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흐르듯이 순리대로
울릉도 가는날 KTX 강릉역~울릉도(2023, 04, 28) 본문
2023년 4월 28일 청량리역에서 KTX 열차로 강릉역으로 왔다,
KTX가 생기고 나서 처음 보는 강릉역이지만 전국 어디나 KTX 역사는 화려함 그 자체다,
강릉역에서 택시로 강릉중앙시장으로 이동해서
중앙시장 제2공영주차장 맞은편을 보니 하늘 높이 솟아있는 큰 나무가 있는게 보인다,
이 나무는 강릉 옥천동 은행나무로 강원도 기념물 제64호라 적혀있다,
은행나무가 얼마나 살아 왔길래 기념물로 지정되였을까? 은행나무 높이는 28m, 가슴 높이의 줄기 둘레는 6,6m, 밑동 둘레 8,2m 의 큰 나무이기도 하지만 가지는 동~서로 16m, 남~북으로 18,5m 정도 퍼져 있어며 고려 시대부터 천년의 세월을 살아 온 나무다,
전설에 의하면 신라시대 한 사냥꾼이 호랑이를 살려 주었는데, 호랑이가 보은을 하기 위해 은행 열매를 물어다 주어 그 열매를 심었더니 지금과 같은 큰 나무로 자랐다고 하여 이 은행 나무를 호행 虎杏 이라 부른다고 한다, 이 은행 나무는 수 나무라서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다,(안내판 내용 옮김)
은행나무 공원에 있는 조형물은 아이들 놀이터를 상징하는 듯 하고
그 뒤로는 보진당 이라는 현판이 걸린 古家가 있는데 사당인지 재실인지? 아니면 다른 용도로 사용했던 곳인지? 알림판이 없어니 알길이 없다,
은행나무공원 맞은편은 예전에 기차가 다니던 철도였어나 지금은 공원이 되여 있다,
철도부지 옆에 중앙시장이 있다, 중앙시장 2층이 식당가 라서 여기로 왔다,
중앙식당 2층에서 회 덥밥으로 점심을 했는데 식대는 그릇당 20,000원이 였다, 이제는 전국 어디를 가더라도 식대가 비싼 것이 실감이난다,
점심 식사후 택시로 강릉항으로 이동해 14시에 출항하는 울릉도행 여객선으로 장장 3시간 30분이나 걸려서 울릉도 저동항에 도착했다, 여기는 울릉도 저동항 여객선 터미널이다,
오늘따라 울릉도 저동항은 잔 물결도 일지 않는 잔잔한 날씨다,
저녁 6시 30분이 지난시간, 저동항에 어둠이 내린다, 저동항 앞바다 촛대바위가 가물거리듯이 보인다,
저동항 둘레를 한바퀴 돌아보는 코스도 있지만 오늘은 늦었어니
마중 나온 울릉도 현지여행사 가이드 안내로 저녁 식사를 하러간다,
카페와 음식점은 기본 이지만 울릉도에도 호텔이 있다, 물론 이름만 호텔이기는 하지만,
철옹성 처름 방파제로 감싼 저동항, 등대 두개가 마주보고 있는 곳이 항 출입구다, 저동항은 다른 항과는 달리 오픈형이 아니라 방파제가 항을 감싸고 있는 독특한 항이다,
저동항 끝 골목 식당입구에 숲이 있다, 이 숲은 관해정 觀海亭으로, 저동 앞바다 촛대바위 뒤로 솟아오르는 아침해를 바라보기 좋은 곳이라 하여 관해정이라 부르며 개척 당시 관해정 부근은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울창한 후박 나무숲이 였어나 개척민들이 나무를 베어내고 논밭을 만들어 점차 울창했던 숲은 사라지고 몇 그루의 후박나무(수령350년 추정)들만 보존되여 마을내 유일한 숲으로 남아있다, 개척 당시부터 마을 산신당이 1960년대까지 있다가 이후 울릉고등학교 뒤편으로 이전했지만 지금도 이곳을 제당이라 부르기도 한다,
1882년 조선정부는 빈섬으로 관리해 오던 울릉도를 사람이 거주할 수 있도록 개척령을 반포하여 울진에서 울릉도로 이민해 올때 식솔도 함께 이주해 온 배상삼은 힘이 장사인 무부였다, 그는 사동의 과부를 보쌈하여 관해정 앞에서 대장간을 차려 놓고 농기구를 만들어 팔며 거주했다, 당시에 울릉 첨사로 순시차 입도한 평해군수 조종성은 배상삼을 도수로 정하여 섬을 관리토록 하였는데 배도수는 왜인들이 무단으로 건너와 벌목하는 것을 혼자의 힘으로 20여명을 상대하여 몰아 낸 이후로 왜인들은 몇년간 얼씬도 못했다,
또한 1894년경 가뭄과 쥐떼로 흉년이 들어 개척민들이 기아에 허덕이자 부유층의 창고를 강제로 수색하여 수십석의 곡식을 나누어 주어 굶어죽어가는 수백명을 살려 생명의 은인이 되는 등 선정을 베풀었다, 이때 왜인들로부터 생필품을 구입해서 개척민들에게 되팔아 생겨를 유지하는 몇몇 상인들이 배도수로 인하여 왜인들이 들어오지 못하자 상업을 할 수 없어니 그를 죽이기로 모함해 배도수는 태하성하신당제를 지낼때 이들에게 억울한 죽음을 당했다, 그의 시신은 이곳 관해정 앞에서 화장장으로 치러졋다,
1962년 10월 국가재건최고회의의장 및 대통령권한대행 박정희 대통령이 군함을 타고 울릉도를 방문 했는데 저동항내까지 군함이 들어올 수 없어 전마선을 타고 뭍으로 내릴때 발을 헛 디뎌 바닷물에 빠졋는데 방파제가 없어 고생하는 주민들의 고충을 직접 체험하고 저동항 방파제를 건설할 것을 지시하여 다음해인 1963년 9월 울릉도민들은 이 은혜를 잊지않기 위해 모금을 하여 박정희대통령 순찰 기념비를 이곳에 세웠다, 저동항은 1980년도에 준공되였고 당시 동해안에서 두번째로 큰 방파제로서 동해 어업의 전진 기지가 되였다,
觀海亭은 저동마을의 정월 대보름, 팔월 한가위 등 문화행사의 공간으로 이용되였고 50년대와 60년대에는 남면 그네뛰기 대회도 매년열리던 곳으로 마을내 행사가 있어면 모이는 장소로 주민들의 사랑을 받는 곳이다, 관해정을 중심으로 큰모시개, 중간모시개, 작은모시개 마을로 나눠어져 있다, 저동마을은 개척당시 이곳 해변에 모시가 많이 자생해 있었기 때문에 모시가 많은 포구란 뜻으로 모시개라 했다, 이후 행정동명을 제정할때 모시 저 苧자를 써서 저동이라 했다,
관해정 이야기를 길게 했는데 울릉도 역사를 알고 울릉도를 돌아보는게 좋을 것 같아서 였다, 오늘 저녁은 관해정 아랫 골목에 있는 여행사 지정식당에서
산채비빔밥을 먹었는데 가격표를 보니 13,000원이다, 모든 식재료가 육지에서 들어온다는 울릉도라서 비쌀 수 밖에 없는것이 울릉도다, 밥 한공기에 된장국 하나 그리고 반찬 몇가지가 전부인 울릉도 첫 밥상
저녁식사를 하고 나서 숙소로가는길 울릉도 해안도로에서 제일 긴 터널을 지나가는데 이 터널의 길이는 약 4km라고 한다, 여기는 관광버스 기사가 가이드다,
50년간이나 공사를 해서 울릉도 해안일주 도로를 완공했다고 하는데 해안도로는 중앙선(이 터널 빼고)이 없다, 때로는 1차선으로 때로는 2차선이 되는데 교통사고가 날 경우 어느 차량이 중앙을 더 침범했느냐에 따라 잘 잘못을 가리고 울릉도에서 교통사고는 무조건 쌍방이라고 했다(버스기사 가이드 말)
정확히는 체크를 안했지만 대략 20여분이 걸려서 도착한 우리일행들 천부동 숙소 바다풍경펜션으로 왔다, 여기는 울릉군 북면 천부리 718-44 번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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