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흐르듯이 순리대로
경기옛길 영남길 제9길 죽산성지순례길上(죽산터미널~장암리입구)2023, 04, 16 본문
4월 9일에 이어 2주만인 4월 16일 다시 찾아 온 죽산시외버스터미널↑에서 롯데리아 앞 사거리로 간다,
롯데리아앞 사거리 왼쪽에 있는 하나로마트 앞으로 이어지는 길이 영남길 제9길이다,
하나로마트를 지나 죽산천 죽산교를 건너간다,
죽산천을 건너면 왼쪽 죽산천 뚝길로 가는데 죽산천은 지금 하천정비 공사 중이다,
죽산천 뚝길을 따라 올라가는 길
왼쪽으로 바라보면 지난번에 지나 온 죽주산성도 올려다 보이고
오른쪽에는 죽산천 생태습지도 있다,
죽산천 생태습지의 모습이다, 오늘은 영남길 제 9길과 10길, 20여km를 모두 완주 할 생각이라 이 습지 공원을 둘러 볼 시간이 없어 그냥 지나간다,
이어지는 뚝길로 계속 올라가다가 죽양대로가 보이는 곳에서 오른쪽 농로로 들어간다,
농로를 따라 들어가는 길은 앞에 보이는 집이 보이는 곳 까지다,
그리고 집들이 있는 곳에서는 17번 죽양대로 아래
굴다리로 들어 가야한다,
이곳에는 캠핑장도 있고 도로변으로는 동 안성휴게소도 있는 곳이다,
17번 죽양대로 아래 굴다리를 나가면
농가주택들이 띠엄 띠엄 있는 곳을 지나서
다시 오른쪽 농로로 따라 가다가
왼쪽 개천에 있는 다리를 건너
넓은 들판 농로로 들어간다,
이 지역은 지금까지 온 곳보다 더 큰 농지가 있는 들판이다,
농로를 따라 일직선으로 농지 끝 지점까지 가면 버섯재배 단지가 있고
버섯재배 단지를 지나면 숲이 보이는데
농로를 따라 들어간 길과 거의 직선으로 숲으로 들어갈 수 있는 폐 타이어로 만든 계단이 있다,
폐타이를 밟고 들어간 곳은 이렇게 보이는 공원이 있는데 여기가 죽산순교성지다,
그리고 공원 앞 주차장
화장실 앞에 영남길 제9길 스템프함이 있다,
죽산성지 스템프를 찍고 나서 보니 스템프함 옆에 영남길 안내 이야기가 있는데 죽산순교성지에 관한 이야기다, " 거기로 끌려가면 죽은 사람이니 잊어라, 하여 잊은터로 불리게된 죽산성지 이야기다, 천주교 4대박해중 하나인 병인박해(1866)때 많은 천주교들은 현재 죽산면사무소 자리에 위치해 있던 죽산관아에서 참혹한 고문을 받다가 이곳에 끌려와 순교했다,
치명일기 와 증언록에 그 이름이 밝혀진 순교자만도 25이나 되고 순교자 김도미니꼬, 는 박해를 피해 깊은 산속에 숨어 살았는데 어느날 천주교 신자인 것을 안 마을 사람 10여먕이 찾아와 열일곱 살 난 딸을 내주지 않어면 포졸을 데리고 와 가족을 몰살하겠다고 위협했습니다, 그녀는 여러 가족을 생각하여 할 수 없이 피눈물을 흘리며 딸을 내 주었습니다, 이렇게 인간으로는 감당 하기 어려운 모욕과 고난을 당하면서도 신앙을 고수하다가 순교의 길을 간 것입니다,
원래 이 부근은 고려시대 몽고의 3차 침입때 송문주 장군이 이끄는 죽주산성을 공격하기 위해 몽고군이 진을 친 곳으로 오랑캐들이 진을 쳣던 곳이라 이진터 라고 했는데 이러한 유래를 지닌 이진터는 병인박해 때 거기로 끌려가면 죽은 사람이니 잊으라 하여 잊은터가 되였는데 후에 음이 변하여 이진터란 이름으로 바뀌게 되였다는 슬픈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아래 사진에 보이는 넓은 공지는 죽산성지 주차장이다,
공원에 있는 십자가 조형물도 보고
죽산성지를 감싸고 있는 담장을 보면 성역문이 보인다,
주차장에는 죽산성지 안내도 도 있다,
죽산성지 주차장에는
예수님상도 건립되여 있다,
죽산성지 주차장을 나간다,
죽산성지로 들어오는 도로
주차장을 나가면서 죽산 순교 성지를 들여다 보면 이런 모습들이 보이는데 성지내로 들어가서 살펴볼 수 없는 것이 아쉽기는 하지만 언제가 될려는지? 기약은 없지만 후일 다시 죽산으로 와서 죽주산성과 주산천생태습지 그리고 죽산순교성지를 모두 차분히 돌아 보았어면 좋겠다,
성지를 나가면서
오른쪽에 영성관이 보인다,
천주교 수원교구 영성관은 죽산성지 성당인 것 같다,
죽산성지를 지나 종배길을 따라 나간다,
그러다가 오른쪽으로 들어 가는 첫번째 갈림길에서
오른쪽 농로를 따라 들어 간다,
농로를 따라 들어가면서 보이는 죽산성지 방향 일대 들녁은 보는 것 만으로도 넉넉하다,
낮은 산 옆길로 들어가는 내내 보이는
이 일대는 풍요로운 땅 인듯 하다,
작은 언덕을 넘어 들어 가니 밭 한가운데 바위가 있는데 밭을 평평하게 만드느라 바위만 남겨놓고 옆을 깍은게 특이해서 주민에게 바위 이름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이름 없는 바위라 했다,
인삼밭 옆으로 나가는길 앞에 길게 보이는 긴 집이 있는데 여기서 부터는 한우농장 축사가 많이 보인다,
그래도 오른쪽으로는 말을 타고 달리는 목동이 생각날 정도로 넓은 초지도 보인다,
축사가 있는 곳 옆으로 해서
길은 계속 이어지는데
이번에는 중부고속도로가 보인다,
이어지는길은 중부고속도로 아래 암거로 들어가고
고속도로 아래 암거로 나가면 일죽면 장암리다,
계속해서 보이는 것은 축사고
축사가 있는 가운데 길로 따라 가다가
이 길 끝에서
왼쪽으로 간다,
이렇게 이어지는 길은
큰 바위까지 이어지는데 이 바위는 며느리의 소원을 이뤄준 갓바위라 했다, 바위가 많았던 장암리는 바위와 얽힌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과거 장암리에 금망아지골이라는 마을이 있었는데 이 금망아지골에는 큰 부자가 살았다,
이 집 며느리가 손님을 대접 하느라 손에 물이 마를 날이 없었다, 어느날 한 스님이 시주하려 이집에 들르게 되였는데, 며느리는 스님을 극진히 대접하고 하루 묵을 방을 내어주었다, 다음날 스님은 고마움에 소원을 하나 밀해보라고 했더니, 며느리는 제 손에 물이 마르게 해 주십시요 라고 말했다,
스님이 가만히 보니 집 앞에 세워진 커다란 바위 위의 갓 모양이 이집 부의 원천이라고 생각하여 주인에게 저 바위의 갓이 재앙의 씨았이니 갓을 떼어 땅에 묻으라고 했다, 이렇게 하여 갓 모양의 바위가 사라지고 나니 집안이 망해 손님이 찾아오지않 아 며느리 손에 물리 말랐다고 한다,
갓 바위 전설을 보고 나니 며느리 일을 줄여 주는 것은 맞겠어나 집안이 망했다면?
가는길 오른쪽 언덕에도 이렇게 큰 축사가 있는게 보인다,
이제 부터는 농가 주택들도 보인다,
점차적으로 많이 보이는 주택들
그러나 이 마을이 정확히 어디인지는 알 수 없어니 그냥 길을 따라 가는데
큰 바위가 많은 마을 장암리 라는 영남길 안내 이야기가 보인다, 長岩里는1914년 행정구역 통 폐합에 따라 장현리, 광암리. 점리를 병합하면서 마을에 큰 돌이 많아 붙여진 이름이다, 과거에는 가로 지른 산 믿에 터를 잡아 마을을 형성했는데
이 산에는 소나무가 많아 갈솔미, 가루살미, 라고 했다고 전해 진다, 마을의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마을 곳곳에서 큰 바위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먼저 장군 바위는 그모습이 임신한 아낙네의 배와 같기도 하고 남자의 성기와도 같아 오랫동안 아들을 순산하기 위한 기도처 였다고 한다,
장군바위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는 안동바위가 있는데 조선시대 안동부사가 임신한 아내와 함께 지나가던 길에 동그랗게 파여진 비위틈에 앉아 아이를 낳았는데 그 아들 또한 안동부사가 되였다고 전해진다, 지금은 포크레인이 바위를 훼손시켜 사람이 앉아있을만한 흔적을 알아보기 힘들게 되였지만 안동바위에서 조금 올라가다가 좌측으로 들어가면 문간바위가 있다,
과거에 긴 두개의 바위가 길가에 마주보고 서 있었고 바위에는 동그란 빗장구멍이 있었다, 마을 입구를 표시하기 위해 빗장을 걸어 두었던 것으로 추측하고 있지만 바위 윗부분이 모두 떼어져 현재는 그 모습을 확인 하기 어렵다, 이 외에도 벼락을 맞아 쪼개진 벼락바위 멍석바위 등 마을에는 여전히 큰 바위들이 많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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