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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흐르듯이 순리대로

경기옛길 강화길 제4길 한남정맥길 上(통진성당~통진향교)2022, 12,18) 본문

경기옛길(조선시대 7大路)/강화길

경기옛길 강화길 제4길 한남정맥길 上(통진성당~통진향교)2022, 12,18)

물흐르듯이순리대로 2022. 12. 26. 00:33

통진성당앞 버스정류장 여기가 경기옛길 강화길 마지막 구간인 제4길 출발지점이자 제3길의 종점이다, 버스정류장에 있는 한맥정맥길 안내판에는 서울방향과 강화방향 표시가 되여 있는데 반대로 표시가 되여 있다, 여기서 제4길을 출발하는 사람들은 혼선이 올 수 도 있겠지만 강화방향은 버스 진행 방향이다,

통진성당을 상세히 둘러 볼 수 있는 시간은 여의치 않아서 통진성당으로 들어 오는 방향의 통진  거리도 둘러보고

버스 진행 방향으로 강화옛길을 따라간다,

통진초등학교도 있고

통진도서관도 있다,

통진마을 조강로 끝 담터사거리 에서는 라인호텔 앞으로 건너가야 한다,

김포대로를 따라 강화방향으로 조금 가면 통진두레문화센터가 있다, 통진두레문화센터는 일과 놀이를 함께 즐겻던 조상들의 슬기라는 안내가 있는데 옛날에 우리 농사 가운데 가장 비중이 큰 것은 벼농사였다, 17세기에 모내기 법이 퍼지면서 여름 한철에 모내기, 김매기, 물대기 등 논 농사에 중요한 부분을 대부분 접하게 되였는데 

농사를 지어 보지 않아도 모내기라는 과정은 다른 농사 일에 비해 많이 알려져 있다, 그만큼 논 농사에서 핵심적인 부분인 모내기는 물이 줄기전에 재빨리 마처야 했다, 그러니 모내기를 할때는 한 명이 열심히 하는 것 보다 마을 사람들이 서로 도와서 일을 끝내 버리는것이 훨신 효율적이라서 두레는 이러한 필요에 의해 생긴 공동 노동조직이다, 말 하자면 농사를 잘 하기 위해 마을 사람들끼리 팀을 이루어 함께 일하는 것이다, 

모내기 뿐만이 아니라 김매기 추수등 혼자서 하는 것 보다 여럿이 하면 훨신 힘이 들 더는 일들은 두레를 지어 함께 일을 했다, 통진의 두레 놀이는 김포 통진읍에서 있었던 두레를 바탕에 두고 한해동안 농사과정을 재현한 민속놀이로, 논을 갈고 써레질하기, 볍씨뿌리기, 모판에서 모를 찌기, 모내기, 세번에 걸처 김매기. 벼 베기, 탈곡, 하기까지 연속된 농사 과정을 열두마당으로 보여주는 놀이다, 

이 과정 사이 사이에는 풍년을 기원하는 고사 지내기나 두레 싸움등을 넣어서 웃음을 더 한다, 두레끼리의 다툼이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은 해도 그 싸움까지 놀이로 재현 한다고 하니 솔직한 재미가 있다, 통진두레놀이는 1997년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대통령상을 받고 1998년에는 경기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였다,

통진두레놀이라는 민속놀이가 있었는지도 모르는 사람이라 안내되여 있는 내용을 보면서 그 놀이 마당이 언제 인지는 모르겠지만 한번을 구경을 와야 할 것 같은 소중한 놀이문화라는 생각이 든다,

통진읍내애서 김초대로를 따라 강호도 방향으로 가는길 여러 개소의 음식점 들도 있다,

김포대로인 48번 국도가 강화길의 본류이니 이 길을 따라 가는게 강화옛길이 맞다,

겅화길 왼쪽 인도를 따라 간다,

48번 국도 김포대로는 계속해서 이어지는 길에서

GS칼텍스 주유소 맞은편 지점에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 입구가 보인다, 강화길 제4길 한남정맥길 종점인 강화대교는 여기서 10,8km 정도 남았다,

경기옛길을 위해 만들어진 계단으로 내려가

농로를 따라간다,

2022년 12월 18일 아침 기온이 영하 14도, 체감온도 - 16도 까지 내려간 올해 들어 가장 추운날이라 수로에서 떨어지는 물 방울이 커다란 고드름을 만들었다,

김포대로로 가지 않고 이렇게 농로를 따라 잠시 우회하는 이유는 이 길이 옛 강화길이라서가 아니라 김포대로에서는 인도가 끊어지고 없어서 잠시 우회하는 길이다,

수로옆 뚝으로 가는 길 여기는 도로가 없는 농지다, 여기도 산 구릉지를 따라 공장들이 들어서 있는게 보인다, SCKOREA도 보인다, 에스씨코리아는 식품과 소비제품들을 수입해 유통하는 회사다,

큰 규모는 아니지만 인삼 재배를 하는 밭도 보인다,

옹정3리 터골천을 따라 가다가 옹정1리 절골천과 합류해서 흐르는 포내천 뚝으로 왔다, 두개의 작은 개천이 조금은 커진 하천으로 바뀌였다, 한천 건너에 옹정초등학교도 있다,

버스정류장이 보이는 곳 군하로 로 이어진다, 이곳 버스 정류장 이름은 옥천탕 이다,

지금은 영업을 하는지는 모르겠어나 옥천24시 불한증막 사우나가 있다, 그래서 버스정류장 이름도 옥천탕인가 보다

온천탕 버스정류장에서는 왼쪽으로 포내천 방향이다,

군하로가 포내천을 건너가는 갑산교 앞에서 오른쪽 포내천 뚝길로 들어간다,

이제는 멀리 문수산이 보이는 길이다,

그리고 앞에 보이는 도로가 김포대로 며 다리는 오리교다,

오리교 아래 한남정맥길 이정표는 통진성당에서 5km를 왔어며 강화대교 까지는 8km남았다고 알려준다,

이어지는 길은 계속해서 포내천 뚝길이다,

포내천 뚝길을 따라

월하로 까지 왔다,

포내2교를 지나서도 포내천 뚝길이다,

2022년 들어 가장 추운날인데도 바람까지 불어대는 허허 벌판 길이라 추위 대비는 중무장?을 했어도

얼굴을 에이는 듯 한 체감 온도는 다른 방법이 없다,  이런 날은 얼굴을 감싸는 마스크도 도움이 된다, 

문수산을 보면서

군하리로 들어간다,

골목길을 나가서

도로로 나가면

이 도로는 군하로다, 포내천을 건너가는 군하교 다리 공사장을 지나서

군하로와 애기봉로 삼거리를 자나서

 

월곶면주민자치센터 방향으로 가면

다하누 월곶흑염소 식당과 다하누 정육식당이 붙어 있다 상호만으로는 주인이 같은 사람인듯

농협을 지나서

신호등이 있는 곳 오른쪽에 홍살문(紅箭門)이 있다,  

붉은색 주칠(朱漆)에서 홍살문(紅箭門)이라는 이름이 붙은 문으로 우리에게 붉은색은 벽사(辟邪)의 의미가 있다. 풍속에 동짓날 붉은 팥죽을 쑤어 먹거나 대문에  뿌리는 거나 아이 돌(돐)떡으로 수수 팥떡을 만들어 먹는 일  등은 붉은색을 귀신이 꺼리는 색이라 하여 악귀를 물리치고 집안의 안녕과 무병을 기원하는 의미가 있다. 홍살문의 붉은색도 이와 같은 의미로 쓰인 것으로 볼 수 있다.

홍살문 상부 가운데 태극은 천지가 개벽하기 이 전의 상태로서 우주 만물 구성의 가장 근원이 되는 본체를 말하는데. 태초에 우주가 생성될 때 태극이 생기고, 이 태극이 둘로 갈려져 하나는 陰이 되고 하나는 陽이 되였다. 이 음양의 배합으로 하여 천지의 모든 것이 이루어지고 모든 것이 변화, 생성되고 새로워져 발전과 번영이 영원히 계속되는 것이라는 의미가 전해져 온다.  - 백과사전 -

통진향교 풍화루(風化樓)다, 풍화루는 2층으로 1층은 3개의 대문이며 2층은 누각으로 지었다. 일반적으로 향교에는 풍화루를 갖춘 곳은 드문편인데 통진향교에 풍화루가 있다,

풍화루를 들어가면 교육 공간인 명륜당이 있고 그 뒤에는 제사 공간인 대성전이 있다, 통진향교는 1965년과 1966년에 각각 명륜당 및 부속건물을 대대적으로 보수했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정면 4칸, 측면 3칸의 대성전, 정면 5칸, 측면 2칸의 명륜당, 內三門(내삼문), 정면 5칸, 측면 2칸의 西齋(서재) 등이 있다. 

풍화루 옆으로 향교로 들어가면서 보이는 400년 세월의 느티나무 고목도 있디,

통진향교는 1127년(인종 5)에 賢儒(현유)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였다고 알려지지만 확실하지는 않다. 인종 5년에 세워진 향교라면 900년의 역사를 지닌 향교다,

통진향교 마당에 강화길 제4길 첫번째 스텀프함이 있다,

통진향교 도장이 새겨진 스템프를 찍는다,

스템프함 옆에는 학문의 숨결을 품고있는 인문지성의 성지, 통진향교 안내판도 있다, 안내판에는 지금은 의무적으로 교육을 받아야 하지만 옛날에는 교육의 기회가 공평하지 않았다, 조선시대 교육기관은 주로 양반집 아들 들의 과거시험을 준비하는 역활이였다, 

우리에게 익숙한 교육기관은 성균관이지만 성균관은 문과를 준비하기 위한 최고의 교육기관이 였다면 그 아래 소과를 분비하는 중등교육기관으로 학당과 향교가 있었다, 학당은 서울에 있는 학교이며, 향교는 지방에 있는 학교라고 생각하면 된다, 향교는 양민이상 8세 이상의 남자만 입학이 가능했고 여기에 유생과 생도를 교생이라고 했다, 

대성전에는 五聖(5성), 宋朝四賢(송조4현), 우리 나라 十八賢(18현)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 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 1명이 정원 30명의 교생을 가르쳤으나, 갑오개혁 이후 신학제 실시에 따라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봄, 가을에 釋奠(석전)을 奉行(봉행)하며 초하루, 보름에 분향을 하고 있다. 

이 향교는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30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향교의 운영은 典校(전교) 1명과 掌議(장의) 수명이 담당하고 있다.

통진향교에는 여러 그루의 느티나무가 있는데 수령은 400년이 넘었다고 하는 고목이다,

통진향교 대성전에서 나가면서 보이는 왼쪽은 유생들의 기숙사인 동재가 있다, 물론 지금은 관리사무소 쯤 된다, 그리 고 오른쪽 건물이 교육장인 명륜당이다, 풍화루를 통해서 들어오는 방향으로는 풍화루 다음 건물이 명륜당이고 오른쪽 건물이 동재다,

나가면서 보이는 느티나무와 풍화루, 역광 사진 이라 조금 어둡기는 하지만 고풍스런 아름다움을 보여 주는 결정체 인듯 하다,

통진향교를 나가면서 다시 돌아 보는 향교 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