장소로서, 차문화와 깊은 인연이 있는 곳 수종사, 현재는 삼정헌(三鼎軒 )이라는 다실을 지어 차 문화를 계승하고 있어 차 문화를 상징하는 사찰로 이름이 높다. 삼정헌은 응진전 앞 해탈문 옆에 있다,

들어왔던 해탈문으로 돌아 나간다,

그리 크지는 않은 규모의 작은 절이니 오래 둘러 볼 곳도 없지만 수종사에서 내려다 보이는 경관은 오래 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