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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흐르듯이 순리대로

경기옛길 영남길 제9길 죽산성지순례길下(장암리입구~일죽면금산리)2023, 04, 16 본문

경기옛길(조선시대 7大路)/영남길

경기옛길 영남길 제9길 죽산성지순례길下(장암리입구~일죽면금산리)2023, 04, 16

물흐르듯이순리대로 2023. 5. 8. 00:30

장암리 마을 입구에서 도로를 건너 들어가면서 보는 마을은 한적한 농촌마을이다,

비닐하우스 뒤로 보이는 하얀 건물, 나무에 가려져서 잘 보이는 않지만 이 건물은 지금은 폐교가 되였지만 장암초등학교다

장암초등학교를 지나 내려 가는 화봉천변 뚝길

건너편에 작은 정자가 있는게 보인다, 어떤 정자일까?

가는길 오른쪽은 마을도 있다,

화봉천을 건너가는 다리를 건너가면

양길래 길이 있는데 왼쪽 길로 들어가면

큰 느티나무가 있는데 100여 년은 넘은 듯한 나무다,

느티나무를 지나면 뚝길을 따라 오면서 보이던 정자로 이어지는데 이 정자는 충효각이라는 현판이 붙어 있다, 삼대를 이어져 내려 온 효자가문, 현풍 곽씨,영남길 이야기를 보면 15세기중반부터 일죽면 장암리와 화봉리 송산마을과 광천 마을에 집성촌을 이루고 살았던 현풍곽씨 가문에는 삼대를 이어 효자, 효부가 있었다,

1665년(현종 6)에 태여난 곽천재는 천성이 정직하고 부모에게 효성이 지극하였다, 어머니 전주 이씨의 병환이 깊어지자 그 변을 맛보아 약의 효력을 살피었고 부모가 돌아 가심에 여막살이 3년을 죽으로 연명 했다, 이 사실이 궁궐에 알려져 정4품 문관에게 주던 봉열대부의 품계를 받았어며, 곽천재의 며느리인 이천 서씨 또한 시아버지와 시어머니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였는데 마을에서 이 사실을 모르는 이가 없었다고 한다,

이 사실을 들은 숙종은 며느리에게 정려를 내렸다, 곽천재의 손자인 곽재두 또한 효자였다, 어느날 노친을 모시고 가다 산적을 만나자 몸으로 호위하다가 세 번이나 칼에 찔리면서도 몸을 피하지 않자 산적이 놀라 감탄하고 달아났다, 이러한 사실이 왕에게 알려지자 호조좌랑에 제수 되였다, 

곽씨 가문에는 효자 외에도 많은 충신들이 있었다, 효자 곽천재의 할아버지였던 장단도호부사 곽방건과 아들 곽종문이 그들이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선조는 의주 피난길에 오른다,이에 곽방건은 아들 곽종문과 함께 어가를 의주까지 호정하여 곽방건은 호성일등공신에 곽종문은 호성삼등공신의 칭호를 받았다,

충효각 이야기를 길게 했는데 충효각을 지나서 광천마을 버스정류장으로 나간다,

광천마을 버스정류장 맞은편에 영남길 이야기가 있는데 대사골 서당에서 축지법을 배운 임경업 장군 이야기다, 임진왜란때 곽사문은 전란을 피해 화봉리 광전마을에 정착한 후 대사골에 서당을 개설하여 후학들을 교육 했다, 하루는 기골이 장대하고 풍모가 준수한 한 학생이 서당을 찾아와 제자 되기를 청하였는데, 그가 바로 임경업 장군 이였다, 임경업은 날이 갈 수록 학문의 깊이를 더해 갔어며 비범하고 출중하여 곽사문은 후에 반드시 나라를 위하여 큰 공을 세울 인물 임을 확신했다, 그리하여 곽사문은 임경업에게 천문지리와 축지법까지 가르쳐 주었다, 

빠르게 습득한 임경업은 충주에서 광진 마을까지 축지법으로 서당을 다녔다, 어느 하루는 곽사문 선생의 생신을 맞이하여 메추리를 넉넉하게 잡아 생신날 아침에 올릴 수 있도록 축지법을 써서 충주에서 달려오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후에 임경업은 1618년(공해군 10)에 무과에 급제하고 1624년(인조 21년)의 난을 진압하는 등 국가에 큰 공을 많이 세웠다, 광천마을 버스정류장에는 스템프함이 하나 있었는데 이 스템프 함은 경기둘레길 스템프 함이 였다,

광천마을 버스정류장 맞은편에는 장수 한우 돌곱창, 곱창전골 전문점도 있다, 오늘 죽산면 소재지를 출발해서는 처음으로 보는 식당이다,

광천마을 버스정류장 왼쪽 10여m거리에서 오른쪽으로

마을로 들어간다,

마을이라기 보다 이렇게 보이는 농장들이 있는데 여기는 아마도 

육계 농장인듯 했다,

육계 농장 끝에서 왼쪽으로 가다보니

사료 공장도 보인다,

바닥에 이렇게 붉은색으로 실선을 그어 놓은 것은 경기둘레길 표식이다,

조금은 높은 지대에서 아래로 내려가면서 보니 앞마을에 큰 빌딩 두채가 있는게 보인다,

이렇게 한적한 농촌 마을에 이렇게 큰 빌딩이라니?

일죽면 화봉리 마을회관도 있는 곳이다,

마을화관을 지나 다음 골목길에서 왼쪽으로

판교길을 따라간다, 오른쪽 옆에 보이는 큰 건물은 안성 메가스터디 기숙학원이다,

다른건 잘 모르겠지만 이 마을로 찾아오는 길은 메가스터디 기숙학원만 찾어면 될 것 같다,

계속해서 가는길은 판교길이다, 여기는 이길 말고는 다른 길이 없다(포장길 기준)

농촌마을 이라는게 원래 삶은 고단하지만 보이는 것은 평화롭고 여유롭기만 한게 아니든가,

이 지역도 초행길이지만 그렇게 넉넉해 보인다,

인삼 밭도 있고

공장도 있는 곳

계속해서 길을 따라 가면 붉운색 페인트로 실선을 그어 놓은 것도 보이는데 이 선은 경기둘레길 표식이다,

이어지는 길은 하이시스로지텍 옆으로 해서

나 가면

306번 국도 일생로가 있는데

영남길은 편의점 앞으로 해서

나즈막한 언덕을 넘어간다,

일생로를 따라 가는길 인도는 없지만 영남길 때문인지? 안전봉을 심고 야자매트로 한사람이 걸어갈 정도의 길을 냈다,

이런길이 꽤나 길에 이어지지만

위험하기 까지한 도로변에 그나마 이런 길이라도 냈어니 다행이다, 일주 계량소를 지나고

청풍쉼터 정육점 등의 식당이 이어진다, 이 건물 끝에는 상록한식 부페까지 있다,

그 다음에는 금산식당도 있다, 이 지역은 공단지역인 모양이다,

그기에다가 주유소까지 

언덕으로 가니 금산산업단지 간판이 보인다,

도드람한돈 등의 공장도 있고

공장단지를 지나 내려가는 길에도 인도는 없다,

각자 알아서 조심스럽게 가야한다, 오늘은 다행히 지나가는 차들이 별로 없다,

나즈막한 언덕을 넘아가면 양갈레 길이 나오는데 여기서는 왼쪽 마을 길이다,

뚝방길 중간에 공사장이 보이는데 여기서는 오른쪽으로

앞에 보이는 마을로 가야한다,

가는길 옆 높은 지대에는 도로 공사가 진행 중이다,

금산교회를 지나 306번 도로로 나가서

오른쪽으로 조금만 더 올라가면

일죽면 하산전 마을과 금산보건소가 있는 마을입구 발전하는 상하 산전마을 이라는 아치가 있는 이곳이 경기옛길 영남길 제9길 종점이다,

영남길 제 9길은 죽산시외버스터미널에서 이곳 금산리까지 9,9km이다, 트랭글앱에 찍힌 거리가 10km이니 정확한 거리 이고 시간은 약 3시간 30분이 걸린다고 했는데 오늘은 9길과 10길을 완보할 요량으로 조금 서둘렸더니 10km를 2시간에 도착했다, 1시간에 5km를 걸었지만 전 구간이 거의 평지길이라 가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