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흐르듯이 순리대로
경기옛길 강화길 제4길 한남정맥길 下(문수산 구름다리~강화대교)2022, 12,18) 본문
문수산 구름다리를 건너간다, 문수산구름다리에서 문수산 정상은 1,7km 라는 이정표도 있다,
김포대학로 를 건너가는 문수산 구름다리를 건너 가면서 보이는 김포대학교
문수산 구름 다리를 건너서 문수산으로 올라 간다,
이 길은 문수산아래 청룡회관옆 산길이다,
이 길은 문수산으로 서서히 올라가는 길로 아주 좋은 길이다,
각종 안내 시그널을 보니 이 길은 경기둘레길이자 평화누리길, 그리고 경기옛길 강화길 까지가
함께 지나가는 둘레길 이다,
문수산 오름길이니 이 정도의 경사도는 그런대로 널널한 편이지만
오전 내내 평지길을 걸어 오다가 오름길을 만났더니 조금은 버겁다,
그래도 마냥 오름길만 있는건 아니다, 잠시 지만 평지길 같은 길도 걷다보니
운동기구가 있는 삼거리로 올라왔다, 직진은 문수산성, 오른쪽은 청룡회관으로 하산하는 길이다,
여기에는 문수산길 종합안내도 도 있다,
다시 문수산성 홍예문 방향으로 올라간다,
계속되는 오름길이지만 이 길은 차가 다녀도 될 만큼 넓은 길이기도 하다,
그래서 더욱 여유로운길
그러다가 보면 앞에 정자가 보인다,
이 정자는 힘겹겨 올라오는 사람들을 위한 정자로 누구나 쉬여가도 되는 쉄터다,
정자로 올라가 주변을 돌아본다, 아래로 보이는 김포일대 와
한강 건너 일산지역 일대까지
조금 더 가깝게 보면 한강건너 일산과 북한산 일대 까지도 보인다,
잠시 아랫녁 구경을 즐긴후 다시 이어가는 문수산길
여기서 문수산성 홍예문까지는 300m정도다,
홍예문으로 올라가는 길도 조금은 급한 길이기는 하지만 임도 수준의 길이다,
문수산성 홍예문 앞 가파른 계단이 보인다,
계단을 올라가기 어려운 사람들은 계단 옆으로 올라가는 길도 있다,
그리고 보이는 문은 문수산성 亞門(아문)홍예문이다, 옛지도를 보면 문수산에는 총 7개의 성문 즉 문루 3개소와 아문 4개소가 있었던 것으로 확인된다, 아문은 암문으로 성곽의 깊숙하고 후미진 곳에 설치하여 적의 눈을 피해 사람과 가축이 통과하고 양식등을 나르던 곳이다,
현재 4게소의 아문 중에 서쪽과 북쪽 아문은 잔존하지 않어며 남쪽과 동쪽의 암문만 남았다,
이곳은 1993년에 복원한 남(南) 아문으로 바깥쪽이 아름다운 무지개 모양의 홍예식 성문의 형태를 하고 있다, 성문 안쪽의 윗 면과 바닥에는 기둥을 세우기 위한 확(確)이 있어며 좌우측 허리 부분에도 홈을 파 빗장을 걸 수 있도록 했다,
아문 앞에는 문수산성의 문지와 문수선성 옛 군사깃발 안내문도 안내해 놓았다,
남문인 성동리 방향으로 내려가는 문수산성과 문수산성 장대가 있는 정상으로 올라가는 문수산성이 이어진다, 1866년 병인양요 때에 외세의 침략에 맞서 격전을 치렀던 곳 중 하나였다. 866년(고종 3)에 병인양요가 일어나 프랑스함대가 강화성을 함락시켰다. 그리고 서울로 진격하는 길을 확보하려고 육전대를 투입해 문수산성을 공격해 왔다. 그러나 김포 출신의 한성근이 이끄는 수비군에게 격퇴를 당했다.
1866년 12월 2일 에는 120여 명의 프랑스군이 문수산성을 정찰하다가 매복 중이던 한성근(韓聖根) 등 조선군의 공격을 받고 27명의 사상자를 내고 물러났다. 12월 13일 프랑스군은 다시 교동부(喬桐府)의 경기수영(京畿水營)을 포격하고, 대령 올리비에의 지휘로, 앞서 강화부를 점령한 160여 명의 프랑스 해병이 정족산성의 공략을 시도했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매복 중이던 천총(千摠)양헌수(梁憲洙) 및 사격에 능한 500여 명의 조선군 포수들의 공격을 받아 6명이 사망하고 30여 명이 부상을 입으면서 프랑스군의 사기는 크게 저하되었다, 로즈 제독은 조선 침공의 무모함과 더 이상의 교전이 불리함을 깨닫고 철수를 결정했다. 12월 17일 프랑스 군은 1개월 동안 점거한 강화성을 철거하면서, 長寧殿(장녕전)등 모든 官衙(관아)에 불을 지르고 약탈한 금 은 괴와 대량의 서적, 무기, 보물 등을 가지고 갑곶진을 거쳐 청나라로 철군한 역사의 현장이 문수산성과 강화도 일대다,
문수산성 바깥쪽은 홍예문이고 안쪽은 사각형태의 전형적인 암문이다, 성 내로 들어가면
오른쪽 위로는 정상으로 가는 길이고 왼쪽으로는 남문방향으로 가는 길이다, 여기서 경기옛길 강화길은 남문방향이다,
문수산성 안 길은 이렇게 능선 길이다,
문수산성 내 길은 산성과 함께 나란히 간다, 산성 밖으로 내려다보면 대명항에서 부터 흘러내리는 염하강이 햇살에 반사되여 빛을 내는 듯한 아름다운 전경이 펼쳐진다,
문수산 아래 포내리 들녁과 염하강 건너 강화도 일대도 내려다 보인다,
성곽이 길인 문수산성, 햇볕을 받는 곳인데도 눈이 얼어 붙어 녹지않고 있다,
문수산성 길에서는 마음의 여유만 있다면 아름다운 주변 환경을 마음껏 누려도 좋은 그런 곳이다,
산성길은 잠시 안쪽으로 이어지다가 남문방향으로 내려가는 왼쪽길과 앞에 정자가 보이는 길로 나누어 지는데 강화길은 정자가 보이는 곳으로 이어진다,
이 정자에서는 염하강과 한강일대를 가장 아름답게 살펴볼 수 있는 조망터다,
한남정맥의 끝 문수산 과 김포와 강화도를 가로 질러 흐르는 염하강이 한강으로 합류되는 인천 서해바다를
조금더 가깝게 본다, 육안으로는 잘 안보여도 조금 당겨보니 더 선명하게 보인다, 어디가 강이고 어디가 바다인지? 보이는 곳 어디까지가 우리 땅이고 어디서 부터 북한 지역인지?
이번에는 다시 염하강 건너 강화도 북쪽 지역도 내려다 본다,
그다음 남쪽으로 마니산이 있는 방향도 바라보고
이어서 석모도 방향까지? 그러나 어디가 어디인지? 강화도 사람이 아니라서 그런가, 강화도 전지역을 모두 알 수는 없다, 그러니 그저 보이는 전경만으로 만족해야 할 듯
조망 정자에서 문수산 산림욕장 방향으로 내려간다,
이길은 조금 가파른 길이다, 그러나 이길에는 가파른 곳 모두 데크로 계단길을 만들어 놓은 길이다,
그래서 일까, 내림길이 불편하지는 않다,
숲 사이로 보이는 문수산 정상부나 문수사 등을 구경하면서 천천히 내려가다보면
갈림길이 있는데 여기서는 산림욕장 방향이다,
갈림길이 있는 이곳은 문수산 정상에서 1,6km지점이다,
여기도 내림길은 데크계단길이다
오름길이 힘들면 잠시 쉬여 가라는 쉼터도 있고
계속해서 데크 계단길을 내려가면
아랫녁은 문수산 산림욕장이다,
산림욕장의 대표적인 시설들도 보인다,
산림욕장 길을 따라 아래로 나가면 보일러가 가동되고 음악까지 들리는 깨끗한 화장실도 있다,
물론 문수산길 종합 안내도는 기본이다,
문수산정이라는 음식점도 있는곳
여기서 강화길 끝인 강화대교 까지는 1,5km 거리다,
병인양요의 상처를 지닌 문수산성 이야기가 안내되여 있다,
산림욕장 주차장이다,
산림욕장 주차장을 나가 왼쪽 강화대교 방향으로 간다,
내려온 문수산을 올려다보면 제일 뒤에 보이는곳이 문수산 정상이고 가은데 높히 올려다 보이는 곳은 조금전 한강과 염하강 일대를 내려다 보든 정자가 있던 곳이다,
좁은 길이지만 성동리 주 길을 따라 나가다 보니 순대국집 옆에 갑곶나루 선착장 석축로 안내가 있다,
갑곶나루는 월곶면 성동리와 강화의 갑곶리 사이를 오가던 나루다, 석축로는 육면체로 잘 다듬은 석제와 자연석을 이용하여 축조하였어며 현재 남아있는 석축로 규모는 폭 12m, 길이 40m, 앞 면의 깊이 1,2m 규모다, 지형을 활용하여 낮은 수심을 따라 축조하여 기울기가 가파르지 않은 선착장 석축로의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나루터 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조선 초기 이곳에 귀양을 와 있던 박신(1362~1444)이 사재를 써서 석축로를 축조했다, 갑곶이라는 이름은 몽골군이 침략하여 고려 고종이 강화도로 피난을 갈때 물길이 좁고 수심도 얕아 군사들이 갑옷을 벗어서 쌓아놓아 이곳을 건널수 있었다는 데서 유래했다,
석축로는 정묘호란 때 인조가 강화로 도피할 당시 이용했고 병자호란 당시에는 봉림대군이 수어 했다고 전해지며 병인양요 때는 프랑스 군과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곳이기도 하다, 이후 500년동안 이용되던 갑곶나루는 일제 강점기인 1920년 경에 성동리와 강화 용정리에 새로운 나루터가 생기면서 페쇄되였고 1970년에 강화대교가 개통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갑곶나루 산착장 석축로는 염하를건너 강화도와 육지를 연결하는 길목이 였다,
甲串鎭(갑곶진) 안내가 있는 곳은 ↑ 여기다, 사진에 보이는 집 뒤 염하강변이 갑곶나루터인 것으로 추정 되지만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다, 갑곶나루터를 지나서 문수산성 남문으로 간다,
보이는 문이 문수산성 남문이다, 金浦 文殊山城(김포 문수산성)은 숙종 8년(1682)에 강화유수가 강화지역을 보호하기 위해 축성하여 12년이 지난 숙종20년(1694) 끝낸 산성이다. 조선말기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과 치열한 격전을 치른 곳으로 유명하다. 순조 12년(1812)에 고쳐 쌓았다,
1694년(숙종 20년)에 축성된 문수산성은 강화 甲串鎭(갑곶진)과 더불어 강화해협을 지키는 요새였다. 강화의 갑곶진(甲串鎭)을 마주보고 있는 문수산(文殊山)의 험준한 줄기에서 해안지대를 연결한 성으로, 현재 해안쪽의 성벽과 門樓(문루)는 없어지고 산등성이를 연결한 성곽만 남아 있다
문수산성 남문 주변을 돌아보아도 이곳 어딘가에 있어야 할 강화길 스템프함이 보이지 않는다,
문수산성 남문, 조선 19대 숙종 20년(1694)에 외적 방어를 위해 쌓은 성이다. 당시 문수산성에는 북문, 서문, 남문이 있었으나 병인양요(1866)때 모두 불에타 없어 졋어나 북문은 1995년도에, 남문은 2002년도에 복원했다. 문수산성 정상에서는 북한 땅이 보이고 한강 포구와 서울 삼각산이 보이며 인천 앞바다 까지 보이는 절경지 기도 하다. 남문은 지리적으로 강화에서 육지로 들어오는 관문이였다,
문수산성 남문아래 성곽이 끝나는 지점, 강화대로 계단으로 올라가면 강화대교 앞 오른쪽 넓은 공터에 강화길 제4길, 2번재 스템프함이 있다,여기가 강화길 종점이다, 이 길은 경기옛길 강화길을 따라 걷는 역사의 길이다, 어떤 이유?로 신 강화대교 앞에 강화길 종점을 만들어야 했을까,
강화에서 육지로 들어오던 갑곶나루나 문수산성 남문 아래 성곽이 끝나는 곳이라면 상징성이라도 있을 것 같은데 여기는 아니다, 그 두곳에 강화길 종점을 알리는 구조물을 세울 수 없었다면 부득이한 이유로 강화대교 입구에 강화길 종점을 설치했다는 안내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더욱이 강화길은 경기옛길 6대로 중 마지막 구간인데 마지막 종점 장소로는 많이 아쉬운 선택이다,
이곳에는 경기도 강화길 전구간 안내지도 도 있고
강화길 제4길 한남정맥길 안내는 "한남정맥의 숨결을 느껴보는 길" 이라는주제로 한남정맥의 최 서북쪽에 위치한 문수산은 376m로 산수의 어울림과 분단 역사의 현장을 되새겨 볼 수 있는 곳이다,
옛 통진의 인문지성의 중심이 였던 통진향교와 문수산성은 뱃길의 관문이였기 때문에 외세의 침략에 맞서 치열한 격전의 역사가 살아 있어며 북한 개성의 송악산까지 감상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한남정맥으로 향하는 길은 외세 침략에 맞서 저항한 숭고한 숨결과 통일을 향한 마음을 되새겨 보시기 바란다는 말과 함께다,
강화대교 입구에서 강화길 마지막 스템프를 찍는다, 스템프에는 문수산성 도장이 새겨져 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스템프가 있는데 경기옛길 6대로 완주 인증 스템프다, 경기옛길 6대로를 모두 걸은 후 이곳에 와서 6대로 완주 인증 스템프를 찍어야 하는 모양이지만 여기까지 왔어니 6대로 완주와 상관없이 완주 인증 스템프도 기념으로 찍었다,
옛길은 옛길일 뿐이다, 그러나 최대한 옛길에 가깝게 지정을 해야 하는게 역사성이 있지 않을까? 서대문인 돈의문을 나와서 양화진에서 한강을 건너 양천길을 지나 48번 국도를 기준으로 통진까지 왔다고 하면 통진에서는 통진향교와 통진이청은 지났을 것이고 그 다음으로 이어지는 중요한 지점은 갑곶진이다, 통진에서 뒷산을 넘어 문수산을 지나 온 경로는 우마가 다닐 수도 없는 산길이기도 하지만 걸어 다니던 백성들은 평지길을 두고 궂이 험한 산을 넘어 다녔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다, 그러나 현대화로 도로뿐인 길로 걷는다는 것도 의미가 없어니 볼거리도 있고 전망도 좋은 산길을 지정 한 것은 옳은 선택이라 할 수도 있겠다,
돌아가는 교통편은 성동검문소 맞은편 버스정류장에서 3000번 버스로 1시간 20분 정도를 이동을 해야 송정역으로 갈 수 있지만 중간에 김포골드라인역으로 연결이 되기도 한다, 2022년 12월 18일은 송정역 3번 출구앞 골목에서 저녁을 먹었다, 추운 날씨에 하루 종일 들 길과 산으로 다녔더니 고기굽는 숯불 마저 따듯해서 반갑다, 오늘로 경기옛길 강화길 전 구간을 마쳣어니, 2023년 1월부터는 중국으로 오가는 사신들도 다녔던 길이였던 의주길을 따라 가 볼 생각이다,
약 13km의 거리를 3시간 30여분이나 걸렸다, 물론 휴식시간은 포함되지 않았다, 이번에는 AI 시간예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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