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물흐르듯이 순리대로

경기옛길 영남길 제10길 이천옛길上(금산리~부래미마을 다목적체험관)2023, 04, 16 본문

경기옛길(조선시대 7大路)/영남길

경기옛길 영남길 제10길 이천옛길上(금산리~부래미마을 다목적체험관)2023, 04, 16

물흐르듯이순리대로 2023. 5. 9. 00:54

안성시 하산전 마을 입구 이곳에서 영남길 제9길이 끝이나고 제10길이 이어진다, 영남길 제10길은 이천옛길이다, 그러면 아직은 안성군이지만 이제 가는 길은 이천군 지역인가보다, 제10길은 이곳 일죽면 금산리에서 이천군 어재연장군 생가 까지의 거리는 9,9km이고 소요시간은 3시간 30분이 걸린다는 충청도로 이어지는 경기도 영남길의 마지막 구간이라는 안내가 있다,

금산리 하산전 마을 입구에 있는 머릿돌에는 金山 상산전, 하산전 이라는 이름이 같이 새겨져 있다, 망이산 아랫녘 가재가 뛰놀던 하산전 마을 영남길 이야기도 있다, 조선 철종때 본관이 함안인 윤석정이 한양에서 과거를 보고 돌아오는길에 이곳 下山田 마을에 이르르 바위 위에 앉아서 쉬고 있는데 한 노인이 이곳 큰 바위터에 집을 짓고 살면 부귀영화를 누릴 것이라 하자 그 자리에 집을 짓고 살면서 마을이 형성 되였다고 전해진다, 윤석정은 이후 무과에 합격하여 병마절도사에 제수 되였다고 전해 진다,

과거 보러 오고 가는 사람들이 쉬는 자리라 하여 마을 사람들에게 한양바위라고 불렸던 큰 바위는 아쉽게도 소실되여 그 모습을 볼 수없지만 이렇게 형성된 마을은 망이산 아래 밭이라 하여 山田이라 하다가 윗마을을 상산전, 그 밑에 마을을 하산전 마을이라 부르게 된다,

하산전마을은 예로부터 청정지역으로 물이 깨긋했다고 한다, 지금은 사라졋지만 물이 맑아 옻이 옮았을때 들어가 몸을 씻어면 옻이 낳는다는 옻샘 이 있었다, 계곡에는 왜가리들이 모여 들었고 왜가리들이 휴식을 취하던 나무들에게는 왜가리나무 라는 이름이 붙여 졋어며 개울가에는 1급수에서만 산다는 가재를 지금도 볼 수있디고 한다, 하산전 마을에는 단오날 그네를 매서 놀고 장재를 지내던 500살은 족히 넘어보이는 느티나무가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어 마을의 역사를 가늠하게 해준다,

금산 하산리 상산리 마을 입구에서 오른쪽 금산리마을 버스정류장으로 간다,

이 길은 인도 도 갓 길도 없는 그런 구간이다, 생극과 산양리 방향 이정표를 따라 직진으로 간다

가는길 왼쪽에 살기 좋은 마을 금산리 율동 이라는 마을 표지석도 있다,

이 도로는 306번 국도 일생로다

가는 길은 이렇게 잠시 넓은 길도 있고

넓은 것길 보다는 갓길이 없는 구간이 더 많은 길

가는길 건너는 S-OIL주유소도 있다,

S-OIL 주유소 가 있는 이곳이 경기도 안성시와 이천시 경계다, 안성시에서 내건 시경계 안내판에는 안녕히 가라는 인사가 크게 적혀 있는데

손님을 맞는 이천시의 쬐깐한 간판은 잘 보이지도 않는다,

안성시 마지막 구간이고 이천시 초입구간이라 그런지 이 길에는 그 흔한 걍기옛길 영남길 시그널이 하나도 안보인다,

시 경계이다보니 관리를 하는 관청이 없어서 그런가 보다, 가는길 오른쪽은

깔끔해 보이는 농촌마을 주택들이 보이는데 여기는 이천시 율면 산양리 1리다

안성시 하산전 마을 입구에서 부터 이천시로 넘어와 처음으로 보이는 영남길 리본

306번국도 일생로에서 처음으로 보는 신호등이 있는 곳 이곳 오른쪽 건너편에 행복청정마을 산양1리 마을 간판이 보인다,

영남길은 신호등 왼쪽 개천변이다,

잠시 개천을 따라 들어 가다가

직진 길을 버리고 오른쪽 개천 뚝을 따라간다,

개천 건너에는 외지지만 주택도 한 동이 있고

이 개천 뚝 길은 일직선 길인데 끝이 보이지 않는다,

끝이보이지 않는다는 말의 또 다른 뜻은 그만큼 넓은 들녁이라는 것이다,

이길의 끝은 어디쯤일까? 라는 생각을 하면서

가는길 왼쪽으로는 작은 마을도 있는데

서해안 지역 평야지도 아닌 이천지역에 이렇게 넓은 들이 있다는게 믿기지 않는다,

일직선으로 이어지는 뚝 길 에서 처음으로 보이는 개천을 건너가는 길이 보이면

다리 건너 다시 또 일직선으로 이어지는 농로를 따라 간다,

그리고 이어지는 길은

약간은 언덕으로 올라간다,

넓은 들판과 큰 차이가 있는 것 같지 않은 농토가 부럽게만 보이는 길

여기는 멀리서 보면 분명히 산으로 보일텐데 산 같지는 않은 곳이다,

이어지는 길은 농가는 없고 비닐 하우스나 축사만 있는 곳이다,

이천지역으로 들어와서 개천 뚝길로 들어서면서 부터

가는 내내 이렇게 보이는 농지農地가 왠지 모르게 부럽기만 하다,

산 처름 보여도 거의 평지같은 산 들과

보이는 것 만으로도 풍성한 것 같은 넓은 토지가 있는 곳

일부러는 몰라서도 못 찾아 올 곳을 영남길이 있어 이렇게 돌아 볼 수 있다는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오랫만에 보는 보리가 자라는 밭

그저 바라보는 것 만으로도 넉넉해 보인다,

이어지는 길을 따라 언덕을 넘어가면

마을이 보이는데

이 마을은

산양 2리다, 산양2리 마을 회관이 있다,

산양2리 마을길을 따라

가다보니

산양리 버스 정류장도 있다,  

이곳으로 오가는 버스는 하루에 몇번이나 운행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아침 저녁으로 만 다닌다고 해도 엄청난 교통 편의 일 것같다,

산양2리마을 앞도 거의 평야지대다

그리고 산양2리 마을회관이 있던 마을 다음에 있는 버스 정류장도 산양리 버스 정류장이다,

그러니 산양2리도 넓은 지역인가 보다,

한참을 가도 모두 산양2리 이름인 마을

다리를 건너간다, 이 다리는 산양교로 석원천에 놓여진 다리다,

석원천 산양교를 건너 가면 돌다리가 있던 마을 석교촌 이라는 영남길 이야기가 있다, 석교촌과 산양리 부락 사이로 흐르는 석원천 지류에 오래전부터 돌다리(石橋)가 하나 있었는데 옛날에는 이 다리가 우리나라 중앙부, 안성 용인을 거처 한양을 잇는 중요한 길목이었다,

석교촌에는 安씨들이 많이 살았는데 어느날 석교촌에 사는 안씨 남자가 젊은 아내와 이직 태여나지도 않은 아이를 두고 세상을 떠났다, 몇 달 후 젊은 아내는 건장한 사내 아이를 낳았는데 아이는 자라면서 점차 몸집이 강대하고 초인적인 힘을 지닌 장사가 되였다, 그러던중 안장사 어머니가 밤중에 몰래 외출을 하는 것을 알게 되였다, 청산과부로 살던 안장사 어머니가 개울 건너 양아리에 사는 외간 남자와 눈이 맞아버린 것이다, 

어느 추운 겨울날 안장사는 조용히 어머니를 따라 가 보았는데 어머니가 얼음장 처름 시린 개울을 맨발로 건너고 있었다, 효성이 지극했던 안장사는 어머니의 모습이 너무 안타까워 산 위에서 큰 돌을 모아다가 다리를 만들었는데 사람들은 이 다리를 안장사 다리 라고 했어며 장사가 태여난 마을을 석교촌石橋村이라 부르게 되였다고 한다,

석원천 지류 두번째 다리를 건너가면 이천시 율면 석산1리 마을이다, 지나 온 산양교가 산양2리와 석산1리 경계인 모양이다,

석산1리 를 지나가는 333번 국도 금율로 건널목을 건너 맞은편

주택지로 들어간다,

그리고 마을길 끝 지점에 있는

개천 다리를 또 건너서

따라 가면

이렇게 보이는 곳이 있는데 여기서는 오른쪽으로

농로를 따라 가다가

나즈막한 언덕을 넘어 가면

마을이 보이는데 이 마을은 부래미마을이다,

부래미마을 입구 다목적체험관 옆 영남길 제10길 마지막 구간 첫번째 스템프함이 았다,

부래미마을 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스템프를 찍고 보니 그 옆에 영남길 이야기판이 있는데

석산리 안불암이 전설이다, 석산2리를 안불암佛巖이라 부르는데 안쪽이라는 뜻이다, 옛날 석산1리와 2일 사이에 무처님 상이 있는 산이 있어 돌산이라 불렸는데 이 돌산 주변에 유독 부자가 많았다고 한다, 어느날 중이 이 마을을 찾아와 사람들에게 시주 할 것을 권했는데 마을 부자들이 시주는 커녕 매몰차게 처 내기만 했다,

이에 중은 천찬히 마을을 돌아보더니 저 돌산만 없어면 마을 사람들이 더욱 부자가 될 텐데 안타깝구나 라고 읊조리며 마을을 떠 났는데 부자들은 더 부자가 되기위해 부터님상과 돌산을 없애버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어쩐 일인지 재산만 탐내던 마을 부자들은 하나 둘 망하고 결국 마을을 떠나 버렸다고 한다, 라는 전설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