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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 황토구미 산 절벽 하단의 황토굴(2023, 04, 29) 본문

국내 山行日記/충청·경상·전라

울릉도 황토구미 산 절벽 하단의 황토굴(2023, 04, 29)

물흐르듯이순리대로 2023. 5. 19. 23:00

코끼리바위와 추산에 이어 다시 또 이동한 곳은 태하리 울릉도 황토구미가 있는 곳이다,

산 위에 있는 조면암과 집계암이 있는 곳으로 올라가는 길은 이렇게 고가 다리가 놓여있고

다리를 올라가는 기둥 벽면에는

울릉도 설명이 있는데

울릉도 재 개척에 불구하고 일본인들의 수탈이 계속되자 고종은 1900년 10월 25일 칙령 제41호 반포를 통해

울릉도와 죽도, 독도등 일대의 부속도서 모두를 통합, 하나의 독립된 행정구역인 군 郡으로 격상 하는 관제 개정을 단행 했다,

이로서 독도는 울릉도의 부속도서로 강원도 27번째 정식 지방관제로 편입였다, 이처름 칙령 제41호는 울릉도와 독도가 우리 영초임을 대 내외에 분명히 선포함에 있어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또한 울릉군으로 승격하면서 군청의 위치는 태화동으로 정했다,

이 고가다리 제일 높은 곳으로 올라 왔더니 바람이 세차게 불어서 날아 갈 정도다,

난간대를 붙잡고 앞쪽으로 따라 가면 독수리 코 처름 생긴 작은 바위도 있는데

이 바위는 매바위로 매의 머리처름 생긴 매바위는 조면암이 바닷 바랍과 파도에 의해 지속적인 침식, 풍화작용을 받아 형성된 바위다,

粗面巖은 주로 알칼리 장석(長石)으로 이루어진 화산암(火山巖)의 하나로 조면 조직은 장석의 작은 결정이 거의 평행으로 배열된 석기(石基)로 되어있다 연한 청록색 회백색 분홍색을 띠며 감촉이 까칠까칠하다

集塊巖 은 화산의 분화로 방출된 화산탄(火山彈) 따위가 뭉쳐서 생긴 암석

 

이 일대는 조면암과 집괴암이 분포되여 있는 지역이라서 고가 다리로 길을 냈나 보다,

고가 다리 정상부에서 내려다 보이는 마을은 울릉군 서면 태하리로 고종 칙령 제41호 군청의 소재지는 태화동으로 하고 했던 울릉군 최초의 군청이 있었던 마을로 보이는 항이 태하항이다,

1882년 울릉도 개척 시대를 열다, 이규원 검찰사의 울릉도 육로 이동 경로는 1882년 4월 29일 울진 구산포를 출발해서 4월 30일 저녁 학포(소황토구미)에 도착하여 5월 2일 태하(대황토구미)리 현포리 천부를 지나 나리동(5월 3일)으로

5월 4일 저동, 5월 5일 사동 그리고 5월 6일에 통구미 5월 7일 최초 울릉도 도착지인 학포(소황토구미)로 돌아왔다,

울릉도 개척은 구 한말 일본인이 울릉도에 무단 월경하여 나무를 베는 것을 강원도 수도관이 적발하여 조정에 알렸다, 

고종 임금은 과거 대마도도 우리 땅인데 울릉도 마저 빼았길 것을 염려하여 사람이 사는 것이 울릉도를 지키는 것이라 판단하여

1882년(고종19년) 중앙관리 이규원을 울릉도 검찰사로 임명하여 울릉도를 조사하도록 했다, 이규원은 1882년 4월 29일 선박 3척에 102명의 수행원을 거느리고 울진군 구산포 해변에서 출발하여 하루 반 만인 4월 30일 저녁에 소황토구미(학포)마을에 도착했다,

그는 울릉도를 11일간 육로와 해로를 따라 조사한 후 일기와 지도, 계초본을 조정에 보고 하였고 울릉도 사정을 알게된 고종은 개척령을 내리고 이듬해인 1883년 첫 개척인 16기구 54명이 정부의 지원하에 들어오게 되였으며, 2년 뒤에는 울릉도 개척민의 수가 2000명을 넘어 섰다,

이규원 검찰 일기는 국립 제주 박물관에 보관중이며 학포마을 해변에서는 이규원 검찰사의 흔적인 임오명 각석문이 남아 있다,

고가 다리에서 내려와 거대한 암반아래 울릉도 황토구미를 만난다,

산 절벽 하단의 황토굴(해식동굴)로 이곳 태하리에는 황토가 많이 났다고 하며 조선초기부터 이곳의 황토를 조정에 진상 했다고 한다,

조정에서 매 3년 마다 삼척 영장을 울릉도로 보내 그 지역을 수토하게 하고 그 순찰부를 확인하기 위해 이 마을의 황토와 향나무등을 바치게 했다는 기록이 있어며 

이곳 황토는 우리 고유의 색인 석간주로도 이용 되였다,

황토구미는 태하 모노레일 및 해안산책로 와 인접한 관광지로서 차량 접근이 용이하며 역사적 문화적으로 관리, 보존될 필요성과 산림문화자산으로서 대중에게 알릴 가치가 있다고 안내되여 있다,

황토구미가 있는 바다가에는 예전에 고가 다리가 놓여지기 전에 오르내리던 잔도가 있는게 보인다, 그래서 이곳의 조면암과 집괴암의 분포지는 소중한 자산인가 보다,

태하리에는 태하성 하신당 전설도 전해져 온다, 1417년 안무사 김인우는 울릉도 거주민의 왜 환을 위하여 울릉도에 도착 후 태하리에 유숙하며 도내 순찰을 했다, 출항 하루 전 업무를 마친 안무사의 꿈에 해신이 나타나 동남 동녀를 섬에 넘겨두고 가라는 지시을 내렸다,

이에 개의치 않고 출항을 하려고 했지만 예기치 않은 풍랑으로 인하여 배를 띄울 수가 없었다, 며칠을 기다려도 풍랑이 잦아들지 않자 안무사는 동남 동녀에게 지필묵을 가져 오라고 명했다, 그들이 지필묵을 찾어로 숲으로 들어가자 거짓말 처름 풍랑이 잦아들었고 이때 출항을 해서 육지로 돌아 온 안무사는 동남 동녀를 섬에 남겨두고 온 죄책감에 시달리던 중 다시 울릉도 안무사로 오게 되였다,

그는 동남 동녀가 살아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가지고 섬을 수색 했지만 지필묵을 찾으러 간 숲에서 서로 꼭 껴안고 백골이된 동남 동녀의 형상 만을 찾을 수 있었다, 안무사는 그들의 넋을 달래기 위하여 사당을 지어 제사를 지냈으며 지금도 매년 음력 3월 1일에 풍어와 안전을 기원하는 제사로 이어지게 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