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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흐르듯이 순리대로

경기옛길 경흥길 제2길 천보산길 下(성모병원~축석고개)2023, 05, 14 본문

경기옛길(조선시대 7大路)/경흥길

경기옛길 경흥길 제2길 천보산길 下(성모병원~축석고개)2023, 05, 14

물흐르듯이순리대로 2023. 6. 7. 00:00

2023년 5월 23일 의정부역에서 버스로 이동해 온 의정부금곡리 에서 

한양에서 의정부 축석령으로 가던 지금의 42번 국도이자 조선시대 6대로 중 주요관선대로의 하나인 서울에서 관북으로 가는 큰 길 이라는 뜻에서 

관북대로 關北大路라고 불렸던 길로 한양에서 금강산을 지나 멀리 북쪽 토끼귀에 해당하는 지역인 두만강까지 가던 길이라고 보면 된다,

북쪽으로 가던길 關北大路, 동쪽으로 가던길은 關東大路, 서쪽 의주로 가던 길은 關西大路 였고 남쪽으로 가던 길은 嶺南大路와 전라도 지역으로 가던 삼남대, 그리고 강화길이 조선시대 6대로 였다,

한양도성 혜화문에서 의정부를 지나 북쪽으로 가던 길 축석령은 한양과 멀리 떨어져 있기는 하지만 일종의 북쪽의 관문이였다,

길은 43번 국도를 잠시 벗어나 마을 입구로 들어가다가 예전에 의정부 밀가마국시집으로 유명했던 음식점 정문 옆 산으로 이어진다,

이 길은 의정부소풍길이다, 녹양역에서부터 시작해서 천보산 소나무숲을 감싸안고 이어지는 현충탑까지는  불로장생길 이라고 하니 오늘 이 길을 걷는 사람들은 영생을 누릴 수 있겠다,

의정부 소풍길, 누가 지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길 이름 참 좋다, 소풍이라는 말에서 떠오르는 추억은 어머니가 싸주신 주먹밥 도시락, 물론 지금은 밥도 다르고 간식도 다르겠지만 어린 시절에 가장 행복했던 날로 기억되는 날의 이름이 소풍이였어니

그래서 일까? 길도 참 좋다,

그리고 볕이 잘드는 양지라 그런지? 묘소도 군데 군데 있는게 보인다,

무슨 이유로 소풍길이라 이름을 붙였는지 알아보니 천보산 소풍길은 의정부시의 대표시인 천상병 시인의 시 「귀천」의 한 구절에서 이름을 따 왔다고 한다,

의정부 소풍길은 9개 테마로 구성했는데 경기옛길 경흥길 제1길은 명상의 길이며 지금 가는 이길은 불로장생의 길이라고 한다, 

이름만 들어도 마냥 좋은 불로장생의 길을 따라 나즈막한 언덕을 지나가니 다리가 보인다,

다리를 건너? 가니 보이는 이정표는 43번 국도 방향으로 가라고 알려준다,

개천 옆 길을 따라 도로로 나간다,

다시 갈림길이 있는데 이 갈림길은 불로장생의 길과 경흥길의 갈림길인 모양이다, 아닌가? 이정표에는 백석이 고개로 간다고 알려주는데 백석이 고개는 천보산3보루 방향에 있는 고개로 우리가 축석고개를 지나 천보산으로 올라가 이어갈 능선이다,

직진으로 나가면 43번국도다,

43번국도를 건너서 맞은편 43번 호국로 인도人道 로 축석고개로 올라간다,

그다음에 보이는 갈림길에서 오른쪽 2차선 예전 도로를 따라 올라간다

차선은 있어도 인도는 없는 차가 거의 다니지 않는 옛길이다,

이 도로변에는 활짝핀 아카시아 꽃이 많이 보인다,

가는길 오른쪽으로는 택지조성도 해놓은 곳들이 보이는데 집들은 없고

조경농장도 있는 곳

울타리 넘어로 들여다보니 조경수 보다는 조경석이 더 많은 농장이다,

걸어다는 길로도 좋을만큼 지나가는 차는 보이지 않는다, 이 도로는 현충탑을 지나서는 43번 국도와 합류하는 도로로 현충탑 외에는 주택도 없어니 차가 다니지 않는게 맞겠다,

입구 갈림길에서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 있는 현충탑으로

들어가면

주차장이 있고 주차장 앞 조금은 높은 지대에 현충탑이 있다,

현충탑을 나간다,

현충탑을 나가면 이곳에도 소풍길이 있다, 현충탑에서 700m 거리인 귀락마을로 이어지는 소풍길은

현충탑부터 부용산 소나무숲을 둘러 걷는 삼림욕길 이라는 안내가 보인다, 여기도 소풍길 대구간 4코스 산림욕길로 5,8km에 3시간30분이 걸리는 난이도 중의 길이며 625전쟁도 피해간 전원마을인 귀락마을을 지나 세상의 때가 묻지않는 울창한소나무숲과 무지랭이 계곡이 있다는 곳이다, 

그리고 그 앞으로 의정부지구전투기념비가 있는 곳이다, 1950년 6월25일 미명에 수십배의 우세한 병력과 장비로 38선 전역에 걸쳐 공격을 감행, 수도 서울을 단숨에 함략코자 철원과 김화에서 의정부에 이르는 중부전선을 주 공격 방향으로 전차 156대와 병력 28,000명 그리고 각종 대포와 박격포 등 북한의 전 화력의 1/3을 이곳으로 집중 공격을 해 왔다,

송우리를 탈취한 적 전차는 6월 26일새벽, 단독으로 축석령을 향해 서서히 남하 하고 있었다, 금오리에 위치한 105미리 포대에서는 포신이 벌겋게 달아 오르도록 쉴 새없이 포 사격을 실시 했다, 구러나 적 전차를 파괴하기에는 역부족이 였다, 적 전차를 저지하지못하면 의정부는 고사하고 수도 서울의 함락이 시간 문제 라고 생각한 김풍익 대대장은 적의 전차를 격파할 수있는 것은 오직 포병의 직접 조준사격 뿐이라고 판단해 결사대를 조직하고 적 전차와 맞대결을 하기로 결심하였다, 

김풍익 소령은 포대장인 장세풍 대위와 결사대 1개 분대 6명 및 포 문을 직접 인솔하여 축석령이 잘 보이는 고개 밑으로 전진, 직접조준 사격 준비을 완료했다, 때마침 커다란 굉음과 함께 축석령 고개를 돌아 내려오는 적 전차를 발견한 결사대는 50m 접근 할때까지 기다렸다가 침착하게 직접 조준 사격을 실시, 통쾌하게 전차의 퀘도에 명중 육중한 쇳덩어리는 도로 중앙에 멈추어 섯다, 뒤에 남은 포대에서는 최진식 중위의 지휘하에 집중포 사격으로 결사대를 엄호하였다, 

두번째 포탄을 장전하고 사격을 실시 하려는 순간 후속하는 적 전차의 집중포격을 받고 불운하게도 대포에 장전한 포탄과 함께 폭발해 그 자리에서 전원 산화하고 말았다, 이러한 전과는 적으로 하여금 서울을 함락 시키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지연되게 하였다,

1950년 8월 김풍익 소령은 중령으로 장세풍 대위는 소령으로 추서 되였어며 12월에는 을지 및 충무무공훈장이 추서되여 그 무공을 인증받게 되였다, 이곳 축석령을 기필코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 결사대를 조직 직접 조준사격으로 적 전차의 퀘도를 명중 격파했던 뛰여난 전술 전기, 꽃다운 29세의 젊음을 조국에 바친 위국헌신의 군인 정신은 오늘날 후배들의 귀감이 되여 군신 軍神 이라고 일컬어 추앙을 받고 있다, 이곳을 1950년 6월 북한군 전차를 파괴하여 서울의 함락을 지연시켯던 용감무쌍한 포병의 혼들이 잠들어 있는 곳으로 기억해 주기 바랍니다,

의정부지구전투에 대한 긴 이야기를 옮겨 적었다, 이제 다시 43번 도로로 나와서 축석고개로 올라가는길 오ㅣ진곳 인데도 야외수영장과 제빵소도 있다,

그 다음으로는 GS25편의점도 있는데 인근에는 마을도 없고 지나가는 사람들도 없는 외진곳에 전속으로 달려가는 도로변에 있는 편의점이지만 그래도 장사가 되니까 있을 것 같다,

그래도 편의점이 있는 곳은 의정부 시로 편의점이 의정부시 마지막 땅이다, 과속방지 카메라가 있는 이곳이

의정부시와 포천시 경계지역이다,

포천땅으로 들어가면 축석고개 삼거리가 있는데 직진은송우리고 오른쪽은 의정부 민락지구 신도시로 가는 길이다,

축석고개삼거리

이곳에는 오른쪽에 대형 한우고기집도 영업을 하고 있는 축석고개 마을이다,

삼거리 가운데 작은 공원이 잇는데 여기가 축석령 호국로 공원이다,

공원 에 있는

경흥길제3길 안내판과 스템프함이 있다,